'이만열 교수와 고신교회'에 대한 반론 1
"이만열 교수와 고신교회"에 대한 반론 1
먼저,
여러 모로 바쁘신 목회 가운데서도
관심을 가져 주시고 글(이만열 교수와 고신교회)을 올려 주신
이철호 목사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목사님께서 올리신 글에 대하여 반론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고신교단과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성도 여러분~
저는 지난 글을 통하여
이만열 교수를 고신의 강단에 초청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
그가 "퀘이커학회의 학회장"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만열 교수는 "장로"의 직책을 가지고 있는 분입니다.
교회의 "장로"가 퀘이커학회의 학회장이라는 것이
이철호 목사님(창녕학포교회 담임)의 말씀대로 과연 학문적인 것으로만 말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목회자님들께서 "퀘이커이단"에 대하여 매우 관대한 자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퀘이커교도란 무엇일까요?
2. 퀘이커교의 교리
첫째, 퀘이커교는 그들 특유의 예배 형식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예배라고 할 수 있는지도 논의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 모임에 참가한 사람들은 무언(無言)을 지킨다. 침묵(명상)을 계속하는 동안 그들은 성령의 내림을 기다린다.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나 누구든지 그 자리에서 성령의 내림과 사역이 있으면 받은 영감을 말한다. 17세기에 이 운동이 일어났을 때는 영감을 받을 때 전신이 떨었다 해서 ‘진동자(Quaker)’라는 별명을 얻었다.
만약 영감을 받은 사람이 없으면 무언으로 그 모임은 끝난다. 그들은 직접적 영감을 중시하여 언제든지 새 계시를 받는다고 한다.
함석헌은 “퀘이커의 명상은 동양의 참선처럼 개인적인 명상이 아니라 단체적인 명상이다. 퀘이커들은 단체로 명상할 때 하나님이 임재한다고 믿는다”고 설명한 바 있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예배형태에 대해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이승구 교수(조직신학)는 “과연 퀘이커 모임 가운데 있는 것이 모두 성령의 인도하심과 가르치심인가 하는 것이 문제”라며 “그들은 때때로 성경과 예배 중에 성령의 영감을 구분하여 말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퀘이커 사람들은 계속적인 계시(continuing revelation)를 말하는 결과를 내고 만다”고 지적한다.
즉, 퀘이커교도들은 요한복음 1장 9절~18절에 근거해 ‘보편적인 내면의 빛(the universal Inward Light)’을 중요시하면서 이것으로 계속적으로 진리를 계시해 준다고 주장하지만 이 본문이 그런 뜻으로 해석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곧 모든 신비주의를 허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둘째, 퀘이커교는 성서가 모든 종교체험에 관한 가장 우수한 문학적 표현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안에 불변의 진리가 있거나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퀘이커에 따르면 “성서는 원천에 관한 방향 제시는 되나 원천 자체는 아니다. 그 원천은 오히려 성령 또는 각자의 내부에 있는 ‘영적 빛’이다. …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내적으로, 직접적으로 자기 안에 내주하는 성령에 의해 인도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에 대해 한국성서대학교대학원장 김호식 교수(조직신학)는 “퀘이커는 성경보다 자기들이 직접 받은 계시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면에서 문제다”며 “이에 반해 개신교는 66권 성경이 모든 신앙의 궁극적인 기준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아래 박스 기사 참고).
셋째, 퀘이커교는 내적 계시를 중시하고 성서를 격하시키기 때문에 어떤 교리나 신앙고백서를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오히려 모든 신학적 사변의 무거운 짐을 바닷가에 다 버렸다고 자랑한다. 퀘이커호주연회에서 펴낸 <청소년을 위한 퀘이커 신앙 안내서>의 교리적인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모든 외적인 전쟁과 싸움을 무조건 반대한다. 따라서 군대에 들어간다거나 전쟁준비 작업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한다(양심적 병역거부).”
“우리는 노예제도, 인종차별을 반대한다.”
“우리는 모든 어린이는 태어나는 순간 하나님의 권속의 일원이 된다고 믿기 때문에 세례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일은 외적인 성례전 없이도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례전을 갖지 않는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부분이 있다. 그것은 ‘씨’, ‘속의 빛’, ‘사람의 영’ 등으로 불려왔다. 그것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어떤 인종이나 종교에도 상관없이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속에 있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자신 속에 있는 영을 계발하고 진리를 더 열렬하게 추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매우 가까이 나아갔다. 이들 중에는 이집트인 악나톤, 인도 왕자 석가모니, 중국 신비주의자 노자, 유대인 이사야 등이 있다.”
“우리는 비 기독교인들의 신앙을 배척하지 않는다. 우리는 힌두교나 유교 또는 그밖의 다른 종교나 철학이 하나님께 향하는 또 다른 길을 보여 주고 있음을 알기 때문에 그들의 신앙과 실천을 존중한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교리에 대해 이승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퀘이커교도들은 대개 삼위일체 교리, 전전 타락 교리, 죄의 전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 교리 등을 거부하고, 성례가 불필요하다고 본다.
초기 퀘이커 교리는 Robert Barclay(1648~1690)가 쓴 「Apology for the True Christian Divinity」(Amsterdam, 1676)에 요약되어 있고, 19세기 초에 와서는 그들 안에 있던 청교도적이고 재세례파적인 요소들을 모두 버려 버리고 19세기의 지적 정황에 맞게 자신들의 사상을 다시 표명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퀘이커는 두 종류로 나뉘게 되는데, 하나는 복음주의적 퀘이커이고, 다른 하나는 현대 비복음주의적 퀘이커이다.
주로 Joseph John Gurney(1788~1847)의 영향 하에서 나타난 복음주의적 퀘이커는 성경의 무오성과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으며, 그것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계속적인 계시와 철저한 평화주의(doctrinal pacifism),
그리고 내면의 빛을 통한 구속과 조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퀘이커들은 목사를 임직시키지는 않지만, 목사를 청빙하기는 한다. 또한 순서를 따라 드리는 예배를 하기도 하는데, 이런 복음주의적 퀘이커의 표준적 진술은 ‘리치몬드 선언’(1887)이다.
현대 비복음주의적 퀘이커주의는 부분적으로는 18세기 정적주의적 퀘이커 사상(quietist Quakerism)에서 연원한 것으로 합리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것과 신비적인 것을 결합시킨 사상이다. 보편적 내면의 빛 교리를 확장시켜 모든 종교에 그 빛이 작용하고 있다고 하며 모든 종교들은 다 조화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인류는 다 하나라고 믿기에 이런 분파의 퀘이커는 평화 운동과 사회봉사 활동에서 매우 활동적이다.”
넷째, 퀘이커교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두 가지 종자가 있다고 믿는다.
이는 죄의 종자와 신적 종자다. 죄의 종자는 인간 자신으로부터 싹이 트나, 신적 종자는 신으로부터의 개입이 필요하다. 이것을 ‘하나님의 심방’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심방의 하루 또는 한 때를 주어 그가 구원을 얻어 그리스도의 죽음의 열매에 동참하게 한다. 이 하나님의 심방의 때를 가지는 사람이 구원을 얻는다. 마음속에 비치는 빛에 항거하는 사람은 멸망받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화해 사역은 아직 미완성이다. 또, 퀘이커에 의하면 사람에게는 아담의 죄값이 전가되어 있지 않다. 사람이 다 같은 불복종의 죄를 범하고부터 비로소 죄책이 생기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에게까지 원죄의 책임을 지우는 교리는 잔인하고 자연과 하나님의 자비와 의에 어긋나는 견해다.
이승구 교수는 이에 대해 “이와 같이 아담의 죄의 전가를 거부하는 퀘이커교는 결국 펠라기우스적인 구원론을 주장하게 되고, 그 구원의 방도는 내면의 빛에 순종하는가의 여부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섯째, 퀘이커교의 교회는 ‘거룩한 빛, 자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증거를 순종하는’ 모든 사람으로 구성한다.
그 안에는 이미 죽은 사람도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교도(異敎徒)와 터키 사람과 유대 사람도 다 포함되어 있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위해 눈을 뜨고 은혜의 선물의 정도에 따라 서로 가르치고 교육하고 배려한다. 이것이 교회다. 그런데 외적 신앙고백과 외적 의식이 없으면 교회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다면(로마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지목) 그들은 악마의 꼬임에 빠져 있다.
이와 같은 퀘이커교의 주장에 대해 이승구 교수는 “초기 퀘이커 사상가인 죠지 폭스는 가시적 교회의 배교가 신약 성경에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며 배교한 교회에 천주교회와 개신교 모두를 넣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께서 이제 ‘참 교회’를 모으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주장했다. 그 함의는 이제 내면의 빛을 추구하는 이들이 참 교회라는 것이고, 자신들과 이교도 가운데서 이 내면의 빛에 순종하는 이들은 모두 참 교회에 포함된다는 주장이다. 후에 현대 비복음주의적 퀘이커에서는 이런 생각이 더 확대되어 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섯째, 퀘이커교는 자타가 공인하는 평화주의자이다.
따라서 퀘이커교가 병역과 선서를 거절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과 이 세상이 필요로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봉사적 사랑으로써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이 점이 다른 기독교신비주의자들과 다른 점이다.
(자료출처 http://cafe.daum.net/JESUSILOVE/HSrH/46?docid=1IDft|HSrH|46|20100723192517&q=%C4%F9%C0%CC%C4%BF%B1%B3&srchid=CCB1IDft|HSrH|46|20100723192517)
이철호 목사님께서는 "이만열 교수와 고신교회"라는 글을 통하여
이만열 교수가 퀘이커 학회장이라는 것이 단순히 학회적 혹은 학문적 차원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까요?
목사님께서는 함석헌마저도 퀘이커교도가 된 것이 아니라고 피력하셨습니다.
주로 민족이 겪고 있는 심대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코자 하는 신앙적 학문적 모색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함석헌 선생이 퀘이커교의 회원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그가 퀘이커교도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마땅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김성수, 2005:186).
(자료출처 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6584)
목사님께서는 "신앙적 학문적 모색"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신앙적"인 것과 "학문적"인 것이 별개로 갈 수 있을까요???
기독교인은 성경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대로 믿느냐 안 믿느냐? 그것이 중요합니다.
함석헌이나 함석헌을 따르는 자들의 말이
"나는 퀘이커교도다" "나는 퀘이커교도가 아니다".
그 말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는 말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함석헌의 "씨알사상"입니다.
씨알사상
유영모와 함석헌이 주창. 사람을 씨알에 지칭한 사상
사람 안에 영원하고 불멸한 심적 생명이 있다고 보고, 사회적 규정이나 신분과 관계없이 사람 그 자체가 역사와 사회의 바탕이자 주체라고 여기는 사상이다. 사랑과 평화만이 문제해결 방안이라고 강조하며,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 여기서 씨알은 사람, 민중을 지칭한다.
씨알사상은 교육자이자 종교인이었던 유영모(1890∼1981)가 사상의 틀을 만들었고 사상가 함석헌(1901∼89)이 사상을 심화시키고 발전시켜 현실 속에서 실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씨알사상을 주제로 한 최초의 한일 공동 포럼인 제1회 한ㆍ일 철학포럼이 2009년 7월 19일부터 5일간 전남 목포대에서 열렸다.
[자료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씨알사상 (시사상식사전, 박문각)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928278&cid=476&categoryId=476
씨알사상은 "사람 안에 영원하고 불멸한 심적 생명이 있다"는 사상입니다.
이것이 성경 말씀과 같은 사상일까요? 아닙니다!!!
그러면 성경은 무엇이라고 할까요?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5)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골 2:9)
골로새서 2장 9절에서 "그 안에는"이라는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는"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내면에는 "영원하고 불멸한 심적 생명"이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분명히 어둠이라고 말하며,
신성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있다고 말합니다.
이 성경 말씀과 반대되는 것을 믿는 사람은 이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라 하셨습니까?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눅 11:23)
그 어느 누구라도 인간의 내면에
"영원하고 불멸한 심적 생명"이 있다고 믿는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것을 학문적으로 따르고 학문적으로 발표한 것이라고 말하면 정말 아무런 문제가 안 될까요?
예를 들어, 신천지 이단에 참여하고 있는 목사가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실을 노회가 알고 그 목사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목사님께서는 신천지 이단에 왜 참여했습니까?"
"아 네, 저는 다만 학문적으로만 참여했습니다."
그러면 노회에서,
"아 그러시군요. 목사님은 참 여러 방면으로 연구를 하시는군요."
하고 그냥 넘어가도 되는 문제일까요?
그렇게 말하면 되는 것일까요?
그렇게 말하는 노회가 있을까요???
무슨 말을 하면 과거의 일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함석헌학회 2013년도 춘계학술발표대회가
2013년 5월 6일에 영남대학교에서 열렸습니다.
함석헌학회 2013년도 춘계학술발표대회 안내
2013/05/06 17:09
2013년도 함석헌학회/한국양명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
일 시: 2013년 5월 11일 오전 9시
장 소 : 영남대학교 법학전문도서관 2F 영상회의실
. 9:00~9:20 등록
【1부】 개회식 및 기조강연 --------------------------------- ----사회: ***
. 9:20~9:50 개회 및 인사말 ------------------------------이만열(함석헌학회장)
(자료출처 http://blog.ohmynews.com/hamsh01313/notice/500068)
교회의 장로인 이만열 함석헌 학회장은 "인사말"에서 무엇이라고 말했을까요?
왕양명과 함석헌은 시대의 이단자다
시절이 수상하여도 계절은 제철을 찾아오나 봅니다. 4월에 들어서도 날씨는 냉온의 일기를 변덕스럽게 교차시켜 언제 화사한 봄을 맞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고대하던 봄은 훌쩍 지나가 버리고 벌써 초여름 날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오늘 저희 함석헌학회와 한국양명학회가 합동으로 “왕양명과 함석헌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2013년도 춘계학술발표대회를 갖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특별히 영남대학교에서 학술발표 자리를 마련해 주신 데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가족들과 함께 할 휴일여가도 마다하시고 오늘 학술발표를 빛내주시기 위해 찾아주신 여러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 함석헌학회는 지난 2010년 4월 16일 서울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발족되었습니다. 함석헌(1901-1989) 선생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한국사회에 예언자적 사명을 수행한 사상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일제 강점하에서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를 발표한 이래,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한다’를 포함한 수많은 주장을 통해 한국사회를 일깨우면서 인권과 민주화, 평화와 통일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이단으로 취급을 받았던 인물이지만, 그의 사상은 근현대 한국을 올곧게 이끌어 가는 데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함석헌선생 식으로 생각했을 때, 우리 사회는 악이 선을 지배하는 모순된 사회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선생은 우리 사회를 “사회정의가 없는. 평화정신이 없는, 통일의식이 없는 사회”로 규정하였습니다. 함석헌 선생의 이같은 주장에 공감하는 학자분들과, 그의 사상과 행적을 따르고자 하는 사회 인사들 및 젊은이들이 주축이 되어 학회를 조직하고, 그의 사상과 실천을 연구하는 한편 한국사회가 갖는 모순된 현상을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양명학회는 저희 학회보다 훨씬 먼저 창립하여(1995) 현재 2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왕양명(1472-1529) 선생 또한 자기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과 당시 주류학문으로 되어 있던 성리학의 모순을 깊이 깨닫고, 자신의 학문 사상 체계를 개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격물치지(格物致知)의 해석을 놓고 당시 정통학문으로 인정되고 있던 성리학의 창시자 주자(朱子)의 해석에 맞서게 됩니다. 그리하여 주자의, 성즉리(性卽理)에 대하여 심즉리(心卽理)를, 선지후행(先知後行)에 대하여 지행합일(知行合一)을 주장하면서 치양지(致良知)에까지 그의 주장을 밀고 나갈 수 있었습니다. 조선에서는 중기 때에 이미 <전습록(傳習錄)>이 전래된 바 있으나 왕양명 선생의 사상은 퇴계 등에 의해 배척받았습니다. 그러다가 허균(許筠) 이수광(李?光)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장유(張維) 최명길(崔鳴吉)을 거쳐 정제두(鄭齊斗)에 이르러 하곡(霞谷)학파를 이루고 이어서 강화학파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한말 일제강점하의 박은식(朴殷植) 정인보(鄭寅普)는 양명학인으로서 그 시대를 정직하게 살아간 분들입니다.
이렇듯 왕양명과 함석헌은 정통에 맞섰던 시대적 이단아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대를 지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두 사람의 사상과 철학은 후대에 빛을 발하는 사상가로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시대와 지역을 달리했지만, 자기 사회의 모순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갈망했던 선견자들입니다. 이 두 분의 사상을 가지고 오늘 두 학회에서 뜻 깊은 학술발표대회를 합동으로 갖게 된 것은 우리나라 학계에서 초유의 일이라 생각됩니다. 이름을 달리하는 학회가 공통된 주제를 찾아내어 학문의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오늘 한국양명학회에서 이러한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면서 가교 역할을 해주셔서 다시 한 번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아무쪼록 양명학회와 함석헌학회의 공동학술회의에서 발표와 논평을 맡으신 선생님들께서 모두 훌륭한 발표와 논평을 해주실 것을 기대하며 감사인사를 다시 드립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 선생님들께서도 끝까지 경청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자료출처 http://blog.ohmynews.com/hamsh01313/500633)
이만열 함석헌 학회장은 함석헌 학회의 취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그의 사상과 행적을 따르고자"
"그의 사상과 실천을 연구"
퀘이커교도로서 함석한 사상의 핵심은 "씨알 사상"이라고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2013년도 5월 6일 함석헌학회/한국양명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에서,
2부 주제발표에 김대식 박사가 발표를 했습니다.
【2부】 주제발표 1 -------------------------- 사회: 황보윤식(함석헌학회 총무이사)
. 10:20~10:50 왕양명과 함석헌에게 있어 둘러 .있음의- 세계에 대한 현재화와 존재인식
발표: 김대식(대구가톨릭대)
(자료출처 http://blog.ohmynews.com/hamsh01313/notice/500068)
그러면, 김대식 박사는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을까요?
김대식 박사(대구가톨릭대)라는 분은
2013년 5월 24일 함석헌평화포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 교회 공동체의 과제는 가부장적인 성교육, 혹은 이성애자 중심의 성담론에서 동성애자를 위한 성담론 혹은 양성 평등적 성정치를 구성하기에 적합한 “종교적 표현과 (언어/이미지) 상징”을 어떻게(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남성중심주의로 일관해 온 성의 권력화가 여성에 의해서 재편되는 과정에서 가부장적 성정치 구도로 굳어진 성서의 세계관과 충돌되고 있는 것과 교회 공동체 내의 고착화된 시선들(여성성과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함석헌은, “종교는 전체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알아듣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거기는 귀가 필요하다. 귀 아닌 귀다... 근대 사람은 듣기보다는 말하는 사람이다. 들은 것 없이 말하려 하기 때문에 거짓말이다. 여기 현대 종교가 권위를 잃어버린 이유가 있다.”(함석헌, 함석헌 전집 서풍의 노래 5, 한길사, 1984, 35쪽)고 말했다. 전체로서의 하느님은 이성애자나 남성들에게만 말씀하지 않으셨다. 들어야 하는 사람은 이성애자나 남성만이 아니다. 동성애자든 여성들이든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말씀을 들어야 하는 씨알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전체로서의 하나님은 물론이거니와 전체로서의 말씀은 남성/여성, 이성애자/동성애자를 초월하여 혹은 포함하여 적용되고 침투되어야 진정한 말씀이다.
(자료출처 http://blog.ohmynews.com/hamsh01313/501578)
이 글을 쓴 사람은 "김대식 박사"라고 했습니다.
이 분을 어떻게 함석헌 평화포럼에서 소개하고 있을까요?
김대식 선생님은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B.A.)와 서강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를 졸업(M.A.)한 후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가톨릭대학교 문화영성대학원, 대구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종교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대구가톨릭대학교 가톨릭사상연구소 연구원,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된 학문적인 관심사는 "환경과 영성", "철학적 인간학과 종교", 그리고 "종교간 대화"로서 이를 풀어가기 위해 종교학을 비롯하여 철학, 신학, 정신분석학 등의 학제간 연구를 통한 비판적 사유와 실천을 펼치려고 노력한다.
?저서로는 《환경철학의 이념》(공저), 《환경과 생태영성》, 《중생: 생명의 빛으로 나아가라》,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까: 영성과 신학적 미학》, 《환경문제와 그리스도교 영성》, 《함석헌의 종교인식과 생태철학》, 《길을 묻다, 간디와 함석헌》(공저), 《지중해학성서해석방법이란 무엇인가》(공저), 《종교근본주의: 비판과 대안》(공저), 《생각과 실천》(공저), 《영성, 우매한 세계에 대한 저항》, 《함석헌의 철학과 종교세계》, 《함석헌과 종교문화》, 《식탁의 영성》(공저)등이 있다.
/함석헌평화포럼
(자료출처 http://blog.ohmynews.com/hamsh01313/501578)
김대식 박사의 소개를 보면 동서양의 종교와 사상을 다 포용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한국양명학회는 무엇을 하는 곳일까요?
학회정관 및 규정
제1장 총칙
제1조 (명칭) 본 학회의 명칭은 ‘한국양명학회’(韓國陽明學會, The Korean Society of Yang-ming studies)라 칭한다.
제2조 (목적) 본 학회는 양명학을 중심으로 한 동양사상 및 문화에 대한 공동연구를 통하여 회원 상호간의 학술 교류를 도모한다.
(자료출처 http://www.ymhh.or.kr/modules/doc/index.php?doc=rules&___M_ID=36)
"제2조 (목적)"에 나오듯이,
"양명학을 중심으로 한 동양사상 및 문화에 대한 공동연구를 통하여 회원 상호간의 학술 교류를 도모"하는 것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학회에 이만열 장로가 학회장입니다.
이런 일을 하는 학회에 이만열 장로가 함께 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교회의 장로로서 할 수 있는 일일까요?
그것이 다만 학문적인 것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요?
분명하게 말씀드리지만,
그것은 기독교인으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교회의 장로로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강력하게 경고했습니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
esesang91.com 정태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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