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20세기 복음주의 비판 - 한종희의 바르트 신학 비평
한종희 약력
1931, 전락북도 정읍 신태인에서 출생
1947, 부산사범 부속초등학교 졸업
1953, 부산사범학교 졸업(6년과정),
19541956, 초등학교 교사 봉직
1956, 결혼, 19561963, 충북 제천과 단양에서 산중전도
19631977, 대구 남성, 성지, 침산제일교회에서 담임목회
1965, 총회신학교 59회 졸업
1968, 목사안수 (경북노회, 합동)
1978, 교회초청(이인재 목사)으로 가족 미국이민
19781984, 코로라도 덴버 서머나교회 담임목회
19851998, 캘리포니아 상항지역, 성지교회 담임, 은퇴
학 술 활 동
19671978, 대신대학교(대구신학교) 강사
19852002, 샌프랜시스코기독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
20032011, 캘리포니아개혁신학대학교 교수
2000년, 신학박사, 샌프랜시스코기독대학교
2008년, 명예신학박사, 국제개혁신학대학교
★ ★
1985년, 신학지남 여름호, 論文-칼 바르트의 성서관 비평
1991년, 기독신문(합동), 육체부활 불신한 목사들 (조향록, 문익환, 허 혁, 박봉랑, 김동수)
2001년, 미주총회보, ⑴ 長神大 교수들의 신학성명(1985) 비평
⑵ 基長의 신앙고백(1972) 비평
2002년, 책〔正統主義 神學에서 본 칼 바르트신학〕, 예장합동총회 출판
곽선희 목사 - 그리스도의 육체부활 불신(274쪽)
2002년, 미주총회보, ⑴ 論說 - 교회통합의 한계, ⑵ 論說 - 변질한 복음
2003년, 미주총회보, 時論 - 여군문제
2004년, 新福音主義 神學의 분석과 평가(김세윤 교수의 구원론 비평)를
예장합동, 全國牧師長老기도회(부산 수영로교회) 때, 회지에 게재,
2006년, 고려신학, 통권14집, 김세윤 박사의 구원론 비평 (석원태 교장)
2006년, 미주총회보, 김세윤 박사의 여성안수 찬성론 비평
2011년, 책〔20세기의 복음주의 神學〕집필완성 (450쪽)
강의한 학교들
1. 부산신학, 광주신학, 부산브니엘신학, 2002년
2. 대신대학교,전교생 (대구, 박영희) 2003년
3. 칼빈신학교,전교생 (서울, 김의환) 2003년
4.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나성, 조천일) 2004년
5. 에벤젤리아신학교 (나성, 이근삼) 2004년
6. 한동대학교-現代哲學 (포항, 김영길) 2005년
7. 브니엘신학교 (부산, 김규승) 2005년
8. 고려신학교,전교생 (파주, 석원태) 2006년
9. 창조과학회 교수들 (나성, 이재만) 2006년
10. 와신튼신학교 (시애틀, 최태원) 2006년
11. 캘리포니아 개혁신학대학교 (박의훈)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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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Fagundes Ct.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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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희는 누구인가?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을 작성하고 전파해온 대표적인 신학자들(Billy Graham, C. S. Lewis, John R. W. Stott, James I. Packer, Carl F. H. Henry, Edward J. Carnell, Harold J. Ockenga, John D. Woodbridge, 김세윤, 가톨릭, WCC)을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믿지 않는 배교신학으로 규정하고 비판한 필자의 해설을 사람들이 선뜻 받아드리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진보주의 신학을 복음주의 신학으로 호칭하여, 그 진보성향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② 정통신학의 용어와 문장으로만 복음주의 신학을 해설하여 진보성향을 은폐하기 때문이다.
③ 정통신학에 대하여 직설적인 비판을 피하기 때문에 진보성향을 분간할 수 없기 때문이다.
④ 기적들은 신화로 보지만 신비 설화 은유 등으로 취급하여 진보성향을 철저히 은폐하기 때문이다.
⑤ 20세기 현대철학(생명의철학, 분석철학, 실존주의철학, 실용주의철학)을 빌려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을
해설하기 때문에 복음주의 신학의 진보성향이 가려져 좀처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독자들이 필자의 자격에 대하여 궁금할 것이다. 20세기 후반세기의 신학계를 이끌어온 거장들을 비판하는 한종희는 어떤 사람인가, 독자들이 궁금할 것이다. 한종희의 저서〔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신학〕을 한국의 예장합동 총회가 2002년에 출판하였는데, 다음은 이 책과 책의 저자에 대한 교수들(김의환, 이근삼, 김길성, 김상복)의 평가서이고, 본서「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을 평가한 글들이다. 두 권에 대한 교수들의 평가가 필자를 말해줄 것이므로, 그 글들을 여기에 적는다.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신학」
한종희 저술, 예장합동 총회출판(2002)
이근삼 교수
고신신대원 조직신학교수,
고신신대원 학장역임 (1962-1982)
고려신학교 졸업
미국 카버난트 신학교(BD, ThM),
62년 화란 자유대학교 (ThD)
한종희 박사는 바르트신학의 문제점에 착안하여, 평생 동안 탐구하였고, 바르트신학의 학도들이 정립하지 못했던 문제점들을 분명하게 밝혔으며, 정통주의 신학에서 변증신학의 과제로 내려오던 바르트신학의 문제점들도 선명하게 분석하고 비판하여 주었으며, 특히 바르트의 계시관이 분명하게 들어났다. 우리는 이 글에서 그의 진지한 신학적 연구태도와, 예리한 관점들을 귀하게 보고, 경의를 표하지 아니할 수 없다.
김의환 교수
총신대학교 역사학교수, 교장 역임
Calvin 신학교 (BD)
Westminster 신학교 (ThM),
Temple 대학교(PhD)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신학」은 종희 박사가 연구를 시작한지 45년간 탐색하고 연구하여 쓴 책이다. 칼 바르트의 신학이 출현하고 80여 년이 지났으나, 아직까지도 난해하여 정립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부분이 많은데, 필자는 이 난해한 신학을 정통주의 신학 입장에 서서 알기 쉽게 예리하고 분명하게 분석하고, 비판하였다. 이 책의 출판으로 바르트 신학의 정체성이 아주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어 기뻐해 마지않는다.
김길성 교수
총신신대원 조직신학 주임교수,
고려대학 및 대학원 영문학과 졸업.
총신신대원 (BD)
Trinity Evangelical Division School (ThM)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PhD)
본서는 바르트 신학에 대한 한종희 목사님의 일생에 걸친 연구서이면서, 동시에 철저한 비판서이다. 바르트 신학에 대한 단편적인 연구서는 더러 있으나 바르트 신학의 전반에 걸친 포괄적인 이해와 비판이 부족한데, 한 목사님의 저서가 칼 바르트 신학의 이해에 좋은 가이드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상복 교수
횃불트리니티신학원대학교 교수
할렐루야교회 담임목사
아시아신학연맹회장(ATA)
아시아복음주의신학협회회장(EFA)
세계신학교 총학장회의 회장(PADO).
서울대학교 문리대 영문과 졸업
Faith 신학교 (MDiv, STM)
Grace Theological Seminary (ThD)
Washington Bible College/Capital Bible Seminary(DD)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DLitt)
20세기의 가장 저명한 신학자라 하면 칼 바르트를 빼놓을 수 없다. 바르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는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신학자이다. 그만큼 그의 신학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바르트의 신학을 연구한 정통주의자들은 그의 신학은 정통주의도 아니거니와 새로운 것도 없다고 비판하였다. 그럴 때마다 바르트 자신이나, 바르트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전권과 그의 책들을 다 읽어보지도 않고 바르트를 비판하는 것은 부적당하다고 강하게 불평했다. 그러나 그의 방대한 서적을 다 읽는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학자들이나 목회자들이 무슨 수로 그 많은 저서를 다 읽을 수 있겠는가? 나 자신도 〔교회교의학〕을 비롯한 그의 저서들을 상당히 읽었지만 이해하기 어려웠고, 읽어가면서 그를 이해해보려는 노력 속에서 머리가 아파 고통스러워한 일도 있었다. 그는 확실히 난해한 신학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한종희 목사님께서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신학〕(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발행)이란 저서를 출판하셨는데, 나는 그 책을 읽고 감탄하였다. 한 분이 바르트만 45년 동안 연구하여, 정통주의 입장에서 바르트를 철저하게 조명한 책을 쓴 것을 보고, 이 책은 정통주의를 신봉하는 모든 신학자들과 목회자들과 신학도들이 현대신학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르트에 대한 한 목사의 평가가 “옳으냐, 그르냐”는, 독자의 신학적 입장에 따라 다양할 것이지만, 저자가 그 많은 시간을 드려 바르트를 연구하여 그의 신학을 이해하고, 정통주의 입장에서 비판하여 글을 썼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전통적 기독교 신학을 믿는 사람들로서는, 한종희 목사의 바르트 비판을 능가할만한 서적은 아직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한 목사님은 정통주의 입장에서 바르트를 진지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책은 제 1 장 서론만 읽어도, 바르트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바르트는 창조관, 동정녀 탄생, 몸의 부활, 내세관등에서 정통주의 신학이 2 천년 동안 믿어온 이적을 불신한 것을 분명하게 제시해 주었고, 한종희 목사가 제시한 증거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바르트가 정통신학의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에, 그를 정통주의자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신학적 용어는 분명히 정통적인 용어였지만, 그 의미는 바르트 나름대로의 주관적 생각과 주장을 담고 있다. 바로 이런 데서 바르트의 신학은 많은 혼란을 초래했었다.
특히 바르트신학 이해에서 가장 큰 난제는 그의 인식론이다. 바꾸어 말해서 “어떻게 사유하느냐, 어떻게 신학을 구성하느냐, 생각의 근거를 인간에게 두느냐, 하나님에게 두느냐”이다. 한 목사는 제 2, 3, 4 장에서 이 문제의 해답을 분석해냈다. 바르트는 확실히 생각의 근거를 하나님(성서)에게 두지 않고, 인간의 이성에 두었고, 사고의 주체를 하나님 대신 인간에게 돌렸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철저한 실존주의 철학자였고, 다만 자기 철학을 성경과 신학 용어로 표현한 신학자였다. 한 목사는 3 개의 장에서 이러한 사실을 아주 쉽게 그러나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제 5 장에서 바르트의 계시관을 해설하였다. 바르트는 성경에서 일체의 기적을 불신한 나머지, 이적의 부분에서는 역사성을 철저히 거부하고, 단지 설화(고대소설)로 보았다. 기적의 설화에서 역사성을 배제하기 위하여, 바르트는 그의 계시관에 새로운 용어 Geschichte(설화)를 도입하였고, Historie(역사)를 대신하여 사용하였다. 그러나 미국 신학자들은 이러한 바르트의 심중을 이해하지 못하여, 바르트의「교회교의학」(Church Dogmatics)을 번역하면서, 두 용어 Geschichte와 Historie를 하나의 용어 history(역사)로 번역함으로서, 바르트신학을 이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바르트가 성경의 기적을 말할 때에는 Historie(역사)라고 말한 적이 없다. 반드시 Geschichte(설화)라고 하였다. 반대로 바르트가 역사적 사건을 말할 때에는 Geschichte를 사용한 적이 없다. 반드시 Historie만을 사용하였다. 바르트의 〔교회교의학〕해설에서, 한 목사는 이러한 사실을 밝히 드러냈다. 바르트가 성경의 기적들을 Historie로 보지 않고 Geschichte로 취급하여, 성경의 기적에서 역사성을 제거하고, 다만 케리그마를 끓어낼 수 있는 “시적 표현” 혹은 “이야기 자료”나,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의 개인적 “증언” 정도로 보았다. 그러므로 바르트에게는 기적(奇蹟)의 역사성은 전혀 의미가 없었고, 영적인 교훈만이 중요하였다. 그러나 아이로닉하게도 그는 성서 안에서 무한한 날개를 펴고 종횡무진하며 진리를 찾아 사색하였고, 좋은 생각과 좋은 교훈을 이끌어내느라 수십 권의 책을 남겼다. 독어본 〔교회교의학〕만 해도 31권이며, 9천 쪽에 달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바르트는 성경을 역사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정통주의자를 이교도로 규정하였고, 저주하였다(책의 111면).
한 목사는 자신의 정통주의 신학의 잣대로 바르트신학을 재어보았다. 한 목사는 한국의 감신대, 한신대, 연신대는 말할 것도 없고 “진보주의적 정통주의 신학”을 지향하는 장신대마저도 바르트의 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이 책은 동시에 바르트의 영향권에 속한 김재준 교수를 위시하여, 한국 신학자들의 신학도 측량한 책이며, 역시 바르트의 영향권 안에 있는 한국 장로교회 중 기장의 신앙고백(1972)과, 장신대 교수들의 〔神學聲明, 1985〕과, 미국연합장로교회의〔1967년 신앙고백〕과, 미국장로교(PCUSA)의〔간추린 신앙고백, 1983〕을 비평하여 측량한 책이다.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신학〕은 분량으로 보아서는 큰 책은 아니나, 바르트 신학에 대한 찬반을 막론하고 이 책은 한번은 꼭 읽어야할 책이라 생각한다. 특히 정통주의 신학을 따르는 신학자, 목회자, 신학생들에게는 바르트를 이해하는데 필독서가 될 것을 의심치 않는다. 많은 세월이 흘러, 칼 바르트의 영향력은 이미 사라져가고 있는 마당에서, 아무도 한 목사가 바르트 연구에 사용한 만큼의 시간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나오기 힘들 것이므로, 칼 바르트에 대하여 정통주의 신학에서 보는 비판서로서는 오래 동안 이 책을 능가할 책이 나오기가 힘들 것이니, 한 목사님의 정통적 입장에 동의하던지 하지 않던지 간에, 20세기의 거장, 칼 바르트를 이해하기 원하는 사람은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책이라 생각한다.
20世紀의 福音主義 神學
한종희 저술
김길성 교수의 추천
현재-총신신대원 조직신학 주임교수,
고려대학 및 대학원 영문학과 졸업.
총신신대원 (BD)
Trinity Evangelical Division School (ThM)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PhD)
한 목사님이 저술한「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은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을 밝혀준 책이다. 이 책은 신복음주의 신학을 작명한 Harold J. Ockenga와 유신진화론자인 Edward J. Carnell을 비롯하여, 국내외 신학자들(Billy Graham, C. S. Lewis, John Stott, James I. Packer, Harold J. Ockenga, John D. Woodbridge, Carl Henry, Edward Carnell, 가톨릭, WCC, 김세윤)과 그 신학들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폐기한 배교신학임을 학문적으로 분명하게 분석하여 비판해주고 있다.
정통신학의 입장에서 현대 진보신학의 흐름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한 글이 드문 이 시대에, 한 목사님의 연구는 후학들과 한국교회의 지남이 되리라고 확신하며, 현대 신학자들 중에서도 칼 바르트의 신학을 일관되게 연구해온 한 목사님의 노고가 녹아 있는 저술이어서, 이 방면의 연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의 일독을 권하는 바이며, 특히 이 책은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발생동기와 그 배경과 그 본질을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명확한 안내서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최영교 교수의 추천
캘리포니아 개혁신학대학교 조직신학교수
대전대학 졸업, 총회신학 졸업(1963)
계명대학교 교육대학원, MLitt
Fuller Theological Seminary, DMin
Trinity Theological Seminary, PhD
나는 1963년 이래 지금까지 한종희 목사와 대구와 미국에서 이웃하고 목회하며 교제한 친구이다. 한종희 목사는 1940년대 말부터 박윤선 교수에게 사사 받아 정통신학을 확립하였고, 1956년에 작심한 이래 45년간 연구한 칼 바르트신학을 2002년에 예장합동총회가 출간하였다. 김상복 교수가, “바르트신학이 출현하고, 정통신학에서 비평한 책으로는, 한종희 목사의 책이 처음일 것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보아, 한종희 목사의 학문세계를 가름할 수가 있다.
나는 김세윤 교수의 저서〔구원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정통신학으로 이해하였으나, 한종희 목사의 비평을 읽고는, 김세윤 교수의 신학이 기적 일체를 불신하는 진보주의 신학임을 알게 되었고, 이 책에서 해설한 다른 복음주의 신학자들 역시 일체의 기적과 초자연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듬해에(1919) 출판되었던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서를 읽었던 사람들이 감탄했던 것처럼, 본서를 읽을 독자들이 감탄할 것을 확신한다. 본서는 목회자들과 신학자들과 신학생들이 필히 읽어야 할 책이라 확신하여, 본서를 추천한다.
저자의 서문 한종희
지난 2세기 동안에 수많은 진보신학이 출몰하였으나, 필자는 3대 신학(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을 진보신학의 중심축으로 보았다. 이 3대 신학은 각기 자기 신학을 반드시 복음주의 신학으로 호칭하였으나, 세 신학이 그리스도의 신성(divinity)과 내세를 버린 것이 동일하다. 필자는 본서에서 20세기에 영국과 미국에서 활동한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불신하고 인성회복(실존회복)과 사회개혁과 정의구현으로 신학을 구성한 사실들을 밝혔다.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이 현대철학과 동질화하여 배교하였으나, 이 신학이 세계 기독교를 이끄는 주체가 되어진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또한 이 신학이 종종 개혁주의나, 복음주의나, 보수주의로 호칭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천국을 폐기하고 지산낙원만을 복음으로 선포하여 다원주의로 나가면서도, 정통신학처럼 고백하고 설교하고 글을 쓰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을 곡해하여, 보수신학이나 정통신학으로 알고 있음으로, 이 신학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본서의 목적이다.
20세기의 복음주의는 현대철학과 동질화하여 배교하였다.
⒜ 20세기의 신학과 철학은 세계대전과 파멸에서 충격 받아 동일한 동기에서 일어났다.
⒝ 20세기의 신학과 철학은 인류와 문명을 파멸에서 보존하려는 동일한 목적에서 일어났다.
⒞ 20세기의 신학과 철학은 동일한 현대과학과 계몽사상 위에 세워졌다.
⒟ 20세기의 신학과 철학은 인식의 주체가 하나님이 아니고 인간이다.
20世紀의 福音主義 神學
제1장, 20세기 福音主義 신학의 서론 - 현대철학 . . . . 10
제2장, H. J. Ockenga는 自由主義 신학을 지지함 . . . . . 19
제3장, Edward J. Carnell은 성서를 신화로 봄 . . . . . 34
제4장, 성서를 신화로 보는 신학자들 . . . . . . . . . . . 42
John D. Woodbridge, Jack Rogers, George Marsden,
J. I. Packer, Kenneth Kantzer, D. A. Carson
제5장, Billy Graham의 신학은, 다원주의 신학 . . . . 60
제6장, John Stot의 신학은, 다원주의 신학 . . . . . . . 91
제7장, 가톨릭 신학은, 다원주의 신학 . . . . . . . . . . 117
제8장, WCC의 신학은, 다원주의 신학 . . . . . . . . . . . 132
제9장, 김세윤 신학의 구원론, 내세불신 . . . . . . . . . 157
제10장, 김세윤의 신학, 그리스도의 신성불신 . . . . . . 206
제11장, James I. Packer의 신학, 그리스도의 신성불신 . 232
제12장, Carl Henry의 신학, 육체부활불신 . . . . . . . . . 296
제13장, 육체부활을 불신한 복음주의 목사들 . . . . . . . 323
곽선희, 문익환, 조향록, 허 혁, 김동수, 박봉랑
제14장, C. S. Lewis -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불신 . . . 332
제15장, 내세를 배격하고, 현세만을 믿는 信仰告白들 . . . . 393
(1) 미국장로교(PCUSA), 「1967년 신앙고백」 . . . 393
(2) 미국장로교(PCUSA), 「간추린 신앙고백」 . . . 400
(3) 장신대학 교수들, 「신학성명, 1985」 . . . . 406
(4) 한국기독교장로회, 「신앙고백, 1972」 . . . . 421
제16장, 설화신학, Narrative Theology . . . . . . . . . . 437
제1장, 서 론
지난 200년 동안에는 현대과학이 발달하면서, 모든 분야에 급격한 변화가 따랐고, 사회제도와 경제구조를 바꾸는 혁명이 줄을 이었고, 특히 허약한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태평양의 섬들을 차지하려는 강대국들의 약진과 충돌과 전쟁이 줄을 이었다. 이러한 와중에서 인간의 정신계 즉 현대신학(現代神學)과 현대철학(現代哲學)도 어쩔 수 없이 큰 변화를 겪었다. 중세철학(스콜라 철학)은 스콜라신학과 동일하게 하나님을 모셨으나, 지난 200년 동안의 現代神學과 現代哲學은 둘 다 하나님을 떠났다. 現代神學이나 現代哲學이 하나님을 거명하지만 하나님의 실재(reality)는 불신하여 버렸고, 다만 이름뿐인 관념(idea)의 하나님일 말할 뿐이다.
(1) 현대철학과 현대신학의 동질화
동일한 계몽사상에서 현대철학과 현대신학이 나왔기 때문에, 現代哲學과 現代神學은 우주관 신관 인간관이 동일하며, 창조대신 빅뱅설에 근거한 진화론과 유물론을 수용한다. 現代神學이 하나님을 말하나 실체는 없고 이름뿐인 관념의 하나님이다. 인간을 물질로 보아 영혼과 내세가 없다. 에덴동산의 아담타락을 신화(myth)로 보고, 인간의 근본을 선하다고 보아, 형법도 응보형에서 교육형으로 바꾸었고 형무소를 교도소로 고쳤으며 사형을 폐지해가는 추세이다. 현대인은 과학의 발전과 생활의 편리함에 흡족해하지만, 인간에게 씌워져 있던 재갈이 풀려 인간은 짐승과 비슷해가고, 예술과 성생활에서 윤리가 살아지고 말았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현대인의 야수성을 보았지만, 인간의 근본이 선하다고 고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만일 성경의 교훈대로 아담의 완전타락을 인정하고, 인간의 근본을 악하다고 보면, 악한 자의 손에 쥐어진 핵폭탄으로 인류는 살아남을 희망이 없어지기 때문에, “인간에게는 선이 남아 있다”고 믿고 희망을 품어보자는 것이 現代神學이고 現代哲學이다.
現代神學이 21세기에서도 인간에게 살아남을 희망을 걸어보기 위해서, 인간이 비록 타락했으나 선이 남아있다고 주장하며, 신론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형벌은 폐하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만 주장한다. 즉 現代神學이 인간론에서 완전한 타락을 없이했듯이, 신론에서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을 삭제 하여 묻어 버리고, 현대인에게 희망을 품어보자고 호소한다.
본서에서 필자가 제시한 신학자들은 다 동일하게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와 형벌을 신론에게서 제거하였고, 하나님은 사랑과 관용과 용서와 화해의 하나님이라고 강조한다. 영국의 C. S. Lewis, John Stott, J. I. Packer도 그렇고 미국에서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신학자들(Billy Graham, Carl Henry, Edward Carnell, John Woodridge) 역시 다 그랬다.
현대신학과 현대주의 신학
일반적으로 하나의 용어가 하나의 뜻으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신학용어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주의 신학”은 현대정신(진보성향)을 말할 때에 한하여 사용하지만, 현대신학은 현대주의 신학을 말할 때도 있지만 현대의 모든 신학을 가리켜 말할 때도 있다. 그러나 현대신학을 현대주의 신학의 뜻으로 말하는 빈도가 더 많기 때문에, 필자는 본서에서 “현대신학”을 “현대주의 신학”과 동일한 뜻으로 사용하였다.
(2) 철학과 신학, 두 주체의 동일화
① 주체개념(主體槪念)의 해설
① 주체(the subject)와 객체(the object)는 철학과 신학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다음 문장에서 볼 수 있듯이 주체는 주어이고 객체는 목적어이다. 문장에서 모든 권한이 주어에 있듯이, 철학과 신학에서도 모든 권한이 주체에 있고, 객체는 항상 피동적이다. 이것을 문장에서 보면 그 뜻이 아주 확실해진다.
주체 객체
놀부가 흥부를 구타하였다.
하나님이 아담을 형벌하셨다.
이 문장에서 보듯이 주어인 놀부가 흥부를 구타하였고, 주어인 하나님이 아담을 형벌하셨다. 행동은 주어가 하고, 목적어는 손발이 묶인 채 구타당하고 형벌 받았다. 이것은 신학에서도 같다. 정통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이 신학의 주체이시고, 모든 것의 주체이시다. 하나님이 만물과 인간역사를 디자인하여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섭리하시고,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종말에는 하나님이 타락한 문명을 불태우시고 천국을 이루시고, 하나님이 영원토록 영광을 누리신다.
그러나 현대신학에서는, 인간이 주체이기 때문에, 인간이 디자인하고, 인간이 집행하고, 인간이 통치하고, 인간이 심판하고, 인간이 거두고, 인간이 누린다. 그러므로 現代哲學만 아니라 現代神學에서도 인간의 본성과 신의 본성까지도 인간이 규정하고, 복음과 신학도 인간이 상황에 맞추어가면서 구성하기 때문에, 신학에서도 하나님은 객체로 밀려나 어떤 일도 결정하지 못하고 집행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피동적이다. 그러므로 현대신학에서는 현대철학처럼 인간이 주체이다.
이 주체개념은 문장이나 철학이나 신학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유기체를 총괄하는 주인, 사장, 사령관, 대통령에게도 적용된다. 유기체(organic body)가 본래는 생물학에서 사용되었으나, 사회생활 전반에 적용되고 있다. 미국은 3억 인구를 한 사람 대통령이 통치하는 유기체다.
② 우주도 하나의 유기체다. 우주의 주체는 누구인가? 기독교는 하나님을 우주의 주체로 믿어왔다. 그러나 문예부흥과 계몽사상을 거치면서 현대정신(현대신학, 현대철학, 현대문학)은 우주의 발생을 우연으로 가정하고, 하나님이 우주의 주체임을 부정한다. 그러나 우연설은 현대과학 자체가 수용할 수 없는 억지 주장이다.
ⓐ 빅뱅설만 보아도 그렇다. 우주의 발생을 우연으로 가정하는 자들은 우주의 대폭발설(Big Bang)을 가정하지만, 우연에 따른 대폭발운동에서는 직선운동만 가능하고, 원자나 태양계나 은하계와 같은 원을 그리는 운동은 전혀 불가능하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궤도를 도는 운동을 반복하고, 계속하는 운동은 인격자의 디자인과, 창조적인 활동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 현대정신은 인간의 출현도 진화(우연발생)로 돌리지만, 만물 중에 인간에게만 있는 인격, 사유, 예술, 도덕, 종교, 해부학적 몸의 구성과 활동은 우연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의지와 목적을 갖은 하나님의 창조로만 설명이 가능하다. 현대신학에서는 인격자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디자인과 창조로만 설명이 가능한 사실들을 접할 때마다 신비(mystery)로 돌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진화론을 믿는 현대인이 수용할 수 있는 한도에서만 신학을 해설하고 복음을 주장하니 사람들이 이들을 정통신학으로 곡해하고 있다.
② 정통신학은 하나님이 주체다
성경에서는 모든 권한이 하나님께 있고, 인간은 수동적이다. 하나님이 우주와 인간을 디자인(설계)하셨고, 창조하셨고, 섭리하시고, 심판하신다. 人間이 타락했을 때에 하나님이 人間을 형벌하셨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人間을 구원하셨다. 창세기에서 계시록까지 하나님의 허락 없이 人間이 이룬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머리털까지 다 헤아리신다. 성경에서는 항상 하나님이 주체이시고, 人間은 객체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관이고 우주관이다.
정통신학에서는 하나님이 우주와 人間의 주인이시며,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복종해야하며, 하나님이 명하신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 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중생시켜, 자기의 것이 되어진 성도들을 성화를 입혀 새 사람이 되게 하시고, 육체가 부활하게 하시고, 천국에서 영원히 하나님께 예배하며 섬기게 하신다.
③ 철학은 인간이 주체다
고대 희랍철학에서 현대철학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인간(人間)이 주체이기 때문에, 人間이 선악을 판단하였고, 人間이 진리를 규정하였다. 고대 희랍철학이 비록 신을 말했으나, 희랍인의 신은 주체로서의 신이 아니고 객체로서의 신이었기 때문에, 그 신의 본질과 역할도 人間이 규정하였고, 오직 자신을 위해 살았고, 그 신을 경외하거나 예배하지 않았으며, 이러한 희랍철학을 인본주의(humanism)라고 하였다. 다음은 人間을 主體로 주장했던 철학자들이다.
G. W. F. Hegel(1770-1831)과 I. Kant(1724-1804)는 인간의 정신을 인식의 주체로 하였고, S. A. Kierkegaard(1813-1855)와 K. Barth(1886-1968)는 인간의 신앙을 인식의 주체로 하였다. 그러므로 이들은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신앙을 통해서 성경을 해석하고 진리를 규정하고, 신관 우주관 인간관을 구성하였기 때문에, 결국 인간(인간의 정신, 인간의 신앙)이 주체가 되었고, 하나님은 객체로 밀려나 할 일이 없었으며, 바로 여기에서 19세기의 자유주의 신학이 나왔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식의 주체가 인간이었다. 그러므로 자유주의 신학을 계승했던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도, Hegel과 Kant가 말했던 인간의 정신을 따랐고, Kierkegaard와 Barth가 말했던 인간의 신앙을 따랐기 때문에, 인간의 정신과 인간의 신앙에 배치되는 초자연과 기적 일체는 신학에서 배제하였다.
④ 현대신학은 人間이 주체다.
이미 앞에서 언급했거니와 고대와 중세에서는 철학에서는 人間이 주체였어도 신학에서는 하나님이 주체였으나, 현대에 와서는 신학까지도 人間이 주체가 되었다. 이것은 확실히 하나님께 대한 人間의 반역이었다. 성서(하나님)는 종말이 오면 이러한 반역자들이 일어날 것을 대비하여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살후2:4)
신학에서도 人間이 주체가 되어 人間이 전권을 가지면, 객체로 밀려나신 하나님에게는 어떤 권한도 없으며, 모든 것은 주체인 人間이 마음대로 처리한다. 신학에서 人間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을 객체로 밀어내는 것은 배교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현대신학이 감행한 주체의 전환은, 마치 회사 경영권의 전환과 같다. 경영자가 바뀌면, 새 주인이 방침과 규칙을 정하고, 새 주인이 회사의 이익을 챙기듯이, 현대신학에서는 인간이 모든 이익을 챙기기 때문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든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든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 등은 문제로 다루지도 않는다. 신학에서도 인간이 주체와 주인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⑤ 현대철학과 현대신학의 동질성.
결국 現代神學과 現代哲學은 그 주체의 동일화로 개념의 동질화까지 이루었기 때문에, 現代神學과 現代哲學은 그 우주관, 신관, 기독관, 인간관이 동일하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이름뿐이고 물질창조한 일이 없으며, 그리스도는 인성뿐이고, 人間은 영혼이 없고 죽음으로 끝나며, 우주는 현세뿐이고 내세가 없으며, 그 속에 진화론과 유물론을 품고 있다. 다음은 현대철학과 현대신학이 주체의 동일화로 개념의 동질화를 이룬 사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① 정통신학(正統神學), 주체 - 하나님, 모든 결정권이 하나님께 있다.
② 현대철학(現代哲學), 주체 - 인간, 모든 결정권이 人間에게 있다.
③ 현대신학(現代神學), 주체 - 인간, 모든 결정권이 人間에게 있다.
필자는 現代神學이 現代哲學과 그 주체와 개념에서 동일해진 증거로 복음주의 신학자들(Harold Ockenga, John Woodbridge, Edward Carnell, Carl Henry, C. S. Lewis, James I. Packer, John Stott, Billy Graham, 김세윤 등)을 제시하였고, 가톨릭신학과, WCC신학과, 육체부활을 불신한 6 분을 제시하였고, 미국장로교회(PCUSA)의 신앙고백(1967) 및 간추린 신학고백(1983)과, 기장의 신앙고백(1972)과, 장신대 교수들의 신학성명(1985) 등을 증거로 제시하였다.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나 신복음주의나 이 범주에 든 모든 진보신학들도 다 동일한 범주에 든다.
(3) 현대철학의 뿌리
① 고대 희랍철학과 희브리사상
現代哲學의 뿌리는 고대 희랍철학이다. 「서양철학은 희랍인에게서 시작하였다. 동서고금의 민족들 중에서 희랍인만큼 창조적 정신이 풍부한 사람은 없었다. 서양철학은 물론이고, 현대과학도 희랍인의 산물이다. 그들은 지혜의 천재였고, 미와 예술의 천재였다. 미의 극치를 인간의 나체 미에서 찾았고, 체육으로 육체미를 키웠고, 조각에 육체미를 새겼다. 희랍인이 일찍이 2,500년 전에 민주주의란 통치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영어 philosophy, gymnastics, democracy는 다 고대의 희랍어에서 온 용어들이다. 즉 정신과 육체를 단련하고 공동체생활의 지혜까지 갖추었으니, 일찍이 이러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었던가!」
고대 희랍사상은, 희랍이 로마에 정복당하여 오래 잠자다가, 11,12세기에 십자군 출정에 힘입어 이태리로 옮겨져 14세기에 다시 부흥하였고, 전 유럽에 파급되었으며, 이것이 17, 18세기에 현대과학을 낳음으로서 계몽사상(科學思想)으로 발전하였고, 이 계몽사상이 19세기의 현대정신(현대문학, 현대철학, 현대신학)과 20세기의 현대정신을 출현시켰다.
하나의 희랍사상의 물줄기가 어떻게 2,500년 동안이나 계속 이어질 수 있었는가! 철학은 항상 동일한 인간의 머리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고대 희랍철학, 14세기의 문예부흥, 18세기의 계몽사상, 19세기의 관념론 철학과 자유주의 신학, 20세기의 현대철학(분석철학, 실존주의, 실용주의)과 현대신학(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은 그 전부가 인간이 인식의 주체가 되어, 인간이 창작해낸, 인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상의 해설과 같이 아테네는 희랍사상(Hellenism) 곧 서양철학이 싹튼 곳이고, 예루살렘은 히브리사상(Hebraism) 곧 기독교철학이 싹튼 곳이다. 중세기(中世紀)를 제외한 고대, 근대, 현대는 아테네의 희랍사상이 득세하였으나, 중세만은 예루살렘의 히브리사상이 득세하였다. 희랍인의 사상은 인본주의(人本主義), 현세주의(現世主義), 합리주의(合理主義)였고, 히브리인의 사상은 신본주의(神本主義), 내세주의(來世主義), 계시의존주의(啓示依存主義)였다.
ⓐ 인본주의(人本主義) - 신본주의(神本主義)
희랍사상 ⓑ 현세주의(現世主義) - 내세주의(來世主義) 히브리사상
ⓒ 합리주의(合理主義) - 계시주의(啓示主義)
ⓐ 희랍사상의 인본주의
인본주의(humanism)의 관심은 하나님에게 있지 않고, 인간에게 있다. 신을 섬기지 않고 인간을 섬긴다. 그러므로 희랍인들은 인간의 미와 덕과 정열을 화폭에 담았으며, 돌과 건축물에 새겼다. 물론 희랍인에게도 신이 있었으나, 그 신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거나, 인간의 연장(延長)이거나, 인간의 재현(再現)에서 그쳤다. 따라서 희랍인들의 모든 관심은 신에게 있지 않고, 오직 인간의 행복추구에 있었다. Aristoteles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최고의 선은, 인간이 자신의 행복을 구하는 것이다.” 바로 이 “하나님 없는 행복추구”가 인본주의의 본질이다.
헬라인의 신은 인간의 악행을 형벌하지 못하였고, 예배의 대상이 아니었고, 인간이 필요할 때에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했으니, 동양인이 숭배하는 샤머니즘의 신을 닮았다. 샤머니즘의 신은 인간이 필요할 때에 한해서 찾는 신이므로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이 말하는 개념도구설과 같다. 실용주의 철학이 말하는 개념도구설(Instrumentalism)은, 실체(reality)가 없는 빈 용어라도, 그 용어가 실용성이 있으면 사용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이 헬라인들의 신은 인간이 필요할 때에만 사용하는 샤머니즘의 신과 비슷하며, 역시 인간이 필요할 때에만 사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 현대신학(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이 신의 존재나 활동은 불신하면서도 신의 언급이 인성회복에 실용성이 있다고 보아, 신의 개념을 현대정신에 맞게 재구성하여 신학에 적용해왔으니, 이것이 명칭으로는 복음주의 신학을 선호하는 진보신학들(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이다.
ⓑ 희랍사상의 현세주의
희랍사상은 사후(死後)에는 관심이 없고, 현세를 즐기는 일에 전심을 기우렸다. 지금까지 우뚝 솟아있는 원형극장, 섬세하게 조각한 나체상들, 화려하고 거창한 목욕탕 시설이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신과 내세를 거부하는 현대인들도 조각품과 발레 등에서 남녀의 나체상이 주는 성적 각선미를 미의 극치로 묘사함을 최고의 예술로 치고, 이러한 미를 보고 즐기는 것을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도 현세주의의 재현이다. 예술한다는 사람들의 끝없는 노출도 그렇다. 그러나 기독교가 득세했던 중세기에서는 구축물의 웅장함과 하늘을 찌르는 탑으로 하나님을 향한 경건을 강조하였으나, 또 한편으로는 희랍 나체문화의 재현으로 복합문화를 이루었다. 그러므로 중세문화는 세속과 경건이 공존하였으나, 현대문화는 세속만 존재한다. 따라서 현대는 교회도 배교하며 교회가 전적인 타락으로 가고 있다.
ⓒ 희랍사상의 합리주의
희랍사상의 합리주의는 데오리아(theoria)를 강조하였다. theoria 는 사물을 바라본다, 관찰한다는 뜻이다. 사물을 일정한 거리에서 관찰하면, 그 사물에 대한 답을 얻게 되어진다는 것이 희랍사상의 합리주의이다. 이 합리주의가 문예부흥(文藝復興)을 타고 재흥(再興)하였고, 베이컨의 경험주의와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를 거쳐서 현대의 기계문명을 낳기까지 공헌하였고, 다시 칸트(1724-1804)의 이성의 선험론과 헤겔의 정신을 거쳐서, 현대를 지배하는 현대사상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 합리주의의 공헌은 보이는 사물(事物)에 국한한 것이지만, 사물이라는 분계선(分界線) 너머에 있는 영혼과 내세와 하나님의 존재까지도 이 합리주의 잣대로 재려하였으니 정답이 나올 리가 없다. 칸트가 비록 “선험론”이라는 새로운 인식론을 창안하여 초자연을 이성 안에 끌어드리는 듯하였으나, 칸트의 “선험론” 역시 인간의 이성이 인식의 주체였기 때문에, 이성이 사물이라는 분계선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실재(reality)에는 접근하지 못하여 신의 실재는 믿지 않았다. 키에르케가르(1813-1855)와 키에르케가르를 따른 칼 바르트(1886-1968)가 칸트(1724-1804)의 선험론과 헤겔(1770-1831)의 정신에 반기를 들고 선험론과 정신 대신 신앙을 말했지만, 이 신앙 역시 성경을 신앙하지 않고 이성이 수용할 수 있는 대상만을 신앙하였기 때문에 키에르케고르나 칸트도 인간의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내세와 하나님의 실재(reality)는 믿지 않았다.
물체의 구성과 운동법칙은 관찰을 통해서 들어나지만, 사물의 존재목적(存在目的)은 관찰로 들어나지 않고, 사물을 설계(設計)하시고 창조(創造)하신 자(하나님)만이 말할 수 있는 영역이다. 이와 같이 물체가 아닌 인간의 영혼, 내세 등은 관찰로서는 답이 나올 수 없고, 오직 그것들을 존재케 하시고, 하늘에서 내려오신 성자 그리스도의 말씀에서만 정답을 얻을 수가 있다.
이상 희랍사상의 인본주의와 현세주의와 합리주의에 반하여, 히브리사상은 신본주의와 내세주의와 계시의존주의를 따른다. 신본주의는 인본주의의 반대이고, 내세주의는 현세주의의 반대이고, 계시의존주의는 합리주의의 반대이다. 히브사상은 이미 앞의 모든 해설에서 충분이 해설하였으므로, 여기서는 이것으로 그친다.
② 계몽주의 사상
로마가 희랍을 통합함으로(B.C. 30), 희랍문화가 잠자다가, 로마의 십자군 출정(11-12세기)에 의해서 희랍문화가 로마로 옮겨졌고, 14세기에는 유럽 전역에 파급되었고, 17-18세기에서는 현대과학을 낳았고, 계몽사상(과학사상)을 출현시켰다. 바로 이 계몽사상이 19세기와 20세기의 현대사상(현대철학, 현대신학)을 낳았다.
19-20세기의 현대사상은 동일한 계몽사상에서 발생하였기 때문에, 그 구원관이 동일하게 현세뿐이고, 그 인식론이 동일하게 인간이 주체였으므로, 신의 본성도 인간이 구성하였고, 만사를 인간이 재단하고 집행하였다. 그러므로 현대신학과 현대철학은 그 구원관과 인식론이 동일하였다. 그러나 정통신학은 초기, 중세기, 현대를 통틀어 항상 그 구원관에 내세가 있었고, 하나님이 인식의 주체였으므로, 인간은 하나님(성서)의 판단을 따랐고,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였다. 이처럼 현대사상(현대철학, 현대신학)과 정통신학은, 그 구원관과 인식론이 전혀 다르다.
Bernard Ramm은 계몽사상의 특성을 다음과 같은 용어로 표현하였다. 역사주의, 과학주의, 비평주의, 합리주의, 관용주의, 낙관주의 등이다.
⒜ 역사주의. 역사적인 사실만을 믿고, 기적은 신화라 하여, 역사로 받기를 거부하였다.
⒝ 과학주의. 과학이 성경과 충돌할 때에는, 과학을 따르고 성경을 버렸다.
⒞ 비평주의. 성경도 인간 이성의 자로 재어 비평하고, 그 시비도 이성의 자로 가렸다.
⒟ 합리주의. 진리의 척도를 하나님과 성경에 두지 않고, 이성의 합리적 판단에 두었다.
⒠ 관용주의. 절대진리의 존재를 거부하는 관용주의는 현대정신계를 지배하는 사상이다.
Columbus이후 지구상에는 여러 문화권이 있고, 여러 종교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타문화와 타종교를 관대히 대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고, 타문화와 타종교를 적대시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사상이 현대정신계를 지배하고 있다. 1920년대 이후로는, 관용주의가 미국 기독교 안에 확산되어, 자유주의 신학을 관용하여 용납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았고, 자유주의와의 분리를 주장하던 근본주의를 악의 축으로 돌려 저주하였으며, 1960년대 이후부터는 관용과 대화와 종교의 통합을 넘어서 종교 다원주의로 나아간다.
지난 200년 동안에 일어났던 슈바이처의 생의 철학, 키에르케골의 실존주의 철학, 럿셀의 분석철학,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 칸트와 헤겔의 정신철학 등은 다 계몽사상 위에 세워진 현대과학 철학이며, 하나님의 계시를 저버린 합리주의 철학이고, 내세를 저버린 현세주의 철학이고, 인간만을 섬기는 인본주의 철학이다.
제2장, H. J. Ockenga는 자유주의 신학을 지지함
(1)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호칭
Ockenga(1905-1985)가 명칭 신복음주의 신학을 작명하였으나(1947) Ockenga 자신도 보통 때에는 반드시 복음주의 신학을 호칭으로 사용하였다. 다음은 Ockenga가 “복음주의의 뿌리”(Evangelical Roots)라는 책에 기고한 글 제목인바 자기의 신학을 복음주의라고 칭하였다.
From Fundamentalism, Through New Evangelicalism, to Evangelicalism
근본주의에서 출발하여 신복음주의를 거친 복음주의 신학
Ockenga가 37세(1942)에 NAE의 창립회장이 되었고, 42세가 되던 1947년에는 Charles Fuller를 끌어드려 캘리포니아에 Fuller 신학교를 세워, 세 번 교장직을 수행하면서 교수 임명권을 행사하였으며, Billy Graham과 함께 Christianity Today지를 창간하여(1957) 운영이사장을 25년 편집장을 12년 역임하였고, 미국 동부 Boston, Park Street Church의 30년간의 목회에서 은퇴하고(1969)는 이어서 Gordon-Conwell 신학교 교장을 역임하였고(1969-1979), 현역에서 은퇴한 때가 74세였으니 40년이 넘는 기간을 복음주의에 헌신한 것이다. Ockenga가 Billy Graham과 함께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을 이끌어온 주체자임이 분명하다.
신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자기의 신학을 호칭할 때에는 반드시 복음주의만을 사용하였고,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도 자기의 신학을 호칭할 때에는 반드시 복음주의만을 호칭으로 사용하였다. 결국 20세기의 모든 진보주의 신학(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만물창조를 거부하고 진화론을 수용한 진보신학임에도 불구하고 왜 복음주의만을 신학명으로 사용했는가? 만일 자유주의나 신정통주의나 신복음주의를 사용했다면 명칭에서부터 성서불신의 정체성이 들어나고 그리스도의 신성불신이 들어났을 것이므로, 복음주의만을 명칭으로 사용하여 자신들의 성서불신과 그리스도 신성의 불신에 대한 정체성을 가려 은폐하였다.
그러므로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고 인성만을 주장하는 전제(presupposition)가 동일하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거부하고 인성만을 주장하면, 기독교에서 유일성이 없어짐으로 종교 다원주의를 표방하게 되어진다. 19세기에서는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변질 되었어도 그 때는 아직 지구촌이 형성되기 전이라 각 나라의 정치, 경제, 종교들이 독립을 지켰지만, 1990년대부터는 통신망(IT)의 확산으로 지구 전체가 하나로 묶이면서, 정치 경제 문화 종교가 다원화(pluralization)로 사회구조를 재구성하게 되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09년에 한 사람의 대통령을 뽑았다. 그래서 21세기에는 기독교도 다원주의로 가는 수순을 밟고 있다. 가톨릭, WCC, John Stott, Billy Graham 등은 이미 1990년대 이전에 다 다원주의를 공식적으로 선포하였다.
(2)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발생동기
다음은 Ockenga의 주장이다.「사회적인 문제점들이 불가피하게 복음주의의 관심을 끌기 시작하였다. 1947년 나는 이러한 관심을 표시하기 위해서, “신복음주의” 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피했던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처리하려는 의도에서 근본주의와 구별된다.」
신복음주의는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일으킨 신학운동이다. 18세기까지는 기독교의 구원이 내세의 영생에 치중하면서 현세구원을 말했으나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들(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은 내세구원은 기독교에서 폐기하였고 사회문제에 한하여 구원을 논하였다.
그 사회적인 문제점들이 무엇인가? 사회적인 문제들은 제1차 세계대전(1914-1918)과, 러시아혁명(1917)과,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서 들어난 재앙이다. 19세기는 평화의 세기였으나, 20세기에는 전쟁과 약탈과 대학살(genocide)로 이어졌다. 제1,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자만 2,500만 명에 달하였고, 소련은 공산혁명에서 자기 동족을 재판 없이 2,000만 명을 학살하였으며, 독일은 유태인 600만 명과 폴란드인과 러시아 포로를 합쳐 1,100만 명을 학살하였다.
확실히 20세기 전반세기에서 사회적인 문제들이 인류를 전멸의 위기로 몰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인류와 문명을 위기에서 구해내려는 목적으로, 인간을 개조하고 사회구조와 경제구조를 개혁하려고 여러 신학운동(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 WCC, NAE)이 일어났고, 여러 철학운동(생명의철학, 분석철학, 실존주의철학, 실용주의철학)이 일어났으며, 1945년에는 UN도 결성되었다.
Ockenga가 1940년대 당시의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신복음주의 신학을 일으켰으므로, 내세의 영생에 치중했던 근본주의와는 결별하였고 사회적인 문제점 해결에 적극적인 자유주의 신학과 연합전선을 폈고, 자유주의 신학이 배격하는 근본교리들은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에서 배제하였다. 당시 공산주의에 대한 입장차이로 NAE가 WCC와 분리하면서도, 양쪽이 자유주의적인 교리가 동일하기 때문에 협력해왔는데, 1989년 소련연방해체로 공산주의가 파산하고 냉전구도가 무너졌기 때문에, NAE와 WCC 사이에 가렸던 장벽이 무너지고 연합이 가능해졌다.
(3)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뿌리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뿌리는 유럽의 신정통주의 신학에 있다. 20세기 초에 유럽에 사회적인 문제점들이 발생했을 때에, 그 사회적인 문제점들을 해결하려고 젊은 청년들(Barth, Bultmann, Brunner, Tillich, Niebuhr 형제 등)이 일어났었다. 이들이 다 계몽사상과 자유주의 신학에서 성장하고 진화론과 고등비평을 수용하여 성서를 신화로 보는 것이 동일했으나, 유럽이 혁명과 전쟁과 학살로 피바다를 이루게 되자 성서에 살 길이 있다고 책을 써서 다음과 같이 외쳤다.
K. Barth가 33세에(1919) “로마서강해”를 발표하여, 성서에 살 길이 있다고 외쳤고,
R. Bultman이 35세(1921)에 “공관복음의 설화”를 발표하여, 성서로 돌아가자고 외쳤고,
E. Brunner가 35세(1924)에 “신비주의와 말씀”을 발표하여, 성서로 돌아가자고 외쳤고,
R. Niebuhr는 40세(1932)에 “윤리적 인간과 비윤리적 사회”를 발표하여, 성서로 돌아가자고 외쳤고,
P. Tillich도 40세(1936)에 “개혁의 시대”를 발표하여, 성서로 돌아가자고 외쳤다.
이 청년들이 자기의 신학을 호칭할 때에는 반드시 복음주의 신학만을 사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들의 신학을 곡해하여 신정통주의라고 칭하였는데 이 곡해한 명칭이 일반적인 호칭이 되어 오늘까지 내려왔다. 뿐만 아니라 Van Til 같은 정통주의 쪽 사람들에게는 신정통신학의 수장인 Karl Barth의 신학적인 정체성이 가려져 내려왔으나, 필자가 2002년에 출판한 「정통주의 신학에서 본 칼 바르트의 신학」으로 Barth가 자유주의 신학의 신봉자임이 분명히 밝혀졌다.
(4)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을 세운 목사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는 영국과 미국에서도 신정통주의 신학과 동일한 신학운동을 일으켰으나 명칭만은 복음주의 신학이라 칭하였는데, 정통주의 쪽에서는 영국과 미국에서 일어난 이 새로운 복음주의 신학운동을 H. Ockenga가 작명한 「신복음주의」로 표현하기를 좋아하였다. 다음은 20세기의 복음주의 神學(신복음주의)을 출현시켰던 목사들이다.
H. J. Ockenga, 37세(1942)에 NAE 창립회장이 되어, 신복음주의를 조직하고 운영하였다.
C. Henry가 33세에(1946), “현대정신의 재구성”을 발표하여, 신복음주의의 교리를 제공하였고,
E. Carnell이 29세에(1948), “기독교 윤리서론”을 발표하여, 신복음주의의 윤리회복을 외쳤고,
C. S. Lewis가 54세에(1952), "순전한 기독교"를 발표하여 신복음주의의 윤리회복을 외쳤고,
J. I. Packer가 32세에(1958), “근본주의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신복음주의의 윤리회복을 외쳤고,
J. Stott가 37세에(1958),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발표하여 신복음주의의 윤리회복을 외쳤고,
B. Graham은 NAE, BGEA, Lausanne 대회 등으로 신복음주의를 지휘하여, 세계교회를 이끌었다.
John D. Woodbridge, Jack Rogers, Geroge Marsden, Kenneth S. Kantzer, D. A. Carson 등은 성서를 고대소설(설화)로 취급하여 성서에서 윤리적 교훈을 끌어냈다.
복음주의는 본래 정통신학이 사용한 명칭이었으나, 세 진보신학(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도 복음주의를 호칭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세 진보신학과 정통신학을 분간할 수 없게 되었다. 실제로 신정통주의와 신복음주의를 정통신학과 동일한 신학으로 보는 목사들이 많다. 특히 성경무오 교리를 표방하는 Trinity Evangelical Division School의 교수들(John D. Woodbridge, Kenneth S. Kantzer, D. A. Carson)이 진화론과 고등비평을 수용함으로서 하나님의 만물창조를 불신하고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불신하는 신학자들임을 알아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5) 20세기의 복음주의는 실존주의 신학이다.
제1,2차 세계대전의 참화를 겪고 일어났던, 20세기의 복응주의 신학(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을 통틀어 실존주의 신학으로 보아 무방하다.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이 왜 실존주의 신학인가? 실존은 “죄를 벗은 인간,” “회복된 인성”을 말하는데,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 역시 “인성 회복”이 기독교의 유일한 구원이라 하기 때문에 실존주의 신학인 것이다.
실존주의 신학을 말하면, 실존주의 철학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실존주의 신학과 실존주의 철학은 동일한 시기(세계대전)에 일어났고 동일한 동기와 목적에서 일어났고, 동일한 실존을 신학과 철학에 적용하였기 때문에, 신학과 철학이라는 명칭만 다를 뿐 그 내용은 동일하다. 분명한 것은 실존주의 철학뿐만 아니라 실존주의 신학에도 실존(순결한 인성)만 있고, 그리스도의 신성이나 내세나 영생 등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20세기의 복음주의 神學은 실존주의 철학과 동일하다. 그러므로 “실존주의 신학은 곧 실존주의 철학이다.”는 등식이 성립된다. 다시 말해서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에는 기독교의 유일성이나 절대성은 없다. 따라서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에서는 다원주의 구원관이 성립되기 때문에 가톨릭, Billy Graham, John Stott가 다원주의의 구원관을 공식적으로 선포한 것이다.
(6)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의 정체성
⒜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은 인성을 회복하여, 인류와 문명을 전쟁과 파멸에서 구하는 것이 전부였고, 성경무오의 교리나 내세를 믿지 않았지만, 성경무오의 교리나 내세의 교리에 대하여는 일체의 논쟁을 피하고 공격을 삼가 해왔다. 만일 성경무오나 내세의 교리를 공격했다면 도리어 자기들의 정체가 들어나, 성경무오의 교리와 내세를 믿는 교인들과 신학생들이 그들을 떠났을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30대의 신학자들이 그들의 정체를 은폐하려고 정통신학의 용어로만 책을 쓰고 강의했으며. 논쟁을 피해갈 수 없는 경우에는 노골적으로 대응하지 않고 반드시 간접적으로나 우회적으로 대응하여 여기서도 자신의 정체를 가려 은폐하였고, 정통신학의 반발과 반격을 잠재워왔기 때문에 그들의 정체가 가려져 사람들이 쉽게 알아보지 못하였다.
⒝ 20세기의 복음주의가 성경무오의 불신과 내세영생의 불신에서 자유주의와 같기 때문에, 자유주의를 형제로 영합하였지만, 성경무오와 내세를 믿는 정통신학과는 대화와 교제를 끊었다.
지난 50년간 미국과 한국의 교회가 걸어온 역사가 이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한국의 한신, 감신, 장신은 대화가 되지만, 이 학교들이 총신, 고신, 합신과는 대화가 끊어졌다. Ockenga와 Billy Graham과 NAE는 자유주의나 NCC나 WCC와는 대화가 잘 되었는데, 정통신학을 지키던 C. McIntire나, ACCC, ICCC와는 대화가 없었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한가!
진보신학에서는 정통신학과의 교리적인 상극은 덮어버리고, 정통신학이 사랑과 관용이 없다고 하여 근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매도해왔다. 그러나 진보주의와 정통주의의 대화의 단절은 사랑과 관용의 문제가 아니고 교리의 문제였다. 한쪽은 천지창조와 성령수태와 육체부활과 내세와 영생을 믿었으나, 반대쪽은 이 모든 기적을 믿지 않으니 이토록 다른 두 신학이 어떻게 교제하며 대화할 수 있는가!
필자가 1980년대에 캘리포니아 버클리 시에 소재한 신학종합대학원(GTU)에서 가졌던 기독교와 불교가 대화하는 광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세계에서 모여든 목사들과 승려들이 700여명이었다. 복도에서 우연히 변선환 교수와 맞부딪쳤다. 낯 선 이방인을 의식한 변 교수가 투명한 말로 “당신은 어디에서 왔소?” 이렇게 말을 걸어왔다. “저는 이 지방에 있는 장로교 목사입니다. 어느 교단이요? 저는 합동파 소속 목사입니다.” 나의 답변을 듣자 갑자기 얼굴이 읽으러지면서 큰 소리로 “여기는 당신 같은 사람 오는 곳이 아니야. 가!”라고 외쳤다. 불교와 기독교를 하나로 만들자는 변선환 교수의 눈에는 그리스도의 육체부활과 내세와 영생을 믿고 주장하는 합동파 신학이 정신 나간 자들의 신학으로 여겨지니 어찌 고함을 지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므로 칼 바르트와 김재준과 John Stott는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고 내세와 영생을 믿는 정통신학을 저주하였다. 본서의 각론에 이러한 해설이 들어있다.
안병무 교수와 김의환 교수가 참석한 교수들의 모임에서 나온 이야기가 있다. 김의환 교수에게 진보주의 신학자 한 사람이 당신은 아직도 십자가 보혈의 신학을 하요! 예, 저는 죽을 때까지 십자가 보혈의 신학을 할 것입니다. 그래요!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이 그렇게도 귀했다면 십자가 곁에서 흘리는 피를 받아두었을 것을! 이상은 상극인 교리가 빚어낸 사건이다. 1960년대에 세계를 경악케 했던 미소간의 냉전도 사상의 상극이 빚어낸 참사였다. 오늘날 근본주의 무슬림의 자살테러도 교리의 상극에서 나오기 때문에 용암의 분출과도 같아서 막을 길이 막막하다.
그러나 이러한 교리적 상극은 숨기고, 분쟁과 분리가 마치 정통신학이 사랑과 관용이 없어 일어난 것처럼 하여, 정통신학을 믿는 대다수의 총회총대들이 자유주의 쪽을 동정하게 만든 후에, 합세한 세력으로 정통신학을 고수하는 G. Machen 파를 미국장로교(PCUSA) 총회에서 추방하였으니(1936), 순전히 전술에 의한 승리였다. 근본주의는 사랑과 관용이 없다는 죄목으로 매도되고 사장되어, 최근에는 근본주의란 명칭은 언급하는 사람도 없다. 예배순서에서조차 사도신경(근본주의)이 배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근본주의는 정통신학의 근본 교리들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이 처음부터 자유주의와 연합해온 것은 전적으로 교리의 동질성 때문이지만, 성경무오의 불신과 내세와 영생의 불신을 철저히 가려서 은폐하고, 정통신학의 용어로 글을 쓰며 설교하고, 사랑과 관용과 연합을 강조하여 비판과 분리를 금하니, 내세를 믿는 신자들이 속아서, 내세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과 연합하고 교제하고 있는 것이다.
(7) Harold J. Ockenga와 신복음주의 신학
「신복음주의 신학」이란 용어는 Ockenga(1905-1985) 목사의 작품이다.
ⓐ Ockenga는 Boston Park Street Church의 담임목사로, 1969년까지 30년간 재직하면서,
방송설교로 New England(미동북부 6개주)를 장악하였고, 미전역에 영향력이 미쳤으며,
ⓑ 미국복음주의연합회(NAE)의 창립을 주도하여, 37세에 초대회장(1942-1944)이 되었고,
ⓒ 42세에는 C. Fuller 목사를 끌어드려 Fuller 신학교를 설립하였고 교수 임명권을 수행하였으며, Boston에서 목회하면서 3번 교장 직을 수행하였다(1947-54, 1960-63).
ⓓ 신학교를 세우던 해(1947)에 “신복음주의 신학”이라는 명칭을 명패로 내걸었고,
ⓔ 목회은퇴(1969) 후에는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교장을 지냈다(1970-79).
ⓕ Billy Graham 목사와 Christianity Today를 창간하여(1956), 25년간 운영이사장을 지냈고,
12년간(1956-1968)은 편집장으로 신복음주의를 전파하였으니, NAE와, Fuller 신학교와,
Gordon-Conwell 신학교와, Christianity Today를 장악하여, 세계교회를 하나로 아울렀다.
Ockenga 목사가 방송설교와 문서 활동과 신학교육과 교회연합운동을 통하여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근본주의와 투쟁하여 자유주의의 완승과 근본주의의 완패를 이끌어냈다. 많은 사람이 Ockenga의 신학을 보수신학으로 알고 있지만, Ockenga는 정통신학을 배격하였고, 자유주의에 승리를 안겨주었다. 다음에 Ockenga의 신학사상을 말해주는 글을 3회(가, 나, 다)로 나누어 소개한다. 다음 인용문은 길지만, 독자들은 숙독하여 먼저 인용문의 핵심을 잡아내야 한다.
(가) 다음은 Ockenga가, 근본주의의 완패와 자유주의의 완승을 선언하고, 복음주의 교회가 자유주의 신학의 교리를 수용할 것을 강력히 주장한 글이다.
『 근본주의는 1900년에서 1930년에 이르기까지 교회를 휩쓸었던 자유주의의 물결에 대한 반대 운동이었다. 근본주의라는 이름은 “Testimony Publishing Company”에서 1909년에 인쇄한 근본(The Fundamentals)이라는 책에서 비롯되었다. 그 책은 Los Angeles 성경학원에 의하여 1917년에 재발행 되었다. 근본주의의 근본적인 것들은 성경의 무오성, 신뢰성, 진정성, 충실성의 가르침을 굳게 하고 변증하는 성경의 교리에 그 핵심을 두고 있다. 파괴적인 성경고등비평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신학자들 가운데 지배적인 접근방식이 되었다. 고등비평이 자연적인 진화를 거듭하면서 자유주의가 탄생한 것이다.
자유주의는 동정녀탄생과 예수님의 기적들과 예수님의 부활로 구성된 기독교의 기원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능력을 거절한다. 자유주의는 성경의 영감과,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신성과, 죄의 속죄와, 개인의 부활과 같은 것들을 현대문화에 내던졌다. 자유주의는 그리스도인의 세부적인 종교문제에 과학적인 반대가 일어날 때마다 기독교를 현대의 과학적인 자연주의에 적용시켰다.
그러나 자유주의는 ① 영혼을 향한 열망과 ②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하여 투쟁할 수 있고 ③ 보다 훌륭한 삶을 살게 할 수 있는 원리들을 기독교를 위하여 보유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서 신학자들이 자유주의 신학이 주장하는 세부적인 조항들을 다 동의한 것은 아니지만 자유주의 신학의 교리가 다음과 같은 근본적인 견해들을 품고 있었다. 즉
ⓐ 성경은 다신교에서부터 발전하여 단일신교로 또 유일신교를 거쳐 윤리적인 유일신주의로 발전한 유대인의 종교적인 경험기록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서 기록한 계시가 아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독특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 하기 위하여, 도덕적인 교사로서 그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 기독교는 예수님에 관한 종교가 아니고, 예수님의 종교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한 속죄와 부활은 단지 영원한 진리가 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 는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 기적은 하나의 전설이며, 고대인들이 한 인간을 높이 생각하려하여 입혔던 옷에 불과하다. ⓕ 복음은 효도정신을 의미하고, 형제우애를 의미하고, 사회적 이해와 향상을 의미한다.
ⓗ 십자가는 하나의 헌신방법을 말하고,
ⓘ 교회는 인간의 향상을 위한 조직체이며, 과학적인 사회주의 세계혁명을 목표하는 공산당 과 대등한 조직체이다.
이러한 신학에 대하여 근본주의는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본질과 그리스도의 특성과 인간의 창조 및 타락과 예수님의 대속과 성령에 의한 중생 및 성화와 교회의 연합과 복음적이고 사회적이고 교육적인 교회의 선교와 경험적이고 윤리적이고 종말적인 그리스도의 왕국과 인간의 위기와 구원 등, 이 모든 것을 강조하는 진리의 근거로서 성경을 사용하였다. 이처럼 근본주의의 진리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신학교나 학회와, 교회기관의 주도권을 장악했던 자유주의 목사들에 의하여 차별대우를 받았고 핍박을 당했으며 조롱까지 받았다.
근본주의 지도자들은 단지 개별적인 강단과 라디오 방송 사역과 성경학교와 성경연구수련회 등을 통하여 그들의 영향력을 끼쳤다. 근본주의는 기독교의 신조와 변증에 전념하였다. 불행하게도 고후6:14-18까지의 구절을 포함한 성경의 몇 부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 의하여 초래한 논쟁이 그들을 분리시켰다. 잘못되고 탈선된 고린도인들에 대한 바울의 권고는 고린도 교회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 이방의 사원들과 사원 경배자에게서 나왔다는 것이다. 이 외부 유래설(come-outist)의 주장의 근거는 잘못된 것이었다.
이 근본주의는 자유주의를 대항하여 다투었는데 이러한 다툼이 논쟁을 초래하였고 논쟁이 형제들을 향한 비판을 초래하였고 비판이 필연적인 분리를 초래하였다. 그러나 그토록 강렬했던 근본주의 운동은 「보다 더 강렬했던 교회」의 반격으로 부서지고 잠재워졌으며 논쟁은 선교와 전도와 교육과 예배를 향한 열심으로 전환되었다. 결국 근본주의는 교단의 지도력을 잃었으며 교회와 사회와 정치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게 되었다.
젊은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 불안해졌다. 그들은 신학적으로는 정통에 머물러 있으면서 사회와 교회에 대해서는 새로운 입장을 취하게 되었다. 결국 복음주의가 근본주의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1942년에 구성된 미국복음주의연합(NAE)이 명백히 보여주는 바와 같이, 복음주의는 정통주의와 동등시 되었고 근본주의와 동의어가 되었다. 』
인용문이 길기 때문에, 우선 인용문의 핵심을 짚어보는 것이 좋겠다. Ockenga가 인용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핵심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가 있다.
ⓐ 근본주의와 자유주의를 해설하였다.
ⓑ 자유주의는 총회의 실권을 장악한 후 근본주의를 박해하고 조롱하였다.
ⓒ 근본주의는 교리논쟁을 일삼았으나,「보다 더 강렬했던 교회」는 교리논쟁을 잠재우고 대 신 교리논쟁을 교육 전도 선교에 대한 열심으로 전환하였다.
ⓓ「보다 더 강렬했던 복음주의 교회」가 근본주의를 부셔버리고 잠재웠고 교회에서 밀어냈다.
ⓔ 결국 자유주의 신학의 일방적 승리와 근본주의 신학의 완패를 선언하였다.
ⓕ 끝으로 복음주의가 정통주의와 근본주의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하여 기뻐하였다.
ⓖ 자유주의는 영혼을 향한 열망과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하여 투쟁할 수 있고 보다 훌륭한 삶 을 살게 할 수 있는 원리들을 기독교를 위하여 보유하고 있으니, 근본주의를 밀어낸 자리 를 복음주의 교회가 자유주의 교리로 채울 것을 호소하였다. 자유주의가 기독교를 위하여 보유하고 있었다는 그 훌륭한 원리들(교리들)은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 성경은 다신교에서부터 발전하여 단일신교로 또 유일신교를 거쳐 윤리적인 유일신주의로 발전한 유대인의 종교적인 경험기록이다. 성경은 하나님이 영감을 주셔서 기록한 계시가 아니다.
㉡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한 독특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 하기 위하여, 도덕적인 교사로서 그의 모본을 따라야 한다.
㉢ 기독교는 예수님에 관한 종교가 아니고, 예수님의 종교이다.
㉣ 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한 속죄와 부활은 단지 영원한 진리가 되신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 는 하나의 사고방식이다.
㉤ 기적은 하나의 전설이며, 고대인들이 한 인간을 높이 생각하려하여 입혔던 옷에 불과하다. ㉥ 복음은 효도정신을 의미하고, 형제우애를 의미하고, 사회적 이해와 향상을 의미한다.
㉦ 십자가는 하나의 헌신방법을 말하고,
㉧ 교회는 인간의 향상을 위한 조직체이며, 과학적인 사회주의 세계혁명을 목표하는 공산당 과 대등한 조직체이다 .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투쟁에서, 근본주의는「보다 더 강렬했던 교회」의 반격으로 부셔지고 잠재워짐으로서 자유주의가 승리했음을 선언하였고, 근본주의를 부셔서 잠재운「보다 더 강렬했던 교회」를 가리켜 복음주의 교회라고 칭하였으며, 동시에 복음주의 교회가 근본주의와 정통주의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Ockenga의 주장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복음주의 교회」이다. 「복음주의 교회」가 근본주의는 교회에서 밀어냈고 자유주의에게는 승리를 안겨 주었기 때문에 자유주의가 근본주의를 박해하여 모든 교회기관에서 좇아냈으며, 또한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를 위해서 품고 있었다는 훌륭한 교리들을 「복음주의 교회」가 수용할 것을 호소하였으니, 교회의 실권을 잡은 「복음주의 교회」의 교리를 자유주의 신학의 교리로 채운 것이다.
교회에서 근본주의와 정통주의를 밀어내고, 근본주의와 정통주의를 대신한 「복음주의 교회」가 자유주의 신학이 교회를 위해서 보유해왔다는 근본적인 교리들을 수용할 것을 호소하면서, 그 교리는 “보다 낳은 세계를 만들어주고, 보다 훌륭한 삶을 보장해준다“고 칭송하였다.
이제 「복음주의 교회」가 해야 할 것은,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를 위해서 보유하고 있다는 교리들을 받아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Ockenga가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를 위해서 보유하고 있다는 교리들을 인용문에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고, 유대인의 종교적인 경험 기록이다.
㉡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성령수태, 육체부활)이 아니고, 단지 도덕적인 교사이다.
㉢ 기독교는, 예수(성령수태, 육체부활)를 믿는 종교가 아니고, 예수가 믿었던 종교(윤리종교)이다.
㉣ 속죄와 부활은, 지옥형벌을 대신했거나 육체부활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
㉥ 복음은, 단지 효도정신과, 형제우애와, 사회향상을 의미한다.
㉦ 십자가는, 단지 헌신의 방법을 말한다.
㉧ 교회는, 인간향상을 위한 조직체이고, 세계혁명을 위한 사회주의 공산당과 대등한 조직체이다.
이상과 같은 Ockenga의 주장은, 당시 미국교계의 형편을 보아, 전혀 무리가 없는 주장이었다. Ockenga가 이 글을 기고한 것은, Wilbuh M Smith 목사(1894-1976)의 소천을 기념하는 책(복음주의의 뿌리-Evangelical Roots)이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쓴 때가 1976년이었다. 이때는 이미 근본주의 신학은 교회에서 거의 살아졌고, 자유주의 신학이 득세하던 시기였다. 당시 미국교회의 형편을 말하면, 1800년대에 유럽에서 계몽사상과 자유주의 신학이 북미대륙에 상륙한 이래,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투쟁에서 1920년대 이후로는 근본주의(정통주의)는 패하여 밀려나기 시작하였고, 자유주의가 승승장구하였다. 그러므로 1976년에 와서는 근본주의(정통주의)를 밀어낸 자유주의가, 자유주의 신학의 교리로 빈자리를 채울 것은 자명한 일이다. Ockenga가 바로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의 승리를「복음주의 교회」라는 이름을 빌려 간접어법으로 말한 것이다.
(나) 다음은, Ockenga가 근본주의를 배격하고, 신복음주의를 주장한 이유를 밝힌 글이다.
Ockenga가 앞의 인용문에서는, 자기의 신학을 “복음주의” 혹은 "복음주의연합"(NAE)으로 표현하였으나, 여기서는 “신복음주의”로 표현하였으니, Ockenga는 복음주의와 신복음주의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Ockenga도 일반적으로 자신의 신학을 호칭할 때에는 신복음주의를 사용하지 않고,「복음주의 신학」혹은 「복음주의 교회」로 표현하였다. 다음 인용문의 번호 (① → ④)는 필자가 편의상 쓴 것이다.
「 ① 신복음주의는 정통교리를 받아드렸다. 정통교리는 신복음주의 신학의 신조이다. 신복음주의는 모든 교회가 일치하게 고백할 수 있는 복음적인 신조들을 고백하였으나, 가능한 이견(disagreement)과 자유(liberty)를 허용하였다. . . 신복음주의는 오늘날의 지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에 직면해 보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정통의 지적 분위기도 바뀌었다. 신복음주의는 분리주의자의 위치를 반박했으며, 비평과 판단 그리고 상대방을 비꼬는 행위 등에서 생겨나는 유아론에서 돌아설 것을 촉구하였다. ② 또 신복음주의는 계시와 영감 문제에 대해 재검토와 재해설을 요구했으며, 그 자신의 견해와 다른 견해들을 가진 사람들의 기독교적 신앙과 정직성을 알기 위하여 신학적인 대화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였고, 기독교를 사회주의와 일치시키려는 행위에 대하여 경고하였다. . . ③ 기독교는 지적으로 변호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신학자는 창조의 기간, 인간의 수명, 홍수의 보편성 같은 문제의 취급에서, 반계몽주의자가 될 수는 없었으며, ④ 그리스도인의 신학은 삶의 모든 국면에 적절한 것으로 선포되었다. 」
신복음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① 신복음주의 신학은 정통교리를 받아드리고, 이견과 자유를 허용하고, 분리주의와 유아론은 배격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견과 자유를 허용하고 분리주의와 유아론을 배격하는 것은 자유주의 신학이다. 그러므로 Ockenga가 정통주의를 받아드린다고 말했지만, Ockenga가 말하는 신학은 이견과 자유를 허용하고, 분리주의와 유아론을 배격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다. 결국 Ockenga가 신복음주의 신학이 자유주의 신학임을 주장하면서도, 신복음주의가 정통신학을 수용한다고 말한 것은 확실히 속임수였다. Ockenga가 왜 속임수를 말할 수밖에 없었는가? 정통신학을 품고 있는 목사와 장로들의 입을 막기 위해서 자신이 주장하는 신복음주의 신학이 정통신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주의와 정통주의의 차이는 흑 백의 차이이고, 고등비평과 성경무오의 차이이고, 그리스도 신성에 대한 불신앙과 신앙의 차이이고, 빅뱅설(Big Bang)과 창조설의 차이고, 지상천국과 내세천국의 차이이다. 그러므로 이 둘은 교리가 상극이라 결코 대화하거나 교제하지 못한다. 자유주의는 정통교리를 배격하고 저주하며, 정통교리는 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저주한다. 그러기에 김재준, John Stott, Karl Barth가 정통주의 리를 저주하였고, 성경이 자유주의 교리를 저주하였다(갈1:8).
② 신복음주의는 계시문제의 재검토를 요구하고, 신학적 대화를 요구한다고 하였다. Ockenga가 앞에서는, 신복음주의가 유아론과 분리주의를 배격하고, 이견과 자유를 존중하여 자유주의 교리를 수용할 것을 주장하였고, 여기서는 신복음주의가 계시문제의 재검토와 신학적 대화로 나갈 것을 주장하였다. 이 계시문제의 재검토와 신학적 대화는 모든 진보신학이 강력히 추진해온 대화 프로그램인데, Ockenga가 여기서 그 대화 프로그램을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Ockenga가 신학적인 대화를 주장하고 계시문제의 재검토를 주장한 것은, 성서를 인간의 문서로 보거나 신화로 보았을 때에만 가능한 일이다. 정통신학은 성서를 하나님의 계시로 믿고 절대의 진리로 믿기 때문에 계시문제의 재검코나 신학적인 대화를 배교행위로 규정해왔다. 그러므로 Ockenga가 계시문제의 재검토와 신학적인 대화를 주장한 것은, Ockenga의 성서관이 성서를 인간의 문서와 신화로 보는 자유주의 신학과 동일함을 말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정통신학과 신복음주의는 그 주장이 다 절대적이기 때문에 각기 서로에게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정통신학만 신복음주의와 대화가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신복음주의도 정통신학과 대화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유주의와 신복음주의는 양쪽이 동일하게 상대적이기 때문에 대화가 잘 된다. 그러므로 대화는 반드시 동질성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정통신학이라도 진보진영과 대화를 주장하면 이미 정통신학이 아니다. 정통신학임을 이미 포기한 것이다.
김재준 교수는 1960년대에 기독교와 불교가 대화할 것을 강력히 추진하였다. 감신대학의 변선환 교수와 홍정수 교수도 불교와 기독교의 대화를 강력히 추진하였으나 정통신학을 지키는 김홍도 감독 시절에 감신대학에서 면직 당하였다. 종교간의 대화는 두 종교의 동질성을 전제한 것이므로 기독교와 불교의 동질화를 용납하지 못하는 정통신학이 진보신학자들을 면직한 것이다.
WCC와 에큐메니칼 신학이 여러 종교들의 합동예배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온 것 역시 대화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일이다. 여러 종교들이 20세기 후반세기에 진행했던 대화의 노력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화두에 자주 등장하는 다원주의를 만들어냈으며, 이 다원주의가 21세기를 이끌어갈 전망이다. 이 다원주의 신학을 가톨릭 제2바티칸 공의화(1965)와 John Stott(1992)와 Billy Graham(1997)이 각기 선포하였으니, 종교들이 연합하여 다원주의를 하나의 구호로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세계의 종교들이 연합하여 하나의 목표(지상낙원)로 활동할 것을 계시록이 말해주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최근에 일고 있는 바람은 심상치 않다. 가령 교단 총회장들이 강단교류를 하자면서 대화와 연합이라는 용어를 화두에 꺼내는 것은 앞으로의 한국교회의 전망을 말해주는 징후들이다. 이런 움직임은 선두에서 총회를 이끄는 목사들이 품고 있는 신학적인 풍향(the direction of the wind)을 말해주기 때문에 문제가 크다. 이런 정도의 신학적인 풍향을 방치하면 불원간에 보수진영(고신, 총신, 합신 등)과 진보진영(한신, 장신 등)이 대화에 임할 것이며 강단교류도 가능해질 것이며, 일찍이 영국 유럽 카나다 미국 등지에서 수용했던 진보신학을 품고 숨어 지내던 신학자들이 고신 총신 합신에서 선두에 나설 것이다.
이미 한국교회는 3대 깃발 아래로 집결하고 있다. 3대 깃발은 진보진영과 복음주의 진영과 정통진영이다. 한국에서 거대한 몸집을 지닌 가톨릭이 진보진영에 깃발을 꽂았다. 정진석 추기경이 2009년 1월 1일에 한국 중앙일보에 발표한 신년 메시지가 그것이다. 정 추기경이 문제의 신년 메시지에서 빅뱅설과 진화론을 정설로 주장하였고 5병이어의 기적을 부정하였다. 가톨릭이 제2바티칸 공의회(1963-1965) 후에 다원주의를 선포하였다. 문제는 복음주의 진영이다. 복음주의는 진보진영과 교류하며 정통진영과도 교류하고 있다. 문제는 정통진영의 신학자들이 복음주의 진영과 그 활동에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가 본서를 저술한 목적이 20세기의 복음주의(NAE, Lausanne대회, 이 두 모임에 연관된 세계적인 모임들)의 정체를 밝힘에 있다. 필자가 본세에서 선평한 9 사람의 진보주의 신학자들은 20세기의 진보진영을 대표하는 목사들이고 신학자들이다. 이들 9 사람이 다 기적(하나님의 만물창조,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來世)를 불신하여 부정하였다.
김명혁은 합신 교수와 합신교단 총회장을 역임하고,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으로서, 2009년 9월 26일자 기독교보(고신)의 시론에서, 교회의 “통일성과 거룩성,” “연합과 일치”를 주장하여 합신과 고신과 총신의 교단들이 기장과 통합과 연합하여 강단을 교류함으로서 교회의 통일과 일치와 거룩을 회복하자고 하였다. 물론 지역사회의 봉사를 위한 연합이나 일치와 같은 경우는 예외이지만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경이 규정한 통일과 일치와 거룩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믿는 신조를 전제한 것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믿는 총신과 고신과 합신은 이러한 신조를 불신하여 파기한 한신이나 장신과는 통일이나 일치를 위한 강단교류나 연합이 불가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믿지 않는 진보신학과, 이 신조를 고집하는 정통신학을 섞어서 연합하고 통일하고 일치해지자는 이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의 주장은 부당한 주장이다.
③ 신복음주의는 반계몽주의를 배격하고, 계몽주의를 수용한다고 하였다.
「 기독교는 지적으로도 변호될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신학자는 창조의 기간, 인간의 수명, 홍수의 보편성 같은 문제의 취급에서, 반 계몽주의자가 될 수는 없었으며 」
Ockenga가 앞에서는 절대주의와 분리주의를 배격하고, 진리의 상대화를 성립시키기 위하여 성서무오의 교리에 대한 재검토와 신학적인 대화를 주장하였는데, 여기서는, “창조의 기간, 인간의 수명, 홍수의 보편성 취급에서, 반 계몽주의자가 될 수 없다”고 하였으니, 계몽주의(현대과학)가 주장하는 창조의 기간, 인간의 수명, 일반적인 홍수심판을 따르겠다는 주장임으로, 결국 6일간의 창조와 930세의 아담의 수명과 노아의 홍수심판을 수용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Ockenga가 반 계몽주의를 배격하고, 계몽주의(현대과학)의 수용을 주장한 것은, “6일간의 창조와, 930세의 수명과, 노아의 홍수심판”을 실화(nonfiction)로 보지 않고 신화(myth)로 보았으며, 설화(geschichte) 즉 고대소설로 보았음을 뜻한다. 독일어 설화(geschichte)는 전설과 신화로 쓰인 고대소설을 말한다.
④ Ockenga는 상황을 따르는 상황신학을 주장하였다.
「 그리스도인의 신학은, 삶의 모든 국면에 적절한 것으로 선포되었다. 」
이 주장에서 “삶의 모든 국면”은 현대의 세속사회를 총칭하는 말이다. 기독교 신학이 현대 사회의 “삶의 모든 국면”에 적절하려면 창조의 기간과 인간의 수명과 홍수취급을 성서대로 주장하면 안 되고, 계몽주의(현대과학)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 Ockenga의 주장이었다. “삶의 모든 국면”에서 계몽주의를 따르는 신학은 자유주의 신학이다. 그래서 Ockenga가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를 위하여 보유하고 있다는 삶의 원리들이 “현대의 모든 국면”에 적절하다 하여, 자유주의 신학의 7 가지 교리들을 앞의 인용문에서 열거한 것이다.
“삶의 모든 국면”에 적절한 신학은, 신학이 삶이 모든 국면과 맞아야 한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다. 즉 삶의 모든 국면에 맞고 따라가는 신학은 상황을 따르는 신학이니 상황이 만들어가는 상황신학이다. Ockenga가 앞으로의 신학은 상황신학이어야 할 것을 주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대인이 거부하거나 현대인의 상황에 부적절한 신학은 무용지물이므로, 앞으로는 계몽주의 시대에 어울리고 모든 상황에 어울리는 상황신학을 구성하자고 한 것이다.
결국 Ockenga가 주장한 복음주의 신학은 상황신학임으로, 신학구성에서 성서와 하나님을 밀어내고 인간이 상황을 따라 신학을 구성하니, Ockenga의 신학은 하나님이 없는 윤리신학이다. 그러나 역사의 종말이 오면 형제사랑과 함께 하나님 섬기기를 고집하는 신자들은 현대신학이 말살할 것이므로, 요한 계시록은 순교할 것을 누누이 되풀이하여 예언하고 있다.
(다) 다음은 Ockenga가 구원의 교리와 사회윤리의 연관성을 주장한 글이다.
「 사회적인 문제점들이 불가피하게 복음주의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1947년 나는 이러한 관심을 표시하기 위해서, 신복음주의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신복음주의는 근본주의가 피했던 사회적인 문제들을 처리하려는 의도에서 구별된다. . . 루터나 칼빈 그리고 낙스와 같은 개혁자들이 사회적 분야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기독교 역사가 밝히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리에서 실천으로 넘어가는 것의 결핍이 이 문제점들 안에 나타나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구원의 초자연적인 “인격적 체험”과 “사회 철학”을 낳게 하는 신학이다. “교리와 사회윤리”는 그리스도인의 기본 원리이다. 」
다음은 Ockenga가 말한 인용문에서 핵심을 요약한 글이다.
① 복음주의 교회가, 근본주의가 무관심했던 사회적인 문제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② Ockenga가,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을 표명하기 위해서, 신복음주의라는 신학용어를 만들어냈다.
③ 교회사는 루터, 칼빈, 낙스 같은 개혁자들이 선포했던 교리가 사회적 개혁을 가져왔다고 전하는데,
현대에서는 교리(doctine)에서 실천(practice)으로 넘어가는 것이 부족하다.
④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인격적 체험과 사회윤리를 가져온다.
Ockenga가 다룬 핵심은, “교리와 사회윤리”이다. 인간은 교리를 신앙하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교리에 대한 신앙”이 사회윤리의 성패를 결정한다. 그래서 Ockenga가 “교리와 사회윤리”의 연계성을 강조하여, 기독교가 반드시 사회윤리를 성취할 수 있는 교리를 가져야 할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 현대사회에서 교회가 어떠한 교리를 가져야, 사회윤리나 사회개혁을 성공시킬 수 있는가? 이것이 인용문의 핵심이다.
Ockenga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구원의 초자연적인 인격적 체험과, 사회개혁을 낳게 하는 신학이라고 말하면서, 루터(1483-46) 칼빈(1509-64) 낙스(1513-72)를 거명하였다. 그러나 이 Ockenga의 주장은 사실과는 다르다. 왜냐하면, 16세기의 사회는 근본적인 교리들을 받아드렸기 때문에, 루터와 칼빈과 낙스와 같은 정통주의 신학이 당시의 사회개혁을 가져왔지만, 현대사회는 정통주의 신학을 거부함으로 정통주의 신학으로는 현대사회의 개혁을 기대할 수 없음을 Ockenga도 잘 알기 때문에, Ockenga가 앞에서 계몽사상(현대과학)의 수용을 주장하였고 분리주의와 유아론의 포기를 주장하였고 계시문제의 재검토와 신학적인 대화를 주장하여 자유주의 신학이 기독교를 위해서 보유하고 있다는 7 가지 교리들을 수용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이처럼 Ockenga의 의중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Ockenga가 여기서 왜 현대사회의 개혁과는 무관한 16세기의 근본주의 신학자들(루터, 칼빈, 낙스)을 거명하였는가? Ockenga가 복음주의 교회에 제시한 교리는, 루터, 칼빈, 낙스의 근본주의가 아니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7 가지 교리였다. Ockenga가 이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마음에도 없는 근본주의 신학자들(루터, 칼빈, 낙스)을 거명한 것이다. Ockenga가 왜 마음에도 없는 근본주의 신학자들을 거명한 것일까?
만일 Ockenga가 “자유주의 신학의 7 가지 교리가 복음주의(NAE) 교회가 수용해야 할 교리다”라고 솔직하게 직선적으로 주장했다면, 정통신학의 교리를 고집하는 목사장로들과 신학생들과 교인들이 Ockenga가 추진하는 신복음주의 운동을 떠났을 것이므로 이것을 막고자 하여, Ockenga가 자신의 신학적인 정체성을 숨기려고 마음에도 없는 루터 칼빈 낙스를 들먹여 연막전술을 편 것이다.
이상으로서 Ockenga의 정체가 완전히 들어났다. Ockenga는 Billy Graham과 손잡고 NAE와 Christianity Today와 Fuller 신학교와 Gordon-Conwell 신학교를 완전히 장악하여 세계교회를 하나로 아울렀으며, 자유주의 신학의 교리로 복음주의(NAE) 교회를 채웠고, 사회윤리를 현대기독교의 구원으로 주장하여 세계 기독교와 세계 종교가 연합하여 하나 됨을 꾀하였으니, Ockenga도 훗날에 등장할 다원주의에 찬성표를 던진 셈이다. 21세기는 사회개혁과 인성회복과 상황신학과 신학적 대화를 주장하여 다원주의로 나가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제3장, Edward J. Carnell은 성서를 신화로 봄
자유주의 신학이 성서를 전설과 신화로 보듯이, Carnell도 성서를 전설과 신화가 섞어 쓰인 설화(geschichte, story) 즉 고대소설로 보고, 설화를 비유나 상징으로 해석하여 신학을 구성한다. 이러한 Carnell의 성서관은 신정통주의 신학의 성서관을 따른 것이다.
Carnell(1919-1967)이 어떤 사람인가? Carnell은 침례교 목사의 아들이었고, Wheaton 대학의 Gordon H Clark에게서 철학을 배워, 1941년에 B.A.를 받았고, Van Til에게서 변증학을 배웠고, Havard 대학에서 R. Niebuhr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썼고, Boston 대학에서는 Kierkegaard에 대한 박사학위 논문을 썼으며(1949), “기독교 변증학 서론”의 저술(1948)로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어, 불과 29세에 Fuller 신학교 교수가 되어 19년간(1948-67) 재직하여 종교윤리와 종교철학을 강의하였으며 교장도 역임하였고(1954-59), Carl Henry와 함께 복음주의 신학 구성에 중추적 역할을 했지만 “생애의 말년에는 불신앙과 정서적 불안으로 고생했다”고 전한다.
Carnell은 성서를 인간의 문서로 보았으며, 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것은 이단이라고 하여 하나님의 만물창조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불신하였다. Carnell이 저술한 “The Case for Orthodox Theology”(정통신학의 진상)이란 책이 김관석(金觀錫)에 의해 “正統主義神學”으로 번역되었는데(1967), 다음은 Carnell이 책에서 언급한 그의 성서관이다.
『 The search for authenticity will never end. But early church settled the canon, for it had access to the relevant evidences. But the modern church must continue to sift and classify the variant reading in the present documents. The original manuscripts are all lost.
II. Conclusion
Since orthodoxy defends the plenary inspiration of Scripture, it is always tempted to make propositional revelation an end in itself. Whenever it yields to this temptation, it offends its own presuppositions. Propositional revelation is an instrumental value; it is designed to bring us into fellowship with Jesus Christ, "These are written you may believe that Jesus is the Christ, the Son of God, and that believing you may have life in his name."(John 20:31.) "Inspiration is no isolated fact, which stands by itself. He who takes it in this sense arrives at some sort of Koran, but not at the Holy Scripture. In that case the principium of knowing (cognoscendi) is taken entirely apart from the principium of being (essendi), and causes the appearance of an exclusively intellectual product which is outside of reality. We then would have an inspiration which dictated intellectually, and could not communicate at us anything but a doctrine and a law."
The gospel is the good news that God entered history and did something that man could not do for himself. The redemptive events are the foundation of the normative interpretation, and not the other way around. To conceive of the Bible as the primary revelation is heresy. If there had been no redemptive events, there would be no theology. 』
다음은 필자의 번역문이다.
『 확실성을 찾는 노력이 절대로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초대교회는 적절한 증거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에 경전을 결정하였지만, 지금은 모든 원문이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까지 발견된 문서들에 대한 서로 다른 해독 법들을 계속 조사하고 연구해야 한다.
11. 결론
정통신학은 성서의 완전영감을 방어하다 보니, 항상 해석된 계시(propositional revelation)를 무시하려는 유혹에 잘 빠진다. 정통신학이 이러한 유혹에 빠질 때마다, 자신의 전제들을 거스른다. 해석된 계시는 도구적인 가치(Instrumental value)를 말한다. 이 해석된 계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요20:31). 영감은 고립된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감을 고립된 사건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고립된 사건을 일종의 코란경으로 생각하겠지만,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런 경우에는 인식(knowing)의 원리는 존재(being)의 원리와 완전히 분리되어, 실재와는 무관한 순전히 지적인 것이 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와 교제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가질 수 없게 되고 지적으로만 영감 받은 죽은 교리와 죽은 율법을 갖게 될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이 역사에 들어오셔서, 인간이 자기 스스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셨다는 복된 소식을 말한다. 하나님이 이룩하신 구속적인 사건들이 표준적인 해석의 기초가 되고,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성서를 최초의 계시(primary revelation)로 이해하는 것은 이단이다. 구속적인 사건들이 없었으면 신학이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해설과 비평
(1) 성서는 비평받아야 할 책이다.
『 확실성을 찾는 노력이 절대로 그치지 아니할 것이다. 초대교회는 적절한 증거들을 이용하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에 경전을 결정하였지만, 지금은 모든 원문이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까지 발견된 문서들에 대한 서로 다른 해독 법들을 계속 조사하고 연구해야 한다. 』
Carnell이 성서의 권위에 대한 논술에서 “확실성을 찾는 노력이 절대로 그치지 아니할 것이라”고 하였다. 초대교회가 경전을 결정한 것은 사실이지만 경전의 확실성이 들어났기 때문에 경전을 결정한 것이 아니고, 단지 경전을 이용할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에 경전을 결정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1900년이 지난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은 성경원본이 다 없어졌기 때문에 성경은 믿을 수 없는 책이므로 경전의 확실성을 찾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하였다. 결국 Carnell은 성서를 오류가 있는 책으로 보았고, 이용할 가치가 있는 책으로 보았다.
(2) 최초의 계시는 이단이고, 해석된 계시가 참 계시다.
Carnell이 성서를 최초의 계시와 해석된 계시로 분류하고, 성서 자체를 최초의 계시로 보는 것은 이단이고 성서를 인간이 해석한 교훈을 참 계시라고 한다. 또한 고립된 사건들 하나하나를 영감 된 계시로 취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하였으니 역시 이단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성서를 최초의 계시로 믿고 고립된 사건들 하나하나를 영감 된 계시로 믿는 것은 정통신학이니, Carnell이 정통신학의 성서관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성서관은 크게 보아 둘이다. 즉 정통신학과 진보신학이다. 정통신학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성령이 오늘의 성서를 기록하게 하고 편집하게 하고 보존해왔다고 믿기 때문에, 성서는 여전히 정확무오하며 성서에 기록된 고립된 사건들도 다 하나님의 계시로 믿는다. 차이 있는 사본들이 있으나 그 차이가 지극히 작아서 진리와 사실과 복음 등의 보존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모든 진보신학(progressive theology)은 초자연의 불신이 전제(presupposition)이기 때문에, 성서에서 신의 출몰이나 신의 활동은 신화로 취급해왔다. 지금까지 진보신학이 성서를 신화(myth)로 보는 것은 변함이 없었지만, 1920년대 이후로는 성서의 품격을 높이고, 초자연을 배격하는 정체성을 은폐하고자 신화 전설 고대소설과 같은 용어들은 신학해설에서 사용하지 않는다.
20세기의 복음주의가 진보신학(자유주의, 신정통주의, 신복음주의)의 교리들을 지키면서도 1920년대부터 성서의 품격을 격상시킨 이유가 있다. 자유주의 신학이 성서를 신화로 취급하여 비평한 결과 현대인이 성서를 버리고 떠났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사상자가 2,000만 명이 넘었고, 후방에서 재판 없이 1,100만(Hitler)과 2,000만(Stalin) 명을 학살하는 참극이 연발하였다. 이 참상을 목격했던 독일계 젊은 목사들(Barth, Bultmann, Brunner, Niebuhr 형제, Tillich)이 참상의 재현을 막기 위해서 비록 성서의 기적들은 믿지 않았지만 다시 성서로 돌아가자고 외치고자 성서의 품격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K. Barth가 성서의 기적들을 전설과 신화로 보지만 전설과 신화로 표기하지 않고 설화(고대소설-geschichte, old fiction)로 표기한 것처럼, 미국과 영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도 성경의 기적들을 전설과 신화로 보면서도 이러한 진보성향의 성서관을 은폐하고자 전설이나 신화 같은 용어들은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성서의 기적들을 설화(story) 신비(mystery) 비유(allegory) 은유(metaphor) 등으로 표기한 후에 그 뜻을 해석하여 인성회복(실존회복)과 사회개혁에 사용하였다. 다시 말해서 기적을 부정하되, 이 용어들(설화, 신비, 비유, 은유)을 사용함으로서 “직설적으로”는 기적부정을 피하면서 기적을 부정하는 진보신학을 해설할 수가 있었다. 그러므로 20세기의 진보주의 신학자들은 초자연을 뜻하는 신학 용어들(하나님 천사 사탄 지옥)이 실재(reality)가 없는 허구(fiction)의 용어라고 믿으면서도 허구의 용어를 사용하여 신학을 해설하는 마술사들이었다.
어떻게 이러한 마술이 가능했는가? 마침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John Dewey가 낳은 지식의 도구주의(Instrumentalism)가 이런 마술을 지지해주었다. John Dewey는 지식을 행동을 위한 도구로 보았기 때문에, 지식이 행동에 성과가 있으면 지식이 유익하지만, 지식이 행동에 성과가 없으면 지식이 무익하였다. 계몽주의(현대과학)와 다윈의 진화론을 믿는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초자연을 뜻하는 신학 용어들(하나님, 천사, 마귀, 지옥)이 허구(fiction)라고 믿었지만 이 허구의 용어라도 인성교육에 사용하면 유익을 준다고 믿게 되었기 때문에 이 허구의 용어들을 분석하여 초자연을 제거한 후에 이 초자연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신학을 구성하고 신학을 해설하였다.
그런데 20세기 진보주의 신학자들이 초자연의 용어들을 분석하여 초자연을 제거할 때에 초자연의 불신과 부정을 은폐할 목적으로 온갖 기술을 다 총동원하여 작업을 하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독자들이 필자의 초자연불신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러므로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독자들의 비평을 피하여 지금까지도 보호를 받고 있다. 본서에서 필자가 비평한 9 사람의 신학이 다 그렇지만 John Woodbridge의 성서관 해설이나 Carl Henry의 부활관 해설이 특별히 더하다.
(3) 해석한 교훈을 해석된 계시로 취급하는 사례들
Carnell과 20세기의 진보신학이 성서를 인간의 작품으로 보면서도, 해석한 교훈을 해석된 계시나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하는 사례들을 다음에 제시한다. 이 사례들은 필자가 본서의 각론에서 해설한 내용들이지만, 여기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시한다.
① 성령수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남자 없이 잉태한 것”을 말함이 아니고, “인간이 하나님 같은 참 인간이 되어졌음”을 뜻한다는 것이 Karl Barth나, J. I. Packer의 해석이었다. 즉 예수는 인류 가운데서 처음 보는 “모범자”라는 뜻이다. 이러한 뜻에서 예수를 제2 아담, 유일한 인류의 대표자라고 하였다. 두 목사(Barth, Packer)는 실존주의 철학의 표현을 빌려, 예수는 처음 보는 “모범자”라는 뜻으로 “인간의 실존”이라고 표기하였다. “인간의 실존”에서 실존(existence)은, 인성이 회복된 참 인간을 뜻한다. 그러므로 성령수태는 예수가 “참 인간임”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 “참 인간”을 새 시대(era)와 새 세기(century)의 모델로 삼아, 세계를 변화시켜 지상에서 분쟁과 전쟁을 막고 화해와 평화를 정착시키자고 하였다. 이것이 Barth와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제시했던 복음과 구원에 대한 새로운 구상이었다.
② 곽선희 목사는 예수의 부활이 몸의 부활이 아니고 “정의가 영원함”을 뜻한다고 하였으며, 김세윤 교수도 예수의 부활이 육체부활이 아니고 예수가 구주라고 주장했던 주장이 옳았음을 부활절 새벽에 제자들이 받아드렸음을 뜻한다고 하였다. 결국 두 목사는 그리스도의 육체부활을 부정한 후에 육체부활은 “정의가 영원함”을 뜻하고, “예수의 주장이 옳았음을 제자들이 받아드렸음”을 뜻한다고 하였다.
③ 그리스도는 보통 인간이므로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났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승천은 부활한 육체의 승천이 아니고 그리스도가 죽은 후에, 살았을 때보다 더욱 높아지고 영광을 얻어 세계를 다스릴 권세자가 되었다는 것이 J. I. Packer의 해석이었다. 이러한 해석은 그리스도의 교훈과 정신이 앞으로 세계를 덮는 날에는 지상천국이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을 말한 것이다.
④ 김세윤 교수는 “주,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리스도의 칭호는 신인양성을 겸하신 성자의 품성을 뜻하는 것으로 가르쳐온 것이 초대교회의 역사이지만, 이러한 초대교회의 역사는 초대교회의 주류세력이었던 헬라인들의 실수로 저질러진 일이었고 그리스도는 신성이 없는 보통 인간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가져온 구원도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율법에 복종하여 인성을 회복하고 윤리를 회복하는 것을 구원이라고 주장하였다.
⑤ J. I. Packer가 빌2:8을 인용하면서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를 삭제하고 “예수의 죽음은 죄 있는 인간의 죽음이었다”(the death he died was the death of a common criminal)로 바꾸어 적었으니, “예수의 죽음이 죄 없는 예수의 대속(atonement)의 죽음이었음”을 삭제함이다. 결국 기독교에서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대속의 구원을 폐기한 것이다.
Packer가 그리스도의 육체부활을 믿지 않았으니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을 리가 없었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믿지 않았으니 예수의 죽음을 “죄 있는 인간의 죽음”으로 주장한 것이다.
(4) 해석된 계시의 용도
해석된 계시의 용도는 도구적인 가치에 있다고 하였다. 인용문에서 이 부분을 다시 적는다.
「 해석된 계시(propositional revelation)는 언제나 도구적인 가치(Instrumental value)를 갖는다. 이 계시(해석된 계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이루게 하여 준다. 」
Carnell은 해석된 계시는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게 하여 주기 때문에 언제나 도구적인 가치를 갖지만, 최초의 계시는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게 하지 못하기 때문에 도구적인 가치가 없다고 하여 이단으로 규정하였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성서를 최초의 계시로 믿거나 사건 하나하나를 최초의 계시로 믿으면 성서는 기적의 책이 되어지며 지금도 살아계시고 구름타고 재림하실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해 주지만, 진화론과 계몽사상을 믿고 기적 일체를 믿지 않는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자들에게는 최초의 계시나 살아계신 그리스도는 교제는 고사하고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구속적인 사건들(성령수태, 동정녀탄생, 대속의 죽음, 육체의 부활, 부활한 육체의 승천과 재림)을 기적으로는 불신하고 배격하였지만, 이 구속적인 사건들을 현대인들이 수용할 수 있는 교훈으로 해석하여 “인간의 인성”(인간의 실존)을 회복할 목적으로 그리스도와 교제하는데 개념도구로 사용하였다. 필자가 본서에서 해설한 모든 신학자들은 다 성서를 최초의 계시로서는 이단으로 보았고, 성경의 사건들 하나하나를 하나님의 계시로 보는 것도 이단으로 보았으며, 해석된 교훈만을 해석된 계시라고 주장하였다. 영국의 C. S. Lewis, John Stott, J.I. Packer, 미국의 Billy Graham, H. Ockenga, E. Carnell, C. Henry, John Woodbridge, 한국의 김세윤, 곽선희, 조향록, 김재준, 박봉랑, 허 혁, 김동수 목사들이 다 그러했다.
도구적인 가치는 실용주의 철학이 고안해낸 연장이다. 우리가 “도구적인 가치”가 담고 있는 뜻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도구적인 가치”는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이 발명해낸 핵심개념이다. 즉 천당 지옥 천사 하나님 성령 등의 실재는 현대인이 믿지 않지만, 이 용어들을 사용했을 때에 어떤 유익이 있다면, 그 “도구적인 가치”를 인정하여 사용하자는 것이다. Karl Barth는 하나님의 만물창조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불신하였지만 성경 용어들이 주는 도구적인 가치를 인정하여 1919년에 로마서 강해서를 출판하여 현대인에게 교훈을 주었다. 본서에서 필자가 비평한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자들도 Barth처럼 만물창조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불신했지만 그 용어들이 수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문화 속에 녹아 있기 때문에 이 용어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신학을 해설함으로서 인성을 회복하고 사회를 개혁하고 정의를 구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20세기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하나님, 천사, 마귀 등의 실재(reality)는 믿지 않지만 이 용어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언어의 마술사들이었다. 마술은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연기하는 기술을 말한다.
(5) 인식(knowing)의 원리와, 존재(being)의 원리
『 해석된 계시(propositional revelation)는 도구적인 가치(Instrumental value)를 말한다. 이 해석된 계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와 사귐을 갖게 하려는 것이다 . . . 영감이란 결코 고립된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감을 고립된 사건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고립된 사건을 일종의 코란경으로 생각하겠지만, 성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인식(knowing)의 원리는 존재(being)의 원리와 완전히 분리되어, 실재(reality)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순전히 지적인 산물이 되게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지적으로만 영감을 받은 죽은 교리와 율법만 갖게 되고, 교리와 율법 이외에 교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가질 수가 없게 된다.
복음은 하나님이 역사에 들어오셔서 인간이 자기 스스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이루어주셨다는 복된 소식을 말한다. 하나님이 이룩하신 구속적인 사건들이 표준적인 해석의 기초가 되고, 그 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 성서를 최초의 계시(primary revelation)로 이해하는 것은 이단이다. 구속적인 사건들이 없었으면 신학이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
성서를 어떻게 취급해야, 그리스도와 교제하게 하는가? 성서를 “최초의 계시”나 “코란경처럼” 취급하여 기적으로 취급하면, 현대인들이 기적을 불신함으로 기적의 그리스도와는 교제할 수 없으니, 구속적인 사건들(성령수태, 십자가의 죽음, 육체부활, 임박한 재림 등)을 현대인에게 맞게 해석한 해석된 계시를 개념도구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들어가자는 것이다.
만일 성서 자체를 계시로 취급하거나 기적으로 취급하면 성서는 기적을 믿지 않는 현대인에게는 죽은 글이 되어지기 때문에 순전히 지적인 산물이 되고, 우리는 지적인 교리와 율법만 갖게 되어지고,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는 산 교리와 산 교훈은 갖지 못한다는 것이다.
Carnell이 성경의 완전무오를 불신하고 성서를 전설이나 신화로 보지만, 이러한 자신의 성서관의 정체성을 은폐하려고 직설적인 해설을 피하였고 함축성을 띤 용어들만을 사용하여 우회적으로 자기 신학을 해설하였기 때문에 Carnell의 성서불신이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다음은 Carnell이 사용한 난해한 용어들이다. 짤막한 문장에서 골라낸 것 치고는 난해한 용어가 너무나 많다.
① 최초의 계시와 해석된 계시,
② 해석된 계시와 도구적인 가치.
③ 도구적인 가치와 그리스도와의 교제,
④ 고립된 사건들과 구속적인 사건들.
⑤ 구속적인 사건들과 표준적인 해석의 기초,
⑥ 인식(knowing)의 원리와 존재(being)의 원리.
⑦ 지식(knowledge)과 존재(being)와 실재(reality),
⑧ 지적으로만 영감 받은 죽은 교리와 율법,
이 용어들은 초자연과 기적에 대한 직설적인 부정을 피하고 간접적으로 부정하기 위해서 고안해낸 표현들이다. Carnell은 하나님의 출몰이나 활동을 전설과 신화로 보며 전설과 신화로 쓰인 성경을 고대소설로 보는 신학적인 정체성을 덮어 은폐할 목적 때문에, 기적부정이나 초자연부정과 관계없는 용어들만을 골라서 해설한 것이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Carnell의 신학이 진화론을 수용한 진보주의 신학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정통신학과 Carnell신학의 차이는 최초의 계시와 해석된 계시만으로도 충분히 들어났다. 정통신학은 성경을 영감 받은 최초의 계시로 믿기 때문에, 구속적인 사건들(성령수태, 동정녀탄생, 육체부활)을 실화(nonfiction)와 역사(history)로 믿고, 예수님을 신인양성을 겸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며, 우리의 육체부활과 영생과 임박한 주의 재림을 믿고 기다린다. 그러나 Carnell과 진보신학은 성서가 말하는 구속적인 사건들(성령수태, 동정녀탄생, 육체부활)을 실화(nonfiction)나 역사(history)로 믿지 않고, 단지 구속적인 사건들을 현대인에게 맞게 해석한 해석된 계시만을 그리스도와 교제하는데 도구로 사용하여, “그리스도의 행적을 본받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서 새 인간이 되어지는 것”을 구원이라고 주장하였다.
제4장, 성서를 신화로 보는 신학자들
John D. Woodbridge의 해설
John Woodbridge는 Kenneth Kantzer 및 D. A. Carson과 함께 “성경의 정확무오”(biblical inerrancy)의 교리가 복음주의적인 정통신학의 시금석이 되게 하였다고 미국의 신학사전은 기록하고 있지만 그의 성경관은 고등비평과 진화론을 수용한 진보신학의 성경관이였다.
다음에 소개할 John Woodbridge의 글은 총신대학 역사학 박용규 교수가 출판한 책 「韓國長老敎思想史」의 서문으로 쓰인 글이다. 그는 Trinity Evangelical Division School의 역사학 교수와 교장을 역임하였고, 박용규의 철학박사 학위논문을 지도하였다. 그의 성경관이 진보적이라는 필자의 비판이 독자들에게는 생소하여 충격적일 것이다. 그러나 다른 20세기의 복음주의 신학자들(Billy Graham, H. J. Ockenga, C. Henry, E. Carnell, C. S. Lewis, J. I. Packer, J. Stott, 김세윤)도 다 그리스도의 신성과 내세를 불신하였으며 스위스 로잔대회(Lusanne Congress, 1974)를 이끌었던 Billy Graham목사는 1997년에, 동일한 노잔대회의 노잔언약서(Lausanne Covenant)를 쓴 John Stott 목사는 1992년에 각기 기독교가 다원주의(pluralism)로 나갈 것을 천명하였다.
다음은 John Woodbridge 교수가 쓴 성경관의 원문과 번역문이다. 번역문은 박용규 교수의 번역을 그대로 적었다. 지극히 작지만 필자가 수정한 것이 있어서 박용규 교수의 양해를 구하며, 수정 부분은 번역문에 원문도 함께 적었다. 수정문구가 아니라도 중요한 구절에서는 원문을 번역문에 넣었으며, 사람의 이름은 영문대로 적거나 괄호 안에 넣었다. 원문과 번역문을 읽고 이해함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필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이 들어나도록 진하게 표한 부분이 있다.
서 론
1. 불신자들(회의론자들)의 성경관
2. “진보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성경관
(1) “진보적인” 그리스도인들의 초기의 성경관
(2) “진보적인” 그리스도인들의 후기의 성경관
(3) “성경의 진실성” 교리 분석
(4) “진보적인” John Woodbridge의 성경관
3. 한국교회의 성경관 - 정통주의와 진보주의
결 론
번역문
『 회의론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진술은 놀라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만일 우주의 창조주가 있다고 가정할 경우, 과연 그가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물론 기록된 계시를 통해서 우리 인류에게 의사를 전달하고자 했다는 사실이 있을 수 있는가 라고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근자에 나온 새로운 질문이 아니다. 수십 세기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회의론자들의 질문에 “예”로 응답해 왔다. 압도적인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은 그리스도에 관해 말해주는 하나님의 권위 있는 의사 표현이라고 주장해왔다. 성경의 인간 저자들은 성령의 영감 아래 기록하였다. 성경은 신앙과 실천의 극히 중요한 문제들에 대한 진리를 말해준다. 성경은 또한 역사 및 자연계와 관련된 문제들을 다룰 때도 진실을 말해준다. 성경은 정확무오한 책이다. 진리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성경의 궁극적 저자이시다. 또 성령께서는 신자들의 마음속에 성경이 진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증해준다.
기독교의 초기에도 불신자들은 성경에 오류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파괴하려고 했었다. 그러므로 깊은 혜안을 지니고 있던 Augustine은 각 복음서가 서로 모순되지 않음을 증명하기 위해 “복음서의 조화”라는 글을 썼다.
이 목적을 성공적 귀결로 이끌기 위해서는 우리가 문제의 기자들이 서로 대립적인
위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저 대적들은 갖가지 헛 반론들
에서 이를 즉 복음서 기자들의 글이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단연 최고
의 주장으로 제시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의 정확무오”(the Bible"s infallibility)에 대한 공격이 때로는 기독교 신앙 자체를 악평하기 위해 가해졌다는 것을 Augustine은 잘 알고 있었다.
성경의 진실성이 프랑스와 영국에서 18세기 계몽 운동기에 강력한 공격을 받았지만, 유럽과 미국 소재 대학교와 신학교의 수많은 학자들이 “성경의 진실성”(the truthfulness of the Bible) 및 기독교의 진리 주장에 도전한 것은, 특히 19세기 들어 유해한 형태의 성경 고등비평이 도래하고 자연주의적 진화론이 전파되면서부터였다. 이 학자들은 공공연한 자연주의 및 그 당연한 귀결인 무신론을 옹호하였다. 그들은 성경을 다른 고대문헌의 한 분야로 다루고자 하였다.
독일의 하르낙(Adolf Von Harnack)과 미국의 포스딕(Harry Emerson Fosdick)으로 대표되는 개신교 자유주의자들은 무신론자들의 그것과는 다른 항로를 취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그리스도의 신성, 동정녀 탄생, 삼위일체, 인류의 죄성, 그리스도의 대속 및 “성경의 정화무오”(the Bible"s infallibility)에 대해서는 믿지 않았다. 이러한 도전에 맞서 미국에서는 근본주의자들과 복음주의자들로 알려지고 영국에서는 복음주의자들로 알려진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개신교 자유주의자들과 아주 격렬한 논쟁을 벌였다.
기독교의 “본질적” 교리들은 고수하고자 하면서도, “동시에 진화론과 고등비평에 의해 추정된 진리들을 수용할 수 있는 한도에서”(in such a way that they could also accept the alleged truths of evolution and higher criticism) 성경의 권위를 규정하려 하였던 19세기 말엽과 20세기 초의 이“진보적인”그리스도인들은 세간의 주목을 덜 받았었다. 이 기독교인들은 신앙과 실천의 문제에 있어서는 “성경이 사실과 일치하다.”(the Bible is truthful)는 것이지만 과학과 역사의 문제에 관해서는 성경에 오류가 있다는 말로 “성경의 정확무오”(the Bible"s infallibility)를 규정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접근법에 투신한 수많은 역사가들과 신학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다루는 역사서적들을 저술하였는데, 여기에서 그들은 성경이 신앙과 실천(종교들 문제들)에 있어서는 무오하나, 과학과 역사의 문제들에 관해서는 오류를 담고 있다는 것이 교회의 “핵심 전통”이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들은 또한 성경 자체가 자체의 권위에 대해 이런 견해를 가르친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사상 학파에 속한 비교적 최근의 미국 저술가들 중에 잭 라저스(Jack Rogers)와 죠지 말스던(George Marsden) 두 교수가 있다. 그들은 “신앙과 실천 및 과학과 역사”의 문제들에 대한 “성경의 진실성”(the Bible"s truthfulness) 교리와 관련하여서만 정확무오(inerrancy)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19세기의 Samuel Coleridge 및 Charles Briggs와 흡사하게 Rogers와 Marsden은 “성경의 완전무오”(complete biblical infallibility/inerrancy) 교리는 "최근에 혁신한 성경관"(a late theological innovation)이므로 탈선으로 간주하여 내버려도 무방하다고 하였다.
James I. Packer, Kenneth Kantzer, D. A. Carson 같은 교수들은 이와 반대로 “신앙과 실천 및 과학과 역사”의 문제들에 대한 “성경의 진실성” 교리는 성경 자체의 가르침일 뿐만 아니라, 수십 세기에 걸쳐 교회의 증언을 받아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Augustine, John Calvin, 영국의 청교도들, 19세기의 Charles Hodge와 B. B. Warfield까지도 다 이 교리를 지지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 학자들은 불신자들이 끊임없이 성경본문의 추정상의 오류를, 기독교 신앙 자체를 전복시키기 위한 증거로 이용하려 했다는 Augustine의 경고의 의미를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 자체의 권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