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고신과 고려 교단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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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고신과 고려 교단의 관계


03.08.16 11:03 cafe.daum.net/sfccccc/6VxJ/2
내가 김철온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것은 고려신학교에서였다. 신학교 개강예배에 참석했을때 성적우수장학금을 받는 명단에 이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접한 것이었다. 후에 알고 보니 나와 연배는 비슷했지만 학교는 무려 10년 정도나 후배였던 것이다. 그 후 나는 김철온 목사를 알지 못했다. 같은 교단이었지만 노회가 달라 접촉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석원태 목사와의 영적 전쟁 시기에 김 목사의 이름을 들을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조석연 목사가 제명되었다가 원인무효가 될 무렵이었다. 이 일로 인천노회가 조석연목사와 나를 지지하는 세력과 천환,임재훈 목사쪽으로 나누어질 무렵이었다. 우리편에 서 있었던 김승현 목사가 대전을 오가면서 후배인 김철온 목사 등을 만나고 소식을 전해왔다. 석 목사의 비리 소식을 듣고 김철온 목사 등이 더 이상 고려교단의 개혁을 기대할 수없다며 우리편에 서겠다는 소식를 듣게 되면서 자주 김 목사의 이름을 듣게 되었다. 이 때까지만 해도 김 목사의 이름 만 알았을 뿐 얼굴도 모르고 있었다. 김 목사도 이 시기에 중부시찰의 모임에서 나의 이름을 들었으나 안 좋은 사람으로만 들었다고 했다. 즉 스승을 배반하고 교단을 분열시킨 아주 못된 사람이라고 들은 것이다. 따라서 김 목사도 후에 나를 만나고 나서야 오해가 풀린 것이었다.

김 목사의 얼굴을 처음 본것은 안산에 있는 생수교회의 모임에서였다. 고려교단에서 소망을 찾을 수 없던 목사들이 생수교회에서 모임을 가질 때 대전에서 목회하던 김 목사가 참여하여 처음 얼굴을 대면하게 된 것이다. 그 후 김 목사와 나는 서경노회에 합세하여 고신교단에 몸을 싣게 되었다. 서경노회가 출범한 후에 주변의 목사들의 제의로 경인 목회자훈련원이라는 단체를 구성하여 내가 원장이 되었다. 이 모임에서 자연스레 김철온 목사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는 데 누구보다 양향모 목사가 김 목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양 목사는 자신이 대전의 어느 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있을 때 김 목사를 만나 고려신학교에 입학하도록 소개해 주었다고 했다. 그런 관계속에서 두 사람은 호형호제할 만큼 친분이 두터웠다고 한다.

대전에서 개척교회를 섬기던 김 목사는 청주의 한마음교회의 부목사로 잠시 자리를 옮겼다가 다시 청주에 개척을 시작했다. 경인목회자훈련원의 1차 세미나 시에는 김 목사는 부목사신분이어서 참석하지 못했다가 2회 세미나에는 참석을 하여 얼굴을 맞대며 은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사장을 맡은 추경호 목사와 총무인 양향모 목사와 함께 회의를 하고 있을 때 김 목사가 찾아왔다. 김 목사는 나와 추목사에게 어렵지만 지원을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 때가 1월 말경이어서 이미 교회가 후원교회를 다 정한 후였다. 나와 추 목사는 얼마나 어려우면 부탁을 할까싶어 개인적으로 후원을 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소액이지만 후원을 했다.

김 목사는 공부도 잘했지만 연구욕심이 대단했다. 틈틈이 읽어 낸 책의 분량도 대단했다. 이런 김 목사와 훈련원 세미나에서 어느정도 알게 된 후에 우리 교회와 은성교회에서 같은 주일에 설교 요청을 하였다. 그것이 지난 5월이었다. 우리교회에서는 오후 3시에 은성교회에서는 오후7시에 설교를 한것이다. 이 때 강사로 청하면서 김 목사와 메일을 주고 받게 되었다. 그 후 김 목사와 나는 상당한 분량의 메일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를 보다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김 목사는 왜 내가 석 목사와 영적 전쟁을 했는가를 알게 되었고 나는 김 목사를 통해 당시 있었던 상황 등을 보다 상세하게 알게 되었다.그러던 중에 대구지역의 임성식 목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 지역에 장로가 2명이 섬기는 교회에서 후임교역자를 구한다며 좋은 목사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나는 순간 김철온 목사가 생각이 나서 양 목사에게 소식을 전했다. 회신은 뜻 밖이었다. 김 목사가 광주의 큰 교회에서 선을 보게되는데 결과는 회의적이나 이미 지원을 했으므로 대구지역에는 응할 수 없다는것이었다.

그 후 김 목사와 이 문제에 대한 소식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가 위로를 했다. 나는 마치 내일과 같은 심정으로 관심을 보였다. 김 목사는 이미 이 교회의 후임자로 결정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서경노회의 결의 뿐이다. 따라서 확정이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을 들여다 보면 어려움이 매우 많았다. 비록 김 목사가 고신교단의 목사가 되었다고는 하나 고신 속의 이방인과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석원태 목사는 우리가 고신에 가면 이방인 내지는 서자 취급을 받는다고 말하며 고신과 고려교단의 합동을 반대하는 이유로 내걸고 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김 목사는 영예롭게도 광주의 월계교회의 후임자로 부름을 받았다. 많은 목사들의 경쟁을 통과했고 공동의회에서 성도들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았다. 그리고 전라노회의 인준도 받아냈다. 참으로 큰 경사가 아닐 수없다. 서경노회가 진정한 고신교단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그 동안 조석연 목사를 위시한 몇 목사들이 기존의 고신 교회들에서 집회를 인도했다. 나도 고신대학 등에서 강의를 했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진정한 합동을 가늠할 수 없다. 그런 ? 퓜結【?금 번의 김철온 목사의 이동은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고려교단 출신의 김 목사가 목사로서의 역량과 자질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김 목사의 월계교회로의 부임 소식을 듣고 적지 않은 지인들이 고언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금번의 김 목사의 이동은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서경노회와 나아가 앞으로 고신에 합류할 고려교단의 목사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김 목사의 사역감당은 많은 이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김 목사의 평소 신앙과 실력 그리고 인격에 기초한 사역을 해 준다면 혹시라도 주변에서 가질 수 있는 근심이 걷힐것이다. 김 목사의 앞길에 주님의 은혜가 풍성하기만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