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하도례 선교사(1954-88, 고려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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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례.hwp (4.5M)
고신대학교,
하도례 선교사 기념 문헌정보관 명명식 가지다.
하도례 선교사의 헌신과 공로를 기념하기 위해
하도례 선교사
고신대학교(총장 김성수)는 12월 1일(월) 오후 4시 고신대학교 영도캠퍼스 문헌정보관 2층에서 “하도례선교사 기념 문헌정보관(Theodore Hard Library)” 명명식을 가진다.
하도례 선교사는 1954년 1월에 미국정통장로교 (The Orthodox Presbyterian Church)소속선교사로 내한하여 1988년까지 34년간 한국선교사로 일하면서 교회 설립과 개척, 신학교 교수 사역, 사회봉사, 저술 활동 등을 통해 한국교회와 사회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1960년부터 1980년까지 고신대학교의 도서관장을 역임하며 국내에서 수급하기 어려운 각종 양서를 공급하며 양서 보급과 도서관 발전을 위해서도 기여하였다. 하도례선교사는 한국에서 은퇴한 후에도 우리 대학뿐 아니라 필리핀신학교와 인도교회를 위한 신학 교육에 필요한 양서 보급을 위해 최근까지도 동일한 봉사를 지속해왔다. 하도례 선교사는 1954년 한국 선교사로 파송된 이래 50년이 넘도록 한국과 아시아에서 교회와 신학교육, 사회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하였다.
고신대학교는 하도례 선교사가 34년간 한국에 머무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의 봉사는 물론 저술 활동과 양서보급을 위해 애쓴 일과 고신대학교 교수로서 대학발전을 위해 헌신하고 도서관장으로 도서관 발전을 위해 힘쓴 공로를 인정하여 하도례 선교사 기념 문헌정보관으로 명명하기로 하였다.
<하도례 선교사 공적 조서>
1925년 9월 11일 미국 코네티컷주 토링톤(Torrington)에서 출생한 미국인 하도례(Theodore Hard)선교사는 예일대학교에서 수학하고, 민체스터에 있는 성 안셈(St. Anselm) 대학에서 비행기조정사 후보생으로 교육을 받은 후, 1949년 휘튼대학(Wheaton College)을 졸업하였다. 1952년에는 웨스트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하고, 동 대학 대학원에서 변증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54년에는 미국정통장로교(OPC) 소속 선교사로 내한하여 1988년까지 34년간 한국선교사로 일하면서 교회 설립과 개척, 신학교 교수 사역, 사회봉사, 저술활동 등을 통해 한국교회와 사회에 크게 기여하였으므로 본 고신대학교는 명예신학박사학위를 수여하기로 하였으며, 공적 사항은 아래와 같다.
1. 하도례 선교사는 미국정통장로교(OPC, The Orthodox Presbyterian Church) 소속 목사로서 1953년 한국선교사로 임명받고, 1954년 1월 내한 한 이래 한국에서 35년간 살면서, 목사로서 선교사로서, 그리고 교수로서 한국교회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기여하였다.
2. 하도례 선교사는 선교사로 내한한 이래 한국의 여러 교회들을 순회하며 교회설립을 후원하고 집회를 인도하면서 지역교회를 위해 봉사하였고, 특히 농촌교회의 자립과 성장을 위해 봉사하였다.
3. 하도례 선교사는 내한이래 고려신학교에서 강사로 봉사하였으며, 1965년부터 1971년까지는 고려신학교와 고려신학대학 조교수로, 1971년 9월부터 1977년까지는 부교수로, 1977년 이후 한국에서 은퇴하기까지는 고신대학교 교수로 성경언어, 선교학, 엘렝틱스, 험증학, 문화인류학, 조직신학 분야 등을 교수하여 대학발전과 신학교육을 위해 기여하였다.
4. 하도례 선교사는 고신대학에서의 교수활동 외에도 일반인과 함께 수학하기 어려운 나환자 정착촌의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위해 1963년 영광신학교를 설립하고 1970년까지 교장으로 봉사하면서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위해 헌신하였고, 부산에서 칼빈대학의 설립과 건축, 교육에 기여하였으며, 합동교단의 지방신학교인 부산노회신학교를 위해서도 기여하였다.
5. 하도례 선교사는 서양언어 서적(양서)과 양서 보급, 그리고 도서관 발전을 위해서도 크게 기여하였는데, 1960년부터 1980년까지 고신대학교의 도서관장으로 일하면서 국내에서 수급하기 어려운 신학교육에 필요한 각종 양서를 공급하였을 뿐만 아니라, 경북신학교, 부산노회신학교 도서관 설립에 기여하였고, 미국의 고서점과 기독교서점, 기독교도서관협회, 기독교 출판사협회의 도움을 받아 귀중한 도서를 이미 언급한 도서관과 서울의 총신대학교 등에 공급하였고, 특히 1955년에는 부산 광복동에 기독교도서고나(Christian Reading Room)을 설치하여 일반인에게 독서 및 지식보급을 위해 기여하였다.
6. 하도례 선교사는 주한 선교사로 일하면서 한국교회의 여러 기관을 위해서도 기여하였다. 1957년에는 국제적인 기독교 조직인 개혁주의 신행협회 한국지부 창립회원으로 일했고, 종신회원으로 여러 임원직을 역임하였으며, 1960년 이후에는 복음주의 도서관 협회 설립멤버로, 또 기독교문서선교 아시아지역 프로그램을 설립하여 한국교회의 건실한 발전을 위해 기여하였다.
7. 하도례 선교사는 한국교회 현실을 감안하여 저술한 여러 종류의 신학교재와 저작을 통해서도 기여한 바 크다. 1968년 「신학원어 참고서」를 편역한 이래, 「기독교 고전」, 「신학사전」의 편찬, 「종교와 사회」, 「문화와 확신」, 「웨스트민스터 개요서 해설」의 저술과 수권의 영문저작을 통해 한국교회와 신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8. 하도례 선교사는 자연과학분야에도 조예가 깊어 다수의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생태학과 자원관리, 대체에너지 개발 등에 대해 강의하였고, 각종 연료를 절감하고 공해를 줄이기 위해 한국현실에 적합한 태양열을 이용한 요리, 온수조정 장치, 주택개량 등을 연구, 개발하여 울산대학교를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강연하고, 한국과 인도에서 실험한 결과를 보급하였고, 1976년에는 「태양열을 이용한 요리」(Solar Cooking Oven)라는 책을 저술하여 한국사회 발전에 기여하였다.
9. 하도례 선교사는 한국에서 은퇴한 후에도 필리핀 선교사로 활동하였고(1988~1991), 필리핀 신학교에서 교수하면서 양서 보급을 위해 봉사하였고, 인도교회를 위해서도 동일한 봉사를 하였다. 이상과 같이 하도례 선교사는 1954년 한국선교사로 파송된 이래 50년이 넘도록 한국과 아시아에서 교회와 신학교육, 사회발전을 위해 크게 기여하였다. (2008. 11. 21. 코람데오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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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례선교사님은 우리학교 도서관의 원서 수집에는 절대적인 공로자이시다. 미국에 가시든, 구라파에 가시든 어디로 가시든지 늘 우리 도서관에 필요한 책들을 수집하는 일에 많은 정성를 쏟았다. 또 정통 장로교 선교 사역의 일부로 당시 우리 신학생들이 신학 원서들을 쉽게 구입하도록 비영리 "책방"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나도 양길수 [Rev. English] 선교사 밑에서 이 일을 거들며 공부한 일이 있다. 하도례 선교사님은 은퇴하신 후에도 필립핀이나 인도의 신학생들의 도서 구입을 위하여 같은 사역을 펼치시었다.
지금부터 삼 십 수년 전의 이야기이다. 신대원 졸업 후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대원에 진학 차 필라델피아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안식년으로 미국에 돌아와 계시던 하도례 [Prof.Theodore Hard] 선교사님이 찾아오셨다.
1975년 4월쯤으로 기억된다. 어느 토요일 낮에 갑자기 오셔서 필라델피아에서 차로 1 시간 남짓 가야하는 출판사에 가자고 하셨다. 거기서 책을 얻어 부산의 우리 도서관에 보내자고 하셨다. 그 때 선교사님은 그 출판사 주차장에 도착해서 차를 세우자 나는 얼른 내렸는데 그는 무엇을 한참 적느라 내리지 않았다. "무엇하십니까?" 하고 묻는 나에게 차랑 일지를 쓰신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기가 안식년 동안 선교부 차량을 쓰는데 "자기 개인 용무로 차를 쓰는 것"과 "공적인 용무로 차를 쓰는 것"을 구별한다고 하였다. 또 자기 개인을 위한 차량 "연료비"는 자기가 부담한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말씀이 내게는 충격적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러지 않지요!"
그 날 오후 내내 책들을 분류하고 포장하는 일에 분주하였다. 평소에 그의 가르침은 물론 그의 사고방식과 생활 태도에서 많이 배운 것처럼 그 날의 경험도 내 기억에 각인되어 있다.
2008-01-20 09:38:34
황창기. 전 고신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