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번역본의 대립 - 로스와 언더우드
[성경으로 돌아가자―한국의 성경④] 로스―언더우드,번역본 사용 놓고 ‘대립’
[2008.07.30 17:46]
조선의 성경번역 주도권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했던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1842∼1915)와 미국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1859∼1916). 사실 두 사람이 직접 만나 논쟁을 벌였다는 기록은 없다. 두 사람이 본국의 성서공회에 보낸 편지와 주변 선교사들의 기록을 토대로 대화를 재구성해 봤다.
"제가 번역한 성경에 대해 서울의 선교사들이 불평을 가지는 것은 단지 서울에서 쓰는 철자법에 따르지 않았다는 것 뿐입니다. 당신이 조선말에 익숙해지면 "예수셩교젼셔"의 가치를 인정하게 될 겁니다. 수만권 배포된 이 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요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존 로스)
"로스 선교사님, 당신의 성경은 너무 많은 한자용어가 쓰인데다 평안도 사투리가 강해 큰 도시와 남부지방 사람들은 전혀 이해할 수 없어요. 번역상의 잘못을 개정하고 한자용어를 바꾸는 데는 너무 많은 노력이 듭니다. 따라서 신약전서를 서울에 있는 선교사들이 나름대로 번역해 빨리 완성하는 대로 한권씩 출판하는 게 나아요."(언더우드)
"서울 사람들에게 제가 번역한 성경을 읽어보도록 한 결과 모두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만주에서 10년간 고생하며 만든 이 귀중한 책을 어떻게 그렇게 평가절하할 수 있습니까? 그러지 말고 5년 정도 지난 후 당신의 번역본과 내 것의 장점을 살려 합작품을 만듭시다."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로스, 당신이 성경에 쓴 말투를 보세요. 일례로 누가복음에는 언덕을 "들마기", 먼지를 "몬주", 울타리를 "바주라"라고 하고 있어요. 이걸 누가 알아보겠습니까."
"어쨌든 언더우드 당신이 성경번역을 시도하는 것은 시기상 이르다고 생각해요."
"로스, 나는 당신의 성경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어요. 나는 내 방식으로 성경을 번역합니다."
두 사람의 논쟁 배경에는 스코틀랜드성서공회(NBSS)와 미국성서공회(ABS), 영국성서공회(BFBS)가 조선선교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가 다분히 깔려 있었다.
그러나 BFBS 북중국지부 브라이언트 총무는 본질적으론 한국 선교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던 젊은 선교사의 야망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선교사들은 완전한 성자들이 아니며 한국의 젊은 선교사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한국인들에게 첫 성경번역본을 주려는 야망은 매우 훌륭한 것이지만 모든 야망이 그렇듯 약간의 결점을 지닌 것이었습니다. 야망은 선한 형제들의 정신의 균형을 흔들어 놓고 때때로 왜곡시킵니다."(브라이언트의 편지, 1893)
결과적으로 한국 기독교 역사는 언더우드의 손을 들어주었다. 로스의 성경은 이후 언더우드, 게일, 스크랜튼, 레널즈 등이 번역한 성경에 바통을 넘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초기 한국기독교 세례자 탄생과 복음전파, 조선과 중국 접경지역 교회 설립의 기반을 제공하고 한국 최초의 우리말 성경이란 영광스런 명예를 안은 채 말이다.
"한국 성서백년사" 저자 리진호씨는 자신의 책에서 여전히 로스의 역할이 평가절하되고 있는 데 아쉬움을 나타낸다. "한국교회는 로스보다 훨씬 뒤에 와서 선교한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에 대한 공로를 높이 격찬하면서 로스에 대해서는 선사시대의 사건 정도로 가볍게 다루는 경향이 있다."
백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