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12. 그의 일과에 관하여
김현봉 목사의 일과는 시계 바늘같이 규칙적이었다. 매일 오전 중은 사사로운 기도와 독경생활 위주로 보내고, 오후는 교회 일에 보냈다.
초저녁 일찌기 5시에 잠자리에 들고 한 밤중 12시에 일어나 명상하다가 새벽 통행금지 해제와 함께 집을 나서 아현교회에서 도보로 연세대학교 뒷산까지 가서 자기 기도실에서 오전 중을 보냈다.
그 산 자체는 김목사를 존경하는 어느 사람이 김목사에게 내주어 맘대로 쓰게 하였는데 거기다가 조그마한 기도실을 지었다.
그러나 김목사 세상 떠난 뒤에 아현교회가 분열로 싸움하는 것을 보고 산 임자는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치고 출입 못하게 했다.
김목사는 그 산 기도실에 앉아 정좌하고 깊은 명상에 들어갔다. 길고 긴 명상이었다. 그 앉아있는 모습은 지금 하나님 영접하는 듯한 엄숙한 보기에 감동스러운 모습이었다.
아침 해가 떠오를 때면 김목사는 기도하던 움막에서 나와 떠오르는 태양을 향하여 정면으로 마주 보며 실로 오래오래 깊은 황홀경에 잠겨 앉아 있었다.
그럴 때면, 김목사는 옛날 프란치스코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느끼며 태양의 노래를 지어부르듯, 김목사도 꼭같은 인스프레이션과 감격에 사로잡혀 지금 만물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표현을 "만물이 어리어리하다"고 말했다.
이 기도하는 움막과 거기서 보내는 명상시간이 김현봉 목사의 설교 영감과 그의 모든 활동의 산실이었다. 충분히 자기 내적 생활을 충실히 다지고 자기 완성을 위하여 애쓰는 시간이었다.
김목사가 스님옷 같은 솜 넣어 누빈 두툼한 두루마기 입고 그 산 숲속에 나무기둥을 의지하고 정좌하는 것을 보고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들도 본을 받아 그렇게 했다. 마치 어미닭 날개 밑에 병아리들이 모여 앉듯 많은 제자들은 저마다 큰 나무 하나씩 택해서 뿌리 언저리에 돌로 좌대를 만들고 그 위에 앉아 흉내냈다. 그 산의 나무마다 그런 자리가 됐다.
김목사는 그들의 명상을 지도하며, 소리내서 기도하는 것을 금하고 절대 정적하도록 했다. 김목사는 정오까지 하고 하산해도 남아 있는 이들이 많았다.
낮 12시가 지나면 하산하여 교인들 집집을 심방했다. 그 심방은 문전(門前) 심방이다. 교인 집집의 방문을 열어보고 가난한 교인집 방바닥이 따스한가 손으로 짚어보고 부엌에 들어가도 보고 어려운 사정이 없는가 묻고 별일이 없으면 그냥 지나갔다.
나이 80세의 고령에도 그의 일과는 그대로 계속했고, 오전 중 산기도실에서 정좌하다가 집에 돌아와서는 너무 힘들어 쓰러지듯 자리에 누웠다가 다음 날 또다시 계속했다.
주일날은 아침 일찌기 주일 학교로부터 공부와 대예배 인도, 그리고 오후 2시 예배까지 무려 7시간 반이나 자신이 독담해서 했다.
김목사는 세속 교육의 효과를 높이 평가하지 아니했다. 세속적 교육이 중점두는 점은 육신이 잘 살고 돈 벌기 위한 것이라고 결론짓고, 신도들이 육신적 축복을 장려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을 계속 배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