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10. 여전도사와 심방
김현봉 목사가 돌보던 아현교회에 주일예배 때 "안내원"이란 것이 없다. 전도부인도 예배시간에는 은혜 받아야지 안내를 하지 않는다.
아현교회에는 전도부인(전도사라 부르지 않고, 전도부인이라 부르게 했다.) 두 명과 견습생 여러 명이 있었다.
전도부인은 다른 일은 일체 않고, 교인댁 심방만 하게 했다. 그 심방하는 방법은 한 집에 가서 몇 시간씩 머무적거리며 제 맘대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누구 집에 가면 안부부터 묻고 별일 없다면 기도도 않고 가곤 했다.
하루 최고 3백 가정을 방문한 기록이 있다. 그리고 그 실태를 김목사가 보고로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전도부인에게는 쉬는 날이 없었다. 일주일 동안 줄곳 계속됐다. 김목사도 쉬는 날이 없었다. 전도부인은 점심을 도시락으로 싸가지고 다니면서 점심 때(11시경) 교회에 돌아와서 점심 먹으면서 목사에게 보고 하도록 했다.
전도부인은 빨래도 남에게 시켜서 했다. 자원해서 전도인으로 나선 이에게는 김목사가 그의 식모를 자기가 대 주겠노라 했다.
정식 전도부인 밑에 견습 전도인을 몇 사람 두어 심방과 노방전도도 시키면서 그들의 자격이 인정되면 전도부인으로 승격시켜 월급도 더 주었다.
심방이나 전도 다니는 일에 혼자 다니는 것을 금했다. 전도대는 여자들끼리인 경우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으로 하고, 남자들끼리 여럿이 다니는 것은 금하고 남자 혼자 심방 다니는 것도 금했다.
남자 한 사람에 여자 두 사람 짝지어 그것도 비슷한 나이로 말고 연령의 차가 많이 나게 해서 다니게 했다. 지나치게 여럿이 심방다니는 것도 금했다.
어느 젊은 목사가 여집사댁에 혼자 심방가서 아랫목에 앉아 기도하는데, 믿지 않는 남편이 들어와 보고 오해하고는 삽을 들고 들어와 목사를 매질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김목사는 그런 일들을 참작해서 심방대를 조심스레 운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