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아미쉬의 교육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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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아미쉬의 교육 등


통폐합하면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실용 교육을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할 때, 그것에 반대하여 적지 않은 아미쉬 사람들이 의무교육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끝내 대법원 판결과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서 그들은 아미쉬만의 독특한 교육관을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미쉬는 새로운 공립학교가 우유분리기 같은 기계 원리로 움직이는 사회분리기라는 걸 일찍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학교가 우유분리기처럼 어린 마음을 휘저어서 부모와 그에 밀착된 아이들 마음을 분리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교육은 사람들을 일상생활로부터 분리시키고 세계를 학과, 과목, 수업, 학년으로 나눕니다. 거기서 교사들은 이방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종교도 연구 분석되며 나아가 가정, 역사, 일상생활로부터도 멀어집니다. 종교는 중요하게 분석해야 할 또 다른 과목으로 전락할 뿐입니다. 또 끊임없는 경쟁은 많은 이들을 패배자로 만들며 수많은 패배자들은 수치스러워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미쉬 공동체의 삶이 요구하는 보편적 건강함과 완전히 다릅니다. 아미쉬는 그 일부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 학교는 집에서 걸어 다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 아이들은 칸칸이 나뉜 교실에 나이별로 따로따로 집어넣고 해마다 다른 선생님을 배치하는 큰 학교여선 안 된다.
* 학교의 결정은 부모가 감독한다.
* 한 해 수업은 8개월을 넘기면 안 된다.
* 교사는 아미쉬의 가치관과 전원에서 사는 삶을 잘 알고 공감해야 한다.
* 아이들은 지혜와 지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 모든 아이들은 부모 감독 아래 실제 훈련을 받고 도제살이를 해야 한다.

그러기에 아미쉬의 교육관은 지적인 삶보다는 미덕의 삶을,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지혜로움을, 개별적인 경쟁보다는 공동체의 번영을, 세속과의 융합보다는 분리된 거룩한 삶입니다.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사학법을 반대하면서 삭발을 하고 순교 운운한 한국교회가 도대체 어떠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뿐입니다. 아미쉬는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일체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원을 목말라 하고 부정마저도 저지르면서 순교를 운운하는 이 땅의 교회들과 기독교 사학들, 철저한 입시 경쟁의 한복판에서 그것의 성취를 자랑하는 교육관이 진정 기독교 교육관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눈 쌓인 벌판도 차 대신 마차를 이용한다. (사진제공 임재근)

아미쉬와 다른 한국의 기독교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명박 장로님은 그러한 것을 더욱 부추길 자립형 사립학교를 300개나 만들겠다고 하고 대치동 학원가와 교육관련 주식은 폭등한다고 합니다. 문선명 집단이 하는 청심국제중학교에 크리스천 자녀들이 단지 특수중학교라는 이유로 특별 교육을 받으면서 준비한다니, 정녕 우리들의 교회에 신앙적 교육관이 있는 것입니까?

세상에 살되 세상에서 분리된 거룩한 삶 그것이 아미쉬 삶의 기적입니다. 그것을 놓치고 단순히 전기와 자동차를 거부하고 공동체적인 삶을 산다고 생태적인 관점에서만 아미쉬를 이해하면 언제나 사회주의가 그랬듯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들은 2006년 10월에 니켈 마인스 총기 사고에 대한 그들의 반응으로 미국 사회에 보여주었고, 그 핵심은 주기도문에 대한 그들의 자세입니다.

아미쉬들은 산상수훈 말씀에 따라 대중적인 공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목사마저 그러합니다. 개인적 기도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은밀히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기도를 안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아미쉬 가정은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의 기도회를 가집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예배가 보통 3시간이 걸립니다. (참고로 아미쉬 목사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월급을 받지 않고, 농사를 짓거나 가업에 종사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기도회와 예배의 핵심에 주기도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저와 우리 교회들의 기도와 예배를 살펴보니 주기도문은 목사의 축도보다도 가치가 없고, 주일(대) 예배서는 당연히 찬밥이고, 주기도문은 당지 목사가 없을 때 축도 대신 그냥 주문 비슷하게 예배를 마무리 짓는 장식품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 공동체에서는 올해부터 주기도문을 예배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배치하여 뜻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낭송하기로 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한국교회에서 주기도문이 새롭게 인식되고, 묵상되고,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에서 본 주기도문에 대한 어떤 글로 새해인사를 마치려고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지 말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 말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말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김재일/ 예장생활협동조합 대표· 현재 화성에 있는 아름다운성빛공동체에서 농사를 지으며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
통폐합하면서 효율성을 강조하는 실용 교육을 미국 정부가 추진하고 고등학교까지 의무교육을 실시할 때, 그것에 반대하여 적지 않은 아미쉬 사람들이 의무교육법 위반으로 감옥에 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면서 끝내 대법원 판결과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서 그들은 아미쉬만의 독특한 교육관을 그대로 유지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미쉬는 새로운 공립학교가 우유분리기 같은 기계 원리로 움직이는 사회분리기라는 걸 일찍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학교가 우유분리기처럼 어린 마음을 휘저어서 부모와 그에 밀착된 아이들 마음을 분리시킨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교육은 사람들을 일상생활로부터 분리시키고 세계를 학과, 과목, 수업, 학년으로 나눕니다. 거기서 교사들은 이방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종교도 연구 분석되며 나아가 가정, 역사, 일상생활로부터도 멀어집니다. 종교는 중요하게 분석해야 할 또 다른 과목으로 전락할 뿐입니다. 또 끊임없는 경쟁은 많은 이들을 패배자로 만들며 수많은 패배자들은 수치스러워하고 스스로를 미워하게 됩니다. 이것은 아미쉬 공동체의 삶이 요구하는 보편적 건강함과 완전히 다릅니다. 아미쉬는 그 일부가 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요구했습니다.

* 학교는 집에서 걸어 다니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 아이들은 칸칸이 나뉜 교실에 나이별로 따로따로 집어넣고 해마다 다른 선생님을 배치하는 큰 학교여선 안 된다.
* 학교의 결정은 부모가 감독한다.
* 한 해 수업은 8개월을 넘기면 안 된다.
* 교사는 아미쉬의 가치관과 전원에서 사는 삶을 잘 알고 공감해야 한다.
* 아이들은 지혜와 지식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 모든 아이들은 부모 감독 아래 실제 훈련을 받고 도제살이를 해야 한다.

그러기에 아미쉬의 교육관은 지적인 삶보다는 미덕의 삶을, 전문적인 지식보다는 지혜로움을, 개별적인 경쟁보다는 공동체의 번영을, 세속과의 융합보다는 분리된 거룩한 삶입니다.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사학법을 반대하면서 삭발을 하고 순교 운운한 한국교회가 도대체 어떠한 교육관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뿐입니다. 아미쉬는 자기들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일체 지원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원을 목말라 하고 부정마저도 저지르면서 순교를 운운하는 이 땅의 교회들과 기독교 사학들, 철저한 입시 경쟁의 한복판에서 그것의 성취를 자랑하는 교육관이 진정 기독교 교육관인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눈 쌓인 벌판도 차 대신 마차를 이용한다. (사진제공 임재근)

아미쉬와 다른 한국의 기독교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이명박 장로님은 그러한 것을 더욱 부추길 자립형 사립학교를 300개나 만들겠다고 하고 대치동 학원가와 교육관련 주식은 폭등한다고 합니다. 문선명 집단이 하는 청심국제중학교에 크리스천 자녀들이 단지 특수중학교라는 이유로 특별 교육을 받으면서 준비한다니, 정녕 우리들의 교회에 신앙적 교육관이 있는 것입니까?

세상에 살되 세상에서 분리된 거룩한 삶 그것이 아미쉬 삶의 기적입니다. 그것을 놓치고 단순히 전기와 자동차를 거부하고 공동체적인 삶을 산다고 생태적인 관점에서만 아미쉬를 이해하면 언제나 사회주의가 그랬듯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그들은 2006년 10월에 니켈 마인스 총기 사고에 대한 그들의 반응으로 미국 사회에 보여주었고, 그 핵심은 주기도문에 대한 그들의 자세입니다.

아미쉬들은 산상수훈 말씀에 따라 대중적인 공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목사마저 그러합니다. 개인적 기도는 주님의 가르침대로 은밀히 합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기도를 안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아미쉬 가정은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번의 기도회를 가집니다. 그리고 주일에는 예배가 보통 3시간이 걸립니다. (참고로 아미쉬 목사들은 사도 바울과 같이 월급을 받지 않고, 농사를 짓거나 가업에 종사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기도회와 예배의 핵심에 주기도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저와 우리 교회들의 기도와 예배를 살펴보니 주기도문은 목사의 축도보다도 가치가 없고, 주일(대) 예배서는 당연히 찬밥이고, 주기도문은 당지 목사가 없을 때 축도 대신 그냥 주문 비슷하게 예배를 마무리 짓는 장식품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희 공동체에서는 올해부터 주기도문을 예배의 가장 중요한 시간에 배치하여 뜻을 생각하면서 천천히 낭송하기로 했습니다. 바라기는 우리 한국교회에서 주기도문이 새롭게 인식되고, 묵상되고, 고백되기를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터넷에서 본 주기도문에 대한 어떤 글로 새해인사를 마치려고 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지 말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 하지 말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 하지 말라. 아들 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하지 말라. 자기 이름을 빛내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지 말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하지 말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하지 말라. 가난한 이들을 본체만체 하면서.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하지 말라. 누구에겐가 아직도 앙심을 품고 있으면서.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하지 말라. 죄 지을 기회를 찾아다니면서.
‘악에서 구하소서’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아멘’ 하지 말라. 주님의 기도를 진정 나의 기도로 바치지 않으면서.

김재일/ 예장생활협동조합 대표· 현재 화성에 있는 아름다운성빛공동체에서 농사를 지으며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