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성경의 연대기 - 예수님 탄생, 바울의 행적

일반자료      
쓰기 일반 자료 초기목록
분류별
자료보기
교리 이단, 신학 정치, 과학, 종교, 사회, 북한
교단 (합동, 고신, 개신, 기타) 교회사 (한국교회사, 세계교회사)
통일 (성경, 찬송가, 교단통일) 소식 (교계동정, 교계실상, 교계현실)

[신학] 성경의 연대기 - 예수님 탄생, 바울의 행적


성경이 가는 데까지만 가는 것이 보수 정통 신학이라고 늘 말하고 있으나 실제 신학자들의 이론들은 성경과 성경 외에 자료를 참고하여 버무립니다. 다른 사람의 주장은 성경만을 가지고 따지자 하고 자기들의 주장은 성경 외의 것으로 뒤 섞는 사례입니다. 따라서 다음 자료는 대충의 참고 자료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탄생 연도와 일자는 성경 기록으로 알 수 없다는 것이 성경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 관리자
--------------------------------------------------------------------------------













예수님은 언제 태어나셨는가?
- 예수님 탄생 기사에 대한 복음서 기사들의 역사적 신빙성 변호 -


황원하 목사 hwh@korea.com







▲ 황원하 목사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Pretoria University(Th.M.)
Pretoria University(Ph.D.)
대구서남교회,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강사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담고 있는 복음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없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탄생 기사를 당시의 역사적 정황에 따라 구축해 보면 마치 두 복음서의 기록에 차이(충돌)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많은 비평학자들은 복음서의 역사적 신빙성(historical reliability)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두 복음서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일치하며 따라서 성경의 무오성이 잘 유지되고 있음을 밝히고자 한다.




1. ‘주후’(AD)의 기원


지금 우리의 햇수 계산 방식은 예수님이 태어나신 해를 원년으로 한다. 즉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전을 ‘주전’(Before Christ: 영어로 ‘그리스도 이전’이라는 뜻)이라 하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후를 ‘주후’(Anno Domini: 라틴어로 "주님의 해"라는 뜻)라고 하여 햇수를 계산한다. 이러한 연대 기술 방식은 주후 6세기 초 로마에서 활동했던 수도사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Dionysius Exiguus)가 만든 것이다. 그는 신학, 수학, 천문학 등에 뛰어난 학문적 자질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데, 주후 525년에 교황 요한 1세(523-526년 재위)가 그에게 부활절의 정확한 연대를 계산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연대기를 도입하였다.




사실 고대에는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왕의 연호(무슨 왕 몇 년)를 사용하는 것이 관례였다. 당시 로마 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는데, 그들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주후 284-305년 재위)의 즉위 연대를 기원으로 하는 마르티르(Martry)라는 연호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기독교를 매우 심하게 박해했던 왕이었기에 교황은 그러한 왕의 연호를 부활절 연대 계산에 사용하는 것을 싫어하여 당시의 대학자였던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로 하여금 진정한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의 연호를 사용하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따라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로마제국의 기원 연도와 예수님의 생애를 비교 연구하였고 이렇게 산출된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로마제국 건국으로부터 754년 후였음을 발견하였다(로마제국은 주전 753년 4월 21일에 건국되었음). 그리하여 그는 A.U.C.(ab urbe condita[도시(로마) 건설 이후]) 754년을 주후 1년으로 계산하였다.




그러나 후대의 학자들은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잘못 계산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들은 성경과 고대 문헌을 연구한 후에 예수님이 적어도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났음을 알았다. 즉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해는 A.U.C. 754년이 아니라 적어도 A.U.C. 750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는 A.U.C. 750년을 주후 1년으로 계산했어야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이러한 중대한 계산상의 착오를 일으킨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 해도 후대의 사람들이 이 연대 시스템을 고치는 것은 불가능했다. 모든 사람들이 오랜 기간 동안 ‘주후’(AD) 라는 명칭을 사용해 왔고 이제 와서 그것을 고친다는 것은 너무 어려웠던 까닭에 오늘날까지 그냥 일반화되어 사용하고 있다.




2. 성경의 기록


그렇다면 예수님은 언제 태어나셨는가? 예수님이 태어나신 연도를 추정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근거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기록이다. 마 2:1에 따르면 예수님은 헤롯대왕(Herod the Great)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나셨다. 헤롯대왕은 주전 37년부터 주전 4년까지 이스라엘을 통치하다가 주전 4년에 죽었다. 이는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에 잘 나타나 있다(Antiquities, 17.6.4). 특히 요세푸스의 기록에는 “헤롯이 죽던 해에 월식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천문학자들에 따르면 주전 4년 3월 12일에 실제로 월식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헤롯의 사망 연대에 대한 요세푸스의 기록은 정확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예수님은 적어도 주전 4년 이전에 태어나신 것이 된다. 게다가 마 2:16에 보면 동방에서 박사들이 헤롯 대왕에게 와서 이스라엘에 왕이 태어나셨다는 소식을 전하자 헤롯 대왕이 듣고 베들레헴에 사는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는 헤롯 대왕이 동방박사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예수님의 나이를 두 살 이하로 보았다는 뜻이다. 즉 예수님의 탄생 연도가 적어도 그때로부터 약 1-2년 전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주전 6-4년에 태어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마 2:22은 이때 예수님께서 부모와 함께 헤롯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신하셨다가 헤롯의 아들로서 주후 6년까지 사마리아와 유다를 통치한 헤롯 아켈라오 왕 때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오셨다고 기록한다.




한편, 눅 2:1에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신 배경을 설명하면서 로마 황제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31-AD 14년 재임)가 로마 제국 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 호적하라는 명령을 내린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당시에 로마 황제가 이러한 호적등록령을 내린 것은 세금을 걷기 위한 것이었다. 이어서 눅 2:2은 이 호적등록령이 구레뇨(Quirinius)가 수리아(Syria)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그런데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된 것은 주후 6년의 일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주후 6년 이후에 태어나신 것이 되어 마태복음의 기록(헤롯 대왕의 죽음 이전)과 맞지 않게 된다. 단지 몇 년의 차이라면 모르겠지만 거의 10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3. 해결책


예수님의 탄생 기사에 대하여 마태복음의 기록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누가복음의 기록이 옳은 것인가? 이러한 불일치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처럼 예수님의 탄생 연도에 있어서 마태복음의 기록과 누가복음의 기록이 차이를 보이는 것은 비평학자들의 공격 표적이 되어 왔다. 그들은 누가가 마태의 기록(예수님이 헤롯 대왕 때 태어난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 기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눅 1:5을 볼 때 누가는 예수님께서 헤롯대왕이 살아 있을 때 태어나셨음을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역사가로서 주의 깊게 모든 자료들을 검토한 후에 예수님에 관하여 기록한 누가가(눅 1:1-4) 당시에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역사를 모를 리가 없다.




지금까지 이에 대하여 여러 해결책들이 제시되어 왔다. 그러한 제안들 중에서 가장 만족스런 것은 성경의 역사적 신빙성(historical reliability)을 주장하는 많은 보수적인 학자들에 제시된 것으로, 눅 2:2에서 ‘처음’이라는 단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 ‘프로토스’가 잘못 번역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이 구절에서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first) 한 것이라’는 말은 원래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기 전에(before) 한 것이라’는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헬라어 ‘프로토스’는 ‘처음’이라는 뜻과 ‘전에’라는 뜻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여기서는 ‘전에’로 번역되어야 하며 그렇게 볼 경우에 문제가 해결된다. 그리고 실제로 로마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주전 4년경에 인구조사를 한 적이 있었으며(누가는 이때의 인구조사를 잘 알고 있었다. 행 5:37) 이때는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되기 전이었다.




게다가 주후 6년경에는 갈릴리에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등록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때는 헤롯 대왕이 이미 죽고 헤롯의 세 아들들이 나라를 나누어서 다스리고 있었던 때였다. 당시에 갈릴리는 헤롯 안티파스가 다스렸고 유대는 헤롯 아켈라오가 다스렸다. 그런데 호적등록령의 목적은 세금을 걷는 것이었고 따라서 각 지역은 별도의 세금을 걷었던 상황이었으므로 갈릴리에 사는 요셉과 마리아가 유대 베들레헴에 가서 호적을 등록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주후 6년 이후에 태어나셨다고 보는 것은 정황상으로도 옳지 않다. 결국 우리는 마태와 누가의 기록에 차이가 없으며, 우리는 이들의 기록과 요세푸스의 자료로부터 예수님의 탄생이 주전 6-4년 사이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4. 그 밖에


예수님이 태어나신 정확한 날짜를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론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 날짜라고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이미 알려져 있듯이 이 날은 고대 로마제국에서 임의로 정한 날짜일 뿐이기 때문이다. 성경의 정황을 통해서 살펴 볼 때 예수님은 봄이나 여름에 태어나셨을 가능성이 있다. 이는 목자들이 날씨가 따뜻한 늦봄이나 여름에만 들판에서 밤을 지새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찾아 온 것은 성탄 당일이나 그 직전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헤롯이 두 살 이하의 남자 아이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음을 고려할 때 동방박사들이 방문한 때는 예수님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아마 몇 개월 후)라고 추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동방박사가 세 명이라는 증거도 없다. 그들이 세 개의 선물을 바쳤다고 해서 세 명이라고 추정하는 것은 (물론 가능성은 있지만) 맞지 않다.




성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태어나심이 주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일찍이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메시아를 이 땅에 보내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리고 ‘때가 차매’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이신 메시아가 오신 것이다. 이제 인류는 예수님의 오심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복을 누리게 되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의와 평강과 희락을 맛보게 된다(롬 14:17).





2010년 12월 01일
















바울의 연대기


황원하 목사








▲ 황원하 목사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M.Div.)
Pretoria University(Th.M.)
Pretoria University(Ph.D.)
대구서남교회, 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강사

1. 어려움과 필요성




바울의 연대기를 구축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비록 많은 학자들이 사도행전과 서신서들(특히 갈라디아서), 그리고 고대문헌들을 참고하여 바울의 연대기를 구축해보려고 하였으나 아직 완전한 일치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문헌들(특히 정경 내의 문헌들)의 기록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기록된 사실들을 해석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사도행전에 있는 특정 사건이 갈라디아서의 특정 사건과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역사적 정황 재구축의 난점은 성경의 주요 관심이 역사적인 사실을 기록하는 일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구속사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성경이 역사적이 아니라는 말은 아니다. 성경은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다만 성경은 역사적 사실을 차용하여 신학적(구속사적)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바울의 연대기 구축은 비록 그것이 어려워서 여전히 가설적이라 하더라도 필요하며 중요하다. 왜냐하면 바울의 연대기를 먼저 구축해야 그 기초 위에서 바울서신의 역사적 배경을 사도행전과 연관 지어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이 연대기를 잘 이해하면 사도행전에 나타난 어떤 사건이 바울서신의 어떤 사건과 연결되는 지를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필자는 L.C.A. Alexander,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1993, 115-123와 데이빗 웬함&스티브 월튼, 복음서와 사도행전, 2007, 461-462를 비롯한 여러 서적들을 참고하여 바울의 연대기 구축을 시도해 보았다. 이러한 연대기 구축의 시도는 성경연구자들에게 사도행전과 바울서신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 지를 보여줄 것이다.




2. 자료들




우리는 무엇보다도 사도행전의 기록과 갈라디아서의 기록과 성경 외 문헌들의 기록을 참고하여 바울의 연대기를 만들어 볼 수 있다. 물론 이 연대기는 잠정적(혹은 가설적)이기 때문에 다른 연구자들이 비평적으로 수용하거나 더 진전된 연구를 위한 초석으로 사용하면 된다.




1) 사도행전의 기록




9:1-19a 회심

9:19b-25 다메섹에서 복음 전파, 박해를 피하여 광주리로 탈출

9:26-30 1차 예루살렘 방문(사도들을 만남, 전도, 다소로 감 )

11:19-30, 12:25 2차 예루살렘 방문(안디옥으로부터의 구제헌금을 가지고)

13:1-14:28 제1차 전도여행(안디옥-실루기아......더베-안디옥)

15:1-35 3차 예루살렘 방문(총회를 위하여)

15:36-18:22 제2차 전도여행(안디옥-빌립보-아덴-고린도[18개월]-안디옥)

15:36-18:22 2차 전도여행(안디옥-빌립보-데살로니가-아덴-고린도[18개월]-안디옥)

18:23-21:16 제3차 전도여행(안디옥-에베소[3년]-마게도냐-그리스.....예루살렘)

21:17-23:22 예루살렘에 모금을 전달한 후에 체포됨

23:23-24:27 2년간 가이사랴에 구금

25:1-26:32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서의 심문

27:1-28:31 로마로 후송되어 2년간 가택연금




2) 갈라디아서의 기록




1:16이전 회심

1:16-17 3년간의 기간(아라비아, 다메섹)

1:18-20 15일간의 첫 번째 예루살렘 방문

1:21-2:1 14년간의 기간(시리아, 길리기아로 전도여행)

2:1-10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방인 선교에 관한 회의를 위하여)

2:11-14 안디옥에서 있었던 일




3) 성경 외 문헌(external chronology)의 기록




① 고후 11:32-33에는 아레다 왕의 방백(ethnarch of King Aretas)이 다메섹에서 바울을 잡으려 하자 바울이 광주리를 타고 도망한 사건이 언급된다. 그리고 이 사건은 행 9:23-25과 관련된다. 아레다 왕(나밧의 왕 아레다 4세: the Nabatean King Aretas IV)은 주전 9년-주후 38/39년 사이에 재임했다. 그리고 그는 주후 39/40년에 사망했다. 따라서 바울은 회심한 이후에 다메섹으로 갔기 때문에 바울의 회심은 적어도 주후 38/39년 이전에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② 행 11:27-30에 언급된 흉년은 글라우디오의 때에(in the days of Cluadius) 일어났다. 글라우디오는 주후 41-54년에 재임했는데, 요세푸스에 따르면 주후 46-48년경에 큰 흉년이 들었다(Josephus, Ant. 3.15.3; 20.2.5). 따라서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교회의 구제금을 전달하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한 때는 주후 46/47년일 것이다.




③ 행 12:20-23에 언급된 헤롯 아그립바 1세(Herod Agrippa I)의 죽음은 주후 44년 3월의 일이다(Josephus, Ant. 19.8.2). 사도 야고보는 헤롯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행 12:2), 그 연대는 아마도 헤롯의 죽음 직전일 것이다(아마도 주후 42-44년 사이).




④ 행 18:2에는 로마에 있는 모든 유대인들을 추방하라는 글라우디오의 칙령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그의 책 ‘클라우디우스의 생애’(Claudius 25.4)에서 이 사건을 언급한다. 그러나 그는 구체적인 연도를 말하지 않는다. 주후 5세기의 기독교 역사가 오로시우스(Orosius)에 따르면, 이 사건은 황제 재임 9년째인 주후 49년에 일어났다. 이 시기에 바울은 고린도에서 당시 로마에서 추방되어 고린도에 도착한 브리스길라-아굴라 부부를 만났다. 이때는 아마도 주후 49-51년 사이일 것이다.




⑤ 행 18:12에 의하면, 바울은 재판을 받기 위해 아가야의 총독 갈리오(Gallio) 앞에 섰다. 델피(Delphi)에서 발견된 비문에 따르면, 갈리오의 재임기간은 주후 51-52년경이다.




⑥ 아나니아(Anaias: 행 23:2; 24:1)는 주후 47년에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다.




3. 결론: 바울의 연대기




위의 기록들을 대조하고 분석하여 바울의 연대기(추정)를 다음과 같이 설정할 수 있다. 이 연대기에 따르면 바울은 주후 33년에 회심하였고 주후 47-48년에 1차 전도여행을 시작하였으며 주후 65년경에 순교하였다.



연도
주요 사건들
성경본문

(사도행전; 갈라디아서)

33
회심
행 9:1-19a

33
다메섹에서 전도
행 9:19b-22

35
3년간 아라비아에 머물다가 다메섹으로 돌아옴
행 9:23-25; 갈 1:16-17

35
제1차 예루살렘 방문(15일간)
행 9:26-30; 갈 1:18-20

35
다소(길리기아에 있는)로 감
행 9:30; 갈 1:21

43
바나바가 바울을 다소에서 안디옥으로 데리고 옴
행 11:25

46/47
제2차 예루살렘 방문(구제헌금전달)
행 11:30, 12:25; 갈 2:1-10

47-48
제1차 전도여행(안디옥-실루기아......더베-안디옥)
행 13:1-14:28

48/49
제3차 예루살렘 방문(총회)
행 15:1-35

49-52
제2차 전도여행(안디옥-빌립보-아덴-고린도[18개월]-안디옥)
행 15:36-18:22

52-57
제3차 전도여행(안디옥-에베소[3년]-마게도냐-그리스.....예루살렘)
행 18:23-21:16

57
예루살렘에 모금을 전달한 후에 체포됨
행 21:17-23:22

57-59
2년간 가이사랴에 구금
행 23:23-24:27

59
베스도와 아그립바 앞에서의 심문
행 25:1-26:32

59-62
로마로 후송되어 2년간 가택연금
행 27:1-28:31

64
네로의 로마 대 화재


65
순교






2010년 11월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