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신학교 운영 문제 - 고신을 중심으로
총회가 신대원 직영을 포기하란 말인가?
정주채 목사/향상교회 담임, 바른교회아카데미 이사장 juchai@chol.com
정책을 미리 발표하고 토론을 유도한 일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일전에 부산노회가, 점점 가중되고 있는 총회 부담금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 기독교보를 통해 공개적으로 제안하였다. 우선 이런 정책들을 개발하고, 개발된 정책들을 총회 전에 미리 공개해서 토론할 기회를 갖게 한 것은 매우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각 노회나 교회가 교단산하 모든 교회에 직접 관련이 있는 제안이나 주장들을 할 때는 이를 총회 때 불쑥 내놓을 것이 아니라 미리 알려서 공개적인 토론을 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리고 교단신문이 이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여 교회지도자들의 의견을 통합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교회는 토론문화를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사사로운 정치가 난무하고, 그런 정치파벌적인 시각으로 문제들에 접근하다보니 바람직한 정책들이 도출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독교보와 부산노회가 함께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시도는 한 번의 시도로 끝나지 않고 상시적으로 이루어졌으면 한다.
총회부담금을 줄이려는 노력은 지속되어야 한다.
부산노회가 총회부담금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자체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교단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우리 총회산하 교회들의 상회부담금은 다른 교단들과 비교하면 매우 과중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해외선교와 미자립교회 지원 등의 일로 각 교회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여기다 상회부담금까지 많이 안겨서 허리를 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별히 지난날 학교법인 고려학원 산하 복음병원의 부도로 인해 총회산하 교회들이 받았던 충격과 물질적인 손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쓰리고 아프다. 200억 원이란 손실은 기업경영의 시각으로 볼 때는 어느 정도 감안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나 경영상의 잘못이 아닌 도덕적인 해이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이었기에 그 손실이 너무나 통탄스럽고 안타까운 것이다. 그 돈이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나라를 세우는 영적인 생산에 사용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는가.
지금도 우리는 총회가 공적으로 사용하는 비용들에 도덕적인 해이로 인한 낭비가 없는지 철저히 점검하고 스스로를 살펴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날부터 공적인 자금은 “공 돈”이라는 아주 잘못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잘못 된 의식이 교회 안에까지 들어와서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이 어떤 공적 기관으로 넘겨지면 “공 돈”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크다. 이를 막고 헌금을 헌금답게 사용하려면 낭비를 줄이려는 세밀한 노력이 필요하다.
회의비나 불요불급한 일들의 비용을 줄여야 한다. 불요불급을 선별하는 기준은 교회의 핵심사역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다. 예수님의 이름(존재)과 영광을 드러내고,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 교회이다. 우리가 익히 아는 바대로, 예수님의 3대 사역은 복음전도와 교육, 그리고 사랑의 봉사이다. 이를 기준으로 삼아 지교회나 총회의 재정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또 그 정책을 따라 재정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엄격히 통제해야 한다.
신대원 지원금 전액삭감 주장은 심각한 본말전도이다.
부산노회가 상회비 삭감과 합리적인 운용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면서 그 중심내용을 신대원 지원금의 전액삭감으로 삼았는데, 필자는 이를 심각한 본말전도라고 생각하며, 이런 주장이 개인이 아닌 노회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
이미 언급한 대로 교회의 중심사역은 전도와 교육과 봉사이다. 이중에서도 교육은 이 3대 사역의 중심에 있다. 전도도 봉사도, 그리고 교육도, 이를 수행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교육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주신 지상명령을 일반적으로 선교명령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내용은 교육명령이다. 모든 민족에게로 가라는 동사가 주체적인 동사가 아니고 제자 삼으라는 것이 그 명령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자녀교육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없다. 지교회에서도 주일학교 교육뿐 아니라 제자훈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선교도 봉사도 제자화된 신자라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확대된 교회인 총회도 마찬가지이다. 총회가 중심사역으로 삼아야 할 일은 인재양성이다. 질 높은 목회자와 선교사, 그리고 다양한 분양에서 봉사할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총회가 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사역이다. 이것은 지교회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이런 인재양성의 중심기관인 신학대학원에 대한 총회적인 지원을 중단하고 이것을 지교회들의 자의적인 후원에 맡긴다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발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식 교육에 돈 아끼는 부모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가정경제가 어려워지면 가족들은 가사의 모든 비용을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게 된다. 그러나 밥을 굶는 한이 있어도 포기하지 않는 비용은 자녀들의 학비이다. 가정경제가 어렵다고 자녀 교육비부터 가장 먼저 줄이는 부모는 세상에 없다. 자녀는 그 가정의 미래이고 희망이다. 나아가 미래의 인재들은 나라의 보배이다. 이것은 하나님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는 제자양육과 인재양성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차라리 선교를 못해도 교육비를 줄여서는 안 된다. 누가 목회자인가? 누가 선교사인가? 누가 우리 교회의 미래의 희망인 차세대의 양육자인가? 바로 신대원 졸업생이 아닌가?
이러므로 모든 교단들은 적어도 신대원 만큼은 다 직영을 한다. 재정적인 후원을 위해서만 직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신대원의 교육을 강화하고, 감독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만약 부산노회의 주장대로라면 결국 신대원의 총회직영을 포기하자는 결론 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교수들이 열심히 뛰어서 학교운영비를 확보해야 한다면, 교수는 가르치는 일보다 재정확보에 마음을 더 빼앗기게 될 것이고, 또 교수들이 자기들의 노력으로 재정을 확보했다면 무엇이 아쉬워서 총회의 간섭과 지도를 받으려 하겠는가?
물론 신대원의 재정운용에 낭비적인 요소가 있고, 교수들의 봉급이 목회자들보다 지나치게 높다든지, 총회의 직접적인 지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들에 계속 손을 벌려 도움을 요청하는 일 등의 문제점들이 있다면 그런 것들은 과감히 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작은 문제들 때문에 아예 총회적인 지원을 모두 삭감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필자는 차라리 병원은 직영체제에서 자유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방법은 연구해보아야 하겠지만, 고신의료원 같은 기관을 총회가 직영한다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기 때문이다. 부산노회는 이 문제를 먼저 더 깊이 연구해 보시기를 간곡히 건의하는 바이다.
2011년 08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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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 의견
이세령
[2011-08-19]
신대원 재정 지원 정책에 대해서
부산노회의 입장을 직접 대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어서 논의에 참여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몇가지 부산노회가 가진 제안의 긍정적 측면이 있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부산노회의 입장은 총회의 상회비 형식으로 노회가 거두어서 신대원을 지원하는 방식에서 개 교회가 신대원을 직접 지원하도록 하자는 안인 것 같다. 이것이 정말 총회와 신대원의 관계를 단절하자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총회가 신대원을 지원하는 가이드를 교회들을 위해서 결정을 하고, 이를 교회들이 존중하는 분위기를 만들면 개 교회가 직접 신대원을 지원하는 형식을 가짐으로 신대원과 교회가 더욱 가까운 관계를 가지게 된다. 예산대비별로 신대원 지원 가이드를 만들면 된다. 아니면 개혁교회처럼 가구당 지원 액수를 정하면 된다. 즉 수를 따라서 지원 액수를 결정한다.
물론 위험은 강제력이 없는 규정이 얼마나 효력을 발생할 것이냐는 우려이다. 아직은 한국 교회가 친숙하지 않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전격적으로 시행하는 것은 신대원을 희생시킬 가능성이 많다. 그래서 과도기적 방식을 사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상회비로서 신대원 지원액을 점차 비율을 줄여가면서, 줄인만큼 상회비를 줄이고, 이것을 직접 교회가 신대원에 지원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도 개교회 이기적인 태도가 만연한 현실에서 우려가 있다. 물론 반대로 교회가 직접 지원하는 액수를 더 늘리는 교회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정책적인 판단과 교단의 의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신대원이 교단의 개 교회들과 직접적인 관계속에서 교회의 사랑을 받는 방식도 될수 있다는 궁극적인 의미가 존재할 수 있음을 나누고 싶다. 부산노회의 입장이 이런 의도에서 접근하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서보성
[2011-08-17]
온 마음으로 공감을 가집니다.
부산노회의 글을 읽고 저도 목사님과 같은 취지의 글을 올리려고 몇 번이나 마음을 먹었으나 기회가 되지않아서 미루고 있던 차에 이렇게 글을 올려주시니 얼마나 반가운지요. 15년 전에 신학교를 다닐 때에 "조금만 참으면 등록금 신경쓰지 않고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원장의 말씀에 좋은날 보기를 원하였으나 그러지를 못했습니다. 오히려 상상할 수 없는 등록금 인상으로 더욱 힘들어 하는 후배들을 보면서 항상 죄인이 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총회적으로 지원을 줄여야 한다" 는 사람들을 보면서 너무나 답답하였습니다. 교수님들 개인 비서 하나 없이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만들어 연구하고 강의하시는 교수님들에게 후원금을 거두어 오라니요. 도무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습니다. 학생들 부담없이 공부하도록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는 그날까지, 교수님들
께서 전적으로 연구하시고 강의만 하시는 그날까지 총회는 사명감을 가지고 할수만 있으면 최대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교단의 미래와 한국 아니 나아가 세계의 미래가 신학교에 있음을 자각하고 총회의 다른 경비를 줄여서라도 신학교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김연출
[2011-08-17]
지원금 삭감 전에 했어야 할일
신대원생에 대한 전액 장학금을 지불할 수 있는 장학재원을 마련할 방법을 찾는 일과 신대원 시설을 자체적으로 유지보수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재원을 마련할 방법을 강구하여야 하며, 우수한 교수진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부터 논의되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지 돈의 논리로 풀어가고자 한다면 그야말로 우리 교단에 돈이 있어도 도무지 극복못할 엄청난 손실과 위기를 초래할 것입니다.
부산노회의 제안은 교단의 장래를 생각해 볼 때 심히 우려스러운 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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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원은 반드시 총회가 직영해야 한다.
정주채 목사의 글에 대한 반론
부산노회장 이용원 목사
상회비를 줄이기 위한 논의가 부산노회의 일방적인 주장으로 끝나지 않고 논의를 깊이 할 수 있게 해 주신 정 주채목사(기독교보 992호에 “총회가 신대원 직영을 포기하란 말인가?”라는 제하에 귀한 글을 게재하신)께 감사드린다.
우리는 신대원을 반드시 총회가 직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는 우리의 생각이다. 물론 앞으로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단언한다.
그러나 추상적이고 막연한 의미의 직영이라는 개념에 머물기에는 상황이 만만치 않다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의미에서의 직영이란 돈을 대면 다른 것은 함께 따라 온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래서 돈을 대는 쪽이 직영한다고 여기는 경우를 말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지금의 상황은 그렇게 안이하지 않다. 돈을 댄다고 반드시 직영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돈은 대지만, 교육이념을 관철시키는 일이나 인사나 행정권한이 돈을 대는 쪽에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대로 신대원은 사학법을 근거로 설립된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가 그 운영을 주도하고 있다. 이 이사회는 학교의 제반 행정적 권한을 다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고 가장 중요한 인사권을 갖고 있다. 이 이사회 외에 학교 운영이나 인사에 관여할 수 있는 다른 어떤 주체도 없다. 이사회가 총회의 의도에 동의하며 움직여주지 않으면 그것을 제어할 방법은 사실상 없는 것이다. 우리는 실제로 그런 경우를 수차례 경험한 바 있고 지금도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댄다고 직영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인 것 같다. 극단적이긴 하지만 이사회가 신대원 설립이념이나 신학사상 혹은 교회 정신에 반하는 교육방향을 설정하거나 그런 류의 교수를 임용한다고 하면, 그럴 리가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이사회가 악의적 의도를 가지고 어떤 인사를 단행한다고 가정해 보면 그것을 막아낼 실제적 방안이 있는가? 없다. 그런 위험을 제어할 담보 없이 돈만 댄다고 직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총회가 경상재정에서 직접 지원하지 않는다고 자식교육을 포기했다고 단언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신대원만 우리 자식이 아니고 복음병원도 고신대학도 우리 자식이다. 부모가 자식들 다 공부시키기 버거워 돈 많은 다른 자식에게 어려운 형제를 도와주라고 하는 것이 못할 일인가? 그렇게 하는 것이 가문을 위한 부모의 이념과 뜻과 정신이 담겨있는데도 그 경우를 부모가 자식 교육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부모 말씀을 따라 형제가 서로 도와 함께 하면 어떤 경우에도 자식 교육을 포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부모의 관장아래 자식들이 함께 가문의 인재를 길러내는 훌륭한 일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신대원은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교회의 내일이 거기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추호도 그 중요성을 약화시킬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균형이 필요하다. 등록금과 후원금 대부분을 교회가 부담하고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총회 예산중에 1/4을 또 부담하고 있다. 왜 그렇게 중요한 신대원 지원에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항변도 있다, 이유는 단순하다. 신대원에 기형적으로 재정이 투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60회기 결산보고에 의하면 산하 교회들의 결산 총액이 약3천 1백억인데 이것의 1%는 31억이다. 59회기 결정대로 1%를 신대원에 지원하면 무려 31억을 신대원에 지원해야 한다. 그것은 60회기 총회 예산 37억 여 원 중에 83.%를 차지한다. 그래서 묻고 싶다. 그렇게 재정의 80% 이상을 신대원에 지원하고 나면 총회는 어떻게 운영하려고 하는지, 그렇게 불공평하고 불균형적인 재정집행을 해도 되는 것인지, 그렇게 해야만 신대원을 직영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인지, 그 대답을 듣고 싶다.
대학들의 경쟁이 치열하고 구조조정의 바람이 드세다. 그것은 향후 더 심화 될 것이 확실하다. 그런 와중에도 신대원 교수들은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에는 기본적으로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것도 교수들이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짐을 나눠진다는 뜻에서 자구노력을 경주한다는 전제가 성립될 때 고려할 수 있는 사항으로 여겨진다.
정확한 내부 자료를 가질 수는 없지만 우리가 파악한 자료에 의하면 신대원에서 채용한 교수의 비율이 법정 정원에 비춰볼 때, 다른 대학에 비해 월등히 높은 반면 교수 1인당 수업시수는 지나치게 적다. 더구나 등록금에 대한 인건비 비율은 100%가 넘는 것으로 돼 있다. 등록금으로는 인건비도 충당할 수 없을 정도로 인건비 비중이 높다는 말이다. 이런 경우는 한국에 어떤 대학에서도 예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보통의 대학들은 등록금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율이 60% 남짓의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신대원이 짐을 나눠지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잘 보여주는 적나라한 방증이다.
그렇다면, 교수 숫자는 정도 이상으로 많고 수업 시수는 상대적으로 적다면, 등록금에 대한 인건비 비율이 상식이상으로 높다면, 짐을 나눠진다는 측면에서 교수가 여유 시간에 후원금 모금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렇게 요구하는 것이 무리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들보다 결정적으로 더 중요한 문제가 있다. 부산노회는 기독교보에 두 번 기고를 했다, 한번은 신대원 지원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두 번째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 방안은 신대원 재정을 교회의 일반후원과 복음병원에서, 즉 학교 법인 이사회가 그 관장아래 두고 있는 복음병원의 수입금 중에서 일정액을 신대원에 지원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두 번째로 기고한 그 대안이 사실상 우리 부산노회가 제안하려고 한 내용의 핵심이다.
우리는 직영이라는 미명하에 교회만 과도한 짐을 지는 것이 결코 정의롭지 못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짐을 나눠지자는 차원에서 그런 제안을 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제안을 끝까지 고집 부리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논의하고 협력해서 좋은 결론을 도출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지면을 통해 신대원 운영 방안을 제안을 해 보려고 한다. 신대원 예산을 년 간 50억 정도로 보고, 절반 정도는 등록금으로 충당하고, 나머지 절반 중에 30% 정도는 병원에서, 그리고 10% 정도는 일반 후원금으로 하고, 나머지 10% 정도는, 비록 총회가 경상 재정에서 신대원에 지원하지 말자는 의견을 냈지만 백번 양보해서 총회 재정에서 지원금 명목으로 그 정도는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총회도 예산의 10% 정도는 부담하지만 현재보다 절반이상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고, 일반 후원금 비중도 지금처럼 높지 않아도 된다. 물론 일각의 주장대로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일 필요가 절실하고 공동체 안에서 합의가 된다면 병원의 부담을 좀 더 늘리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 된다.
열쇠는 병원이 쥐고 있다. 병원이 지금처럼 지원을 꺼리면 불가능하다. 그런 일 없기를 바라지만 복음 병원이 끝까지 지원을 거부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말해야 할 것이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복음병원 1년 예산이 1천 8백 억 정도라고 한다. 그 큰 재정 중에서 월 1억~2억 원 정도를 형제를 위해 지원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노조반대, 체불임금 문제 등을 걸림돌로 제시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그것이 명분이 되는지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게 명분이고 이유라면 기관이기주의 라는 비난 외에 들을 또 다른 말은 없을 것이다.
핵심은 학교법인 이사회이다. 이사회가 교회(총회)를 존중하면서 한 몸 안에서 짐을 나눠지고 가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권한은 막강한데도 의무는 없고 결정은 마음대로 하면서 책임은 지지 않는, 거기다가 교회의 의도와 결의를 무시하기까지 하는 이사회가 상존해 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우리는 이 이사회에 대한 믿음도 제어할 방법도 거의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가 바라는 핵심은 학교법인 이사회를 교회가 관장하는 것이다. 사학법의 테두리 안에서,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최악의 경우에는 사학법의 범주를 벗어나는 방안을 찾아서라도 이사회를 총회의 관리와 다스림 아래 두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법률검토와 규칙을 마련하기 위한 위원회를 두자는 청원을 61회 총회에 냈고 교회들의 지지와 협력을 기다리고 있다. 그 위원회가 세워져서 규칙을 만들면 총회는 그것을 살펴서 받으면 된다. 그리고 그 규칙에 따라 우리 모든 자식들, 신대원, 고신대학, 복음병원, 그리고 이사회를 총회가 관장하면 된다. 기관이 중심이 아니라 교회가 중심이 되고 주체가 되어 산하 기관을 다스리고 이끌어 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확고한 생각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정 목사님의 글에는 이 같은 일련의 부산노회 주장에 대한 언급이 없다. 그래서 논의를 왜곡시켰다. 그 뿐 아니라 마치 부산노회가 신대원 교육 내지는 직영을 포기하려고 한다는 식의 논의 제목을 쓰므로 매우 선동적이며 여론몰이 방식으로 논의를 끌고 갔다. 선동적이거나 여론몰이 식으로는 모처럼 시도된 정책과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논의에, 선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신학교, 내 자식” 하는 식의 감성만 자극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지금까지 우리는 거의 언제나 그래왔다.) 부산노회는 그런 식의 접근을 심히 우려하고 있다. 보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직시하고 논의를 깊게 해서 대안을 찾아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형제들이고 한 몸 안에 있다. 우리가 서로 비난하고 대립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정말 바라는 것은 서로 도우는 것이다. 교회만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것은 결코 온당치 못하다. 협력하며 도우고 함께 해야 한다, 짐을 나눠져야 한다. 그래서 함께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며 하나님 나라를 확장해 가야 한다. 그것은 신대원 직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더 견고하게 하는 것이다.
학교법인 이사회는 사학법 뒤에 숨는 것을 이제 그만하고 신대원은 교회에 손만 내미는 안이한 접근도 중단하기를, 총회 산하 기관들은 예외 없이 견제를 받고 균형을 이루기를, 그리고 치열한 자구 노력을 통해 서로 돌아보며 함께 지어져가기를, 그래서 상회비 부담을 경감시키기를 부산노회는 지금 간절히 바라고 있다.
부산노회장 목사 이용원
2011년 09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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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에 대한 네티즌 의견
이세령
[2011-09-04]
이건 아니다
부산노회의 입장은 결국 신대원, 고신대학 그리고 복음병원을 동등 선상에 놓고 문제를 이해하는 것이다. 과연 이것이 진정인가? 기업 경영 관점에서 그리고 재정관련 문제만을 놓고 신대원을 이해하는 것인가?
교회 헌법은 신대원을 총회가 운영한다고 명시한다. 그러나 대학을 운영한다거나 복음병원을 운영하는 것을 명시하지 않는다. 교육, 선교 및 구제에 대한 일을 계획 실천한다고 포괄적 제안을 한다. 이것은 고신 대학과 복음 병원이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신대원의 것과 비교될 수 없는 시대의 여건과 관련된 선택적 사항이다.
신대원이 없으면 말씀으로 교회를 양육할 목자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나 고신 대학과 복음 병원이 없다고 고신 교회가 흔들리지 않는다. 전혀 차원이 다른 관점이다.
그래서 신학교는 교회가 재정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총회의 지도와 감독을 받아야 한다.
왜 복음이 가진 단순한 이해에서 출발하지 못하는가? 지금 논의는 정상이 아니다. 복음 병원은 수익 기관이고 이곳으로부터 계속해서 돈이 들어오는 일은 교회가 가진 복음의 원칙에서 배반한다. 값없는 복음의 헌신으로만 교회의 학교가 유지되기를 바란다.
양승기
[2011-09-03]
촌철살인
부산노회가 그 동안 수 차례에 걸쳐 기독교보에 게재한 글들이 전주곡이었다면 부산노회장 이용원 목사의 "정주채 목사의 글에 대한 반론"은 부산노회의 부총회장 후보가 역설 한 바 있는 "체크 앤드 발란스"에 대한 세부적이면서 명료하고, 본론적이면서 정곡을 짜르는 결론적 해설이요,
동시에 총대원들을 정각으로 안내하는 로드맵이라고 본다.
이런 글이 미래의 고신교단을 기획하는 지도자들과 총대들에게 교단발전의 발판이 되는 새로운 사고의 틀을 부화케 하는 창조적 둥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밝나라
[2011-09-03]
부산노회의 주장에 귀를 열어라
부산노회가 교단 전체를 위한 진지한 충언에 대하여 고신교단의 책임있는 지도자요 구성원들이라면 내 생각과는 다소 다르드라도 모두 귀를 열고 듣고 느끼고 공감하여야 된다 라고 사료된다.
부산노회의 총회와, 고려학원 이사회, 그리고 산하 신대원, 고신대, 복음병원을 향한 합리적 제정운영과 체계적 책임관리를 위한 진정성 있는 의견과 제안에 대하여 사적인 사족은 접어두고 교단적인 차원에서 접근하고 발전적으로 진행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총회의 기능과 역할과 관리 통괄 문제, 고려학원 이사회와의 관계설정 등이 애매모호하여 보고 듣는 구성원들에게 적지않은 문제점과 걱정과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또한 고려학원을 설립하고 운영하며 관리하는 총회가 파송한 산하 고려학원 이사회를 관리 통제하지 못한다면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교단의 교회와 산하 기관과 구성원들에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본인은 총대가 아니므로, 정책제안 같은 것은 할 수 없기에 부득이 원외에서 부분적이나마 의견을 제시할 수 밖에 없다.
차제에 금번 총회에서는 이 문제에 대하여 총대들과 새로 구성될 임원진들이 신중하고 개혁적인 발상과 행동으로 적극적인 추진이 있기를 기도하며 바란다.
앞으로도 밀실행정같은 그런 것 말고 공개적이고 투명한 정책토론을 기대해본다.
신학교 지원, 생각을 다시 해야 한다
이성구 목사 /구포제일교회
부산노회가 나섰다.
우리 총회 내에서 규모면에서 제일 크고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부산노회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다시 신학대학원에 지원에 대한 대담한 제안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신학대학원을 총회가 직접 지원하는 방법을 바꾸어 신대원 교수들이 모금을 하고 거기에 복음병원이 그 이익금을 나누는 방법으로 지원방안을 바꾸자고 제안하고 있다.
신학대학원에서 상당한 기간 가르친 경험이 있는 필자에게 이런 제안은 언젠가는 한 번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총회는 총회대로 지원한다는 데, 그 지원금이 총회의 결의대로라면 일 년에 31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이라는데, 신대원은 신대원대로 각 교회를 다니면서 모금을 하고 있으니 이런 이중적 모금에 관하여 누군가가 한마디 하는 것이 매우 정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제기된 이슈에 대하여 논쟁을 벌일 때는 정확한 사실 파악이 우선되어야 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앞서야 한다. 신학대학원이 회복을 요청하는 교회 예산 1% 지원은 어떻게 결정되고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신학대학원에 대한 총회 지원액 결정과정
교회 예산액 1%를 신대원에 지원하기로 한 결정은 1982년 제32회 총회에서 재단이사회의 청원을 받아들여 행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30년 전에 결정하여 지금까지 지속되어 온 일이다. 일순간의 흥분으로 존폐를 결정할 문제는 아니다. 1982년이면 고려신학대학 신학연구과로 존재하던 신학교가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으로 개편된 지 겨우 1년이 지난 시점이다. 비인가 과정으로 운영하던 신학교여서 교수들조차 정상적으로 채용할 수 없던 시절, 총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수준을 갖춘 신학교를 만들도록 하기 위한 조치가 바로 1% 지원안이었고 총회는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신학대학원은 지금 이대로 좋은 것일까? 총회의 지원을 멈추자고 하는 것은 정규대학원으로 인가받기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과연 그래도 되는 것일까?
32회 총회 이후 일 년만인 33회 총회는 신학교 1% 헌금에 모든 교회가 힘쓸 것을 재확인하였다. 이것은 총회가 처음 결정했을 때 모든 교회가 뜻을 같이 하거나 쉽게 지원을 시작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총회는 이미 행한 결정을 그대로 시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쉽지 않은 일이라고 물러서지 않았다.
그 후 1989년 39회 총회는 다시 한 번 신학대학원을 의무적으로 계속 지원하기로 가결하였다. 세 번째 결정이었다. 이 당시 총회는 지금처럼 교회들의 예산이 많지 않았던 시대였다. 당시로서 지원액은 무거운 금액이었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신학교 지원에 대하여 총회는 확실한 입장을 견지하였고 교회들은 어렵지만 후원을 계속하였다.
1990년 40회 총회는 신대원을 위한 1% 지원금을 경영이 쉽지 않은 대학을 돕는데 나누어 사용하기로 하여 지원총액을 신대원 75%, 대학 25%로 나누기로 하고 수금은 신대원이 하도록 가결하였다. 1%가 조금씩 늘어나자 대학에까지 그 혜택을 늘리도록 한 것이다. 지금처럼 액수가 늘어났다고 없애자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일은 없었다.
복음병원의 부도로 인한 신대원의 수난
그러던 중 2003년 5월 9일 고려학원 부도사태가 발생하자 교단의 유력인사들은 비상총회를 열어 복음병원 부채청산 방안에 대하여 논의하던 중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향후 5년간 신대원과 대학에 대한 1% 지원금을 부채 상환을 위해 전용하도록 허락하기에 이르렀다. 복음병원 상황이 시간을 다툴 정도로 심각하기도 하였지만, 당시 총회를 리드하던 분들이 어느 것을 더 중요시 하였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관선이사가 파송된, 복음병원의 경영권을 가진 고려학원을 되찾아오는 일에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 쏠렸고 신학대학원은 점점 교단의 관심에서 멀어져갔다. 실제로 2003년에는 이미 예산을 집행하고 있던 시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9억 6천만 원에 달하던 지원금액을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다. 2004년에도 역시 신대원 지원금은 전혀 없었다. 신대원의 살림을 바짝 마르게 한 기간이었다. 2005년 이후에는 매년 2억, 3억, 5억 정도씩 지원액을 높여가다가 약속한 5년이 지나고서도 총회는 부도 이전으로 회복해 주지 않았다. 총회가 걸머진 부채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유였다. 결국 2008년 6억, 다음 해 7억, 그 후 8억씩 지원하다가 2010-2011 회계년도에 이르러서야 8년 전 부도 이전 지원액에 버금가는 9억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 현재 상황이다.
2003-4년 2년 동안 단 한 푼도 지원받지 못하면서 신대원은 단설대학원 설립을 위하여 적립했던 17억 원을 전액 소진하여 그 후 총회가 단설대학원을 설치하기로 결정하였지만 엄두를 낼 수가 없었다. 심지어 부도 이후 몇몇 총회 인사들은 ‘목양장학회’가 모금한 장학금조차 내놓을 것을 요구하기까지 하였다. 만약 당시에 모금한 장학금이 신대원에 속한 기금으로 존재했다면 영원히 사라져버렸을 것이었다.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부도가 나던 2003년 신대원과 대학 지원금으로 배정된 우리 총회 예산의 1%는 12억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신대원이 9억 6천, 대학이 2억 5천만원 정도의 지원을 받았다. 그러니까 우리 교회들의 총 결산액이 1,200억원 정도였다는 말이다. 그런데 2010년도의 결산총액이 3,100억원이라는 부산노회의 통계가 옳은 것이라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겨우 7년 사이에 우리 교단교회들의 재정이 2배 이상 증가했다는 말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총회의 학교, 교회가 세워야 할 사역자
총회가 1%를 지원하기로 한 것은 신학대학원이 마음대로 결정한 것이 아니다. 물론 오병세박사의 적극적인 제안이 받아들여진 것이기는 하지만 총회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당연한 일로 받아들였다. 그런데 1%에 대한 신대원의 생각은 부산노회와는 다를 것이다. 30년 전 총회가 1% 지원을 결정할 당시의 재정이나, 7년 전의 경우를 생각하고 있는 신대원으로서는 부산노회가 주장하는 31억원 전액을 지원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신학대학원은 총회가 직영하는 기관이고 직영해야 한다. 부산노회가 신학대학원을 복음병원이나 대학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무리한 주장이다. 대학은 규모상 자립이 가능한 상황이고 병원은 이미 교단의 손을 떠난 상황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병원은 철저하게 병원의 경영원칙대로 움직여갈 뿐이다. 병원장을 세우는 일 외에 그 어디에도 총회의 견해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게다가 대학이나 병원은 교회가 직영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다수 목회자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부산노회가 제안하듯 병원에서 수익을 남겨 신대원에 지원하라는 것은 더더구나 상상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복음병원은 의과대학을 설립하면서부터 교육기관으로 변경되었다. 더 이상 재단을 위하여 수익을 남기는 수익기관이 아니다. 부산노회는 이런 역사적 변화부터 직시해야 한다. 교육병원은 의학교육의 내실화를 위하고, 실습병원으로서 더 나은 시설을 갖추기 위하여 끊임없이 투자를 늘려가야 한다. 설혹 이익이 생긴다고 해도 사실상 노조가 지배하는 병원에서 수익금을 신대원으로 돌리라고 하는 것은 막말로 전쟁을 벌이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를 띄게 될 것이다.
지금 총회가 병원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병원 부채 해결을 위하여 지난 8년간 신대원 지원을 중단하고 부채상환을 위하여 원금과 이자를 지원하는 데 사용한 금액을 책임지게 하거나, 은급재단에 진 빚 20억 원을 신대원 지원금으로 갚으려는 시도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정도일 것이다.
신학대학원은 교회를 직접 인도할 일꾼을 세우는 기관이다. 말씀을 선포하고 교회를 교회되게 지키고 가르치고 확대하는 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아야 하는 사역자를 키우는 곳이다. 나라를 지키는 군대의 장교를 생산하는 사관학교는 속옷까지 국가가 지원한다. 그런 관심과 사랑을 받고 교육을 이수한 장교들은 기꺼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려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최전선에 설 신학생들도 교회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키워내야 한다. 지금 우리 신학생들은 군대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한 나이에 적은 사례를 받고 7,80%의 학생들이 영남권에서 천안을 매주 오르내리며 매달 수천만원의 교통비를 지불하는 고통을 당하고 있다.
교회가 예산 1%가 아니라 2%라도 지원하여 교회가 필요로 하는 신학생 전원에게 전액 장학금과 생활비를 지원하여 최소 1년만이라도 전적으로 신학수업과 훈련에 임하게 하여 우리 세대보다 훨씬 나은 지도자로 양육해 내는 일을 논의하는 것이 오히려 미래를 위하여 필요한 일이다. 현재 본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목양장학회가 일년 7명 정도 학비와 생활비를 1년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지원을 받은 학생들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고 대단히 고마워하고 있다. 이제 온 교회가 나서서 노회가 추천한 학생에 대하여서는 해노회가 교육과 훈련에 필요한 모든 경비를 전액 담당하는 것을 통해, 신학훈련 과정의 틀을 완전히 바꾸는 대담한 개혁에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신학교의 지원에 대한 근본 원칙
앞서 말한 것을 지나친 이상이라고 말한다면, 현재 상황으로는 총회의 재정 상황이 달라졌으니, 1% 지원금 제도를 만들던 30년 전의 정신으로 총회가 일반재정 예산으로 1%, 신대원 지원금으로 0.4~5% 정도 책정한다면 적절한 액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농담이라도 신대원으로 하여금 스스로 살아남으라고 하지 말아야 한다. 고신 목사후보생은 반드시 고신 총회의 사랑을 받고 자라야 한다. 그래서 고신의 정신을 대대에 이어가도록 해야 한다. 목사를 제대로 키우기 위한 사랑과 헌신과 지원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빠른 시간 내에 신대원생들의 등록금을 현재 보다는 절반정도로 줄여 학생과 교회에 부담을 덜어주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신학생들이 재정규모가 적은 교회에서도 헌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신학생들의 등록금이 너무 높아 전도사를 볼 수 없는 교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총회가 신학대학원을 한없는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둘이 믿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는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다. 이사회와 총회를 적대적 관계로까지 상정해보는, 전혀 정상적이지 않은 상상은 버리고 (제도를 조금만 손보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총회의 정신을 따르는 이사회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관계를 만들어 모두가 하나의 목표로 나아가는 아름다운 고신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 전에 차분히 논의를 이어갈 수 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신학교의 변화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를 기다려야 할 것 같다.
2011년 09월 0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