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주일 저녁예배가 사라졌다?
“주일저녁예배, 다음세대 물려줘야 할 유산”
오정호 목사, 한국복음주의협의회 기도회서 역설
2011년 02월 17일 (목) 07:44:54 전정희 gasuri48@amennews.com
대전 새로남교회 오정호 목사가 최근 “한국교회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주일 낮 예배는 각 부서별로 나누어 드린다”고 지적하고 “한국교회 부서통합 주일저녁예배 회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에게 허락하신 축복을 유지·발전·공유하는 일이며, 다음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영적 유산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월 11일 서울 역삼동 화평교회에서 열린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조찬기도회 및 월례회에서 오 목사는 “다음 세대는 전 세대의 영적인 삶을 보면서 배운다. 만약 주일 낮 예배를 드림으로 성도의 예배의무가 종결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다음 세대를 믿음의 견고한 세대로 세울 수 있겠는가”라며 “한 세대 전만 하여도 주일저녁예배는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대학?청년부가 참여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지만 지금은 장년부조차도 주일저녁예배를 소홀히 하는 형편이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오 목사는 “주일저녁예배는 세대 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신앙의 세대계승을 이루는 가장 축복된 현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모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자라난 세대가 예배의 자리를 수호할 수 있으며, 주일 저녁예배가 사라지는 현상은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영적지도자들과 성도들의 영혼에 깊은 주름을 지게 한다는 설명이다.
“한국교회는 주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고백하지만 정작 예배하는 삶에 있어서는 주님의 의중을 살피기보다 손발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 같습니다. 한국교회 대다수의 성도들이 일주일 168시간 가운데서 주일 낮 예배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신앙생활의 역동성은 사라져 버리고 거의 연명하는 수준으로 전락하는 아픔을 경험합니다. 영적인 기드온 3백 용사를 세우기 위해서는 주일 낮 예배만으로 불가능합니다.”
오 목사는 또, 모든 세대가 참여하는 주일저녁예배에는 개교회주의의 악습을 무너뜨리는 장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오늘의 한국교회의 약화를 가져온 병폐중의 하나가 개 교회주의와 오염된 교단중심주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연합과 일치의 열매를 맺어야 할 한국교회가 경쟁과 동반추락의 끔찍한 ‘들포도’를 맺게 됐다는 지적이다.
“저녁예배시간은 이웃에 있는 목회자를 초청하여 예배드리는 강단교류를 통해 개 교회주의의 악습을 무너뜨리게 됩니다. 또한 도시교회는 농촌, 어촌, 산촌의 형편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습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고백과 간증을 접하는 것은 물론 대형교회와 소형교회 사이의 가슴 따뜻한 교류를 통하여 서로를 축복하며 격려하는 연합과 일치 상생을 경험하는 현장으로 주일저녁예배가 소중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은 오정호 목사의 발제문 전문이다.
주일저녁예배의 유익 / 히브리서 10장 24~25절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1. 주님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예배
기 독교는 율법주의를 넘어선다. 해야만 하는 당위는 은혜의 열매가 아니다. 오히려 자발적인 마음으로 주님사랑에 감읍하여 주님께로 가까이 나아간다. 주께 가까이함이 네게 복이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이 모든 표현은 성도의 삶을 이끄는 것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임을 깨우쳐 준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에 대한 성도의 반응 역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예배는 성도의 주님사랑의 최고봉이다.
한국교회 선교 초기부터 믿음의 선조들은 예배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생각했다. 온전한 주일성수에는 온전한 마음과 온전한 시간 그리고 주님과 성도들과의 온전한 연합을 포함한다. 주일저녁예배는 오직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신을 주님의 제단에 거룩한 제물로 올려드린다. 주님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는 예배는 허한 예배이며 오직 진정한 주님사랑만이 이웃과 자신의 직분에 대한 충성으로 열매 맺을 것이다. 주님사랑의 순도와 예배의 순전성은 함께 나아가기 때문이다.
2.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훈련으로서의 예배
성도의 세속화와 편리주의 추구는 맞물려 있다. 육체는 편안함을 갈망한다. 만약 육체가 원하는 대로 예배의 시간과 횟수와 방법을 정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예배라는 뜻 그대로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은 경배를 의미할 뿐 아니라 자기 부정을 말하기도 한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훈련받기를 싫어한다. 그리스도인들이 육체가 이끄는 대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방치하면 그의 삶에서 예배는 온대간데 없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도 예배자를 찾고 계시는 주님 앞에 발견되는 예배자로 자신을 세우기 위해서는 때로는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영적인 전투와 훈련이 필요하다. 특히 젊은 세대를 예배의 자리로 강력하게 이끌지 아니하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예배를 상실한 어두움에 사로잡힌 세대가 될 것임은 자명하다. 복음의 확산을 위하여 문화적인 감각을 채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시대의 정신과 문화적인 침투에 의하여 예배를 내어주게 되면 교회와 성도는 본질을 탈취당하는 것이다.
3. 신앙의 세대계승의 현장으로서의 예배
현재 진행되고 있는 주일 낮예배는 각 부서별로 나누어 드린다. 혹 세대 통합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있지만 희소한 형편이다. 다음 세대는 전 세대의 영적인 삶을 보면서 배운다. 만약 주일 낮예배를 드림으로 성도의 예배의무가 종결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다음 세대를 믿음의 견고한 세대로 세울 수 있겠는가. 한 세대 전만 하여도 주일저녁예배는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대학?청년부가 참여하는 것이 당연시 되었지만 지금은 장년부조차도 주일저녁예배를 소홀히 하는 형편이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열정과 성실을 다하여 목회하는 영적지도자들의 대부분이 교회에서 행해지는 모든 공적예배를 존중한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한 말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요단강을 도하할 때 거기에서 12돌을 취하여 다음세대의 영적 랜드마크로 삼았다. 하나님께서는 전세대의 신앙이 다음세대로 계승되기를 간절히 원하신다. 주일저녁예배는 세대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신앙의 세대계승을 이루는 가장 축복된 현장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 부모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고 자라난 세대가 예배의 자리를 수호할 수 있다. 주일 저녁예배가 사라지는 현상은 다음 세대를 바라보는 영적지도자들과 성도들의 영혼에 깊은 주름을 지게 한다.
4. 교회의 연합과 일치를 경험하는 현장으로서의 예배
오 늘의 한국교회의 약화를 가져온 병폐중의 하나가 개 교회주의와 오염된 교단중심주의였다. 이로 말미암아 연합과 일치의 열매를 맺어야 할 한국교회는 경쟁과 동반추락의 끔찍한 들 포도를 맺게 되었다. 이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저녁예배시간은 이웃에 있는 목회자를 초청하여 예배드리는 강단교류를 통해 개 교회주의의 악습을 무너뜨리게 된다. 또한 도시교회는 농촌, 어촌, 산촌의 형편을 공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의 신앙고백과 간증을 접하는 것은 물론 대형교회와 소형교회 사이의 가슴 따뜻한 교류를 통하여 서로를 축복하며 격려하는 연합과 일치 상생을 경험하는 현장으로 주일저녁예배가 소중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
만 약 주일저녁예배가 완전히 사라진다고 생각해 보라. 목회자들 사이의 교류는 끊어질 것이며 교파간의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예배를 통하여 마음의 장벽과 인식의 장벽이 무너지고, 서로를 포용하고 세우는 축복이 공유된다. 발표자는 성장기에 타교단의 목회자가 강사로 초청되어 메시지를 전하는 현장을 거의 경험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가 속한 교단이 강단 교류를 금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인 사실은 강단의 교류를 금하였지만 수많은 교단으로 분리되었다는 사실이다. 교회의 연합과 일치는 목회자가 되고나서의 문제가 아니라 유년기부터 훈련받아야 할 한국교회성도들의 영적 필수 과목이다. 그런데 가슴 아픈 일은 어떤 지역사회나 교단에서 중직의 책임을 맡아 섬기는 분들이 그 직분을 감투로 생각한 나머지 자신의 명예를 세우는 수단으로 직분을 사용한다면 이는 연합정신을 깨트리는 일임에 분명하다.
5. 공동체성 회복의장으로서의 예배
교회가 도시화 대형화 될수록 몸집은 커지나 공동체성은 약화되는 경향이 강하다. 한 성도에 대한 배려와 한 가정에 대한 존중이 얼마나 아쉬운 현실인가. 그런데 저녁예배가 활성화 되면 잊혀질뻔한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다수에 휩쓸렸던 가정들에 대한 재발견과 존중함이 경험된다. 주일 낮 예배에서 가족창이나 구역 혹은 소그룹의 만남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주일저녁예배는 따뜻하고 자유로운 분위기 가운데에서 한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축복을 공유할 수 있다. 최근에 출석하여 믿음의 한 가족이 된 교우들이나 최근에 주님을 만나 자신의 가슴속에 담겨 있는 주님 사랑의 표현이 서로 오픈되고, 인식되고, 축복하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일은 주일저녁예배의 또 다른 열매이며 역동성이다. 고향을 상실한 현대인들이 어머니 품같은 공동체를 경험할 수 있어야 그 영혼이 건강하게 성장하리라 믿는다.
6. 월드크리스천으로서 안목이 열리는 경험으로서의 예배
당대와 후대가 동시에 믿음으로 세계를 품어내기 위해서 선교현장의 풍부한 경험을 가진 선교사들과 선교기관 관계자들(캠퍼스, 군, 직장, 장애인, 노숙자, 빈민, 북한사역자, 청소년)을 초청하여 그들의 사역을 축복하고 격려하며, 함께 울어주고 웃어주는 경험을 통하여 사도행전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 모판이며 저수지 역할을 하는 군선교, 경찰선교, 낙도선교 관계자들을 정중하게 초청하여 그분들의 사역의 현장에서의 경험의 공유는 듣는 이로 하여금 하나님나라 지향적인 안목을 형성시켜준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이기적이며 자기중심적이라고 하는 깍쟁이 이미지를 확 벗어던지기 위해서는 젊은 날부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여야 한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면 그 구원의 향기는 선교현장에 있는 사역자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이다. 특히 중대형교회 담임목사의 왜곡된 제왕적이미지를 과감히 탈피하기 위해서는 선교현장의 열악한 환경 때문에 지치고 눌려있는 사역자들과 삼촌(농촌, 어촌, 산촌)목회자들과 따뜻한 교제의 악수를 나누어야 할 것이다. 예배는 서로에게 진정성 있는 만남과 자기반성의 기회를 제공한다.
7. 여호수아 세대(부교역자)를 세우고 축복하는 현장으로서의 예배
담 임목사와 부교역자들은 동일한 소명으로 사역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현재 담임목사와 부교역자 사이에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이끌어 주고 사역의 정도를 몸으로 보여준 것처럼 부교역자들도 배우고 익힌 것을 현장에서 예배인도자로 자신을 드려야 할 필요가 있다. 어찌 처음부터 숙련되고 탁월한 예배인도자의 모습을 가질 수가 있겠는가. 담임목사를 필두로 교회중직자들과 모든 성도들이 부교역자의 사역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축복 할 때에 부교역자 자신은 물론 온 교회가 영적인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후배들이 뻗어 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어깨를 내어 준다면 교역자들 사이의 추문은 미담으로 바뀔 것이다. 담임목사의 부교역자들에 대한 양보와 배려는 한국교회의 미래를 희망으로 싹트게 한다. 발표자 역시도 멘토로 모셨던 박희천 목사님과 은보(恩步) 옥한흠 목사님의 배려와 축복 그리고 삶의 모범이 목회현장에 녹아있는 것을 강하게 느낀다.
주님과 역사로부터 배우기를 원하며
한 국교회는 주님을 교회의 머리라고 고백하지만 정작 예배하는 삶에 있어서는 주님의 의중을 살피기보다 손발의 편안함을 추구하는 것 같다. 한국교회 대다수의 성도들이 일주일 168시간 가운데서 주일 낮 예배로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 결과 신앙생활의 역동성은 사라져 버리고 거의 연명하는 수준으로 전락하는 아픔을 경험한다. 영적인 기드온 3백 용사를 세우기 위해서는 주일 낮 예배만으로 불가능하다.
유럽과 미국교회의 역사는 우리들에게 거울이 된다. 거울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도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지 않으면 그것은 자신과 거울 둘 다를 속이는 일이다. 발표자는 한국교회 저녁예배 회복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에게 허락하신 축복을 유지 발전 공유하는 일이며 다음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영적 유산이라고 생각한다. 교회의 세속화는 예배로 예배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성도로 성도되지 못하게, 교회로 교회되지 못하게 하는 쓰디쓴 결과를 맛보게 된다. 한국교회가 주일저녁예배 회복을 통하여 영적인 성숙과 도덕적 주권의 회복 또한 경험하기를 소원해본다.
일상의 우선순위가 뒤죽박죽으로 말미암아 빚어진 영적인 카오스의 시대가 종결되고 국민들을 복음의 능력으로 견인하는 축복의 시대가 진정한 예배회복을 통하여 도래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