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 최삼경목사님 스스로 밝힌 '삼신론' 이단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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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최삼경목사님 스스로 밝힌 '삼신론' 이단 관련


본인에게 제기된 삼신론 시비에 답한다/ - 정통교회 삼위일체론은 무엇인가? - (2001년 11월호)

최삼경
sam5566@hanmail.net
월간 <교회와신앙> 발행인,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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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문제가 제기된 과정

윗트니스 리 측에 의하여 제기된, 본인에 대한 삼신론 시비가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결국 본인이 속한 예장 통합측 교단에서까지 공적으로 거론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제기된 자세한 배경과 과정은 후에 때가 되면 취급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본 호에서도 간단히 취급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누가 왜 본인을 삼신론자로 몰아가는가를 살펴보고, 이어서 과연 본인의 삼위일체관이 삼신론인가 살펴보려고 한다.


1. 누가 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하는가?

첫째,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처음으로 주장한 자들은 윗트니스 리(지방교회, 회복교회) 측의 사람들이었다.

본인은 지난 1996년 8월호부터 1998년 5월호까지 본 <교회와신앙>을 통해서 윗트니스 리 측 사람들(다니엘과 조동욱)과 상호 6차례씩 지상 논쟁을 한 바가 있다. 그 때 윗트니스 리 측에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윗트니스 리 측에서 본인을 삼신론자고 주장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 사상은 변형된 양태론이기 때문이다.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양태론으로 규정한 것은 예장 통합측과 고신측은 물론 국내외 여러 학자들까지 일치한다.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이란 무엇인가? 비록 삼위일체란 말을 사용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일신론이다. 그렇다면 일신론자가 정통 삼위일체관을 삼신론으로 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삐뚤어진 자로 바른 자를 바르게 잴 수 없고, 거짓된 눈으로 진실을 볼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것과 같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이단자가 주장한 것을 근거로 해서 본인에 대하여 정통교회에서까지 시비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둘째, 통합측 교단 안에서 문제를 제기한 첫번째 사람은 서울북노회의 이정환 목사였다.

자세한 내용은 후에 밝혀질 것으로 믿는다. 윗트니스 리 측이 본인에 대하여 삼신론자라고 시비를 한 후로 통합측 서울북노회의 이정환 목사가 본인 앞에서 직접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리고 그가 속한 노회에서 무려 3회에 걸쳐 본인에게 삼신론 사상이 있는지 연구해달라는 취지의 질의를 교단 총회에 하게 되었는데, 총회 임원회에서 그 문제의 질의 건을 다시 서울북노회로 반송해 버린 일이 있다. 그 후에 이것이 이단자들이나 그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본인을 공격하는 근거로 수없이 이용되었다. 그런데 2001년 총회를 앞두고 갑자기 부산동노회와 진주노회가 같은 문제로 본인에 대하여 연구해달라는 질의서를 제출했고 이단대책위원회는 이 문제를 연구하기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어찌된 일인지 최근에 전개된 이같은 일련의 과정들이 공식적인 발표도 있기 전에 성락교회 김기동 씨가 대표인 <주일신문>에 때로는 가장 먼저 소상하게 보도되는 등 이단신문 또는 이단옹호 성향의 교계 신문에 중계방송이 되듯이 연거푸 대서특필되었다.

부산동노회가 총회에 질의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사람은 현재 총회 사이비이단대책위원회 사이비이단문제 상담소장인 김창영 목사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이 본인의 문제를 총회에 올리게 되었는지 살펴보자.


2. 본인의 삼위일체 사상을 삼신론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첫째, 윗트니스 리 측의 이유와 목적

1)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으로 보면 정통교회 삼위일체관은 삼신론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에 대하여 더 구체적으로 선명하게 밝힐 것이다. 그러나 우선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하나님은 한 인격으로 한 영, 한 분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인격으로 세 하나님이 아니라 한 하나님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윗트니스 리, 하나님, 한국복음서원, 1991, 39, 281, 283쪽).

그렇기 때문에 통합측에서도 그의 사상을 변형된 양태론이라고 규정하였던 것이다.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다. …윗트니스 리가 비록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변형된 형태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명백한 양태론으로서, 그의 사상은 하나님의 전능성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또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것이다”(77회 통합측 총회 보고서, 1992년).

지난 번 <교회와신앙>을 통한 논쟁중에 윗트니스 리 측이 자신들의 삼위일체관이 옳다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정통교회 학자들의 글을 인용하였다. 그 중에 한 분이 이종성 교수요, 그리고 또 다른 분이 차영배 교수이다. 그런데 총신대 전 총장이고 현 서울성경신학대학원대학교 총장인 차영배 교수는 윗트니스 리 측을 이렇게 비판했다.

“몇 해 전에 최삼경 목사와 윗트니스 리측이 교리논쟁을 했다. 그 때 최삼경 목사가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이 변형된 양태론임을 밝히자, 반대로 윗트니스 리측에서는 최삼경 목사를 삼신론자라고 주장한 사실을 알고 있다. 그것은 결국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적 단일신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본다. 최목사가 논쟁 중에 ‘윗트니스 리의 주장처럼 한 분 하나님(성자) 안에 다른 두 분 하나님이 들어와서 한 인격이 된다고 한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하는 것이 되는데, 그것이 바로 양태론이다’, ‘그리고 성자 하나님만 육신을 입었다’라고 한 것을 가지고 삼신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양태론적 눈으로 보기 때문에 저지른 잘못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윗트니스 리 편에게 정통이라고 인정받는 삼위일체관이라면 반대로 문제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탄에게 인정받은 선은 하나님에게는 악이 되는 것과 같다.

2)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공격함으로 자신들의 삼위일체관의 이단성은 물론 다른 이단성들까지 은폐하는 데 효과를 거두기 위한 계산된 주장일 수 있다.

사실 논쟁시 본인은 본인의 삼위일체관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았으며, 그것을 상대편에서도 인정하였다. 그것은 지상논쟁을 한 목적이 오직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이 양태론이냐 아니냐를 밝히자는 것이었으며 정통교회 삼위일체관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했던 말을 가지고 삼신론이라고 시비를 하게 되었는데, 그 말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자세한 내용은 본론에서 취급하겠다. 어쨌든 윗트니스 리 측에서는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공격하면서 그들의 다른 이단성들 즉 인간관, 교회관, 기독론, 세례론 등에 나타난 이단성들을 은폐하는 데 효과를 거둔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그 후로 윗트니스 리의 다른 이단성은 숨겨지고 계속해서 삼위일체 문제에만 집중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통합측 교단 내에서 본인을 공격하는 몇몇 사람들이 계속해서 본인에게 문제를 제기함으로, 다른 이단들을 돕게 되는 것은 물론 윗트니스 리의 이단성들을 은폐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되었다고 본다.

둘째, 통합측 교단 내부 사람들의 이유와 목적

그렇다면 이단자들이 제기한 문제가 왜 교단 안에서도 제기되어야 했는가? 그 가능성을 분석해 보자.

1) 먼저, 이 문제로 교계가 시끄러우니 진실을 밝혀달라는 순수한 요구일 가능성이다. 형식적으로 맞다. 또 그렇게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도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이단성이 있으면 연구해야 하고 할 수 있다고 본다. 본인도 예외가 아니다. 법관도 경찰도 죄를 지으면 똑같이 처벌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들이 순수한 목적으로 총회에 질의를 하였다고 하여도 그것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본인도 그렇게 믿어지지는 않는다. 같은 교단의 사람이라는 점에서 진리 문제를 편가르기 식으로 하자는 것도 아니요, 인간관계를 내세워 문제가 있는데 그것을 은폐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 동안 교단 안에서 20여 종의 사이비 이단을 연구하는 데 핵심적으로 일하였고, 6년 동안 총회에서 어떠한 사례비도 받지않고 상담소장직을 수행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모두 이겼지만 무려 이단들로부터 20여 회의 고소를 당하였고, 현재 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 상담소장직을 맡고 있고, 그리고 교단을 초월하여 한국교회가 본인의 연구를 최소 최대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이렇게 함으로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이 이단들에게 어떻게 이용될 것인지 계산하지 못할 만큼 미련한 것일까, 아니면 순수한 것일까, 아니면 이단자 윗트니스 리를 이롭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본인을 제거하려는 데만 혈안이 된 것일까, 본인은 알 수가 없다. 어쨌든 인내로 그 결과를 기다려 보는 수밖에 없다.

2) 이단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이나, 적어도 이단을 유익하게 하더라도 어떻게든 본인을 매장하려는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일일 가능성이다.

이단과 관련되어서 그렇게 했든, 본인이 미워서 그렇게 했든 그들은 교단에서 본인의 삼위일체 사상이 삼신론이라고 규정된다면 기뻐할 것이고, 불행하게도 문제가 없다고 결론이 나온다면 속으로는 애석해 하겠지만 겉으로는 자신들이 본인의 혐의를 벗겨주었다고 생색을 낼 사람들로 여겨진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전제가 있다고 본다.

① 윗트니스 리가 주장하는 삼위일체관의 문제점도 모르고 있거나 심지어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정통교회의 삼위일체관으로 생각했을 가능성이다.

이들 중에 아무도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이 옳다고 말하지는 않았고, 설사 윗트니스 리가 옳다고 생각하더라도 그렇게 주장할 용기와 진실이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르든지 상관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② 그러나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이들이 바른 삼위일체론을 모르고 있거나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벗어나지 못하였을 가능성이다.

본인이 볼 때 이들은 정통교회의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본다. 만일 정확하게 이해했다면 그렇게 이단들에게 유익을 주는 일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김창영 목사(통합측 부산동노회 소속 목사, 총회 사이비이단문제 상담소장)라고 생각한다. 먼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김목사가 <연합공보>라는 신문에 한 말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김창영 목사는 이번 총회때 왜 이단대책위원회가 이 문제를 연구하려고 했는지 설명하려고 했다(서울북노회의 이정환 목사는 혹시 본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지 않을까 우려하여 강경한 발언을 하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김목사의 의도가 일면 순수하게 보이지만 그러나 다음의 기사를 보니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그의 말을 들어보자.

“통합 사이비이단대책상담소장 김창영 소장은 ‘97년 6월호 교회와 신앙에 실은 글로 인해 타교단이나 본 교단으로부터 신학적으로 의심받고 문제 제게되고 있다’면서 ‘일각에서 총회가 최 목사의 주장에 대해 아무 조치 없는 것은 총회를 매도하고 위상을 추락시키는 것이라고 지적됐다’라며, ‘이번 연구 결의는 삼신론에 대한 최 목사의 분명한 해명과 신학적 입장을 밝혀달라는 뜻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 소장은 ‘만일 최 목사가 연구진행 과정에서 자기의 주장을 고수하겠다면 문제는 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연합공보 2001년 9월 10일자 기사).

이 기사가 정확하다면 김소장은 본인의 삼위일체관이 삼신론이거나 삼신론적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바로 “만일 최목사가 연구진행 과정에서 자기의 주장을 고수하겠다면 문제는 다를 수 있다”고 한 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인은 김목사가 정통적인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김소장도 윗트니스 리처럼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지고 있든지 그것을 확실하게 벗어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기의 주장을 고수하겠다면 문제가 다를 수 있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본인이 무슨 주장을 고수하겠다고 하면 문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기다려 보겠다. 이 점에서 김소장이 원하면 지상논쟁이든 공청회든 얼마든지 할 수 있음을 밝혀둔다. 그도 본인의 후임으로 상담소장이 되어 많은 상담을 하였을 것이니 적어도 기독교의 기본 진리인 삼위일체만은 바르게 이해하고 있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그에게는 본인의 삼위일체관에 대해 시비할 권한이 있고, 본인에게는 이렇게 공청회를 제의할 권한이 없다고 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는다. 기회가 되면 이 점을 공론화하여 진행하도록 하겠다.

교단 안에서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 중에 구체적으로 본인의 무슨 주장이 삼신론에 해당된다는 것인지 그 내용의 구체성을 적시하여 공개적으로 언급한 사람은 없었는데, 이번에 그나마 어느 정도 내용을 말한 사람으로 김소장이 유일하다고 본다. 그러나 교단 외부에서 오직 내용 있게 본인의 삼위일체관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주장한 사람은 이단신문 외에 삼위일체에 대하여 무지한 한 언론인밖에는 없었다. 그는 아다나시우스 신조와 비교하여 본인의 사상에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도하였는데 이 문제는 본론에서 밝히겠다.

불행하게도 한국교회는 삼위일체에 대하여 양태론적 이해를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목회자들이 많다. 본인도 양태론적 이해를 벗어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본인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주장했는지 알지 못하고 또 삼위일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은 본인에게 삼신론 시비가 있는 것을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그리고 윗트니스 리 측은 그 틈을 이용하여 덕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인터넷을 통해서 벌어지는 토론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른 여러 이단측의 글이나 평소 이단옹호 성향을 보였던 신문을 보아도 그들이 요즘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본인은 이번 일이 삼위일체에 오해된 부분들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기대하고 믿는 바이다. 그러면 삼위일체가 무엇이며, 본인은 왜 삼신론자가 아닌지 밝히겠다.


본론: 본인을 삼신론 자라고 주장하는 것은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적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1. 무엇을 가지고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했는가?

먼저 윗트니스 리 측에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주장한 문제는 무엇인가? 그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 윗트니스 리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본인이 ‘그렇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자기가 자기에게 기도한 것이냐?’고 반문했더니 그것을 가지고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했다. 본인의 그같은 반문은 성부와 성자의 상호내재를 부정하는 말로서 삼위의 분리를 주장하는 말이 된다는 것이다.

둘째, 윗트니스 리가 한 분 하나님 안에 다른 두 분 하나님이 들어와서 한 인격이 된다고 주장하고 성부 성자 성령이 한 인격으로 한 영이라고 주장하기에, 본인이 ‘만일 한 영이란 말이 본질의 단일성을 가리키는 말이라면 맞다고 볼 수 있으나 윗트니스 리는 한 인격으로 한 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양태론이며, 성부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고 성자도 한 인격으로 한 영이고 성령도 한 인격으로서 한 영이다’고 하였다. 그러자 ‘인격으로 하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한 영이 아니라 세 영들이시다’고 변증한 본인의 말이 삼신론이라고 윗트니스 리 측에서 주장한 것이다.

과연 이것이 삼신론인가? 아직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나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진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일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겠다.

첫째,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신 기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하신 기도라고 하면 삼신론인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셨다. 그런데 윗트니스 리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한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것이냐고 윗트니스 리 측에게 반문했더니 그것을 가지고 본인을 성부와 성자의 상호내재를 부정하는 삼신론자라고 비판을 하였다. 그러면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한 기도였다고 해야 하고, 그래야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믿는 것이 된다면 정통교회 삼위일체론이 이단이고 윗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은 정통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무지의 극치요, 미련의 극치이다. 이는 양태론이 아니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말이다. 왜냐하면 기도하시는 예수님과 기도를 들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은 다른 인격(위격)이시기 때문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문제를 가지고 삼신론이라고 한다면 본인은 기꺼이 삼신론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는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이 삼신론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만이 아니라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을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삼신론자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본지 전 호(2001년 10월호)에서 삼위일체에 관해 글을 쓴 모든 학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리고 본인이 삼위 중에 예수님만 육신을 입으셨다고 하자 윗트니스 리 측에서 또 그 말을 가지고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주장하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성부수난설도 이단이 될 이유가 없다. 왜냐하면 예수님 하나님만이 십자가에 죽으신 분이라고 하면 상호내재를 부정하는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에서 아버지도 죽고 성령님도 죽었다고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역사적 교회는 성부수난설을 이단으로 정죄하였단 말인가? 그리고 성육신하신 하나님이 예수님이라고 할 것도 없다. 아버지 하나님의 성육신이라고 하여도 무관하게 된다.

물론 예수님이 성육신하실 때 거기에 아버지 하나님이 참여하셨고, 십자가에 죽으실 때 거기에도 참여하셨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육신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이시지 아버지 하나님이 아니다. 그런데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에 의해 보면 성부수난설이 이단이 될 이유가 없게 된다. 윗트니스 리든 교단 안의 어떤 사람들이든 본인이 겟네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하신 기도는 자기가 자기에게 하신 기도가 아니다고 말했던 것을 가지고 삼신론이라고 주장한다면 2000년 교회사에 가장 미련한 소리일 것이다.

둘째, 인격(위격)으로 하면 성부도 영이시고, 성자도 영이시고(비록 육체를 입으셨지만), 성령도 영이시고, 인격(위격)으로 하면 각각 영이신 세 영들이시다고 하면 삼신론인가?

본인 편에서 볼 때 서울북노회의 이정환 목사나 총회 상담소장인 김창영 목사가 본인을 삼신론자로 생각했다고 한다면 바로 이 말 때문일 것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무엇이 잘못이란 것인지 모르겠다. 삼위 하나님은 항상 한 영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인지,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떤 경우에도 복수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인지, 아니면 인격(위격)으로도 한 분이요 한 영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하나님을 ‘영’이라고 하면 안 된다는 말인지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윗트니스 리와 같은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진 자들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렇다면 다음의 문제들을 해결하면 자연히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물론, 또한 삼위일체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으로 믿는다.


2. 바른 삼위일체를 알게 하는 데 혼동을 일으키는 것들은 무엇인가?

첫째, 삼위일체는 신비로운 교리인가 아닌가?

삼위일체 교리는 신비로운 교리이다. 우리가 어떤 교리를 신비롭다고 할 때 그 진리의 깊이 때문에 하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신비롭다는 말은 맞다. 특히 ‘삼(3)위 일(1)체’ 중에서 구분성을 나타내는 ‘3’에서보다 단일성을 나타내는 ‘1’에서 신비로운 교리가 삼위일체이다. 그래서 루이스 벌콥도 “이 삼위가 그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 하나라고 하는 여기에 삼위일체의 참된 신비가 있다”고 지적하였다(신복윤 역, 루이스 벌콥, 기독교신학개론, 성광문화사, 1985, 71쪽).

그러나 본인은 삼위일체 교리보다 예수님의 양성 교리가 더 신비롭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어떻게 한 인격(위격) 속에 양성(신성과 인성)이 모자라지도 않고, 남지도 않고, 반씩 나누어져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변하지도 않고 온전히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삼위일체가 신비롭다는 말이 잘못 사용되고 있는 점이 많다는 것이다. 이 말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데 혼란스럽게 하는 요소가 있다. 즉 신비롭다는 말로 삼위일체 교리를 알 수 없는 불가지론적 교리로 여기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그 동안 알 수 없는 교리로 수많은 이단을 규정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의 삼위일체 교리라면 삼위일체 교리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특히 삼위일체에서 셋(3)의 의미와 하나(1)의 의미를 혼동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 말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하나(1)를 말하면 양태론이라고 하고, 셋(3)을 말하면 삼신론이라고 한다. 그래서 삼위일체는 하나도 되고 셋도 되는, 마치 손오공 같은 교리가 되는 것이다. 분명히 셋의 의미와 하나의 의미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는 하나이고 셋은 셋이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의 의미로 셋이라고도 하고, 셋의 의미로 하나라고도 하는 것이다. 특히 삼위일체를 양태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이 말이 사용되고 있는데, 본인을 삼신론자로 몰아가는 사람들도 같은 부류로 이해된다.

<교회와신앙> 2001년 10월호에 기고한 김명용 교수의 글에 본인도 동감한다. “그리고 삼위일체론이 이해가 안 되는 극난한 교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삼위일체론을 무언가 잘못 알고 있다. 삼위일체론은 사변도 아니고 이해가 안 되는 극난한 어떤 교리도 아니다. 단지 우리에게 삼위일체론이 무언가 잘못 왜곡되어 전달되어 있기 때문이다.”

둘째, 삼위 하나님은 한 영인가 세 영들인가?

본인이 ‘인격으로 하면 아버지도 한 영이고, 예수님도 한 영이고(육체를 입으신), 성령도 한 영이요, 결국 인격으로 하면 세 영들이시다’라고 했던 말을 가지고 윗트니스 리 쪽에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했고, 또 교단 안의 몇몇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또 최소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성부 성자 성령을 영이라고 하는 것이 문제인가?

이종성 교수는 “하나님을 영이라”고 하면서 첫째는 “야훼신이 참 신이요, 영원자요, 완전자라면 물질적 존재일 수 없다. 그는 영적 존재라야 한다”고 했고, 둘째는 “영은 모든 존재의 생명의 근원이다”고 했고, 셋째는 “영은 삼위일체 신의 존재 형식을 의미한다”고 했으며, “신은 처음부터 그 존재 방식에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는 삼위일체라는 형식이요, 다른 하나는 영적 존재라는 것이다. 야웨신이 영적 본질을 가지고 있었기에 물질이 가지는 모든 제약성을 벗어 버릴 수 있었다. 그 결과 야웨신은 가장 순수한 영적 존재다”고 했다(이종성, 조직신학개론, 종로서적, 1986, 63-65쪽). 칼빈도 기독교강요 제1권 13장 2절에서 “하나님의 본성은 측량할 수 없으며 영적이다”고 하였다. 그렇게 볼 때 성육신 후 예수님은 육신을 입으셨지만 그러나 삼위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영이시라는 말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학자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그것이 본인에 대한 삼신론 시비와 직접적인 관계는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아니면 ‘세 영들’이라고 복수로 표현했기 때문에 문제란 말인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세 분’이라고 표현한 그것도 삼신론일 것이다. ‘세 분’이란 표현은 문제가 없고 ‘세 영들’이란 표현은 문제가 있다는 말은 네모난 삼각형 같은 말이 될 것이다. 하나님을 복수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인가?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성경에 하나님을 “우리”라는 복수로 기록하였다(창 1: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되어 있다.

더욱이 본인이 윗트니스 리 측과 논쟁을 하면서 이렇게 말한 것은 분명히 다음과 같이 제한적 의미로 한 말이었다. “(윗트니스 리가 삼위 하나님을 ‘한 영’이라고 했던 것이) 삼위 하나님의 인격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성을 말하는 것이라면 역시 맞는 말이지만 그러나 인격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히 양태론이다.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을 세 영이 아니요 한 영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점과(하나님의 경륜, 16쪽), 그리고 삼위 하나님을 한 인격의 하나님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과(세 부분인 사람의 생명 되시는 삼일 하나님, 52쪽), 또한 Daniel Towle와 조동욱 씨는 그것이 옳다고 계속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윗트니스 리가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가졌다는 증거라고 본다”(교회와신앙 1998년 5월호, “윗트리스 리의 사상으로 한국에는 많은 이단들이 생겨났다”).

논쟁시 본인은 분명히 “인격(위격)으로 하면”이란 말로 여러 번 제한하였다. 그러함에도 본인이 삼신론자라고 한다면 인격(위격)으로 해도 ‘한 영’이라고 하는 윗트니스 리의 양태론적 주장이 맞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말한다. 본인은 윗트니스 리가 ‘한 영’이라고 한 말이 본질의 단일성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문제를 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 인격으로 한 영이라고 하기에, 단지 인격(위격)으로 하면 세 영들이라고 변증한 것이다. 이것이 삼신론이라면 인격(위격)으로 해도 한 영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이 될 것이고, 그러면 그것이 바로 양태론이 아니고 무엇인가? 윗트니스 리의 잘못된 삼위일체론을 변증할 때 이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변증할 수 있는 무슨 방법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통교회에서 삼위일체를 ‘영들’이니 ‘영’이니 하는 그런 소리를 별로 하지 않는다. ‘영’이라고 하면 주로 성령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인은 단지 윗트니스 리가 삼위 하나님을 한 인격으로 한 영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에 대해 변증하기 위해서 했던 말인 것이다.

셋째, 삼위 하나님은 한 분인가 세 분인가?

‘한 분’이란 말도 가능하고 ‘세 분’이란 말도 가능하다. 삼위 하나님에 대하여 어느 측면에서 사용하느냐에 따라 다 가능한 말이다. 칼빈도 ‘한 분’이란 말도 하고 ‘세 분’이란 말도 하였다(기독교강요, 13장 2. 16. 17.). 즉 인격(위격)으로 하면 ‘세 분’이라고 할 수 있고, 본질을 나타내는 말로는 ‘한 분’이란 말도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 알아야 할 것이 두 가지다. 먼저 ‘분’이라는 우리 나라 말이 인격(위격)을 표현하는 말로 이해되기 쉬워서 혼동을 일으킬 소지가 크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세 사람이 내 집에 왔을 때 우리는 “세 분이 왔다”고 한다. 각각 독립된 인격을 가진 사람 셋이 왔다는 말이 된다. 그런 점으로 볼 때 한 분이란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본다. 칼빈의 기독교강요 원문에는 한국 말의 ‘분’이란 개념이 없다. 단지 ‘Oneness’ 이며 ‘Th- reeness’일 뿐이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 나라 말로 ‘분’이라고 하기 때문에 ‘일신’ 내지는 ‘유일신’과 삼위일체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칼빈도 하나님이 ‘한 분’(Oneness)이심도 강조하지만 또한 ‘세 분’(Threeness)이심도 말하였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시고, 성령은 아들이 아니다. 세 분은 독특한 특성에 의해 구분된다”(기독교강요, 1권 13장 2).

본지 전 호(2001년 10월호)에 기고한 학자들의 글을 다시 인용해 보자.

“야웨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부신(父神)과 자신(子神)과 성령(聖靈)이라고 하는 세 분으로 계신다. 세 분이라는 말의 원어는 ‘트레스 페르소나에’(tres personae - 서방교회)라는 말인데 한국을 위시하여 한문문화권에서는 ‘페르소나’를 위(位)라고 번역하여 쓰고 있다. 한 인격적 실체를 가진 존재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야웨로서의 부신과 그리스도로서의 자신과 영으로서의 성령이 각기 고유의 존재실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이종성 교수, 기독교학술원 원장).

“요컨대 삼위일체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구별되면서도 그 본질과 속성이 모두 하나라는 것, 환언하면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세 분이시면서 모두 참 하나님이시며, 그 권능과 영광이 동등하시므로 ‘일체’ 곧 ‘하나’이시다”(차영배 교수, 전 총신대 총장).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성부), 아들 하나님(성자), 성령 하나님(성령) 세 분이시나 한 하나님이시며, 한 하나님이시나 세 분으로 계시며 일하신다”(김영재 교수,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전 세계 교회에서 가장 권위 있는 정통 신조인 니케아 - 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한국교회 성도들의 일반적인 믿음과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 세 분이심을 선언하고 있다. 즉 성부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성자이신 하나님이 계시고 성령이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선포하면서 이 세 분 하나님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이 신조는 이 세 분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 어느 곳에서도 선포하고 있지 않다. 정통 삼위일체론의 결정적인 신조인 이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는 하나님께서 세 분이심을 강력하게 선포하고 있을 뿐 하나님께서 한 분이라고는 조그마한 암시도 주고 있지 않는 것이다”(김명용 교수, 장신대).

본인은 삼위 하나님이 하나로 일하시고 ‘본질적으로’ 여러 분이 아니고 한 분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윗트니스 리 측과의 논쟁중에 이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한 바가 있다. 그런데도 양태론자로 판명된 윗트니스 리에 대해 변증하는 과정에서 나온 제한적인 말로 본인을 삼신론자라고 하는 것은 이단을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단연구가를 정죄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의심스럽다. 세상에 기독교 안에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라면 누가 하나님의 본질의 단일성을 부정한단 말인가? 본인은 칼빈의 “삼위가 존재한다는 것과 이 삼위의 각자가 바로 완전히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여러분이 아니고 한 분이시라는 우리의 확신은 결코 허물어뜨릴 수 없다”(기독교강요, 1권 13장, 3.)는 말을 전적으로 동의하고 또 본인의 신앙으로 고백한다.

넷째, 그렇다면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는가?

본인에 대한 몇몇 비판자들은 요즘 아다나시우스 신조에서 본인을 공격할 좋은 말을 찾아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본인의 “세 영들”이란 말과 아다나시우스 신조에서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라는 말을 비교하여, 아다나시우스 신조로 볼 때 본인이 마치 삼신론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사람은 강춘오라는 교계 언론인인데, 그가 발행하고 있는 <교회연합신문>이 그같은 내용으로 보도한 기사가 요즘 특별히 인터넷 상에 유포되면서 이단들의 귀를 달콤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는 것은 두 가지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먼저 삼위일체의 구별성의 의미와 단일성의 의미를 분별하지 못하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둘째는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의미도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게 볼 때 <교회연합신문>의 보도는 삼위일체를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거나 아니면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벗어나지 못한 사람의 소행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그렇기 때문에 본인의 말과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비교하여 그같은 기사를 쓴 것이라고 본다.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은 인격(위격)의 측면에서 한 말이 아니다. 이 말을 ‘인격 또는 위격으로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로 이해했다면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소치이다. 이 신조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은 본질의 단일성을 뜻하는 것임을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아도 알 수 있고, 삼위일체의 분리성과 단일성의 관계만 정확히 이해하고 있다면 쉽게 알 수 있는 문제이다. 아다나시우스 신조를 직접 살펴보면 그것이 본질의 단일성을 가르키는 것임을 명확히 알 수 있다.

“인격을 혼동해서도 안되고, 본질을 분리해서도 안된다. 한 분 성부와 또 다른 분 성자와 또 다른 분 성령이 존재한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동일한 신성과 동등한 영광과 함께 영원한 위엄을 가진다. 성부의 본성이 바로 성자와 성령의 본성이다. 성부도 피조되지 않았고, 성자도 피조되지 않았고, 성령도 피조되지 않았다. 성부도 무한하고, 성자도 무한하고, 성령도 무한하다. 성부도 영원하고, 성자도 영원하고, 성령도 영원하다. 그러나, 영원한 본질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그와 같이, 피조되지 않은 본질이나 무한한 본질도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성부도 전능하고, 성자도 전능하고, 성령도 전능하다. 그러나 전능한 본질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이와 같이, 성부도 신이고, 성자도 신이고, 성령도 신이다. 그러나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이와 같이, 성부도 주님이고, 성자도 주님이고, 성령도 주님이다. 그러나 주님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

물론 위의 말에서 “신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이나 “그러나 주님은 셋이 아니라 하나만 존재한다”는 말만 형식적으로 보면 본인의 말과 상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만일 위의 아다나시우스 신조의 의미가 인격(위격)이 하나임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첫째, 먼저 통합측 교단의 윗트니스 리에 대한 정죄가 잘못되었다고 해야 한다. 윗트니스 리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은 한 인격으로 한 분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윗트니스 리의 말에 잘못이 전혀 없게 된다.

둘째, 사벨리우스도 이단이 아니라고 해야 한다.

셋째, 삼위일체는 하나도 되고 셋도 된다는 귀신 같은 교리란 말이 된다. 삼위일체 교리를 말하면서 인격(위격)으로 해도 ‘셋’이라고도 하고 또 ‘하나’라고 해야 한다면 삼위일체는 모호하고 알 수 없는 교리가 된다. 한 마디로 귀신 같은 교리가 되고 말 것이다.

넷째, 정통 교회의 삼위일체를 믿고 주장하는 학자들과 신자들도 다 삼신론자란 말이 되고 말 것이다.


결론: 인격(위격)과 본질을 명확하게 구별하는 것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인격(위격)과 본질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한다. 동방신학에서는 구별성의 의미로 ‘위격’이란 말을 사용하였고, 서방신학에서는 ‘인격’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여기 구별성의 의미로 사용한 위격(인격)이란 말을 단일성을 가리키는 본질이란 말과 혼동하여 사용하는 것이 문제이다. 예를 들어보자. 남자와 여자가 인간으로서 차별이 없다는 말을 할 때 “남자와 여자는 인격적 차이가 없다”고 한다. 이 말을 삼위일체에 적용하여 본다면 분명히 단일성의 의미로 인격이란 말을 사용한 것이 된다.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비록 인격이란 말을 본질의 단일성을 나타내는 말로 잘못 사용하여 결국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이 되어 버리는 실수를 하는 경우가 있었음을 지적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것이 서방신학의 근본 정신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물론 위격이란 말도 본질의 단일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하게 되면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서방신학과 동방신학이 나누어지기 이전에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을 이단으로 규정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명한 것은 동방신학이나 서방신학이나 모두 양태론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끝까지 구별성을 나타내는 말(위격, 인격)과 단일성을 나타내는 말(본질)을 혼동하지 않는 것이 삼위일체를 바르게 이해하는 핵심이라고 본다. 그러면 삼위일체 교리는 쉬워지고 또 명료해진다고 본다.

어쨌든 이 모든 것들은 진리를 밝혀 가는 하나의 과정이 되리라 믿는다. 본인은 본인의 문제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바른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며 결과를 지켜 보려고 한다.

(월간 <교회와신앙> 200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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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01.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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