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를 이해한 논문 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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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생된 영은 범죄하지 않는다를 이해한 논문 한편

"닭의 울음소리“를 통하여 주님의 말씀으로 형성되었던 믿음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닭의 울음소리”를 통하여 들려온 주님의 말씀이 재생(revival)되어 그의 가슴을 때리므로 통곡을 하였습니다. 이는 주님에게 맞았던 예방주사로 인하여 형성된 “믿음의 항체”가 작동하는 순간입니다.

둘째가 비디오 시스팀(video system)인 “주님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베드로는 결박되어 끌려하시는 주님의 뒤 보습을 보는 순간, 주님께서도 끌려가시면서 뒤를 돌아다보셨습니다. 이때에 주님의 시선과 베드로의 시선이 마주쳤고, 그 순간 영적인 불꽃이 튀었습니다. 주님의 강력한 시선의 능력에 압도되는 순간 베드로의 가슴은 벼락에 얻어맞듯 충격을 받고 주를 부인한 죄책감을 못 이겨 그대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처절한 자신을 바라보고 통곡하는 베드로의 회개장면입니다. 이렇게 하여 베드로는 가룟 유다와 같은 심각한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여 회복되었는데, 이 베드로의 죄는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결론]
간단히 결론을 내리자면, 중생한 사람은 자범죄는 지을 수 있어도, 원죄와 같은 죄를 짓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있고(요일 3:9), 또 주께서 저를 “지키시기 때문”에(요일 5:18) 원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중생한 사람은 근본적으로 원죄와 같은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로 거듭났기 때문입니다. 단번에 주신 믿음으로 해결된 원죄가 다시 살아날 리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육신을 벗어버리는 순간까지 중생한 사람들도 자범죄는 지울 수 있지만, 원죄와 같은 죄를 지을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원죄는 주님의 십자가의 공로에 의하여 단번에 완전히 그리고 영원히 해결되지만, 자범죄는 육성에 끌려 죽는 날까지 반복해서 지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옥에 들어가는 것은 원죄에 의한 것입니다. 원죄를 해결 받은 사람의 자범죄는 회개가 가능하며, 근본적으로 그 죄로 인하여 궁극적으로 타락하지 않으며 멸망하지 않습니다(눅 22:3; 요 6:39, 40; 10:28, 29; 17:2, 6, 11, 12; 롬 8:30; 11:29; 빌 1:6; 살전 5:23; 살후 3:3; 벧전 1:4, 5; 요일 3:9; 5:18).

물론,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는 죄 즉 회개가 되지 않는 죄가 있는 반면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원죄와 상관없는 자범죄)도 있는 것입니다. 전술한 히브리서의 구절들은 원죄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들로 사역을 위한 성령의 은사는 맛보았으나, 근본적으로 중생을 위한 성령의 은혜를 받지 못하여 하나님의 자녀(장자)의 명분을 얻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혹자는 그러면 중생한 사람들은 맘 놓고 죄를 지어도 되지 않겠느냐? 고 반문하지만, 사실 중생한 사람은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으며, 그 속에 성령이 내주해 계시기 때문에 범죄 할까 더욱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Systematic Theology (Professor)
Rev/Dr. Paul 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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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댓글들)

물보라 | 2016-07-28 07:21:24

궁금한데요!
(결론) 그러나 이 두 구절들은 성령으로 거듭나는 “중생”의 은혜를 받은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다만 가룟 유다와 같이 성령의 외적인 “사역은사”를 받고 타락의 길을 가는 “배교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결론을 내셨는데 그러면 중생하지 않은 사람도 성령의 은사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외적인 은사는 구원과 상관 없이도 주어진다는 건가요?



PAUL | 2016-07-28 13:13:18 삭제

위의 글 내용을 자세히 읽어보시면 그것에 대한 답이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물론 신학적인 전문용어로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부르시는 두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는 외적 부르심(external calling)이 있는데 이것은 중생과는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주시는 경우입니다. 교인들 중에 교회에서 열심히 일한다고 다 중생의 성령을 받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내적부르심(inner calling) 즉 중생을 해야 구원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알곡과 죽정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을 사람은 중생과 함께 외적인 은사를 받게 됩니다. 그러나 주를 위해 열심이 있다고 해서 다 중생한 것이 아닙니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주를 위해 열심이 일을 하고도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마 7:21~23; 히 6:4; 히 10:26).



물보라 | 2016-07-28 18:19:56 삭제

<정말 잘 정리가 되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또 하나의 궁금함인데요, 중간에 보면
이러한 관계를 믿음과 회개라는 차원에서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는 믿음으로 주님을 따랐고 주의 사역에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의 믿음과 베드로의 믿음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믿음은 중생과는 관계가 없는 사역을 위한 믿음에 불과하지만, 베드로의 믿음은 중생의 믿음과 사역의 믿음을 함께 가지고 있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되어 있는데
그러면 가룟유다에게 주어진 믿음은 사역을 위한 믿음인데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주어진 믿음인가요?



PAUL | 2016-07-28 22:54:08 삭제

성령의 능력으로 주의 일을 하고도 중생하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가룟 유다입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을 가장 가까이서 재정을 맡아 일하며 다른 제자들과 같이 나가서 전도를 하고 능력을 행했습니다. 주님께서 가롯 유다를 비롯하여 제자들에게 능력을 부어주어 전도하며 능력을 행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눅 10:17). 그러나 예수께서는 능력행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구원받는 것으로 기뻐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눅 10:18~20). 가룟 유다는 열 두 사도들의 한 사람으로 불림 받아 주의 일을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대로 차라리 나지 않았다면 좋았던 사람입니다(마 26:24). 신학에서 이러한 사람을 유기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베드로와 같은 사람을 선택된 사람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오로지 중생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요 3:3~5). 극단적인 예로 우리가 보통 자살한 사람은 반드시 지옥에 간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단 마디로 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예로 뇌에 손상을 입어서 치매환자와 같이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살하는 예도 있기 때문에,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만 아시는 문제로 우리가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중생하지 못했다면 구원 받지 못한다”라고만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했다고, 주여 주여 했다고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는 중생을 해야만 구원을 받는 것으로 이것이 구원의 표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21~23).



김평강 | 2016-11-19 21:36:21 삭제

중생한 자들도 '한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이단 사설에 오염되면 자동적으로 타락하게 됩니다.



PAUL | 2016-11-25 17:21:32 삭제

중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중생의 참뜻을 살펴보시고
성경말씀의 지원을 받아보시기 바랍니다.
님의 말씀대로라면, 한국교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로교회 교인들은 모두 다 이단일 것입니다.
설령, 님과는 달리 중생의 교리를 믿는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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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식 02.18 00:00  
글을 읽는 중에 글쓴이가 사용하는 "원죄"와 "자범죄"가 특이한 개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중생한 사람은 "원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않는다. 사실 원죄란 아담이 온 인류의 조상이라는 독특한 지위에서 범한 죄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생한 사람이든 혹은 그러지 않든 아담을 제외한 누구든지 원죄를 범할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습니다. 아담을 제외한 그 후손이 범하는 죄는 모두 자범죄입니다. 원죄를 범할 수 없어요. 

또 원죄와 구별되는 자범죄를 범해도 지옥에 가지 않는다는 논리는 무엇에서 온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모든 죄에 대한 삯은 사망입니다. 그 죄를 범한 자에 대한 상응한 댓가이죠.

하나님께서는 원죄이든 자범죄이든 모든 죄를 십자가에서 해결했습니다. 인간은 아담 안에서 범죄를 했기 때문에 원죄를 짊어지고 태어납니다. 그리고 이 땅에서 죄를 짓습니다.  그 자범죄도 십자가에서 해결했어요.

하나님의 속죄 방식은 공의로서 죄의 삯인 사망을 인간에게 선고하고 집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에게 전가하고 예수를 처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죄가 해결되는 것이죠. 하지만 인간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을 했어요. 이 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의 몸이나 혼이 예수와 함께 부활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에 심겨져 함께 부활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한테는 두 개의 자아가 있습니다. 옛사람과 새사람입니다. 옛사람은 육체의 욕망을 행하고, 새사람은 성령의 의지를 행합니다. 죄를 범하는 것은 오직 옛사람이지, 새사람이 아닙니다. 새사람은 성령과 하나된 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 소속된 자이므로 죄를 범할 수 없어요.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보는 것은 옛사람입니다. 이 옛사람은 이미 죽은 것으로 간주되었어요. 지금 옛사람이 짓는 죄는 죽어가는 부패의 흔적일 뿐입니다. 결국 이 옛사람도 그 댓가를 치룹니다. 생명에게 삼킨 바가 되는 것이지요. 혼적인 몸으로 심고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몸의 구속이 오면 죄를 짓던 옛사람도 사라지기 때문에 더 이상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옛사람이 지금 죄를 짓고 있고 이것은 분명 자범죄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성령과 하나된 새사람이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새사람이 온전히 몸까지 지배하게 된다면, 옛사람은 존재 자체가 사라졌으므로, 죄를 짓는 존재가 없게 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