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장동관님께 마지막으로 답하며.... - 김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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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장동관님께 마지막으로 답하며.... - 김주석


글쓴이 : 김주석 날짜 : 2003/11/19 조회 : 93

"장동관"님께 마지막으로 답하며...





예수 그리스도님 안에서, "장동관"님께...


"장동관"님께서 주신 답변을 잘 보았습니다. 먼저, 이러한 교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요, 물론 제 마음은 님께서 주신 답변에 대한 저의 생각을 상세하게 정리하여 응답해 드리고 싶지만, 이미 말씀드린 대로 심신상의 어려움과 또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아이들의 총회를 준비해야 할 일이 좀 시급하기 때문에, 이제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하고서 이만 물러날까 합니다. (그리고, 님의 "이의" 제기에 대하여 답변되어야 할 내용들은 기존의 "신앙고백" 문서들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넓으신 아량으로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답하기에 앞서, 적어도 기본적인 전제들에 관하여는 불필요한 논박을 약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님께서는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무오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셨지만, 제가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중대한 오류"라는 거창한 제목으로 제기하신 님의 "이의"가 틀렸다는 것이었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무오하다"는 주장을 펼친 게 아니었습니다. 또한, 그런 유의 말씀은 드린 기억도 없고요.

게다가, 그렇게 님께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하, "『WC』"로 약기)에 대한 저의 신실함의 도가 지나치다고 판단하셨다면, 적어도 제가 옹호하고 있는 『WC』의 내용 전반에 관한 이해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님을 위해서라도, 이 부분에 대한 저의 신앙고백을 아래에다 적어 드립니다.

( WC』I, 10.) "모든 종교적 논쟁의 확정, 교회회의의 모든 결정과, 고대 저자들의 의견과 사람들의 교훈과, 개인의 정신문제들을 검토하고, 그 선고에 따를 수밖에 없는 최고의 심판자는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외에는 아무도 없다."







이제, 우회도를 취하지 않고, 막바로 님의 반론(이하, "▶"로 표기)에 대한 저의 답변(이하, "☞"로 표기)을 적고자 합니다. 사고의 편이를 위해, 님의 반론 순서대로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요 1:17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받았고,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겨났다.

☞ 이 구절에 대한 이해를 위해, 앞의 글에서 소개해 드린 "『The Covenantal Gospel』, pp. 70-74"(『반더발의 성경언약 연구』, pp. 149-155)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경적인 고찰이 가능하시다면 『요한복음』에서 "은혜"와 "진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한번 살펴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저는 적어도 "신앙고백"에 관심을 기울이는 님의 자세를 귀하게 생각하였고, 또 그렇기 때문에 재고를 "요청"하면서 님을 위해 여러 가지를 소개해 드렸습니다. 하지만, 정작 님께서는 이리 저리 면밀하게 살피는 "심사숙고"는커녕 섣부른 판단과 반론만을 계속 제기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물러나는 마당에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당부드리고자 합니다. 문제가 어떠한 것이든 간에 "반론"을 제기하시기 전 제발 좀 심사숙고해 주셨으면 합니다.





▶ 안식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엘림과 시내산 사이에 있는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주신 율법입니다. 시내산 언약과 신광야에서 주신 안식일은, 모세를 통해 제정하신 같은 율법으로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창세 이후부터 율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안식일을 지켰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 이 부분과 아울러 님의 글 전반을 읽으면서 드는 저의 생각은, 도대체 "율법"에 대한 님의 "정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위와 같은 논법은, 죄송하지만, 님의 주경적 능력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게 만들기도 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편의상 글의 순서를 떠나 님의 글 전반을 통한 님의 생각 하나를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아마도 님께서는 "율법"을 정의하실 때 단순히 "모세를 통하여 주신 명령들"이라고만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할 때에는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 의미로 구분을 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참고로, 어떠한 용어를 문맥에 따라 의미 구분을 하여야 한다는 것과 관련하여, 이를 "기표"(signifiant)와 "기의"(signifie)의 관계 개념을 빌어서 생각하실 수 있다면 "율법"에 관한 님의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C. K. Ogden & I. A. Richards"의 "Triangle of Signification"이라든지, "K. Baldinger"의 "Trapezium of Signification"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하겠고요. 여기에 관하여는 시중에 나와있는 "언어학" 서적들을 참고하시고, 특별히 성경 이해와 관련하여서는 "M. Silva"의 책들을 권합니다. e.g. 『성경어휘와 그 의미』, 성광문화사 1992; 『하나님 그리고 언어와 성경과의 관계』, 나침반 1994.)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본문에 주의하심이 유익한 줄로 압니다.

(마 5:17-20)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사실, 이 본문은 님의 "두 번째 반론"까지도 잠잠케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 본문 이후에 계속해서 이어지는 예수님의 논법들을 통해 "율법"의 정의가 어떻게 달리 구분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 드릴까 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몇 가지로 더 분류가 가능하겠으나, 여기에서는 쉬운 예를 통해 두 가지 정도의 구분된 의미만 언급해 드릴까 합니다.)

(마 5:21-22)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출 20:13; 신 5:17)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마 5:27-28) "또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출 20:14; 신 5:1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 5:33-34) "또 옛 사람에게 말한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레 19:12; 민 30: 2; 신 23:21)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찌니..."

(마 5:38-39)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출 21:24; 레 24:20; 신 19:21)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마 5:43-44)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레 19:1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위에서 인용한 말씀들의 기본 구조는 이렇습니다.

" ∼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 하라"

얼핏 보기에도 이것은 "역접 관계"입니다. 즉, "율법"과 예수님 당신의 명령을 대립(↔)시키신 것이지요. 그렇다면 한 가지 문제가 생기는 것이, 예수님께서는 분명 "마 5:17-20"에서 "율법을 지켜라"고 말씀해 놓고서는 그 말씀 직후에 "율법"에 반대하는 말씀을 통해 모순을 일으키셨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그릇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그분이 반대하고 계시는 것은 "율법" 그 자체가 아닌 "율법의 외형적인 준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지요. 즉, "율법의 정신"은 제쳐두고서 "율법의 형식"만을 행하고 가르쳤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에 대한 반대입니다(Cf. 마 5:20). 이는 곧 "외식"에 대한 경고와도 관련이 있습니다(마23장). (이 단란의 내용과 관련하여 다음의 책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C. van der Waal, 『Sola Scriptura: Wegwijver bij het Bijbellezen III』, Oosterbaan & Le Cointre N.V. of Goes 1970, pp. 14-16. → 명종남 역, 『반더발 성경 연구』, 도서출판 연합 1995, pp. 58-62.)

논점을 이탈하지 않기 위하여, 이 정도에서 정리하려 합니다. 지금 제가 설명하고 있는 내용은 성경에서 "율법"이라고 할 때 그 용어(어희)는 문맥에 따라 의미를 달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방금 전에 한 본문(마 5장)을 예로 들었었는데, 여기에서 "율법"은 두 가지로 나타났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완전케 하실 대상으로서의 "율법"과 예수님께서 거부하시는 대상으로서의 "율법", 이 두 가지입니다. 전자는 야웨님께서 주신 율법의 본래 정신을 온전히 담지하고 있는 "율법"을 의미하고, 후자는 그 온전한 율법을 형식적인 면에서만 준수하려 했던 "율법주의"를 가리킵니다. 이와 관련하여, 바울 사도님께서 그토록 거부하셨던 "율법" 역시 바로 이 후자와 관련한 것임을 아실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이 단락의 내용과 관련하여, "『반더발의 성경언약 연구』, pp. 159-193"을 참고하시면 유익할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많은 단락을 할애해 가면서까지 "정의" 문제와 관련하여 길게 설명한 까닭은, 님에게는 바로 이 "정의" 문제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물론, 저의 오판일 수도 있고요).

아울러, 수고로이 여러 구절들을 님의 근거로서 나열해 주셨던데, 이에 대하여는 참 감사한 마음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 생각에는 그렇게 많은 구절들을 나열하시기 보다, 차라리 구체적인 해당 본문 한 두 개를 제대로 해석하시던지, 아니면 인용하시기 전에 적어도 발췌한 각 구절들을 전체 성경 말씀의 통일성 안에서 주경적인 고찰을 통하여 살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더하여, 또 다른 생각 거리 하나를 더 드릴까 합니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님의 판단이 좀 더 재고되어야 할 부분이 많음을 주지시켜 드리기 위함입니다. 사실, 님께서 제기하신 "이의"의 본질적인 관심은 "율법"의 폐지에 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도 한번 풀어보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님께서는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갈 5: 2)고 하셨고, 또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빌 3: 2-3)고까지 하시면서, 할례를 받지 말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도님께서는 억지로라도 "디도"로 하여금 할례를 받지 못하도록 하였습니다(갈 2: 3-5,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 까닭이라 저희가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우리가 일시라도 복종치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참고로, 할례는 "의식법"입니다(Cf. 『WC』 XIX, 3).

그런데, 이게 왠 일입니까! 참 이상하게도 "디모데"에게는 할례를 받게 하셨네요(행16: 1-3,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니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 그 지경에 있는 유대인을 인하여 그를 데려다가 할례를 행하니 이는 그 사람들이 그의 부친은 헬라인인줄 다 앎이러라"). 혹시, 유대인들의 핍박이 두려워서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일까요? (Cf. 고후11:23-28)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금 언급해 드린 사건들의 때는 이미 예수님께서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신 후, 더 더군다나 부활, 승천하신 이후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언급해드리는 이유는, 님처럼 그렇게 쉽게 "율법"이 폐지되었다고만 말하기에는 무언가 더 생각해 봐야 할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인식시켜 드리기 위함입니다.

참고로, 혹시나 님께서 이러한 부분을 특별한 경우라고만 생각하실 것 같아 말씀드립니다만, 사실 이와 같은 예들은 무수히 많습니다. 특히, "의식법"을 중심으로 나열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은 "성전"으로 돌아왔습니다(눅24:53). 또, 나중에 회중들 역시 "성전"에서 모였습니다(행 2:46; 5:12). 사도님들께서 설교하셨던 곳도 바로 그 곳이었지요(행 5:25). 베드로와 요한 사도님께서는 기도와 제사의 시간을 준수하였고, 앉은뱅이된 자를 고쳐주어 그가 성전에 들어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행 3: 1 이하). 그리고, 바울 사도님께서는 바로 그 건물 성전을 가리켜 "하나님의 성전"이라 칭하셨습니다(살후 2: 4). 또, 그분은 "예루살렘"으로 여러번 올라가셨더랬습니다(행18:22; 20:16; 21:15). 게다가, 그분 자신이 "나실인의 서원"에 복족하셨더랬지요(행18:18; 21:26). (이 단락에서 제시한 예들은 모두 "『반더발의 성경언약 연구』, pp. 172-175"에서 가져왔습니다.)

사실, 이와 관련하여서 아셔야 할 것이, 대부분의 정통 신앙에서는 율법 중 "의식법"과 "시민법"의 경우 신약 시대에 이르러 폐지되었다고 고백합니다(e.g. 『WC』 XIX, 3-4). 저 역시 이 고백을 옳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님처럼 그렇게 마구잡이로 "폐지"만을 논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할 경우, 이러한 본문들은 분명 우리의 "신앙고백"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양자에 아무런 모순점도 없으며, 또한 양자가 아주 잘 조화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일 님께서 기존의 "신앙고백" 문서들을 열심히 공부해 하면서 좀 더 심사숙고해 보신다면, 지금 가지고 계신 생각들이 전부가 아님을 아실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이것을 위하여, 또 한 번 더 생각해 보시라는 의미에서, 언급해드린 문제에 대한 해설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 출 16:27로 미루어 보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안식일을 계시하시고 이것을 지키라고 지시하기 전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므로,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무엇이 입증된다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습니다. 그 구절에서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히 "모세가 이렇게 말하였는데도, 백성 가운데서 어떤 사람은 이렛날에도 그것을 거두러 나갔다. 그러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였다"는 것 아닙니까? (출16:27, 님께서 사용하신 『표준새번역』을 그대로 인용하였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함부로 본문을 재구성하시는지 몰라도, 제가 보기에는 아무런 주경적 근거도 없는 추리에 불과합니다. (참고로, 제가 좀 둔해서 그렇겠지만, 저는 "출 16장"을 읽으면서 오히려 그들에게 "안식일"에 대한 이해가 이미 있었다고 밖에 안 보이네요.)





▶ 율법은 이집트 탈출 사건 이후에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법입니다. 율법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율법은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 사건 이후에 모세를 통해 제정하신 것입니다. 율법은 아브라함 때로부터 약 430년 뒤에 생긴 것입니다(갈 3:17).

☞ 여기에 대한 답변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율법"에 대한 "정의" 문제에 관하여 이미 상세하게 설명드렸으므로, 더 이상의 답변을 드릴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님의 지적대로 저는 아직 "율법"에 관하여 그리 해박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성경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원리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④항의 언급된 형이 죽었을 때 형을 대신하여 형수와 동침하는 것은 그 당시 고대근동지방의 풍습이었습니다. 그것이 율법에도 포함되었습니다. 님의 주장은 율법 이전의 있었던 율례가 율법에 포함된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율법에 포함되었다고 해서 그것을 율법과 동일하게 보시면 안 됩니다.

☞ 왜 굳이 ④항의 예만 가지고 논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되도록이면, ①∼⑤항 전체를 모두 다 함께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님께서 지적하신 내용 정도는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님처럼 그렇게 주장할 것 같으면, 성경에 나타나 있는 야웨님의 명령 모두를 오늘날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참 의문스럽습니다. 성경 내용 중에서 당시의 풍습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하나라도 있긴 있습니까? 자신의 주장을 위해 필요한 논리를 사용하실 때, 적어도 그것과 관련하여서 생겨날 다른 문제들까지도 다 함께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말씀을 정리할까 합니다. "장동관"님의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님의 반론은 단순히 "안식일"에 관한 『WC』의 고백(VII, 5-6.)에 대한 이의 제기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율법"에 대한 고백(『WC』 XIX)과 관련한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이미 앞의 글에서 이 부분을 읽어보시라고 권했던 것과 같이, 또 이 답변의 초두에서도 언급했던 것과 같이, 저희 "신앙고백"의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답변이 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더 이상의 설명을 드리는 것은 서로에게 아무런 유익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기에, 이번 글을 마지막으로 해서 물러날까 합니다.

솔직히, 님께서 지금 제기하신 문제는 2003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처음 제기된 문제가 아닙니다. 오랜 세월 전에, 또 여러 세월을 거쳐오면서 다루어졌던 문제였고,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님과 저보다는 훨씬 더 뛰어나신 훌륭한 분들이 함께 모여서 정리하고 고백하였으며, 또 그렇게 고백하면서 기록한 문서 중에 하나가 바로 이 『WC』임을 아셔야 하겠습니다. 사실,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두렵습니다만, 만일 우리 야웨님께서 죽으셨다면 몰라도, 혹 야웨님께서 살아계신다고 믿으신다면, 지금껏 교회를 진리 가운데 인도해 오신 놀라운 주님의 역사 앞에서 조금은 좀 겸손하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교회에는 엄연히 "질서"라는 게 있습니다. 먼저는 교회 안의 목사님과 선배님들께 문의해 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물론, 혹 님께서 "목사"이시라면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고 한다면 문제는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일단은 주변의 교회들에 문의해 보시고, 그것도 부족하다면 "광회"(혹은, "상회")에도 얼마든지 물으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훌륭하신 교수님들도 얼마든지 있으니 그분들에게 찾아가서 여쭙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드리는 말씀을 제발 오해하지는 마셨으면 합니다. 저 역시 모든 교인들에게는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물러나면서, "신앙고백" 문서들에 대한 고찰도 당연 중요하지만, 저와의 논의에서 부각된 부분은 주경적인 고찰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도움이 될 만한 기본적인 도서들을 소개함으로써 인사를 대신할까 합니다.

지혜와 계시의 영이 우리와 함께 하길...







#1. 분량을 고려하여, "제목"과 "출판사"만 적겠습니다.

#2. 아쉬운 대로 "주경학" 관련 도서들만 소개하겠습니다.

#3. 제게 있는 도서들 중에서 "국내서적"들만 소개하겠습니다.

#4. 본 소개에서 부족한 부분은 아래의 도서들에 소개된 목록들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ㅇ 성경 해석학 총론, 생명의말씀사 (제일 뒷 부분)
.... ㅇ 성경해석 방법론, CLC (제일 뒷 부분)
.... ㅇ 설교자를 위한 신약석의 입문, 솔로몬 (제 2장)



가. "성경해석"을 공부하기 위해
..... 1) 성경 해석학 총론, 생명의말씀사
..... 2) 성경 해석학 개론, 은성
..... 3) 성경해석 방법론, CLC
..... 4) 성경 해석학, 생명의 말씀사
..... 5) 성경 해석학, 총신대학출판부
..... 6) 성경 해석의 오류, 성서유니온
..... 7) 비뚤어진 성경해석, 생명의말씀사
..... 8) 성경 주석학, 나단
..... 9) 성서비평 방법론과 그 적용, 대한기독교서회
..... 10) 설교자를 위한 성서해석학 입문, 대한기독교서회
..... 11) 성경신학이란 무엇인가?, CLC
..... 12) 성경신학, CLC
..... 13) 새로운 주경신학 연구, 엠마오
..... 14) 신학적 해석학, 본문과 현장 사이
..... 15) 문학적 성경해석, 솔로몬
..... 16) 하나님, 그리고 언어와 성경과의 관계, 나침반
..... 17) 성경어휘와 그 의미, 성광출판사
..... 18) 신약성경 헬라어와 일반언어학, 총신대학교출판부
..... 19) 성경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성서유니온
..... 20) 구약 해석학,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21) 신약 해석학, 크리스챤다이제스트
..... 22) 두 지평, 총신대학출판부
..... 23) 약속 그리고 구원, 크리스챤서적
..... 24) 반더발 성경 연구, 줄과 추
..... 25) 반더발 성경 언약 연구, 나침반
..... 26) 성경적 세계관, 로고스
..... 27) 신약의 구속사적 연구, 로고스
..... 28) 구약의 구속사적 연구, 기독교연합신문사
..... 29) 교회는 성경을 오석해 왔는가?, 솔로몬
..... 30) 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IVP

가". "성경해석"을 공부하기 위해 (보충교재)
..... 1) 삶으로 이어지는 성경 읽기, 네비게이토
..... 2) 하나님에 대한 묵상, 성약
..... 3) 성경묵상과 우리의 구원, 모리아
..... 4) 복음과 하나님의 나라, 성서유니온
..... 5) 복음과 하나님의 계획, 성서유니온
..... 6) 성경 교향곡, IVP
..... 7) 성경공부 제대로 하기, 성서유니온
..... 8) 쉽게 쓴 성경해석학, 아가페
..... 9) 성경, 흐름을 잡아라, 홍성사
..... 10) 성서못자리, 기쁜소식
..... 11) 성경정독집, 여수룬



나. "설교"와 관련한 "성경해석" 공부를 위해
..... 1) 설교학 강의, CLC
..... 2) 개혁주의 설교, CLC
..... 3) 구속사적 설교의 원리, 학생신앙운동
..... 4) 성경 해석과 성경적 설교(상, 중, 하), 여수룬
..... 5) 구약의 그리스도, 이레서원
..... 6) 성경신학적 설교 어떻게 할 것인가, 성서유니온
..... 7) 설교와 성경신학, 한국기독교 교육연구소
..... 8) 신약을 어떻게 강해할 것인가?, 두란노
..... 9) 강해설교, CLC
..... 10) 구속사적 설교의 실제, CLC
..... 11) 교회 절기 설교, CLC
..... 12) 여호와, 신실하신 우리 하나님(1, 2), 여수룬
..... 13) 그리스도의 그림자, 웨스트민스터출판부
..... 14) 주님의 주님되심, 여수룬
..... 15) 이스라엘과 교회, 여수룬
..... 16) 그리스도와 교회(1), 웨스트민스터출판부
..... 17) 욥기강해, 고신대학교출판부



다. "본문비평"을 공부하기 위해
..... 1) 구약 본문 비평의 이론과 실제, CLC
..... 2) 성서 본문 비평 입문, 대한기독교출판사
..... 3) 사본학, CLC
..... 4) 쉽게 풀어 쓴 신약성경 사본 이야기, 여수룬



라. "구약"을 공부하기 위해
..... ☞ 양이 너무 많으므로, "가"와 "나"에서 소개된 도서들을 참고하세요.



마. "신약"을 공부하기 위해
..... ☞ 양이 너무 많으므로, "가"와 "나"에서 소개된 도서들을 참고하세요.








2003년 11월 19일, 성령 강림 후 23번째 주간 넷째 날에...

김 주 석 올림.







추신) 사실, 이번에 제시된 "장동관"님의 글들을 보면서, 솔직히 제 스스로 후회가 되기도 합니다. 저의 우둔한 답변 하나 때문에 제기된 또 다른 반론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혹 만에 하나 이러한 글들로 인해 더욱 더 중요한 논의가 가리워질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회수를 보아하니, 상당히 많은 분들께서 "김영환" 목사님의 주장과 또 이에 대한 평가를 궁금해 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동일한 궁금증으로 "김영환" 목사님의 주장(본 게시판 1292-1293번글)에서 나타난 전거들 대부분을 검토해 보았고, 또 이러한 내용들을 성경의 원리와 및 16-17세기의 관점에서 조명해 보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그분이 거론한 전거들에서 그분의 주장의 옳음을 전혀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상충되거나 반하는 부분도 없지 않은 데다가, 그분의 논지 자체에도 상당한 모순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거짓 교회" 운운하시는 부분에서는 "이 분이 정말로 개혁주의를 말씀하시려고 하는 게 맞는가" 할 정도로 소름이 끼쳤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물론 제가 아직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섣불리 판단한 결과일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더욱 이 논의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는 중이고요. 하지만, 자칫 "장동관"님에 대한 저의 글로 인해 이 중요한 논의가 가리워질까봐 그것이 좀 걱정이 됩니다. 만일에 혹 그러하였다면, 여러 교인분들의 넓디 넓은 아량으로써 우둔하디 우둔한 소자를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샬롬이 함께 하기를 빕니다!!



※ 참고로, 방금 언급했던 논의는 본 게시판 1284∼1294번글(11/11∼11/15)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