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신앙은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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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리] 신앙은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1)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인가, 아니면 애당초 천국갈 자로 지었나?

교회에서 구원이라 할 때 흔히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죄인이 되었고, 그 후손들도 모두가 원죄와 자범죄로 인해 죄인인고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을 대신해 죽어주심으로 그 사실을 믿는 자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의인이 되어 천국에 가게 되고, 후에 주님 재림 시에 변화 부활해 천국에 가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물론 교단이나 신학적 견지에 따라 다소 간 차이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위에서 말한 개념정도로 구원에 대해 말을 하고 있는 것이 현대교회의 현실입니다.

구원에 대해 근본적이며 구체적인 면까지 말하려면 한이 없겠으나 여기에서는 위에서 말한 구원의 개념에 대해 한 두 가지 집어보면서 다시 한 번 구원의 개념을 재정립해 봤으면 합니다.

먼저는 구원이라는 게 위에서 말한 개념대로라면 만일 아담과 하와가 타락을 하지 않았더라면 구원이 필요가 없었던 것인지와, 만일 그렇다면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지 않고 산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없이도 그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 수가 있는 것인지와, 또한 만일 그렇다면 결국은 그 에덴동산이 영원한 천국이라는 말이 되는데 그럴 경우 그 에덴동산이 과연 우리 믿는 성도가 장차 갈 신령천국의 그 세계인지, 아니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같은 곳인데 다만 범죄성만 없는 곳인지에 대해 명확히 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에 에덴동산이 완전한 신령천국이라면 본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해서 그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게 하려고 한 것인데 그만 아담과 하와가 범죄를 했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고 구원계획을 다시 짜서 그 결과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구원사역을 착수하셨다는 말이 되는데, 그렇게 될 경우 범죄 이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과정이 필요 없이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이니 이렇게 되면 성경에 구원은 절대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을 했는데 이 말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하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이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영이 죽은고로 그 죽은 영을 살리는 것만이 구원이라면 흔히들 예수를 인간 내가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죽은 그 영이 어떻게 스스로 예수님을 믿을 수가 있는 것이지? 다시 말해 죽은 그 자가 스스로 일어나서 예수를 믿는 것인지, 아니면 주님께서 일방적 독권적으로 나의 죽은 영을 살려주심으로 내가 영이 살아난 후에 주님을 주님으로 알고 믿게 되는 것인지?

그리고 더 근본적인 문제는 만일 인간을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살게 하려고 했는데 그만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그 계획이 무너져 할 수 없이 계획을 다시 짜야만 하는 하나님이라면 과연 그 분이 우리가 믿는 전지전능의 하나님이실 수가 있는 것입니까?

또한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구원하는 식의 구원이 전부라면 성경에 영원 전 만세 전에 이미 당신의 백성들을 예정하셨다는 말은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 것입니까?

이상의 질문을 던지면서 다른 각도로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우리의 구원은(택자를 전제로 하고) 지옥갈 자인데 구원을 해 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애당초 나는(택자) 천국에 갈 자로 지음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예정된 그 시간에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까? 다시 말해 지옥갈 나인데 내가 예수를 믿으므로 구원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나는(택자라면) 애당초부터 지옥과는 상관이 없는 자로 지음 받은 자입니까?

만일 지옥갈 나였는데 구원해 주는 것이라면 성경에 당신의 백성은 만세 전에(세상과 인간을 짓이 이전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셨다고 하는 그 말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제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참으로 신통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상의 의문만이 아니라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교회에서 가르치는 기존의 가르침이나 신학적인 논조로는 풀리지 않는 수없이 많은 의문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이 있는지 알고나 있는지, 아니면 그런 저런 의식조차도 없이 교회에서 주입해준 그 신앙지식에 만족해하며 마음 편하게 살고 있는 것인지 그저 무덤덤하게 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면서도 세상적인 학문이나 물질적 이해타산을 위해서는 눈에 쌍불을 켜고 밤잠을 자지 않고서라고 그것을 쟁취하려 하고 있으면서 말입니다.

현금의 교회들이 위에서 제기한 의문들에 대해 그런 의문점이 있다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못하거나, 아예 외면을 한다거나, 아니면 의문이 있지만 도무지 풀 수가 없기에 그저 기존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그 지식에 만족한 채 믿어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의 구원의 시발을 인간 타락 이후로부터 보기 때문입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성경에는 인간의 구원의 시발은 타락 이후가 아닌 만세 전, 영원 전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음에도 영원 전이라는 말을 우리 구원의 시발에 대한 말씀으로는 받아들이지 않고 단지 자신의 어떤 세상적인 요구를 들어달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꼼짝 못하고 자신의 그 기도를 이루어 달라고 하는 데만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만세 전부터 나를 사랑한다고 했으니 내 기도 들어주십시오!)

이제는 구원에 관한 것만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나오는 은밀계시를 깨달아 거기에서부터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찾는 훈련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이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가 있으며, 우리의 삶이 주님의 뜻에 적중한 바른 믿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저의 이 말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상대의 단편적인 행동이나 활동을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그 상대의 일생의 이력이나 정신이나 사상이나 마음중심을 다양하고 복합적이고 정확하게 알고 판단하는 것이 서로 간에 대해 바른 이해를 하고, 보다 더 좋은 관계를 이룰 수가 있는 것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도 성경의 문자적 표면적 역사적인 면만을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그 이면의 하나님의 의지세계를 알아야만이 보다 더 정확히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 글에서는 앞에서 제기한 몇몇 의문들을 해석하는 것은 생략하기로 하고, 다만 제가 권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나를 향하신 궁극적인 뜻이 무엇인지를 성경 전체의 사상과 정신을 통해 깨달아 그 뜻을 따라 자신의 성품을 다듬어 나가는 훈련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2) 구속사적인 관점의 신앙과 의지세계에로의 신앙

성경을 볼 때, 특히 구원에 대한 문제를 다룰 때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을 가장 보편적이고 정통적인 것으로 인정을 하고 있는 것이 기독교계의 현실입니다.

이 구속사적인 구원론의 출발점은 한 마디로 첫사람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인간은 죄에 빠지게 되었고, 이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그냥 두고 보실 수가 없으셔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서 인간을 위해 대형과 대행을 하심으로 이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다 사죄 칭의 중보 새생명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된다고 하는 것이 요지입니다.

구속사적인 이 논리는 성경을 역사적 표면적으로 보면 분명히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논리는 잘못되었다 라기보다는 무언가 부족한 깨달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기독교계에서 구원에 대한 문제를 구속사적인 관점으로만 보게 되는 것은 성경을 기록케 해서 주신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의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를 못하고 성경의 표면적 역사적인 면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결과로 구원에 대해 논할 때도 나는(택자) 만세 전부터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하나님과 같은 차원의 존재로 만들어(존재적이 아닌 성분적으로) 당신의 나라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그 나라를 누리며 살게 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서 그 목적을 두고 창조함을 받은 존재임에도 이러한 하나님의 의지세계로부터의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그 큰 뜻은 보지 못한 채 ‘타락을 했으니 구원해준다’는 식으로만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지옥갈 나였는데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지옥이 아닌 천국에 가게 되는 것으로 아는 것은 선악과를 따먹은 이후로부터 구원이 시작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마치 코끼리를 제대로 알려면 코끼리 전체를 관찰하고 연구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않고 코끼리 몸통의 어느 한 부분만을 보고서 코끼리에 대해 평을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당신의 택자는 만세 전 영원 전부터 당신의 자녀로 예정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택자인 나는 지옥갈 자였는데 구원해서 천국에 가게 하는 것이 아닌 아예 천국갈 자로 만세 전부터 예정 계획된 자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택자인 나는 지옥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다만 선악과를 따먹고,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속사역을 하시고, 나는 그 예수를 믿고 하는 등은 구원서정에 있어서 반드시 거쳐 가야 할 하나의 과정일 뿐인데 거처 가는 과정에 불과한 것을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사항으로 알고서 이것을 중심으로 논리를 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오는 것입니다. 즉 구속사적으로만 성경을 보는 것은 마치 앞뒤가 없이 몸통만 있는 겪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이러한 만세 전부터의 사랑이 기록이 되어 있음에도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의 나를 향하신 그 깊은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마치 인간이 무슨 일을 저지르면 하나님은 인간의 그런 뒷치닥거리나 해 주는 분 정도로 알고 있으니 이는 마치 이론적으로는 하나님은 창조자시요 만능의 능력자시요 전지전능하신 분이라고 하면서도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을 해서 지옥에 가게 됐으니 여기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쯤으로 보는 셈이니 이는 뭔가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이 되지 않으십니까?

이런 관점으로 하나님을 보고 있으니 나를 향하신 궁극적이며 최종적이며 목적적이며 결과적인 구원과, 인간 나를 창조하신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제대로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궁극적이며 최종적인 그 결과 역시도 흐려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천국에 대해 그렇다는 말이 아닌 인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을 아는 면에서 어두울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도 어느 분의 뜻을 100% 정확히 알려면 그 분의 말이나 행동 어느 하나만을 듣거나 보아서는 되지 않고 그 분의 전체적인 이력이나 삶을 바로 알고서(정신 사상적인 면으로) 그 분이 하는 말이나 행동의 어느 한 부분을 이해를 해야 가능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도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깨달아야 정확히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 만세 전부터, 그 화려한 천국을 당신께서 홀로 누리실 때부터 당신의 의지세계에서부터 인간을 향해 가지신 그 뜻(은밀계시-이에 관한 것은 이 글에서는 생략합니다)을 먼저 깨닫고, 그 깨달음 안에서 성경의 부분부분을 깨달아 나가야 하나님의 뜻에 적중한 깨달음과 순종이 되는 것인데 그러지를 않고 성경 어느 한 구절만을 똑 떼다가 액면 그대로 순종한다고 하면 오히려 그 문자적 순종이 불순종(죄)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방종교의 책처럼 단지 경전이라면 이런 것 없이 그냥 문자적 순종만 하면 되겠지만 성경은 그게 아닌 말속의 말, 즉 성경구절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은밀한 뜻을 알고 그 뜻대로의 사람으로 인격과 성품이 만들어지게 하려고 준 것인데 이건 없고 단순히 성경구절을 따라 액면적인 순종만으로는 참된 순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계시의 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를 들어 말씀드린다면 늘 다른 아이들에게 맞고 울면서 집에 들어오는 자식을 보고 속이 상한 엄마가 그 아이에게 ‘이 자식아, 왜 너는 맨날 맞고만 들어오느냐, 그럴 바에는 차라리 물이 빠져 죽어라’ 라고 했다고 해서 그 아이가 그 말을 듣고 정말로 물에 빠져 죽었다면 엄마의 말에 순종을 한 것입니까? 효자문이라도 세워줄만한 행위입니까?

엄마는 진짜로 물에 빠져 죽으라는 것이 아니고 ‘너도 건강해서 맞지 말고 오히려 때리고 오너라’ 하는 말로, 이 말의 속뜻은 자식의 건강을 염려해서 하는 말인데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식이 엄마가 한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진짜로 죽으라는 말로 알아 물에 빠져 죽는다고 하는 것은 자신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모르는 데서 오는 무지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되 하나님의 뜻에 적중하도록 순종을 하려면 성경을 보되 표면적 액면적 역사적으로만 봐서는 안 되고 성경 전체를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의 나를 향하신 궁극적인 뜻을 알고 그 뜻을 기준으로 해서 부분부분을 순종을 해야 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다가 보면 성경의 문자적인 뜻과는 반대로 해야 순종이 되는 경우도 있다는 말입니다. 마치 물에 빠져 죽으라고 하는 엄마의 말을 어기고 열심히 체력을 길러서 건강해지는 것이 순종이듯이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계시의 책이라고 이미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보다 더 하나님의 뜻에 적중한 순종을 하려면 하나님의 의지세계의 뜻을 알되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더 이상 해석을 할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는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니 무지하고 무능한 자신임을 알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처지입니다.

앞에서 기독교계에서 일반적으로 구속사적인 관점으로 성경을 보게 됨으로 해서 오는 깨달음의 제한에 대해 말씀을 드렸는데 성경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의 또 하나의 문제가 있으니 이는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참으로 심각한 결과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니 타락했기 때문에 구원해 주는 식으로 말을 하고, 그런 논리로 성경을 보며, 그런 사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자신이 예수를 믿으니까 현실에서 좋지 않은 각종 사건과 환경이 자신에게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고, 막상 그런 일들이 닥치면 자신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닥친 것이라는 식으로 생각을 하게 돼서 결국 원치 않는 그런 사건과 환경이 오면 주님께 그것을 없이 해 달라는 기도를 하게 되는 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그런 관점으로 성경을 본다면 아무리 부정을 해도 법칙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게 만들어진 인간 자기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는 말로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 말 이전에 그의 신앙정신과 사상이 그렇게 굳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걸 또 다른 각도로 말하면 앞에서 말씀드린 관점으로 성경을 보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에게 무슨 사건이 생겨야 주님께 부르짖게 되니 자연 자신에게 어려운 사건이 없으면 주님이 필요 없다는 식의 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사람이 자신은 그렇지를 않고 어려운 사건이 없을 때도 주님을 찾는다고 말을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그 사람의 심연을 살펴보면 이는 마치 앞으로 어려운 사건이 올 때 부르짖으면 속히 응답을 받기 위한 예약적인 기도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런 신앙정신으로 사는 사람은 자신의 삶 가운데서 현재적으로 겪는 모든 사건과 환경을 통해 앞에서 말씀드린 하나님께서 의지세계에서부터 가지신 인간을 향하신 궁극적인 뜻을 염두에 두고 현실에서 그 뜻을 이루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면을 우선으로 놓고 그 뜻을 따라 살려고 하지를 않고 언제나 현재 자신이 처한 현실문제를 해결해서 최상의 삶으로 만들어 보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한 마디로 주님의 주권적인 역사는 없는 채 언제나 사건이 먼저요, 그 다음에 주님이 필요하다는 식의 신앙정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연적으로 현실주의자 내지는 기복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정신이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신앙으로 나가는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근본적 타락이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상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언제나 환경의 소산으로 살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말은 할지라도 언제나 인간 자신이 앞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그 사람 속에 주님의 영적이며 천국적이며 신령하고 영원한 신앙정신은 자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는 성화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며, 결국 장차 부끄러운 구원자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타락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만세 전 영원 전부터, 나를 만들기 그 이전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나라를 유업으로 주어서 당신과 함께 그 나라를 영원히 누리고 다스리며 당신과 함께 인격적 수수관계를 가지게 하시려는 뚜렷한 목적 하에서 인간 나를 만들었고, 나를 예수 믿게 한 것입니다.
교회에서 흔히 ‘당신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택정받았다’고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긍지를 심어주는데 이 말을 사용하지만 제가 이제까지 말한 것은 단순히 그런 차원의 말이 아닙니다. 기독자가 현실의 삶의 모든 해석을 언제나 하나님의 의지세계의 그 뜻에 놓고 자신의 삶을 진행해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그런 관점으로 보고 깨달아 나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타락 후 구원’과, ‘내가 태어나기 이전 영원 전서부터 내가 하나님의 의중에 당신의 나라를 함께 누릴 존재로 택정되었고, 그런 뚜렷한 목적 하에서 나를 지었고, 구원했다’ 하는 것은 깨달음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 결과 역시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의 신앙의 대열에 당신을 초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