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권은 목사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가?-(윤석준님께 드리는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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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권은 목사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인가?-(윤석준님께 드리는 답변)


글쓴이 : 장동관 날짜 : 2004/05/16 조회 : 257





먼저 장문을 통하여 상세하게 답변해 주신 윤석준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윤석준님께서 밝힌 의견에서 제가 수긍할 수 없는 내용들이 있어서 답변을 올립니다.

1. 장로와 감독의 직분에 대하여
행 20:27-35에 성령이 양 떼 가운데에서 감독으로 세운 에베소 장로들에 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성령께서 양 떼 가운데에서 감독으로 세웠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처럼 신학대학(원) 졸업장이 없으면 감독이 될 수 있는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성경은 신학대학(원) 졸업여부를 감독의 자격으로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지시를 받으면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령의 뜻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행 20:27-29에 언급된 에베소 장로들이 성령께서 세우신 감독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3년 동안 사도 바울이 말씀으로 양육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에 오늘날처럼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여 졸업하면 목사자격을 주는 것이 과연 성령께서 감독으로 세웠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신학대학(원)을 부정한다고 하실지 모르겠지만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는 모든 사람들이 성령께서 세운 감독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을까요?
대학졸업하고 취업이 안 되니까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들도 보았습니다.

제가 주장하고 싶은 것은 감독은 신학대학(원) 졸업장이 있어야만 감독이 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말씀으로 잘 양육하여 감독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을 감독으로 세우는 것이 성경적이라는 주장을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윤석준님께서는 현재의 목사가 모두 성령께서 세운 감독이라고 감히 주장하실 수 있습니까?

딛 1:5-9에 장로와 감독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딛1:6에는 장로에 관하여 딛 1:6에는 장로의 자격이 대하여, 1:7-9에는 감독의 자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윤석준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장로라는 직분은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된 직분이라는 것을 바울 서신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을 장로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런데 딛 1:5-9에서 장로와 감독으로 구분하여 언급한 것은 장로는 치리하는 장로를, 감독은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를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딤전 5:17“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두 배로 존경받아야 합니다. 특히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은 더욱 그러하여야 합니다.”
라는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전자의 장로에 후자의 장로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다스리는 장로들중에 말씀을 전파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는 장로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목사 : 선지자적 역할, 장로 : 왕적 역할, 집사 : 제사장 역할로 분류한 것에 대하여
율법이 폐지되고 그리스도의 법 아래에 있는 신약에서는 만인이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구약의 (대)제사장은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예표(그림자)입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집사직분을 남발하는 것은 정말 문제가 많습니다. 오히려 직분을 교회의 계급으로 악용하여 헌금을 많이 뜯어내려고 하는 일부 몰지각한 목사들이 종종 발견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윤석준님께서 왕적/제사장적/선지자적 직분을 교회 속에 그리스도께서 심으신 것이 선지자적 역할로서의 목사로, 장로을 왕적 역할로, 집사를 제사장적 역할로 분류한 논리의 비약으로 보입니다.
성경이 언제 이렇게 분류한 적이 있었나요?

------------------ 윤석준님이 올린 글을 발췌합니다. ----------------------
따라서 구약의 직분은 그리스도에게서 완성되었으며, 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신 직분은 신약의 교회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의 교회 안에는 이 삼중직의 역할을 감당하는 직분들이 존재합니다(계시 완성 이전의 초대교회에는 좀 더 다양한 직분들이 존재했습니다-선지자, 전도자 혹은 복음전하는 자 등). 이 왕적/제사장적/선지자적 직분을 교회 속에 그리스도께서 심으신 것이 선지자적 역할로서의 목사와 왕적 역할로서의 장로와 제사장적 역할로서의 집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직분을 세우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사역을 오늘날의 교회에서 여전히 나타내도록 하셨다는 사실과 그 직분을 통하여 성도가 온전케 되며 교회가 세워지게 된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만약 직분이 흐려지면 교회의 기초 자체가 흔들리게 됩니다(이 점은 한국교회에서 심히 염려되는 부분입니다. 집사의 남발과 집사직 자체의 실종, 장로의 역할의 실종, 목사의 월권행위들-집사와 장로의 직까지 혼자서 다 수행하려는 아집 등이 한국교회에서 직분의 상실을 초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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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엡 4:11-12에 관하여
“그분이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도자로, 또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습니다.
그것은 성도들을 준비시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였습니다.
교회의 기초였던 사도 직분이 계승되지 않았으므로 사도 직분은 당연히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예언자와 복음 전도자는 사라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당연히 하는 것인데, 제도적인 모순으로 이런 직분자들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처럼 신학대학(원) 졸업하지 않으면 자격 자체를 주지 않는 제도에서는 이런 직분자들이 나올 수 없습니다.

성경대로 교회에서 성경을 잘 가르치고 은사가 있는 자들을 직분자로 세운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저는 요즘에도 신유의 은사는 초대교회에서 끝났다고 믿는 사람들을 종종 발견합니다.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그런 은사들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더군요.
그리고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방언도 사라지고 없고 지금 방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귀신들이 하는 짓이라고 하더군요.
성경을 자의대로 해석하면 이와 같이 엉뚱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순간 방언을 받았는데 정말 신기한 일이 아닙니까?
그리고 10일 후에 소아마비와 곱사병에 걸려 한 쪽 다리가 엄청나게 짧고 등뼈와 어깨뼈가 휜 30대 중반의 여자가 그 자리에서 치료받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오른쪽 어깨뼈인지 왼쪽 어깨뼈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그 부분만 치료되지 않고 나머지 부분은 그 자리에서 정상으로 치료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모두 귀신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런 일을 성경을 완성하신 직후에 이런 일을 중단하셨다는 성경적인 근거도 없다면 이런 주장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에 엡 4:11에 언급된 말씀전하는 은사중에서 목자와 교사 은사만 남겨놓고 다른 은사들은 모두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인 비약입니다.


4. 목사의 설교 독점권에 대하여
성경은 목사만이 설교할 수 있는 특권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엡 4:11에 언급된 말씀전하는 은사들이 모두 복수로 표기되어 있다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교회에는 말씀전하는 다양한 은사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신학이 발달한 유럽 교회에서는 이미 목사만이 설교권을 독점하고 있지 않습니다.
유독 한국교회에서만 목사의 권위를 내세우고 주의 종이라고 교인들에게 가르치면서 목사들을 특별하게 대우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종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종이면 종답게 주인의 자녀들인 주의 자녀들을 잘 섬기십시오.
종의 의무는 상전과 상전의 자녀를 잘 섬기는 것이 아닌가요?

그런데 성경은 예수 믿는 모든 자를 주의 자녀 또는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가르치는 장로만 설교를 독점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장로가 아닌 자는 설교를 할 수 없었다는 근거도 없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목사만이 설교를 할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았다고 주장할 수도 없고 목사가 아닌 자는 설교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르치는 은사가 있는 자를 현재의 제도에 따른 목사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설교를 금하는 것이 비성경적입니다.


5. 예배에 대하여
목사의 설교가 없는 예배는 예배가 아닐까요?
성경에 예배의 형식에 대해 특별하게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교인들이 모여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각 자가 읽은 성경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일요일 예배 때에 목사의 설교를 듣고 잘 못된 부분에 대해 지적하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거나 성경에 대해 서로 가르치고 공부하는 것은 예배가 아닌가요?

목사의 설교가 없으면 예배가 아니라는 근거가 있는가요?
그리고 성경에 목사만이 설교권을 독점했다는 근거도 없고 목사가 아닌 자는 설교가 금지되었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습니다.


6. 설교는 말씀 선포인가?
흔히들 설교는 말씀 선포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목사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가끔 성경을 잘 못 알고 잘 못 설교하는 경우를 목격하게 됩니다.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라면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선포하는 것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모순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감히 설교는 말씀 선포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설교는 말씀 선포가 아니라 오히려 서로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이었습니다.
즉, 가르칠 때에는 항상 의문점에 대해서는 질문이 있게 마련인데 여기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을 하기도 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언급된 스데반의 설교를 보십시오.
스데반의 설교는 행 6:13-15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스데반의 설교는 예배 시간에 한 설교가 아니기 때문에 예배 시간에 하는 설교와는 다를까요?
오히려 예배 시간에 하는 설교는 일방적인 목사의 연설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대해 서로 가르치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설교는 설교자가 성경에 대해 가르치면 여기에 대해 질문도 하고 답변도 하고 설교자가 잘 못 알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오류를 지적하기도 하고 가르치기도 하는 방식이어야 합니다.
(설교는 일방적인 연설이 아니라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배가 시간이나 공간적인 제한을 받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잘 양육받은 양 떼 중에서 감독의 은사가 있는 사람을 감독으로 세우는 것이 성경적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교회처럼 신학대학(원) 졸업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감독의 자격조차 주지 않는 것은 성경적인 근거도 없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취업이 안 되니까 신학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극히 일부이기를 바라지만 ...), 현재의 목사들이 목사 안수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모두가 성령께서 세운 감독이라고 인정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목사만이 설교에 대한 독점권을 가진다고 주장하는 것도 모순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7. 박길현 목사님, 이광호 목사님의 목사 제명 사건을 접하면서 느낀 점
박길현 목사님과 이광호 목사님의 주장은 성경적인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비성경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제명한 동대구노회의 결정을 보고 성령께서 세운 가르치는 장로들이 과연 몇 %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객관적인 자료를 입수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제가 명확하게 이런 자들이 전체 목사의 몇 %정도 된다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성령께서 세운, 가르치는 장로들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