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국보법 폐지 찬성을 지지하는 교계측
한국교회 대표는 민주화세력”
△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는 기독교 인사 10여명은 6일 오후 2시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가칭)국가보안법 폐지 기독교 운동본부’ 결성을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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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기독교 인사들, 보안법폐지 촉구 대국민 호소문 발표
“그들은 결코 한국 교회의 대표가 아니다. 한국 교회의 대표는 일제시대와 군부독재시절 항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며, 이것이 기독교의 전통이다.”(정석현 목사·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사무국장)
한국 교회의 진정한 대표는 누구인가?
지난 4일 열린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 중심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구국기도회에 분노한 기독교 인사 30명이 6일 오후 안국동 느티나무 카페에 모였다.
군사독재 정권시절 기독교를 배경으로 민주화 투쟁을 이끌어온 홍근수, 박형규, 오충일, 강희남 목사 등 기독교 원로목사들이 이날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하고 나섰다.
군사독재정권 시절 한쪽에서는 대형교회 목사들이 독재자에게 정당성을 부여하고 “축복기도”를 위해 청와대에 초청받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는 민주화를 외치던 목사들이 감옥에 갇혀 있거나 아스팔트 위에 있었다.
당시 독재자를 축복하던 보수교단은 시청앞 광장으로 나서 우익세력과 손을 잡고 반정부집회를 이끌고,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던 목회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목소리를 냈다.
느티나무카페에 모인 기독교 인사들은 분단 60년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통일은커녕 아직까지도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있지 않은 현실에 책임을 통감했다. 이들은 한 목소리로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했다. 하나님의 뜻인 민족의 진정한 화해·통일·평화·번영을 위해서는 국가보안법 폐지가 시급하다고 보아 대국민 호소에 나선 것이다.
이들은 호소문에서 “국가안위를 명분으로 독재정권 안보, 인권탄압, 분단고착화, 수구매국세력의 도구가 되어온 국제적 악법 국가보안법 폐지에 국회의원들이 앞장서야 한다”며 “국가안보의 문제는 형법관련 전문가들이 지적했듯 형법에 맡기는 것이 옳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국민을 상대로 “북측은 남측을 적화통일할 능력이 없음이 점점 확실히 드러나고 있다. 경제 차이는 이미 수십 배가 되며, 인구도 남쪽이 두 배나 많다”며 “냉전체제의 소산인 안보불안증독증에거 깨어나 국민의 힘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새로운 통일시대를 향해 전진하자”고 호소했다.
이들은 교회를 상대로 “한국교회는 초창기부터 민족의 자주와 독립, 민주와 인권,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제사상적이고 예언자적인 전통을 이어왔다”며 “한반도의 평화와 우리 민족의 진정한 화해를 위해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기도하며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 통일을 바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라도, 진정한 민족안보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국보법이 폐지되어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은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 김정일 정권 타도 등을 외쳤던 한기총의 주장과는 정면 배치된다.
한기총 초대 총무를 역임한 한명수 목사는 “남북 대치상황에서 기독교가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게 참여했다”며 “한미동맹과 남북공조 모두 중요하기 때문에 국보법 폐지에 대한 양쪽의 의견을 모두 이해한다. 하지만 국보법은 형법이 없던 시절의 한시적 법이었고, 그동안 인권침해 논란이 있었던 만큼 폐지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 목사는 “민족보다 더 큰 우방은 없다”며 “그렇기 때문에 남북화해를 저해하는 모든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이날 국가보안법 폐지 기독교 운동본부(가칭) 결정을 정식으로 제안했다. 이들은 7일 저녁 기독교회관 인근에서 첫 연석회의를 열어 향후 활동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며, 목회자 2004인 선언과 평신도 선언 등을 통해 국보법 폐지 여론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국가보안법 폐지 촉구 선언 및 호소문> 전문
-먼저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와 참회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길 기도하며 실천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내년 2005년, 분단 60년이 코앞에 다가왔는데도 통일은커녕 아직까지도 국가보안법이 폐지되고 있지 않은 현실을 함께 아파하며 책임을 통감합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그리스도인의 선교적 사명입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우리 민족이 하나 되길 원하십니다. 민족의 진정한 화해, 통일, 평화, 번영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국가보안법 폐지야말로 시대적 과제임을 거듭 확인합니다.
-제17대 국회는 올해 안에 반드시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것을 촉구합니다.
국가보안법 문제는 당리당략이나 개인적 이해관계로 처리되어서는 안됩니다. 국회의원은 국민과 함께 한걸음 더 나아가 새시대, 새역사를 내다보고 이끌 막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국가안위를 명분으로 독재정권 안보, 인권탄압, 분단고착화, 그리고 수구매국세력의 도구가 되어온 국제적 악법 국가보안법 폐지에 앞장서야 합니다.
특히 지난 9월20일 형사법학학회, 한국형사정책학회, 한국비교형사법학회 등 한국의 형법관련 최고 전문가들의 모임인 3개 학회에서 “국가안보에 대한 규율은 국가의 기본 법률인 형법에 맡기는 것이 옮으며, 국가보안법의 주 내용은 현행 형법으로도 얼마든지 대체 가능하며, 국가보안법은 우리 정부가 비중, 공포한 국제인권규약 제18조(사상과 양심의 자유), 제19조(의사표현의 자유)를 위반”하고 있다고 발표한 성명에 주목하길 바랍니다.
민족 장래를 위하여 역사에 남을 용기 있는 결단을 거듭 촉구합니다.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께 호소합니다.
우리나라 지도를 그릴 때 38선 이남만 혹은 이북만 그리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북녘도 남녘도 우리나라입니다. 북녘 동포도 남녘 동포도 우리민족입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한쪽을 ‘주적’이나, 반국가단체로 규정하고 분열과 대결을 조장해온 국가보안법도 이제는 폐지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보가 불안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진정한 국가안보를 위해서라도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합니다. 남북긴장을 해소하고, 서로 안심하고, 위로하고, 평화할 때 진정한 민족안보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더구나 북측은 남측을 적화통일할 능력이 없음이 점점 확실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경제차이는 이미 수십 배가 되며, 인구도 남쪽이 두 배나 많습니다. 현재 북측은 고난의 행군 중에 진정한 대화와 평화를 원하고 있고, 원할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물론 외세의 작동으로 북의 체제가 불안해질 때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흡수통일이 되어야 할까요? 안 됩니다. 남북 서로 감당할 수 없는 민족적 불행과 재앙을 겪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북 기본합의서 1조 1항, “쌍방의 체제를 존중하고 인정한다”는 정신을 살려야 합니다. 6·15 공동선언을 부지런히 실천하여 남북이 공존, 공영하는 방향을 찾아야 합니다. 개성공단 사업, 경의선 연결 등등의 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어야 하며, 남북교류협력사업 또한 더욱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걸림돌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만 합니다.
국민여러분! 냉전체제의 소산인 안보불안중독증에서 깨어납시다. 위대한 국민의 힘으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질적으로 새로운 통일시대를 향해 전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간절히 호소합니다.
우리 한국교회는 줄곧 초창기부터 민족의 자주와 독립, 민주와 인권, 평화와 통일을 위해 제사장적이고 예언자적인 전통을 이어왔습니다. 특히 1995년 분단 50년을 극복하기 위하여 앞장서서 희년운동을 전개하기도 했습니다. 그 맥을 이어서 내년 2005년, 분단 60년이 통일원년이 되도록 우리가 먼저 떨쳐 일어납시다.
주님은 사랑이십니다. 막힌 담을 허물고 하나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을 따라 화해와 통일의 십자가를 지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고 통일원년으로 전진합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며 일심전력으로 일어날 것을 호소합니다.
-우리는 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해 끝까지 기도하며 실천할 것을 선언합니다.
오늘날 세계 정세가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지키고, 우리 민족이 진정한 화해, 통일, 번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국가보안법은 반드시 폐지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의 대세이며 순리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하며 국민과 그리스도인들께 간절히 호소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기도하며 실천할 것을 선언합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주님! 우리 민족을 불쌍히 여기소서. 아멘!!
2004년 10월 6일
기독교 인사 1차 선언 참가자
강신석(광주무진교회), 강희남(난산교회 원로목사), 금영균(예장통합성덕교회 원로목사), 김동원(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김병균(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상임의장), 김상근(KNCC 교회일치위원회 위원장), 김재열(성공회 전 교무원장), 나명환(복음교회 전 총회장), 노영우(청주남교회), 문대골(생명교회), 박경조(서울교구 피선주교), 박덕신(전국목회자정의평화실천협의회 공동의장), 박영모(동수원교회), 박형규(한국기독교장로회 전 총회장), 백도웅(KNCC 총무), 서일웅(총회시국 문건을 반대하는 대구경북 목회자연대), 오충일(복음교회 전 총회장), 유경재(안동교회 원로목사), 이명남(예장 사회문제위원장), 이상호(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장), 이해동(인권목회자동지회 회장, 성남주민교회), 장기천(감리교회 전 감독), 전병금(강남교회), 조승혁(기독교사회산업개발원 원장), 조용술(KNCC 전 회장), 조화순(감리교회 원로목사), 한명수(예장합동 전 총회장, 기독교교단장협의회 전 대표회장, 찬송가공회 전 대표회장), 홍근수(향린교회 원로목사), 홍성현(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 전 공동대표) (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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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뺏길까 우려하는 교회권력이 문제”
한국 기독교의 정치집단화와 보수화에 대해 비판하고, 교회 비리에 대한 개혁을 요구하는 기독교의 목소리가 있다. 지난 2002년 발족한 교회개혁실천연대는 편법 교회세습과 헌금유용, 전횡 등 교회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해결방안을 찾고 있다.
“교회가 순수하고 깨끗한 모습을 회복해 존경받는 교회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박득훈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52.서울 독산동 언덕교회 목사)를 <한겨레>가 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박 목사와의 인터뷰 내용이다.
-4일 시청 앞에서 열린 한기총 구국기도회에 대한 생각은?
= 한기총은 한국교회연합기관으로 소위 보수적 교회들을 대표한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이 보수적이라는 이유로 일반 교회 성도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마치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가 한국 교회의 대표적 견해인 것처럼 시위하고 발표하는 것은 전혀 민주적이지 않다. 일반 성도를 무시하는 처사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가) 한기총 소속 교단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신도들은 전혀 보수적이지 않다. 실질적으로 교회의 힘을 갖고 있는 사람(중대형교회 목사)들이 신도를 동원해, 정치적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 최근 한기총이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인가?
= 그렇다. 보수교회들은 과거 독재정권시절 수많은 사람들이 억압당하고 핍박당할 때 정치적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지금은 어떤 목소리를 내도 핍박이나 제재가 없고, 누구나 의견표출 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이들이 일관성 있게 자신의 소신이나 정치성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득권과 연결해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정권시절 기득권을 위해 침묵을 지켰다.
- 한국 교회를 보수적이라고 보는가?
= 한국 교회는 원래 보수적이었다. 더 수구화되었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정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교회들 입장이 (가만히 있는 것에서 행동하는 것으로) 바뀐 것에 불과하다. 과거에는 자신들이 지지하는 사람들(보수인사)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으면 됐지만, 지금은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이 정권을 잡고 있어 위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불안함을 느끼기 때문에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반공세력이고, 북한과 화해하거나 남북한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가슴 아프다. 평화와 화해와 복음이 기독교의 핵심적 진리인데, 과거 전쟁(6.25)의 아픔을 벗어나서 하나 되어야 할 교회가 적대감정을 불러일으키고 대결구도를 강화시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 정말 이해되지 않는다.
- 한국교회 보수의 뿌리는 무엇이라고 보는가?
= 기독교가 서양(미국)에서 들어왔고 초기 기독교 목회자들이 미국에서, 미국 중심의 사고로 교육을 받았다는 점이 그 뿌리가 될 수 있다. 여기에 분단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도움을 받았던 점도 포함된다. 반공주의가 나온 이유는 북한의 경우 공산주의가 시작될 때 토지몰수로 지주들을 힘들게 했다.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지주계급이 많았다. 또 6.25전쟁 때에는 목사들이 순교당하거나 교회가 파괴되기도 했는데, 이런 점 때문에 북한에 대한 반감이 크다. 반면 미국은 이런 상황에서 우리(기독교)를 도와줬다는 점에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고,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을 갖는 것이다. 숭미사대주의, 반공주의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 개인적으로 한국 교회의 보수성을 이해한다는 뜻인가?
= 한국교회의 보수적 흐름이 이해는 된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흘렀다. 이제는 과거의 아픔에 머물러 있기보다 전향적으로 북한을 끌어안고 평화와 통일의 길로 가기 위해서는 교회가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하는 시대적 사명에 대해 고민을 하고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아픔에 얽매어 상처와 아픔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같은 기독교인으로 부끄럽다. 그것을 뛰어넘어야 한다. 더 냉정하게 보면, 분단과 전쟁의 과정에서 우리만 피해본 것이 아니라 북한도 미국과 한국군에 의해서 피해를 봤고, 똑같이 상처를 안고 있다. 북한을 이해하는 아량이 필요하다.
- 보수교단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목소리를 낸다는 지적에 대해?
= 보수교단의 경우 말로는 자유민주주의와 기독교(종교)의 자유를 겉으로 내세워 보편적 가치를 내세운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이들이 그런 보편적 가치를 위해 나섰다면 70~80년 독재정권시절에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박형규 목사를 비롯해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국가보안법 등으로 핍박받는 동안 왜 이들은 가만히 있었냐 말이다.
오히려 조용기 목사나 김홍도 목사는 기독교인들이 독재정권에 항의를 할 때면 “왜 교회가 정치참여를 하느냐? 교회는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고 말렸다. 당시에 이들은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교회의 순수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은 지금 10만 명의 성도들을 모아서 국보법이라는 정치적 문제를 놓고 입장을 표현했다. 이들은 결국 보편적 가치를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기득권에 불안을 느끼기 때문에 한 것이다.
북한과의 화해와 평화적 통일이 된다면 기존 남한에서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기득권을 뺏길 것으로 생각한다. 이들도 마찬가지다. 기득권이기 때문에 이것을 뺏길까 걱정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북한과 가까운 주장을 하는 정부나 사람들(평화, 화해, 국보법 폐지 등)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이 진리와 정의를 사랑한다면, 가난하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의 편에 서야 한다.
- 그렇다면, 교회개혁실천연대 역할과 활동방향은?
= 가장 중요한 역할이 교회 내 문제들이 생겼을 때 적당히 넘어가지 않고 바르게 해결되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교회의 재정비리, 중대형교회 담임목회직의 세습, 재정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교회의 자금을 횡령하거나 일부가 전권을 휘둘러 신도들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교회 운영에 있어서는 한두 사람이 아닌 민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교회내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운동을 하고 있다. 또한 교회개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는 운동(교회개혁 아카데미)도 하고 있다.
교회와 정치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입장을 표명해 왔다. 보수적 교회가 지나치게 숭미주의적이고 냉전주의적 사고를 갖고 움직일 때 항의하는 성명을 내고, 항의방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적 사항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움직인다. 교회개혁에는 찬성하지만, 사회문제 관련해서는 보수적인 분들이 제법 있다. 그런 분들을 품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에 있어서 단체이름으로 선명한 입장을 내는 일에는 조심하고 있다. 한국 교회의 70~80%가 보수적이기 때문이다.
■ 박득훈 목사는 누구인가
박득훈(52) 목사는 지난 2002년 10월부터 서울 독산동 언덕교회 담임을 맡고 있다. 언덕교회는 이승종(성균관대), 이경종(아주대 의대) 교수 형제가 중심이 되어 일군 독립교회다. 박 목사는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 목사는 1975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바이블칼리지와 더럼대학에서 신학 전공으로 유학해 영국에서 박사학위와 목사안수를 받았다. 1997년 귀국해 기독교윤리실천운동본부에서 2002년 10월까지 목회 활동을 펼쳤고, 교회개혁실천연대가 출범하면서 공동대표로 참여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는 한국교회가 물량주의적, 기복적 신앙에 깊이 빠져 기독교의 본질이 훼손되는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지난 2002년 11월 출범했다. 박 목사는 지난 1999년 서울 광림교회 세습반대 운동을 벌이면서 본격 교회 바로세우기운동에 나섰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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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습니다. 하지만 교회에도 희망이…”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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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한국기독교 어쩌다 ‘수구’됐나
KBS 방영뒤 “한국교회의 문제를 너무 조심스럽게 다뤘다”
<조선일보>와 기독교의 위험하고 이상한 밀월/구교형 목사
기독교 보수화와 훼절
맞선 교회개혁운동 확산
지난 10월4일 수구세력의 서울시청 앞 국가보안법 사수 집회에 맞춰 대형교회들이 ‘구국기도회’를 연 것을 두고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은 무참해 하고 있다.
묵묵히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려는 기독자(크리스찬)들은 보수 대형교회 지도자들의 이런 행태에 부끄러워하고 있다.
그들의 무참함은 그들이 믿는 신앙이 그들을 지도하는 목회자들에 의해 훼절되는 것에 대한 신앙적 좌절감이다.
인터넷에는 기독교인으로서 부끄럽습니다 (한토마/빈자의샘) 와 같이 이런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는 글들이 여럿 눈에 띈다.
하지만, 기독교 개신교단의 목소리가 서울시청 앞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보다 상대적으로 작지만, 진보적 성향의 교단이 주축을 이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KNCC)가 한국 기독교의 정치적 균형을 질적으로 떠받쳐왔다. 그리고 이젠 진보와 보수의 구분을 넘어서, 교회 자체를 개혁하려는 뚜렷한 움직임도 형성되고 있다.
◇ 빛과 소금 같은 존재들
한기총의 권위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지배구조를 타파하고 평신도 중심의 민주적이고 투명한 교회를 만들기 위해 생겨난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교회개혁 실천연대(실천연대), 바른교회 아카데미(아카데미) 등의 조직이 그것이다. 기독교단의 70~80%가 수구적 성향을 갖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들의 존재는 ‘빛’과 ‘소금’ 같은 존재로 평가된다.
교회개혁을 표방한 엔지오로는 기윤실, 실천연대, 아카데미 등의 단체를 비롯해 2000년에 창립한 인터넷 언론 <뉴스앤조이(newsnjoy.co.kr)>, 월간지 <복음과 상황> 등이 꼽힌다. 일부에서는 이들이 기독교 안에서 개혁의 씨앗을 뿌린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만, 내부에서 ‘진보’ 또는 ‘개혁’의 요구가 나오기 시작한 지가 10년 남짓인 점을 볼 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이들 가운데 가장 역사가 오래된 곳은 기윤실(http://kr.cemk.org). 장기려, 이명수, 이만열, 최창근, 이세중, 김인수, 손봉호, 원호택씨 등 38명의 기독교인들이 발기인이 되어 1987년 12월에 정식으로 발족했다. 현재 전국 1만여 명의 신도가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내가 실천하는 운동’으로 교회와 사회의 도덕적 타락을 막고 사회적 약자와 함께 하는 건강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진우 목사(기윤실 운영위원장·향상교회 담임)는 “교회가 양적인 성장에 초점을 맞춰 무분별한 목회자 양성이 지속되면서 준비되지 못한 목회자가 쏟아져 나왔다”며 “준비된 목회자 양성, 교회의 신뢰 회복, 선명한 교회 운영 등을 개혁운동의 중심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윤실은 몇몇 극대형 교회가 목회자 세습이나 불투명한 재정 운용 등으로 심각한 문제를 드러내자 최근 교회 내부의 선명한 운영 쪽에 무게를 두고 있다. 다만 기윤실은 사회개혁에 있어서는 여전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실천운동(www.protest2002.org)은 성도교육, 교회의 민주적 운영 등 기독교 개혁뿐 아니라 사회개혁까지 지향한다는 점에서 기윤실과 차별성을 띈다. 교회의 재정비리나 중대형교회의 담임목회직 세습 등에 적극 대응하는 등 교회 민주주의를 제도화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다른 한편으론 기독교계가 지나치게 숭미적·냉전적 태도를 보일 때 항의성명을 내거나 한기총에 항의방문을 하기도 하지만,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한다.
이에 대해 박득훈 목사(실천운동 공동대표)는 “교회개혁에는 찬성하지만 사회문제에 있어서는 보수적인 분들이 많다”며 “그런 분들을 품기 위해서라도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와 관련해서는 단체이름으로 선명한 견해를 밝히는 데 조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아카데미는 지난 4일 김동호 높은뜻 숭의교회 목사 등이 중심이 돼 만든 단체다. 아카데미는 교회의 민주적 시스템 도입을 중시한다. 김동호 목사는 “봉건적 시스템으로 교회가 성장하면 목사와 당회가 교회의 주인이 되고 만다”며 “교회가 민주적인 시스템을 갖춰야 비로소 하나님이 교회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교회 개혁을 위한 방법론에 대해서는 기윤실과 실천연대 등과 이견이 있다. 김동호 목사는 “바른교회 아카데미는 현안에 대한 견해를 밝히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 게 바람직하다”며 “투쟁이나 시위가 아닌 연구와 훈련, 교육에 집중하면서 기존 교회개혁운동단체들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 목표는 교회권력 해체
이들은 정치적 태도나 교회개혁의 방법론에서 크고 작은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한국 기독교의 문제를 하나같이 교회의 비대화와 목회자의 기득권에서 찾고 있다.
박득훈 언덕교회 목사는 “60~80년대 독재정권 시절 ‘교회는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며 침묵을 지켰던 기독교인들이 지금에 와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기득권을 뺏길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라며 “어려운 사람의 편에 서야 할 교회가 보편적 가치에 치명타를 때릴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젊은 기독교인들은 교회개혁의 당위성을 여기에서 찾는다. 익명을 요구하는 한 목사는 “대형교회나 문제가 있는 목회자들이 자신의 도덕성 문제에 대해 ‘정권의 기독교 탄압’이나 ‘기독교 선교의 위기’로 호도해도 이게 곧이곧대로 먹히고 있는 현실에서 교회개혁의 필요성을 찾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교회의 권력화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교회 스스로 ‘기득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은 누구나 인정한다. 즉, 교회가 ‘자발적 가난(homelessness)’ 을 받아들이고 교회 내 권력을 해체하는 작업을 펼쳐야 하며, 이것이 교회개혁의 방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기복신앙을 포함한 교회 중심적인 사고를 버리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박철수 분당 두레교회 목사는 “요즘 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는 ‘신도가 수천~수만 명 되는 교회를 만들고 싶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며 “기복주의와 성장주의, 교회 중심주의를 강조하는 모든 사상과 교회는 모두 개혁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목회세습과 교회 재정의 투명성 확보는 교회개혁에서 핵심적 요소로 기윤실이나 실천연대, 아카데미 모두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박철수 목사는 그 이유를 “한국 기독교는 하나님을 위한 삶이라는 본래 목적보다는 대형교회 중심으로 기득권화 되어 있어 기복주의와 신도들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며 “교회나 목회자의 권위에 지배되는 교회가 아니라 교인과 하나님을 위한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김동호 목사는 목회자 정년 70→65살 인하, 원로목사 폐지 등을, 이진우 목사는 각 교단 총회의 성도 참여를 주장하기도 한다. 김동호 목사는 “당회에만 집중돼 있는 교회의 봉건적 시스템을 민주적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먼저 되어야 한다”며 “정책 입안과 집행, 재정담당 역할 등을 목회자가 아닌 장로나 집사, 신도에게 맡겨 교회의 운영과 재정을 담당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개혁은 한기총 뿐 아니라 한국 기독교단의 20%를 차지하는 한국교회협의회(교회협·KNCC)도 함께해야 하는 부분이다. 박철수 목사는 “과거 독재정권시절 민주운동과 통일운동의 물꼬를 텄던 사람이 문익환·박형규 목사 등 교회협이었다”며 “지금 교회협은 한기총의 힘에 눌려도 너무 눌려 린 것 같은데, 하루 빨리 자성하고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회개혁을 부르짖는 이들의 힘은 미약하다. 지난 4일 한기총이 기독교 신도들의 성향과는 상관없이 10만여 명의 성도를 불러놓고 ‘국보법 폐지 반대 구국기도회’를 열었을 때, 이들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개혁을 바라는 기독교 내 목소리가 차츰 커지고 있고, 젊은 기독교인들의 호응도 높아지고 있다. 언제까지 ‘계란으로 바위치기’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김미영 기자 kimm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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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독교 어쩌다 ‘수구’됐나
△ 4일 오후 서울 시청앞 서울광장에서 한기총 등이 연 "구국기도회"는 "국보법 때문에 불편한 사람은 간첩뿐입니다"라고 적힌 무대 위에서 치러졌다. 김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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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공산주의 마수에 적화되려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손길은 미국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존경하는 부시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께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4일 서울광장 구국기도회에서 김한식 목사)
최근 한국방송의 <한국사회를 말한다>와 잇단 구국기도회를 통해 친미 사대주의 등 한국 기독교의 수구성이 새롭게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 기독교는 이념의 수구성을 넘어서 이제 상식의 눈높이마저 훌쩍 뛰어넘고 있다. 도대체 한국 기독교의 수구성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원래 수구적이었을까, 아니면 최근 그렇게 달라진 것일까. 한국 기독교 보수교단의 수구적 행태는 많이 드러났지만, 정작 그 원인과 배경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 궁금증을 풀어보자.
◇ 뿌리론
한국 기독교의 수구성을 설명하는 데는 여러가지 접근법이 있다. 가장 먼저 거론되는 건 뿌리론. 120년 전 이 땅에 이식된 기독교는 미국 선교사들이 들고온 미국 기독교이며, 미국 개신교 자체가 매우 보수적이어서 한국 기독교 역시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의 유명한 목사들도 대부분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다.
특히 남한의 기독교는 평양 중심의 이른바 ‘서북파’ 기독교인들에 의해 성장했다. 서울의 영락교회나 충현교회 등 굵직굵직한 교회들이 이에 해당한다. 한국 기독교의 보수성은 역사적으로 분단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눈에 띄게 강화된다. 서북파 기독교인들은 지주계급과 함께 북한 정권의 탄압과 박해를 받은 탓에,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투철한 친미·반공 의식으로 무장됐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여기서 미국의 영향은 가히 절대적이다. 미국이 한국전쟁을 함께 치렀을 뿐 아니라, 전쟁 뒤 교회의 성장에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당장 먹을 게 없는 남한 민중에게 미국은 온갖 물자를 공급했다. 그리고 그 공급 통로는 다름 아닌 교회였다. 배고픈 이들은 교회에 가서 주린 배를 채웠고, 그들의 머릿속엔 미국이 ‘은혜의 나라’로 각인됐다. 박정신 숭실대 교수(기독교학)는 “한국 기독교는 이때부터 돌이킬 수 없는 친미의 길로 들어서게 됐고, 또 ‘예수 잘 믿으면 물질적으로 축복받는다’는 기복주의와 거기에 기반한 물직적 성장주의를 굳혔다”고 말했다.
최근 들어 눈길을 끄는 새로운 현상은 이들에게 반공보다 친미가 이념적 기반으로 더욱 강하게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북한 용천에서 대형 폭발참사가 났을 때 보수적 기독교 교회와 단체의 연합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은 누구보다 발빠른 대북지원사업에 나섰다. 그러나 미군장갑차에 희생된 여중생들을 추모하는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집회를 여는 등, 친미적 성향은 변하지 않거나 더욱 강고해지고 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구교형 사무국장(목사)은 “6·15정상회담 등으로 북에 대한 생소함이 줄어들면서 한국 기독교계가 북에 대해 인도적 차원의 접근을 늘리고 있지만 북한 정권과 북한 인민을 철저히 분리해 이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그러나 노무현 정부가 미국에 댓거리하는 것처럼 비치고 젊은이들 사이에 반미 정서가 확산되면서 한국 기독교의 친미적 성향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 부역 성장론
한국 기독교의 신학적 기반은 ‘정교분리 원칙’이다. 정치와 종교는 서로 간섭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70~80년대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젊은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 지도자들은 이 원칙을 들이대며 ‘예수의 이름으로’ 나무랐다. 그러나 이들은 겉으로 정교분리 원칙을 외치면서도 정작 뒤로는 ‘정교야합’을 일삼았다고 개혁적 기독교인들은 지적한다.
선교 120년 만에 눈부시게 교세를 성장한 배경에도 바로 이런 수구성이 자리잡고 있다. 서북파 기독교인들은 같은 기독교인인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 등 자유당 정권 독재자들을 노골적으로 지지했다. 박정희 이후 계속된 군사독재정권 때는 유명한 ‘대통령 각하를 위한 구국기도회’를 자주 열었다. 독재자들을 축복해 그들에게 종교적 권위와 정통성을 부여해준 것이다. 70년대 일부 기독교인들이 유신헌법 반대 성명을 내자,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유신헌법 지지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국 기독교가 독재자들에게 일방적으로 퍼주기만 한 건 아니다. 이승만과 이기붕을 위해 기도했을 땐, 군대에 군목을 파견하는 제도를 얻었다. 60년대 박정희 대통령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주도한 김준곤 목사(대학생선교회 총재)는 얼마 뒤 서울시로부터 덕수궁 뒤편의 시유지를 헐값에 불하받아 대학생선교회 건물을 지었다는 의혹을 샀다.
△ 이날 행사장에는 "국가보안법 사수, 한미동맹 강화"라고 적힌 대형 풍선이 두개 행사 줄곧 시청광장 하늘에 떠 있었다. 김순배 기자
물질적 거래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개혁적 인터넷 기독교 매체인 <뉴스앤조이>(www.newsnjoy.co.kr)의 김종희 대표는 “한국 기독교는 박정희정권의 성장주의와 맞물려 현세의 구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신도로 빨아들여 급속하게 성장했고, 정권의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 지배문화는 교회 안에서도 그대로 목사의 강력한 교회권력을 유지하는 지배문화가 됐다”고 말했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구교형 사무국장은 “박정희정권 이후 이른바 ‘TK’ 지역 출신 목사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며 “상대적으로 ‘복음률’이 낮은 영남지역 목사들이 교계 안에서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당부한 한 기독교계 대학 교수는 “개신교 목사들은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문화 속에서 절대권력의 성채를 쌓아올렸다. 대신 그들과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신도들의 사고와 인식 수준은 멀게는 한국전쟁 전후, 가깝게는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머무는 지체증세를 앓게 됐다”며 “어쩌면 그들은 진정으로 ‘한국사회가 빨갱이 지옥으로 변해 기독교를 탄압할 것’이라고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 의식에서 행동으로
한국 기독교는 출발부터 보수적이었고, 한국전쟁과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면서 빠르게 수구화됐지만, 이들이 지금처럼 ‘왕성한’ 대외적 정치 활동을 하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초대형 기도회 형식의 정권반대 장외집회는 김대중정부 중반 이후부터 모습을 나타냈다. 그들이 교회 안에만 머물 수 없도록 교회 안팎이 변한 탓이다.
자신들의 전통적 우호세력이었던 권위주의 정권이 잇달아 선거에서 패배하면서 이들은 무엇보다 심리적 상실감에 빠졌다. 개혁적 기독교 월간지 <복음과 상황>의 양희송 편집장은 “교계 지도자들이 자주 정부를 비판하며 정치에 개입하려고 하고, 수구적 태도를 강하게 나타내는 건 권력과의 유착관계가 상실된 부분을 채우고자 하는 욕구의 과잉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력와의 유대 단절은 감정의 문제이기 전에 현실 위기의 문제다. 그리고 이들에게 현실적 위기는 교회 밖의 위기가 아니라 교회 안의 위기다. 양희송 편집장은 “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이해가 걸리거나 목사의 도덕성과 관련한 사안들이 불거져 나오면서 이들이 자기 교회의 문제를 한국 교회 전체의 문제로 호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계에서는 대형집회에 신도들을 동원하는 일이 최근 눈에 띄게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목사 한 사람의 말에 수만, 수십만을 동원할 수 있었던 건 이제 흘러간 시대의 향수가 되어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김종희 대표는 “권위주의가 대형 교회 안에서도 조금씩 깨어져 가면서 대형교회 목사들의 신도들에 대한 영향력도 예전 같지 못하다”며 “평신도들로부터 교회의 민주적이고 투명한 운영과 의사결정 구조의 수평성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어 목사들의 위기감이 크게 증폭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의 빈번한 반정부 집회의 이면에는 외부와 전선을 형성해 내부의 위기를 해결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얘기다.
교회개혁실천연대 구교형 사무국장은 <조선일보>로 대표되는 수구언론과의 관계에도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구 사무국장은 “월간조선의 조갑제 같은 사람들이 ‘이 시대 한국사회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은 한국 기독교’라고 부추기고 대형 교회 목사들과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목사들이 ‘이제 한국사회를 살려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며 “양쪽에 정치적인 연결고리가 형성되면서 비기독교 수구세력과 함께 연합전선이 형성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그러나 정작 이들에게 심각한 문제는 이들이 행동으로 표출한 위기감이 갈수록 상식에서 일탈하고 있다는 데 있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슬프고 돌출적인 행동을 하면 할수록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싸늘해질 수밖에 없다.
<한겨레> 온라인뉴스부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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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득권 위한 ‘구국기도회’
맑은 가을하늘 아래 서울광장에서는 시대착오적인 시국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국가보안법 폐지에 반대하는 극우 단체의 시위는 흔히 보아온 일이지만, 종교단체까지 나서 극우 목소리를 내며 대규모 선동적 정치 집회를 연 것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기독교계 보수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비상시국’을 선포하고 ‘구국기도회’ 명목으로 국가보안법 폐지 및 사립학교법 개정 반대 견해를 밝혔다. 현정권이 보안법 폐지를 고집해 국가 안보와 좌파 세력의 확산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으며, 사립학교법을 개정하면 신앙 교육의 자유와 권리가 위협받는 종교 탄압사태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순리를 거스른 주장으로, 종교 발전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보안법 폐지는 기본적 인권인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되찾고 남북 화해를 촉진시키기 위한 것이다. 갈등과 분쟁을 화해와 일치로 치유해야 할 교회가 악법 폐지에 찬성은 못할망정 반대하는 것은 본분에 어긋난다. 더욱이 “하나님이 없다는 사상과 주의를 어떻게 용납할 수 있는가. 십자가의 대속과 피 묻은 복음으로만 통일되게 해 달라”는 기도문은 합리적 자세에서 한참 벗어난 것이다. 사립학교법 개정 또한 만연한 사립학교의 부패·비리·전횡 구조를 투명하게 바꾸기 위한 것이다. 이런 뜻을 외면한 채 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은, 종교 자유를 방패막이로 재단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때문에 기독교 안에서도 ‘구국기도회는 나라와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한 기도회가 아니라 대형 교회 목회자를 비롯한 수구 기득권 세력의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독재자를 위해 구국기도회를 했던 보수 기독교 교단이 다시금 극우 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구국기도회를 열고 이를 전국 주요 도시와 국외로 확산시켜가겠다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갈등을 부추기는 대규모 동원식 집회는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