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관련 6개 독립교회에 대한 부분만 발췌 소개 (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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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관련 6개 독립교회에 대한 부분만 발췌 소개 (제-관)


개신교 선교 1백주년을 갓 넘긴 한국교회의 양적 성장은 실로 경이롭다할 수밖에 없다. 천만을 상회하는 기독교인수는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성장은 세계인의 이목을 끌게되었고 기독교 선교사적 모범이 되고 있으며 따라서 세계 선교의 중요한 일 몫을 담당해야할 사명 또한 우리에게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교회 성장의 이면에는 세속사회의 급속한 산업화와 물질 물량주의의 사조와 함께 외적 양적 성장에만 집중한 나머지 내면적이고도 영적인 면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진 부정적인 면 또한 심각하다 아니할 수 없다.

이미 서론에서 말했거니와 교회성장에는 성도의 수가 증가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성도의 영적 성장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성장의 참된 의미를 선각하여 이를 위해 힘써온 몇몇 교회가 있는데 소위 독립교회가 그것이다. 이들 한국의 독립교회들은 양적 성장주의를 추구하기 보다 소수 질적 성장을 위해 교단을 탈퇴, 목회자 자신의 신앙의 양심을 따라 소신껏 목회를 해왔다. 본 연구는 저들 독립교회들의 외적성장이 아닌 또 다른 성장인 교회 영적성장을 위한 노력들 중에서 신앙운동의 방향성을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가를 조사함으로써 교회의 존재 의의를 알아보았고 조사했다. 물론 여기에 논의된 독립교회 말고도 더 많은 독립교회들이 존재한다. 갈보리교회(박조준 목사), 할렐루야교회(김상복목사), 성약교회(김홍전 목사), 벧엘교회(박태남목사)등등 수많은 유무명의 독립교회들이 전국에 산재해 있다. 그러나 이 장에서는 이들 한국에 있는 독립교회 모두를 대상으로 살피고자 하는 것이 아니요 과거 김현봉목사에게서 영향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독립교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김현봉목사에게서 영향받은 목사외에도 서철원교수 같은 신학자도 있고 그 외의 많은 교회들이 있지만 자료를 얻기가 쉽지 않았기에 우선 자료 수집이 가능한 여섯교회로 제한 하였음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조사방법에 있어 수많은 독립교회를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어 그 모델로 여섯 교회를 들었다. 이 교회들은 대동교회(서울 중곡동 Tel.469-7167) 성약교회(서울 동자동 Tel.754-8319) 아현교회(서울 아현동), 신촌교회(서대문구 신촌), 염천교회(서대문구 신촌), 서부교회(부산 서구 동대신동 소재)등 인데 이 교회들은 독립교회로써 추구하는 신앙노선이 정확하고 그 특징들이 선명했다.

대동교회는 신앙과 신학의 일치를 통해 견고한 신앙을 구축할 수 있었고, 성약교회는 독립 개신교회로서 개혁주의 신앙의 전통을 고수 하려하고, 아현교회는 김현봉목사의 뜨거운 헌신과 모범이 이후 많은 독립교회들을 탄생시키게 된 계기가 되었으며, 신촌교회와 염천교회는 김현봉목사의 삶과 신앙을 그대로 이어가려고 애쓰고 있으며 지금은 고인이 되었으나 서부교회의 설립자인 백목사는 김현봉 목사에게서 영향을 받은 친구였다. 이들 독립교회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각 교회 설립의 공통적 의의

상기 여섯 교회의 설립 의의에는 공통된 점이 있다. 즉 교단교회는 교단이라는 대집단적 조직 속에서 참된 교회로서의 그 빛을 잃는 경우가 많았고 정치적 사회적 단체활동 기구로 전락했거나 파벌과 교권쟁탈과 제사장적 신성한 직분을 세속적 야심의 권세직으로 바꿔 놓았으며 일부 목회자들의 대교회 지향적 수단과 방법은 온갖 부정과 타락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에 대한 극도의 회의감을 느끼게 된 몇몇 목회자들이 교단이라는 절대 구조를 이탈, 독립된 교회의 소신목회를 통하여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회복해 보려한 것이 그것이다.

독립시 문제가 되는 것은 독립된 개교회의 신앙과 신학적 토대가 확실하고 선명해야 한다. 그 자체가 불분명하고 독립의 목적의식이 희미하면 이단으로 빠져서 본래의 취지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 기존 교회의 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즉 독립시에 선명한 신학적, 신앙적 지표가 확립되어 교단 교회를 향해 그 모순을 지적하고 그 방향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하면 사교화 내지는 이단의 길을 걸어 배교하는 교회의 모습을 낳게 될 것이다. 그런데 위 세 교회는 적어도 이러한 점에서는 그 독립의 목적의식이 비교적 분명했다 볼 수 있다.
특히 김현봉목사의 아현교회 건립은 그의 헌신과 뜨거운 구령의 열정으로 인하여 이루어졌다. 김현봉목사는 성령의 뜨거운 감동을 체험한 직후 하나님 나라건설을 먼저 해야 할 것으로 믿어 사회운동가에서 신학생으로 변모하였다. 러시아 영내의 한국인들이 조직한 "노회"의 추천을 받아 평양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리하여 1928년 제 23회로 졸업하게 되었는데 졸업과 동시 서울로 오게 되었다. 이때 공덕(리) 교회를 맡아보게 되었는데, 이것은 남대문교회 당회장 오순영목사가 추천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하였다. 그는 아들, 딸 낳지 않기로 하고 당시 세브란스병원 간호원이었던 28세의 처녀 박천선과 결혼하였다. 결혼직후 경기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당시 공덕교회에 홍장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은 집사일을 보고 있었다. 이들이 성수주일을 하지 않는 등 멋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고 여러번 권면하였으나 듣지 않으므로 사임하고 새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그 교회가 아현교회인 것이다. 아현동 37번지, 공동묘지터에 빈민촌이 세워졌는데 그곳에서부터 개척케 된 것이다.


2. 독립교회의 교회관

김현봉목사는 지상교회에 대하여 말하길 "지상교회는 신성불가침이 아니다. 그러니 별별 사람이 다 모이는 것이다. 외로워서 사람을 의지해 보려고 나오고, 장가 시집가기 위해 나오고, 출세하기 위해 나오고, 득표하기 위해 나오고, 협잡하려고 나오고, 순전히 마귀로서 음란하기 위해 나온다. 정말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들어와 있는 곳이 예배당이다. 초신자들은 주의를 하라. 교회 다니는 사람이 다 예수 믿는 사람이거니 하고 믿다가 잘못되어 못된 행실보고 낙심하여 떨어지고 만다. 요즈음은 교인이라는 사람이 돈 떼어먹기가 예사다. 믿다가 타락하니 심히 악해진다. 아주 악해져서 양심이 화인 맞아 목사 장로할 것 없이 악하다. 제자 중 유다가 있고, 또한 사도들이 택한 집사중에 니골라가 있고, 교인 중에는 믿는 일 하지 않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가라지와 알곡이 비슷하니 속는 것이다. 그래도 나중에는 드러나고 마는 것이다."고 하였다. 이러한 그의 교회관은 칼빈의 교회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형교회나 무형교회는 관계가 있지만 유형교회, 가견적교회의 회원이 곧 무형교회, 불가견적교회의 회원이라 할 수 없는 사실과, 지상에 있는 교회의 한시성과 불완전성을 그는 이야기 한 것이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성령께서 교회에 내주 하시므로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하여 교회를 다스리신다. 따라서 노회, 대회, 총회같은 상회들이 개교회를 지배할 수 없다. 그 이유는 개교회를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요, 교회마다 개교회의 독립성, 자치권, 보호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조영엽은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대동교회나 성약교회, 아현교회는 이러한 원리에 충실한 교회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3. 타교회들과의 상호협력

구제와 선교 같은 하나님의 일들을 보다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경우에 따라서는 신앙을 같이하는 타교회들과의 상호협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예루살렘교회 성도들이 복음을 인하여 핍박을 받을때 설상가상으로 흉년까지 엄습하였는데,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을 위하여 여러 교회에 구호를 요청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롬 15:25-26), 이에 호응하여 온 교회들이 자원하여 구제에 적극 참여하였다. 여러 교회의 위원들이 구호품과 구제금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서 사도들에게 맡겼으며, 사도들은 성령님의 지도하에 구호를 필요로 하는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또 안디옥교회가 할례 문제로 쟁론이 있을 때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행 15:1)고 하였다. 안디옥교회는 대표들을 선정하여 예루살렘 공회에 파송하여 문제해결책을 요청하였고, 이에 응하여 예루살렘 공회는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유다와 실라를 안디옥교회에 파송하여 일을 수습하였다.

이러한 성경의 예처럼 독립교회들은 자신들과 형제관계를 맺고 있는 교회뿐 아니라 여러 개교회들과의 유대와 협력도 결코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성약교회의 경우에는 교파를 초월하여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목회세미나를 열고 있다. 아현교회의 김현봉목사의 경우는 이러한 가르침을 일생동안 베풀었다. 또한 각 교회 직분자의 임직을 위한 제반논의와 절차, 임직식 등을 위하여 모임을 갖는다.


4. 독립교회의 예배

교회의 예배들도 대동교회나 성약교회는 개신교 교회들의 예배의식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 그러나 형식이나 제도보다는 내용과 본질에 더 치중하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 중에 특히 김현봉목사는 마음을 다하여 예배를 드릴 것을 권면했다. 주일학교 예배는 7시 30분(오전)이었는데 일년내내 변함이 없었다. 이것은 어린아이들에게도 정성들여 주일 지키며 예수 믿는 법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장년주일학교는 9시에 시작하여 10시 15분까지 성경을 차례대로 강해해 나갔다. 주일 낮 예배는 10시 30분부터 11시 30분까지 드렸다. 오후예배는 오후 2시부터 1시간 드렸다. 그리고 저녁예배는 없었다. 예배는 기도를 시작하고 찬송한 후에, 성경을 봉독하고 설교를 하였다. 그 사이에 간간이 찬송을 불렀다. 그리고 설교를 마친 후 축복기도로 예배를 끝냈다. 온 교인이 온종일 안식하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


5. 독립교회의 신앙고백

이 부분에서 조사한 것은 제시한 독립교회의 신앙 노선이 어디에 있는가이다. 이 여섯 교회는 각 교회 나름대로 추구하는 신앙의 노선이 문서로써 제시하고 있는데 대동교회는 설립자인 김석준 목사의 강의인 "기독자의 바른 자세"로 나타나 있고 성약교회는 역시 설립자인 김홍전 목사의 저서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통하여 그 방향을 언급하고 있다.


1) 대동교회

대동교회의 설립자인 김석준 목사의 강의인 "기독자의 바른 자세"를 통해 본 신앙사상은 다음과 같다.

(1)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롬 8:14-16, 히 12:9)
이 개념은 현존 세상에서는 자녀로 구별되나 무궁 세계에 가서는 딸은 없고 전부 아들 뿐이다.(엡 1:5). 그 세계는 생육하고 번성하는 세계가 아니고 오직 누리는 세계이기 때문에 아들 딸이란 구별이 없고, 또 그 세계는 육체가 아니고 영체이기 때문에 아들 딸이란 구별이 없이 다 하나님의 아들 자격을 가지고 子權으로 행세하는 것이다. 그런고로 자녀란 말은 세상에서 신체를 가지고 있을 기간만 사용되는 것이요, 그 세계에 가서는 다 동등한 자권(子權)으로 행세하게 된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는 하나님의 자권으로만 만족한 세계요 누리는 세계이다.

(2) 나는 영존할 자이다.(요 5:24, 6:47, 엡 2:1, 5:8, 골 1:13, 요일 3:14, 5:13)
이 말은 택함받아 구속 입은 성도가 사선에서 끝나거나 혹은 목석으로 변하거나 금수로 화할 것도 아니고 영원불멸의 존재임을 나는 확신 해야한다.

(3) 현세는 나의 영존처가 아니다.(전 1:2-7)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정, 사랑, 마음을 두지말고 언젠가는 주님이 부르실 때 이것과 이별한다는 것을 알고 살되 영세주의, 초절주의가 되어서는 안된다.

(4) 나는 현세에서 조만간에 떠나야 한다.
이 뜻은 언제 떠날지 예고 없다는 말이며, 영원에 비교하면 빨리 떠난다는 말이다. 즉 영과 육이 다 떠난다는 말이다.

(5) 현세는 나의 영적 실력 양성의 교육장이다.(게 3:18-19, 19:7-10, 약 1:2, 롬5:3)
현세는 현실 세상이며, 여기는 우리로 영원히 누리라고 주신 곳이 아니기 때문에 현세에서 선한 싸움 다 싸우면서 영적 실력을 양성해야 된다. 현세 아니면 우리는 영적 실력 양성은 못한다.

(6) 나의 영원히 누릴 곳은 무궁세계이다.(요 14:1-2, 계 21:1-8)
성도의 영존처는 무궁 세계라는 믿음이 확실해야 한다. 이 삶의 목적이 분명치 않으면 성도의 신앙은 자기 위주의 신앙으로 이기화 된다.

(7) 무궁 세계는 실력대로 누린다.(계 22:12)
이 땅에서 영적 실력을 기른 그대로 무궁 세계를 누리기 때문에 환경이 교차되는 현세에서 영적 실력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해야 한다.


2) 성약교회

성약교회는 역사적 개혁 신앙과 그 정통 신학을 오늘날 이어받고 전파에 주력하는 것을 신도의 생활화하는데 목적을 둔다. 성도가 진척할 신앙의 자세에 대해, "누구나 복음을 진정으로 받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그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이 역사하고 있음을 체험할 것이다. 복음의 실내용을 받는다, 곧 구원을 받은 자는, "그 눈을 뜨게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단의 권세에서 하나님께 돌아온" 자요, 죄사함을 받았고, 또 예수를 믿어 거룩하게된 우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는다(행 26:8)이다. 그는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심"을 입고 그의 사랑의 아드님의 나라로 옮기우심을 받은자(골 1:3)이다. 구원을 받은 자에게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끊임없다. 그 사람을 붙들어 주시고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그에게마다 나는 "새 사람(엡 4:24, 골3:10)은 항상 힘있게 활동해야하고 그리하여 그는 시험과 흑암의 권세를 물리쳐야하며, 자기 일생의 인생길을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인도하시는대로, 좌우로 치우침 없이 바르게 행진해야 한다. 사람은 잠시라도 성신께 의지 않고서는 구원의 능력 안에서 사는 자의 생활을 할 수 없다. 신자는 만사에 성신님을 의지하고 사는 데에서 복음이 항상 신선한 희소식임을 맛볼 것이다."라고 그 방향성을 제시한다. 각 성도는 배운 도리대로 열매 맺는 생활을 하는 자체가 개혁신앙운동의 일부분으로, 각자 각성한 바 도리대로 생활하는데 주력한다.


3) 아현교회

김현봉목사의 가르침대로, 삼위일체론, 기독론 등에 있어서 정통개혁파교회의 가르침에 충실하였고, 특히 보혈과 십자가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가르침이 있었다.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었고 하나님의 진노의 자식이다. 따라서 영원한 사망의 저주를 받아 구원의 소망이 전혀 없다. 하나님의 축복은커녕 사탄의 노예와 죄의 멍에 아래서 무시무시한 파멸 속에 떨어져 있다. 이와 같은 차제에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변호자로서 하나님과 인간사이에 개입하셨다. 즉, 하나님과 의로운 심판하에서 모든 죄인이 위협받고 있는 모든 형벌을 그리스도께서 홀로 감수하시어, 하나님과 인간을 소외시키는 모든 죄악을 그의 피로서 씻어버리셨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이 화목제에 의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진노를 잠잠케 하셨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인간의 평화와 화해는 바로 이 시간에 근거한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로인해 우리에게는 칭의가 생기며 복음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믿는 상태에서 우리에게 진정한 하나님의 평화를 제공한다. 그러므로 김현봉은 죄인이 그의 전적인 겸손 속에서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할 때 그는 "칭의"를 취득할 수 있다고 했다.


4)신촌교회

신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안병모 목사는 철저한 칼빈주의 사상과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을 신조로 개혁주의 신앙 노선을 가고 있다고 그의 교회소개지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는 과거 한국 장로교의 모태였던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였고, 그 후 육군본부교회에 군목으로 근무하였으며, 대한 예수교 장로회 총회전도부에서 일한적도 있다.

초기 장로교회의 신앙을 본 받아 검소한 믿음 생활을 하겠다는 안목사의 생각에 따라 여성도들의 경우 검은 치마에 흰저고리를 입고 교회에 나오기도하는 점이 특색있다. 안목사 자신도 머리를 깍고 삼베옷을 입는등 교리나 에배형태는 기존교회와 차이가 없으나 오직 말씀중심으로 살고자하는 열정이 있다.


5)염천교회

염촌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이한영 목사 역시 철저한 칼빈주의 사상과 웨스터 민스터 신앙고백을 신조로 개혁주의 신앙 노선을 가고 있다. 고 김현봉 목사의 독립교회 사상에 매료되어 당시 노회와 총회가 개교회를 위한 제기능을 못할 때 의연히 교권주의에 맞서 소신목회를 하기위해 신앙과 사상은 그대로 인채 교회의 행정만이 독립을 하였다.


6)서부교회

고 백영희 목사에 의해 설립된 서부교회는 고 백영희 목사가 고신출신인 관계로 신학적으로는 보수 개혁주의 신앙을 고수하였다. 신구약 성경을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유일한 법칙으로 믿고,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콘스탄틴노플 신조를 정통교리로 채택하였다.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 및 대소요리문답을 성경과 사도신경의 가르침을 가장 잘 나타낸 것으로 보고 그것을 사용한다.


7) 신앙고백에 대한 평가

위 여섯 교회의 신앙의 방향에 대해 알아본 결과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신자의 자세이다. 한국교회가 근자에 와서 대교회 주의, 조직화 운동 등으로 성도 개인의 중요성이 상실되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성도는 대체로 교회 조직의 일원으로서 조직의 부품과 같이 그 가치가 격하되고 있다. 그러나 위의 여섯 교회의 신앙운동을 통해 나타나는 것은 성도 개인의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할 자세를 구체적이고 정확히 제시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대형화, 조직화, 물량화, 세속화되는 속에서 교회 성장 위주의 추구를 배격하고 구속받은 성도 개인의 신앙자세를 명확히 제시하며 실천하게 함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세우신 교회의 모습을 올바르게 찾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발견 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역류해 오르며 가능한 한 성경의 가르침대로 지키며 살려는 의지를 세속화된 교회는 주목해야 한다.


6. 독립교회의 정치와 행정

조영엽은 개교회의 권한들을 맥클레인(Alva McClain)의 말을 빌려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개교회의 회원들은 치리할 권징권을 가지고 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개교회로 하여금 외인들은 하나님이 판단하시려니 와 악한 사람은 교회에서 출교하라고 명령(고전 5:13) 하였기 때문이 다. 교회의 순수성을 보전하기 위하여 교회는 권징권을 사용하여야 한다. 권징은 교회의 임무인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칼빈도 교회의 표지의 요소중의 하나로 권징을 이야기한 것이다. 독립교회 또한 권징을 시행한다. 아니 오히려 기존의 교회들이 성경적인 권징을 시행치 않는데 대한 반발로서 세워진 교회들이 많기 때문에 지금 예로 들고 있는 세 교회뿐만 아니라 많은 독립교회들이 권징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개교회는 직원들을 선출할 권리들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초대교회의 직원들은 사도들이 하지 않고 개교회가 직접 선출하도록 하였다(행 6:1-6). 이와 같이 오늘날도 교회 직분 선택에 있어서 사 전에 직분의 자격, 임무, 권한 등에 관하여 성경말씀이 교훈하는대로 가르치고 광고하고, 신앙으로 기도와 말씀으로 준비케하여 교회가 정한 일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정한 방법에 의하여 교회 회원들(세 례교인들)이 직접 선택하도록 해야한다. 선택방법은 기명이나 무기 명 투표로 하되 결격 사유가 발견되면 제직임명전에 무효화 할 것이 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독립교회들만큼 이러한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교회들이 드물 것이다. 혹자들은 독립교회가 담임목사의 전횡과 횡포가 우려된다고 하지만 교회의 직원들이 성경의 원리하에 엄격하게 선출된다면 성숙된 교인들과 직원들에 의해 교회가 운영되므로 그러한 우려가 결코 문제가 될 수 없다.

교회의 규례들을 보호하고 지킬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것이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 터, 방파제이다(딤전 3:15). 교역자들이 타락하 는 만일의 경우에도 교회는 교회의 모든 규례들을 지키고 보호할 사 명이 있다. 모든 규례들은 우리를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하였다.(고전 11:23) 여기에 "너희"는 목사 또는 장로가 아니라 성 도 전체를 가리킨다. 성도들 전체는 교회의 규례들을 지켜야 할 책 임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개교회들은 성경의 원리원칙 안에서 각각의 규례와 규칙을 제정하고 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것이다. 물론 거대교단에는 헌법이 있고 규칙들이 있지만 그렇다고해서 그것이 개교회의 독립성을 침범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이나 현대의 신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각각의 독립교회들은 교회의 규례들을 만들고 또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개교회의 고유한 권한들을 보존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교회는 자신들 교회의 내부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할 권리가 있다.
개교회내에 어떤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개교회 자체가 해결하기 곤 란할 때는 상회인 노회나 총회에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고전 6:1-15).

그러나 가능한 한 개교회의 문제들은 개교회가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또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각 독립교회들은 소속된 교단이나 노회가 없어도 잘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신약의 모든 교회정치는 개교회들에만 적용시켰다고 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큰 사업을 하기위해서는 상회의 역할이 크다. 교역 자 양성을 위하여 신학교를 운영하거나, 해외 선교사의 파송, 타교단 들 과의 연합, 신앙적 교리정립, 성경적 연합운동 또는 집회, 협동적 구제 등은 개교회들로 구성된 노회나 총회 같은 상회의 역할이 지대 하다.

그러므로 상회와의 관계를 무시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이유들로 해서 상회가 구성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교회들을 대표하는 기구에 불과하므로 민주적 협의체로서의 기능을 발휘하여야만 할 것이다.

개교회의 문제에 관한 한 개교회의 권위는 최종적이다 할 것이다.
개교회 이상의 고등재판소가 없다. 극단적으로서 개교회가 다수 에 의하여 이단으로 넘어가도 할 수 없다. 인간적 측면에서 고려한 다면 개교회의 문제에 관한 한 개교회가 결정할 최종적 결정권을 가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독립교회들이 다소의 위험성은 있지만 최종적 결정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교회의 정치, 행정을 자율적으로 집행해 나가는 것은 온당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개교회는 그러나 타교회들과의 유대관계를 소홀히 하거나 무시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므로 공동체적 책임과 특권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계 1:9)가 우리가 속해있지 않은 다른 교회에 의하여 증거되는 증거와 별개의 것으로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상호간 물심양면으로 서로 협조하고, 교리적인 문제들을 규정짓고, 이단을 경고, 방어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 다만 예루살렘 공회에서처럼 개교회정치에 간섭하지 않고 개교회들이 성경 원리대로 시행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일 다수의 교파들은 정치적 교권이 너무 강하여 중요시해야 할 신앙적, 교리적 문제들은 소홀히 하고 개교회 정치와 행정에만 너무 깊이 간섭하는데 이것이 성경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도 교권 침해는 정당화 될 수 없다. 모든 것은 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개교회 중심이면서 상하, 또는 좌우협력, 유대강화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이 성경의 원리이다.


1) 독립교회의 정치와 행정비교

(1) 대동교회
교회의 정관은 따로 없고 장로교 헌법(합동)으로 교회의 제도 및 처리를 기준한다.
교회 전체 운영을 위해 임사부를 두고 산하에 재정부, 조직부, 교육부, 전도부, 건축부, 수리부, 관리부, 수양관(기도원), 출판부, 봉사부, 구제부, 섭외부, 찬양부, 성가지도, 반주 등을 두어 평신도가 각 부에 부(차)장을 맡아 교회를 주신 은사대로 섬기게 한다. 그리고 교육부에는 청년부(대학부 포함), 중.고등부, 유.초등부를 두고 각 부서에 부장과 교사, 부교사를 임명하고 각 부 후원회를 조직하여 교육비를 자체 충당하도록 한다. 여기서 교사는 1명이며 전도사와 같은 일을 하되 학부생에서는 전도사를 세우지 않는다. 부교사는 보통 교회의 교사의 역할을 한다. 여전도회는 40세 이하를 에스더라 칭하고, 40세 이상을 마리아라 칭하여 이원화 하고 있다.

(2) 성약교회
특별한 제도는 없고, 집사 한 분만 임명되어 있어 그 분이 제정을 관리한다. 교인수는 장년 45명 정도이다.

(3) 아현교회
아현교회에 대한 구체적인 정치와 행정에 대한 자료는 없다 단지 그의 가르침의 단편들을 정리 해볼 때 다음과 같은 것들을 추측 할 수 있다.
치리에 대해서는 "교인이 잘못 하더라도 그 교인의 정도와 형편, 처지, 교회의 상황을 보아서 가르칠 것이고 만약, 벌을 잘못하면 악감정만 나게 해서 손해만 본다. 그대로 두면 스스로 해는 볼지라도 이것저것 생각해서 그대로 두는 것이 법이다. 자신이 만들어져야 성경을 써먹고, 이 말씀이 (성도들 자신으로 하여금) 포용성, 관용성, 그리고 너그럽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자꾸 하나님의 성품과 같아진다" 이것은 교회가 권징을 시행은 하되 신자의 신앙정도에 따라서 또 가능하면 말씀을 가르쳐서 스스로 깨닫도록 하자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장로에 대해서는 "장로는 교회를 쥐고 펴고 하는 짓을 하면 장로의 자격이 없다. 장로가 교회의 주인도 아니며 목사도 주인이 아니다. 주인은 오직 그리스도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장로는 주인이요, 목사는 품팔이 꾼이 되어있는 것이다. 목사가 장로를 책망하면 책망은 받지않고 목사를 쫒아내는 것이 다반사이다. 교인 몇 명에 장로 한명을 세우는 것은 성경에 없다. 숫자와 조직의 일부는 편리할 수도 있겠지만 조직에 치우쳐서 자격이 없는 자도 장로를 세우니 이 사람이 목사를 가르치고 쫓아내고 하는 것이다. 장로는 목사를 주관하기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장로가 되지 아니하였으면 오히려 범죄치 않을 사람이 있다. 그러나 목사가 평교인만도 못할 때에는 불가불 교인의 대표와 장로가 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장로는 목사의 조력자이다. 그런데 권세를 부리고 주인 노릇하며 일꾼 내쫒고하는 것은 벌 받을 일이다. 장로가 장로의 일을 못하면 교회의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장로 때문에 목사가 교회 일을 못하게 된다."

이러한 그의 설교에서 볼 때 아현교회는 장로교회는 아니지만 장로제도를 인정하고 있으며 개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 특히 공동의회에 의한 교회운영과 정치를 하였음을 볼 수 있다.

(4)신촌교회
현재 교인이 600명정도인 신촌교회는교회당이 협소하여 사택과 다락등에서 모니터로 연결하여 예배를 드리고 있다. 교역자로는 안목사와 전도사 9명이 있다. 교육기관으로는 기존교회와 별 차이가 없는데, 남자와 여자성도들의 자리가 구분되어 있어 초대교회를 연상케 한다. 십자가상과 피아노등이 없는 것은 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서가 아니라 단지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그렇게 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성도들이 한복을 입고 에배를 드리는 것이 이채롭다. 교회운영에 대한 전반은 기존의 교회와 별다르지 않다.

(5)염천교회
목회방침으로는 성도개인의 구원을 이루어가는 성화에 중점을 두고 있는데, 행정조직으로는 주일학교를 위해 반장(교사)몇명외에 일체의 직분을 두지 않고 있다. 집사, 권사, 장로, 구역장, 남녀전도회 회장, 성가대등의 일체의 기관이나 조직이 없이 다만 두사람의 전도인이 교회의 모든 행정, 재정, 을 보조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6)서부교회
목회행정 전반이 주일학교 중심으로 꾸며져 있다. 모든 훈련이나 교육도 주일학교 중심으로 꾸며져 있기 때문에 동양에서 가장 큰 주일학교를 운영하는데 주일학교 학생수가 자그만치 일만명이 넘는다. 기존의 교회운영과 다르지 않은 조직과 행정체계를 가지고 있으나 백영희 목사 사후 네 교회로 분열되는 아픔을 겪었다.


2) 독립교회 행정에 대한 견해

위에 제시한 교회들은 모두 기존적으로 내려오는 장로교회제도와 헌법을 토대로 교회 행정을 이끌어 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성약교회의 경우는 평신도가 주축이 된 교회의 모습을 찾고져 하는 의미에서 새로운 운영지침을 마련한 듯 하다. 각 교회들이 대교회의 조직중심, 제도중심의 교회보다는 성경을 올바로 배우려는 자세가 기초적으로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제도와 행정면에서 부실한 면도 없지 않다. 특히 염천교회의 경우에는 이러한 면이 더 강하다. 그리고 각 교회의 예산 편성 집행보다는 결산 위주의 집행을 했고 헌금 상황을 잘 파악 못하여 구체적으로 각 부별 행사별 %를 조사하지 못했으나 공통점은 제도보다 성경의 진실된 가르침과 배움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다.

아현교회의 경우는 김현봉 목사가 늘 가르치기를"교회에서 큰 자가 천국에서도 큰 자이다. 남을 위해 일하고 남을 위하는 자가 큰 자이다. 자기 일 하고 또 힘이 있으니 남을 위해 일해주는 것이다. 이이가 큰 자이다. 자립심을 길러야 한다. 이왕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학교공부 할 형편이 되지 않을 시는 자기가 고학으로 하는 것이다. " 그러면서도 늘 구제를 강조하였다. "빌어 먹을 수 있는 자를 도와주는 것은 결코 그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력을 못 길러 주는 것이고 이런 자가 많을 때는 국가가 가난해진다. 그러나 조금 도와주어 그의 장래에 유익을 줄 수 있다면 힘껏 도와주는 것이다. 구제는 잘해야 한다. 잘못하면 해를 끼치는 것이 된다." 고 했다. 물론 아현교회의 김현봉 목사는 다른 교회행정은 교회의 직원들에게 위임했지만 교회의 재정만큼은 그가 직접 관리하면서 전권을 가지고 주로 교회의 구제를 위해 사용했다는 것이 특이하다. 그의 이러한 행동에 대해서 아현 교회 안에서는 전혀 불평이 없었으나 바깥에서는 독재라며 빈정대기도 했다.



Ⅷ. 독립교회의 가능성

1. 독립교회의 단점

한국교회내에서는 전통적으로 교단이 발전했기 때문에 독립교회라는 이름이 주는 의미가 생소하고 아직 이 개념이 일반인들에게 잘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사적으로 볼 때 종교개혁은 카톨릭교회에 대한 독립교회 운동이었고, 장로교회, 감독교회, 회중교회등은 주지하다시피 처음엔 모두 독립교회로 출발하였었다. 신학이나 실천에서 동일하나 정치적으로 교단을 형성하거나 서로 유대를 갖지 않는 이러한 특징을 일반교인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약점이 있다. 즉 신학적인 건강한 기초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립교회(Independent Church)라 할 때 일단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거부감은 그 명칭에 따른 모호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독립교회라 할 때 그 개념은 기존 교단에 속하지 않고 자유로우며 개교회의 독립성과 자율성 즉 교회의 자치권과 행정을 독립적으로 운영해 가는 교회들이라고 넓게 지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면이 오히려 사람들에게는 이단적인 거부감을 주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교단에 대한 이미지가 강한 한국교회의 특성상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지금까지 너무 많은 이단들이 출현 해 한국교회에 피해를 입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독립교회는 앞으로 무엇보다 이러한 이미지 개선 작업에 더욱 노력을 경주하여야 할 것이다.

1) 교단과의 관계문제

독립교회의 장점이며 자랑이기도 한 개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 문제가 향후 독립교회성장의 가장 큰 장애물이 될 것이 틀림없다. 즉 기존의, 교단이나 교파에 치우치지 않고 독자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시행해 나가고 있는 교회라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이 있지만 여전히 교단 중심 노회 중심으로 흘러가는 한국교계의 풍토상 독립교회의 홀로 서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이 사실이다. 조영엽은 다음과 같이 논한다.

우주적 교회는 모든 세대에 구속함을 받은 모든 참된 성도들로 구성 된다. 따라서 개교회들은 우주적, 무형적, 신령한 교회들을 반영하는 참된 유형적인 교회들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 씀이 바로 증거되며, 성례가 바로 시행되며, 권징이 바로 시행되어야 한다. 신자들이 개교회에 가입하지 않아도 우주적교회의 회원이 될 수 있는가? 오늘날 교회들의 큰 문제들 중 하나는 개교회 중심, 교파 중심이 강하여 전 세계에 편만에 있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로 구성된 우주적 교회의 성질에 관하여 망각하고 개교회 만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개교회 중심주의는 교회를 물량주의로 하락시키며, 세속화시키며, 심지어는 동일한 신앙을 고백 하는 교회들, 신자들과의 신령한 연합도 저해시키며, 개교회로서 수행 할 수 없는 보다 더 큰 주님의 사업을 수행할 수 없도록 하는 중요 요인들이 된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상당수의 교회들이 배교와 불신앙으로 타락되었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타락되면 그 교회는 더 이상 성령이 역사하시는 교회, 진리의 기둥과 터, 방파제로서의 교회가 아니다. 상당수의 신자들은 부지중에 신조와 신앙고백이 변질되고 신앙적으로는 저질화 내지는 세속화하게 된다. 한편 교회가 타락할 때 진실된 많은 신도들 중에는 그 여파로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로서의 교회도 등한시 또는 경시, 심지어 부인하는 경향이 발생된다. 따라서 개교회의 일원으로 가입하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우주적 교회의 회원이 아닌 사람들, 즉 불신자들은 개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은 것이 이상적이다. 그러나 지상의 유형적 교회는 실제상 가라지와 쭉정이도 들어있게 마련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 대하여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고전 1:2)이라고 하였다. 이 말씀은 교회 내에 위선자들을 포함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위선자들, 불신앙자들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와 상관이 없는 자들이요, 교회의 회원들이 아닌 이상 개교회 회원들인 신자들에게 신앙상 피해를 주지 못하도록 교회를 보호해야 하며, 위선자들, 불신앙자들이 교회에 침입해 오면 추방해야 할 것이다.(마 18:15-18; 고전 5:1-13) 그러므로 독립교회들은 개교회의 독립성을 강조는 하되 신앙상 교리상 별 차이가 없는 다른 교단 또는 형제교회들과의 관계를 폐쇄해서는 안되고 개교회 행정 및 신앙노선을 개방하여 타교회와의 신령한 교제를 이루어가는 길을 섬세하게 모색해야 한다.

다행히 최근에 독립교회의 위상을 새로이 정립하고자 하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독립교회연합회가 생겨지고 협력을 서로 모색하고 있는등 매우 고무적인 일이 일어나고 있지만 본 연구자가 생각하기에는 단순한 친목 이상의 유대는 오히려 독립교회의 순수성을 해칠 우려가 있지 않을까 한다.


2) 목회자의 문제

독립교회는 앞으로 한국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우려와 경계의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그것중의 하나는 목회자의 과도한 카리스마로 인한 폐단의 문제이다. 왜냐하면 독립교회의 탄생 이면에는 목회자의 강력한 리더쉽과 독선에 가까운 홀로서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므로 목회자가 생전에만 영향력을 발휘할 뿐만 아니라 사후에도 계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는 경우가 많이 있게 된다. 이들 교회들은 대개가 기존의 교단들이 지나친 교파주의로 개교회를 고립시키거나 과도한 교권주의로 신앙의 순수성을 잃어버린 채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것에 반대하여 교단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 버리고 홀로서기 한 경우가 많다. 개혁교회의 신앙지표인 말씀의 올바른 선포와 성례와 권징을 무시 혹은 왜곡하는 것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고 자신들이 속하여 있던 교단을 탈퇴하여 독자적 행정체계를 갖거나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독립된 행정과 신앙관을 가지고 창립한 교회 등이다. 이러한 독립교회의 발생이유는 그 당시로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지만 시대가 지나고 그러한 요인들이 상당히 제거된 뒤에도 과거의 전통에만 묶여 있게 되는데 이는 목회자의 영향력이 너무 많이 교회에 미쳤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설립자 혹은 목회자 개인의 신앙이 성도들의 신앙을 극단적으로 폐쇄시켜 사교화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독립교회의 실제적인 출현은 시간이 지날수록 대세화 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독립교회들이 출현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앞서 지적한 목회자의 지나친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의 보완이 필요하다. 아현교회 김현봉목사는 그가 세상 떠날 때가 가까워졌는데 그는 자기 정신을 바로 이해하는 이가 없는 것과 교회 앞날을 염려하여 탄식하면서 "하나님 나를 불러가옵소서"하고 기도했다고 한다. 또 임종하기 얼마 전에도 "하나님께서 자꾸 나를 징계하시는데 이 교회가 앞으로 어떻게 될런지…"하며 걱정했다 한다. 이에 대하여 엄두섭은

김현봉목사의 정신이 특별했기 때문에 그를 추종하는 목사들도 많았 고 김목사는 젊은 목사들이나 청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의 온갖 정 력을 다 썼다. 그러나 결과는 그들 중 다수가 자기 고집대로 하고, 김목사 정신을 바로 안 배우고, 바로 안 따르니 김목사는 실망속에 그런 기도와 탄식을 한 것이라 본다.
고 했다. 실제로 그의 이러한 기우는 김목사의 사후에 사실로 나타났다. 아현교회도 그의 사후에 분열되어, 결국 네 조각으로 갈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부정적인 결과는 엄두섭의 말처럼 김현봉 목사를 지나치게 흉내내는 목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김목사는 설교할 때마다 목이 깔깔하여 가래 배앝듯 "캑캑"하여 밥알 하나 정도의 가래를 곁에 준비해 둔 신문지 자른 종이에 닦는 습관 이 있었다. 그를 따르던 젊은이 중 어떤 분은 신통하게도 설교하다 가 꼭 김현봉목사식으로 "캑캑"하여 종이에 닦는 습관이 있는 이도 있었다. 또 어떤 목사는 말하는 것, 동작, 손가락 놀리는 것, 밥숟갈 놀리는 것까지 신통하게도 김현봉 목사를 닮은 이들이 있었다.

이러한 경향이 독립교회의 목회자들에 의하여 나타날 수 있는 단점들이다. 또 김현봉목사의 제자라기보다는 동지의 한 사람이었던 부산의 백목사도 생전에는 독립교회로서 부산 경남지방에서 크게 성공한 목회를 하였으나 그의 사후에는 역시 네 개의 교회로 갈라지는 아픔을 겪었는데, 그 일차적인 원인은 백목사의 카리스마를 벗지 못한 일부 교회의 추종 성도들이 새로운 목사를 모시기보다는 생전의 비디오 녹화 테입으로 예배를 대치하였기 때문이다.


3) 지나친 구별의식

앞서도 잠시 언급하였지만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지나친 구별의식에 문제가 있다. 독립교회의 독자노선 추구 및 설립동기를 원인별로 분석해 보 때 이해되는 부분이지만 그러나 세월이 지난 지금 까지도 그러한 의식으로 형제교회에 대하여 배타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면 고쳐야 할 것이다. 독립교회의 발생 이면에는 교단적 잘못된 결정사항 (신사참배 결의 혹은 불신법정 고소문제)등의 자체의 범죄행위에 동참하는 죄를 범치 않기 위하여 결별 혹은 독립한 것으로 신앙적 차이로 인한 이유와 기존교회의 이기주의, 대형화, 물질주의로 흐르는 부패된 현상을 개혁하여 교회 본래의 사명인 사회 속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역할을 되찾자는 교회 윤리적인 견해차이의 이유 그리고 인위적 압력의 수단화가 되고있는 거대교단조직의 경직성을 탈피하여 독자적 소신 행정을 펴기 위한 교회행정상의 이유. 기타 양보할 수 없는 신학적 견해차이의 이유. 등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교회들이 흔히 이단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기존의 고정된 교회개념을 갖고 관찰하는데서 오는 오류일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우리나라 독립교회 설립당시의 출발은 적어도 절대적 하나님 중심의 신앙 목표 하에 신앙적으로 윤리적으로 그리고 교회행정 신학적으로 정로를 걷고자 시작된 용기있는 개혁운동 이었음을 부인할 사람이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바리새 주의가 될 수 있고 개교회주의가 과도하게 심화되거나 교회의 통일성을 해치며 중구난방으로 흩어질 가능성이 있다. 또한 성경절대주의의 일면으로만 흐르다가 정통신학을 간과하여 이단적 요소를 배태시킬 위험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독립교회의 지나친 우월의식을 타파하지 않는 한 지난 시대에는 긍정적이었던 장점이 오늘날에는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여 새롭게 일신할 수 있는 과감한 노력이 요구된다 하겠다.



2. 독립교회의 장점

1) 21세기를 대비한 독립교회

세상에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변하는 것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며, 그 변화는 우리들의 삶의 전 영역에 미치고 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급변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는 시시각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세상에 속한 자는 아니나 세상에 살고 있다. "We are in the world but not of the world"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밖에서 따로 떨어져 살 수 없다. 세상의 변화는 교회의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변화는 신앙의 방법과 세계관과 가치관을 많은 부분 바꾸어 놓고 있다. 목회자는 변치 않는 성경의 복음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에 증거하는 책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목회자가 무서운 속도로 변하는 세상을 바로 읽지 못한다면 시대의 낙오자가 되거나, 그 시대에 풍속에 빠져서 무력한 종교 지도자로 전략하기 쉽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4장과 25장에서 말씀하신 대로 시대의 징조를 바로 알아 깨어 있어서 오는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자위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시대적 변화에 대안 없이 자폭할지도 모른다.

이 연구는 다가오는 미래를 생각하면서 복음을 붙들고 고뇌하는 목회자를 위한 제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연구들이 과거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21세기를 몇 년 앞으로 내다보면서 급격히 변하는 세상에 대비한 목회전략이 시급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목회전략 보다도 더 시급한 것이 있는데 새 시대에 필요한 새 부대를 준비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하여 독립교회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김현봉목사는 일찍이 시대를 예견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자기가 된 것이 하나님 은혜로 된 것이지 자기가 잘나서 자기가 된 것이 아니다. 교회의 성직을 가지고 명예, 영광을 취하여 자랑하는 것은 자기를 망하게 하는 것이다. "

이러한 이유로 해서 독립교회들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 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더 우선으로 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김현봉 목사는 신앙양심을 똑바로 쓸 것을 강조했던 것 같다. "양심 깨어지면 마음 깨어진다"라고 하면서 신앙양심대로, 특히 중생한 영혼의 인도대로 살 것을 늘 강조하였다. 그러기 위해서 "참고 견디고, 인내심을 길러라"고 하였다. 중생한 개인의 신앙양심이 교단이나 교파의 정치보다 위에 있다는 원리가 이로써 나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한국교회의 현실에서 성경보다 유전을, 주님의 가르침보다 전통을 더 따르는 것은 신앙양심을 저버리는 행위로서 이는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을 훼방하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독립교회가 걸어간 신앙양심의 길을 인정하고 우리들 자신들을 돌아보는 거울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김현봉 목사에게서 영향을 받은 이러한 독립교회들은 교회의 목표를 좀더 작게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기관으로서 교회가 여러 가지 책임과 임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들 독립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의 역할을 진리수호와 진리전파로 한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독립교회의 장점이요 단점이랄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길지 않은 역사속에서 많은 신앙적 도전들을 겪어왔다. 선교초기에 있었던 무속과 미신과의 투쟁, 일제시대 우상을 섬기라고 강요하던 신사참배에 교회가 동조한 일, 그리고 자유주의와 이에 반등하여 일어난 신비주의 운동등 수많은 바람들이 교회를 흔들어 놓았고 그 때마다 지도자들은 우와좌왕하여 이곳에 붙었다가 저 곳에 붙었다가 교인들을 잘 인도하지 못하였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여러상황에 대하여 권성수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한다.

"정통신학의 공이 있다면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 점을 들 수 있다. 신학을 하든, 목회를 하든, 선교를 하든, 사업을 하든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 앞에서라는 인식을 갖게하여 하나님을 우주의 왕 "왕중왕"을 강조한 것이다. 여기에 성경의 절대권위와 "오직 그리스도" 중심의 믿음을 그 공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과는 목회에 있어 "청중분석적 차원"을 밝히지 못해 양떼들을 이해하지 못하여 그들을 진리가운데서 살게 하는 데는 실패하였다"고 말한다.

이말은 뜻은 결국 한국교회가 그동안 잎은 무성하였지만 열매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독립교회가 추구하고자하는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진리말씀이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대로 목회자가 살고 성도들로 살게하자는 운동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일외에는 가급적이면 시간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들 독립교회의 정체성이 있는 것이다. 김현봉 목사가 가난한 청중들과 함께 목회하고 그들과 함께 가기를 원하였던 그길을 가고자 애쓰는 가운데 이러한 독립교회들이 형성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렇지만 미래의 세계와 한국이 어떤 모습으로 변할 것인가를 예측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역사는 워낙 돌발적인 사건, 사고가 많기에 역사의 방향이 어떻게 전개될는지 단적으로 결론 짓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대안적인 미래를 제시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에 이바지하므로 미래의 연구 는 불완전하다고 해도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처럼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과학기술적인 변화가 가속화되고, 미래의 모습에 대해서 기대와 불안이 교차되고 있는 시대의 변화에 추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국가나 민족은 세계사의 흐름에 낙오자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국가와 기업들은 작은 정부와 작은 경영을 목표로 구조를 조정하고 있다. 과거에는 필요하였던 조직이었지만 지금은 고나료화되어 오히려 비생산적인 요소들이 많이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조정이 더디지면 공룡과 같은 조직들은 자체적으로 생존하는데에도 문제가 있을 뿐 아니라 시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독립교회는 보다 다양하고 다변화될 다음 세기에 교회가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지표가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교권주의와 교파의 틀보다는 더 중요한 것이 신자들 개개인의 신앙양심과 개교회의 독립적 자치권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조직의 융통성과 유연함을 잘살린다면 우리는 독립교회의 장점중의 하나인 절대적인 말씀중심의 신앙과 양심중심의 신앙을 보태어 더 발전 시킬 수 있을 것이다고 생각된다.


2) 말씀중심의 목회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경이적인 성장으로 많은 구미교회들의 부러움을 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따른 부정적인 요소가 너무나 많았다. 교회의 성장에 비해서 사회적인 신인도가 너무나 낮은 것이다.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야 할 교회들이 그 반대로 지방색과 교파주의 교단주의 또한 세속정치와의 야합으로 얼룩져 왔기 때문이다. 100여 개가 넘는 장로교단이 그렇고 난립되어진 신학교가 그렇다. 교회론의 성경적 정립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프로그램 중심의 목회관도 그렇다. "꿩 잡는게 매" 라는 식으로 극단적 실용주의가 교회에 가득하여져서 비성경적인 교회성장의 신학이 교회를 흐려 놓고 있다.

교회는 항상 특수한 시대적 상황속에 존재해왔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신학작업은 신학의 봉사적 성격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왜냐면 신학의 존재목적이 신학 그 자체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 가운데 처해있는 교회를 섬기는 일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말씀은 제쳐두고 한국인의 심성 속에 있는 샤머니즘적 기복주의를 발동시켜 신비주의를 양산했다는 것이요, 둘째는 지성우월주의와 신인협동적 알미니안적 양태를 만들어 내었다는 것이다. 독립교회가 태동하게되는 역사적인 배경들을 살펴보면 기존의 교회들이 성경의 본질에서 벗어나 엇길로 가거나 아니면 인간의 유전이나 전통을 성경보다 우위에 놓으려고 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므로 독립교회의 신학정신은 보다 철저한 말씀중심의 사상이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독립교회는 다시 한 번 조명을 받아야한다고 생각된 것이다.

감성적이고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목회적 경향들이 비슷한 시기에 일어났는데 특히 기도원 운동이나 신비주의 운동이 한국교회의 둔세주의에 편승하여 교회의 균형적인 신앙성장을 저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 한국교회는 "오직 믿음"을 "오직 신념"으로 잘못 오해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는 "적극적 사고방식"이지 믿음은 아닌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능력과 섭리를 믿되 기록되어진 말씀 안에서 해야한다. 그러나 적극적 사고 방식은 인간의 능력과 의지에 호소하며 양심에 호소하는 방법이다. 이는 자칫 율법적인 열심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유형에 속한 교회성장 프로그램이 "작정 OO일 새벽기도회" "총동원전도주일"등등이다. 이러한 운동들은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에 호소하기 보다는 인간의 가능성과 의지에 호소하는 경향이 짙은 신학이다. 우리에게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이 중요하며, 주변의 것보다는 내부의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독립교회는 이러한 측면에서 오래전부터 칼빈주의와 개혁주의에 입각하여 더욱 말씀중심의 목회를 추구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하고 이를 더욱 계승하여야 한다.


3) 개인구령의 관심

이들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장점중의 하나는 개인구령 중심의 운동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그 아들을 통하여서 온 세계를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구속활동(Missio Dei)에서 현 교회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참여하는가를 다루는 데에 그 어느 교회보다도 관심을 깊이 가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이들 독립교회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복음에 빚진 자의 심정이 되어 이웃에게 그리고 또 다른 사람과 나아가 바다 건너에 까지라도 죄에 빠진 사람 구하는 일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을 강조해 왔던 것이다.

이러한 복음전도 위임과 개인영혼과 구원의 중심사상이 전도신학에 영향을 주는데 이러한 개인 영혼구원사상은 경건주의가 물려준 보수교회의 정신적 유산이다. 경건주의 지도자 스페너(Pillip Jacob Spenner)는 그의 저서「경건의 욕망」(Pia Desideria)에서 주장하기를 "참 경건의 실천, 즉 신자들의 작은모임, 성경연구 그리고 기도와 힘쓰는 일" 등을 이야기했다. 그는 "개인영혼의 회심만이 선교의 목적" 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우리의 선교실천에서 외로움에 떨고 있는 심령에 대한 위로의 사역, 죄, 마귀, 죽음의 위협 아래 있는 자에 대한 접촉과 관심등은 결코 우리가 등하시 할수 없는 사역들이다. 우리는 예수님의 인간적인 사랑의 실천을 도외시 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들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경건주의 영향을 받은 독립교회들은 교회의 정치나 교권주의 몰입하기보다도 더욱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다음으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진정한 복음전도는 개교회 중심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는 "교회심기"를 해야 하는데 이러한 교회심기 사역은 개신교나 카톨릭이나 매한가지이다. 카톨릭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그의 「Summa Theologia」에서 선교의 목적은 다양한 문화나 사회에서 구원과 선을 위한 기구로서 봉사할 중앙 집권적, 군주적, 그리고 성층적인 구조를 가지고 교회를 심는 것이라 하였다. 선교에 대하여 기스벨투스(Gisbeltus)는 주장하기를 "이는 이방인의 회심, 교회의 심음,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냄과 영광을 보임" 이라 하였다. 물론 때로는 로마교회나 대교단이 지향하는 교구주의도 선교에 도움이 되겠지만 성경이 보여주는 보다 성경적인 복음전파와 선교는 지역교회 즉 독립적인 교회들을 심어 자치적으로 주님을 섬기고 또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하도록 하는 일이다.

맥가브란 박사를 중심으로 한 교회성장신학은 수용성이 강하게 보이는 지역에 교회를 심음으로 더 많은 전도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으로 결론지어지는데, 수용성의 원칙과 숫자를 통한 정확한 통계만이 교회성장의 정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했다. 이때 교육사업이나 사회사업, 교회의 현실 참여나 역사 참여는 2차적인 것으로, 아니면 교회성장을 위한 봉사정도에 둔다는 원칙이다. 물론 교회가 이에 대한 책임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립교회의 원칙은 개교회의 자치권과 자율성을 최대한 살려서 네비우스의 정책과 같이 교회를 살려 나간다면 얼마든지 더 나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4) 교회의 자율성과 자치성

독립교회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장점은 개교회가 가지고 있는 자율성과 자치권에 대한 보다 명확한 이해와 실천이라고 할 것이다. 성경은 교회라고 할 때 지역이름을 붙여서 사용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러한 전통은 한국에 있어서도 예외가 없는 일이다. 물론 근자에 와서 "사랑의 교회"니 "산성교회"니 하는 형용사적 이름의 교회가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이러한 교회들도 모두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교회들인 것은 사실이다. 지상에 있는 교회들은 이처럼 한결같이 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특성을 갖게된다. 그렇다면 교회란 우리가 앞서 신학적으로도 살펴보았지만 그 지역에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구별되어진 모임인 것이다. 이로 인해 각 지역교회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역적 특성과 독특한 문화를 바탕으로 자율권과 자치권을 가지고 자신들의 교회를 책임질 권한과 의무가 있는 것이다. 독립교회는 이러한 면에서 그 교회에서 일어나는 제반 문제들을 노회나 대회 총회 등의 의결에 의하여 해결하지 않고 교회에 주신 고유한 권한과 각 사람에게 주신 신앙의 양심에 따라 처리함으로 신약의 교회원형에 가깝다고 할 것이다. 물론 노회나 대회 총회 등이 필요는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형제애를 나누며 보다 큰일을 하기 위한 협력의 차원에서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개교회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권한을 간섭하거나 침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직분자의 임명, 권징의 시행, 그리고 행정에 있어서 개교회의 자율을 중시함으로 교권주의나 나쁜 교회의 정치주의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는 것은 크나 큰 장점이라 할 것이다.



3. 한국교회의 현황과 독립교회의 가능성

1) 신학적인 토대의 필요성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좋은 전통들을 지금까지 지녀왔다. 선교사들의 피흘림과 오랜 세월 격동기 속에서도 복음주의적 전통을 잃지 않았으며 여러 좋은 신학자들과 순교자들의 업적은 오래오래 간직되어야 할 소중한 교회적, 민족적 유산이라고 아니할 수 없을 것이다. 초창기부터 복음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성장해온 이면에는 한국에 기독교신앙을 가져온 선교사들이 대부분 복음주의적 전통에 깊숙이 뿌리박은 미국 장로교출신들 이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신종철의 논문에 의하면, 1983년에서 1901년까지 한국에 있던 40명의 선교사중에서 프린스톤신학교(Princeton) 출신이 16명, 맥코믹(McCormic) 출신이 11명이었고, 산 안셀모(San Anselmo) 출신이 4명, 그리고 뉴욕의 Union 출신이 3명, 그 외 Moody 성경학교와 뉴욕의 Biblical Seminary 출신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최초의 선교사들은 선교의 개척을 위해서 희생적 각오와 보수주의적, 복음주의적인 신학사상을 소유하면서 퍼뜨렸던 것인데 현금에 와서는 보수, 진보 양측에서 이들의 신학사상에 대해 "근본주의 일색" 이었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

복음과 상황은 타원의 두 중심과 같다. 전자는 불변하나 후자는 변한다. 불변성과 적응성, 복음의 씨와 그것이 뿌려질 토양, 이 둘은 사역의 성격과 방향을 규정하는 함수 요인들이다. 복음은 상황을 도전하고, 상황은 복음을 요청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항상 시대의 요청과 상황의 요구에 대하여 신학적 여과와 대답을 항상 준비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신학적 고찰을 중지할 때 역사 속에서 복음은 퇴색되고 외면 당하고 말 것이다.

교회는 항상 특수한 시대적 상황 속에 존재해왔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신학작업은 신학의 봉사적 성격을 상실할 우려가 있다. 왜냐면 신학의 존재목적이 신학 그 자체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 가운데 처해있는 교회를 섬기는 일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이러한 작업을 게을리 해 왔기 때문에 많은 좋은 공(功)에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요소를 많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지나온 반세기 동안에 한국의 교회성장운동을 한 마디로 요약해 보자면 불건전한 신비운동(기도원운동과 은사운동)과 기복주의적 신앙의 양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탈락하는 사람들은 인간소외를 느꼈고,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피안의 세계를 제시하는 세속적 기독교와 기도원운동으로 흡수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와중에서 교회의 상부구조라 할 수 있는 교단과 신학교는 신학적 자유주의와 이성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이렇다할 교회 성장신학을 교회에 제시해줄 여가가 없었다. 물론 교단의 필요성이나 교파의 필요성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유교사상과 장로교적인 분위기는 한국교회를 교조적인 분위기로 몰아가는 데 일조를 했다. 그래서 교단에 가입하지 아니한 모든 교회들을 이단으로 몰아가는 편협성이 너무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이유는 우리의 신학이 너무 지엽적이기 때문에 보다 다양한 형태를 가질 수 있는 교회의 형태와 모양을 획일화시키고 말았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2) 보다 강력한 교회의 필요성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는 교회가 전혀 관심을 갖지 못한 채 지방색과 교파주의 교단의 정치로 개교회들이 정상적인 기능과 성장을 하지 못하는 가운데 90년대를 허비하고 말았다는 것은 한국교회에 불행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이 1960년대 미국교회들에서도 일어났다.

딘 M, 켈리는 "1960년대 후반에 미국에서는 무엇인가 특이한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미국역사상 처음으로 큰교파의 대부분이 성장을 중지하고 쇠퇴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그 시대의 극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회행동을 연구하는 사람들에 게는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으로 인식되었다.(중략) 미국에서 가장 큰 기독교 교파 가운데 10개 교파는 그 전체 교인수가 1967년에 77,666,223명이었는데, 그 이듬해에 교인 수는 감소되었고 또 다음해 에도 감소되었다. 이들 교파들의 대부분은 식민시대 이후로 아무런 장애 없이 성장을 계속했었다. 1960년대 후반 이전의 10년간 그들 교파들은 성장이 둔화되었는데 그 가운데 어떤 교파들은 미국인구 증가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 그러더니 이제 그들 교파들은 교인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두 세기의 성장추세를 거꾸로 뒤집어 버렸 다."

그러면 종교는 더 이상 필요 없는가? 아니면 교회는 더 이상 필요치 않는가? 하고 그는 질문하면서 그럼에도 어떤 교회들은 성장하고 있다고 그 근거를 제시한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그런 쇠퇴를 조직체 회원이 감소하는 이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활동을 하는 다른 조직체를 괴롭히는 유사한 사태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만일 경쟁자가 일률적으로 적개심을 가진 풍토 속에서 번창하고 성장한다면 그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시대는 문제가 어떤 조직체 내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있다고 하는 견해를 의심스럽게 만든다. 바로 이러한 상황이 교회들 가운데 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종교적 단체가 다 쇠퇴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개신교의 주된 교파들의 대부분이 감소추세를 일시적인 것으로 여기고 존속을 위한 고투를 하고 있는 반면에, 남부침례교, 하나님의성회, 하나님의 교회, 오순절 및 성결교단, 복음주의 교회, 몰몬교, 여호와의 증인, 흑인 모슬렘교 등과 같은 종교 또는 교파들은 생동력으로 넘치고 있다. 이 밖에도 생동력으로 넘치고 있는 교파들은 심지어 큰 교파들에는 알려지지도 않은 군소 교단들 가운데도 많이 있다고 도표로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급속히 성장하는 교단들은 종교는 폐물이 아니며 교회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는 증거를 말해줄 뿐만 아니라, 인정할 수 있는 종교에 대한 현대적 개념에 전적으로 배치한다. 이 교단들은 "비합리적" 이며 "관대" 하지 않고 "반초교파적" 이며 "적절" 하지 않다. 이것은 큰 모순이라 할 것이다. 이 교단들은 흔히 다른 교회들의 교훈, 안수, 성례, 등의 정당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이 교단들은 특수한 의식이나 특이한 식사관습을 지킨다. 또 이러한 교단 혹은 교파들은 불합리한 행동에 집착함으로써 "인류의 어지간한 견해"를 무시한다. 그러나 이렇게 비합리적이고 비사교적인 행위에 집착하는 종교교단이 번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은 지적 수준이나 위치로 보아 마땅히 합리적이며 자유주의적인 교회들을 선호할 것 같은 사람들조차도 이러한 교회들에 몰리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느냐고 묻고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 이유를 D. M. 켈리는 종교가 가지고 있는 필수적인 기능이 있다고 평가했다. 즉 종교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에게 어떤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고 생각이 들게 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종교의 임무는 의미에 있다는 것이다. 둘째, 종교는 신성한 세계건설에 있다는 것이다. 세상이 탁해질수록 그리고 물질 문명이 발달할수록 종교가 가진 이상적인 미래제시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보다 강력한 종교를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는 그 증거로 재침례교도들의 활동과 교회증가. 그리고 웨슬레의 부흥운동 등에서도 그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앞서도 살펴보았지만 재침례교도들은 제16세기 개신교 개혁의 좌파에서 일어난 신자들의 작은 무리였다. 그들의 지도원리는 신약성경의 초대교회를 회복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로마 카톨릭 교회와 개신교회 양측 모두의 많은 특징을 복음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배격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작은 비밀 집회소에서 회합을 가졌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과 양심에 따라 굴하지 않고 그들의 믿음을 키워 나갔던 것이다. 그 결과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교회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웨슬레의 부흥운동 또한 도덕적 빈혈증을 앓고 있었던 영국을 각성시키고 가난, 사악, 술취함, 불의, 부패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기성교회의 배척을 받은 감리교도들은 기성교회를 떠나려 하지는 않았지만 매주 "속회"로 개인 가정에서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하고 문맹이었다.) 그 모임에서 그들은 함께 찬송을 부르며 기도했으며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서로에게 의로운 권면을 했다. 회원 중의 한 사람이 속회 지도자로 지명되었는데 그의 임무는 다른 사람들의 도덕적 발전을 보살피며 매주 그들 각자를 개인적으로 권면하는데 있었다. 이러한 방법이 전통적인 교회관이나 그 당시의 교권주의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들어 쓰셨다.
그러므로 독립교회는 오늘날 교회들이 본래 가지고 있었던 강력한 비젼 제시와 리더쉽의 상실에 대하여 하나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교권주의 권위주의에 몸을 사릴 수밖에 없는 오늘날의 교회들을 일깨우고 새롭게 갱신 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Ⅸ. 결 론

지금까지 우리는 긴 시간 동안 독립교회의 신학적 근거와 역사적 근거 그리고 타당성들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먼저 Ⅱ장에서는 칼빈의 교회론을 Ⅲ장에서는 칼빈의 목회철학을 살펴보았다. 칼빈은 주지하다시피 루터의 종교개혁을 완성시키고 체계화 시켜 교회의 새로운 시대가 오게 한 사람이다. 그런면에서 그는 로마 카톨릭의 교권주의에 대하여 독립교회운동을 일으켰던 최초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이나, 그의 교회론이 영적이며 다소 원론적인 면에 머물고만 아쉬움이 있는 개혁자라고 본다면 칼빈은 그의 목회와 실천을 통하여 제네바에서 구체적으로 체계화시키고 확립한 개혁자요 독립교회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칼빈의 신학 사상 특히 그의 교회론은 구미의 많은 개신교회들을 탄생 시켰을 뿐 아니라 한국의 교회 형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많은 개신교회들은 저마다 개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염두에 두고 탄생되었기 때문에 엄격하게 말해서 독립교회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칼빈의 교회론은 상당부분 한국교회에 오해된 감이 없지 않다. 즉 장로교회라는 틀 속에서만 교회를 이해했기 때문에 교권주의화 되고 교조주의화 하는 문제들이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러한 오해가 생긴 이면에는 한국 사회에 전통적으로 내려온 관습인 유교의 영향이 강하기 때문인데, 이것이 밥그릇 싸움이 되어 파벌주의 지방색 등으로 교회 정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칼빈은 중세시대에 만연했던 로마교회의 이러한 교권주의 전횡을 보고 성경적으로 개혁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또 다시 이러한 문제가 그의 영향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태도를 취할 까 생각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칼빈의 교회론은 로마카톨릭 교회의 교황중심 교권중심에 대하여 어머니로서의 교회를 이야기하되 가견교회와 불가견교회를 나누어 설명하면서 가견교회의 회원이 꼭 불가견교회의 회원이 아님을 이야기하였다. 단지 가견교회의 표지로서 우리가 미루어 짐작 할 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면 가견교회의 표지는 무엇인가. 칼빈은 말씀의 선포와 성례의 정당한 시행 뿐 이라고 했다. 지상에 있는 교회를 규정짓는 다른 요소를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교회의 건물이 있던 없던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그 고백 위에 세례를 받으며 성찬을 행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교회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인정치 않는다면 다시 중세의 그 어두운 시대로 되돌아가는 것이요. 또한 지금도 드러내어 놓고 예배를 드릴 수 없는 중국의 가정처소 교회와 북한의 지하교회성도들을 교회라고 할 수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단에 소속되지 않았다고, 혹은 교파를 표방하지 않았다고 그리스도의 교회라고 부르지 않거나 심지어 이단시한다면 그리스도의 교회를 허무는 대단한 불경을 저지르는 것이 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독립교회의 자리가 있는 것이다.

본 논문에서 연구하고자 하였던 김현봉목사에게 영향을 받아 생겨난 독립교회들은 한국적 상황에 의해 생겨진 독립교회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목사의 개인적인 소신이나 정치적인 문제의 중립을 위해 독립교회를 표방한 그외의 많은 독립교회들을 연구의 대상으로 모두 다 다루지는 못하였다. 김현봉목사에게서 영향을 받은 독립교회들은 지나온 세월 한국 교회는 괄목할 만한 성장의 이면에 있었던 말씀의 혼탁함, 우상숭배, 교권주의 지방색 신학교분리, 일제시대의 신사참배 문제가 그렇고 6.25때 상당수의 목사들이 좌경화되어 공산주의를 옹호한 것도 그렇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군사독재시절 정권에 아부하고 자신들이 살고자 신앙양심과 형제교회를 팔아 버리는 가룟유다와 같은 배반도 많았다. 또 세상법정에다가 형제를 고소하고 판단받게 만드는 일도 여러 번 있었다 이러한 와중에 교회들은 교단과 교파의 바벨탑으로 서로를 얽어매어 하나님의 도우심보다는 인간적인 방법으로 교회사업을 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등과 같은 일들을 보고 오직 진리수호와 진리의 전파에만 관심을 가져왔던 교회들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얻고자 하는 목적으로 연구되었다. 지나온 세월 독립교회들은 이러한 범죄에 동참하여 죄를 짓지 않고, 또 교회에 각성을 주기 위하여 홀로서기를 감행한 것이다. 물론 자칫 잘못하면 바리새적인 면도 보일 수 있겠으나, 많은 이들 독립교회들의 노력에 대하여 그동안 긍정적인 시각보다는 부정적인 시각속에 편견으로 대하여 오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독립교회의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름이 주는 의미가 생소하고 아직 이 개념이 한국교회사에서 일반 평신도들에게 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독립교회(Independent Church)라 할 때 일단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거부감은 그 명칭에 따른 모호함 때문임은 이미 말했다.

또한 독립교회의 장점이며 자랑이기도 한 개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은 여전히 거대 교단주의적 한국교계 풍토상 홀로서기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의 과도한 카리스마의 문제, 지나친 구별의식 내지는 우월의식 등은 독립교회가 갖는 크나큰 약점이 아닐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교회의 보다 많고 결정적 장점들이 있기 때문에 독립교회에 대한 교회사적인 정당한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본 논문도 이러한 관점에서 진행시켜온 것이다.

이미 앞서 말했듯이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좋은 전통들을 지금까지 지녀왔다. 선교사들의 희생과 순교자들의 업적은 한국교회의 자랑이다. 또한 짧은 선교기간 동안에 괄목할만한 성장 또한 그렇다. 하지만 그러한 한국교회의 이면에는 드러내 놓기 부끄러운 면면들 또한 쌓여있다.

하나님은 이러한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필요한 자기의 종들을 일으켜 세워서 빗나간 교회의 흐름을 바로 잡으셨다. 그러한 측면에서 독립교회들은 나름대로 교회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수고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제 이러한 독립교회의 공과 과를 밝히는 보다 많은 논의 가 이루어 져야할 때가 되었다고 본 연구자는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 논문이 일조를 하였으면 하는 바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하여 새롭게 다가오는 21세기에는 더욱 성숙하고 성장하는 한국교회가 되어 주님 오실 때 칭찬받는 교회들이 되도록 하는 일에 보탬이 되는 연구가 되었기를 기대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