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선교 강의 - 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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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선교 강의 - 1 ( // )


선교에 대해(1)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머물며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이었다.

마태복음을 보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하셨고, 마가복음에서는“너희는 온 천하에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다. 대개 사도행전의 시작부분을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으로 파악하는데, 여기서 예수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증인이 되리라.”고 명하셨다. 요한복음에서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가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하셨다.

이처럼 온 세상에 복음 전하는 일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고, 우리가 이 선교의 일을 감당하여야 한다. 또 주님은 이렇게 복음을 전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영광스럽게도 먼저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기셨다. 그러나 그것은 쉬운 일은 아니어서 항상 많은 영적 싸움과 어려운 장벽이 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선교의 일을 통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노라‘고 했다.(골 1:24)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셨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지만 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 그리스도의 몸을 온전히 세우는 사역은 우리들에게 맡기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베풀어주신 또 큰 은혜요 영광이 아닌가! 그리고 주님은 그 사역이 끝날 때까지 함께 하시겠다고도 하셨다.

예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예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이 생각나게 하리라고 하셨다. 그런데 이 선교의 명령은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주신 말씀이었다. 그것도 반복해서 주셨다. 보통 우리는 어떤 마지막 말씀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 마음에 새기곤 한다. 부모님의 마지막 말씀은 유언이라고 해서 그것을 특별히 중요하게 기억하고 지킨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한 마디는 평생 우리의 귓가에 맴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 그 중에서도 복음을 전하라는 이 명령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믿음이 있는 사람 안에 계신 성령께서 늘 생각나게 하시므로 그 마음속에 계속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선교!”라는 말을 들으면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할머니도, 어린이도 마음속에 감동이 일면서 “아. 선교, 그것은 해야 하는 것이지요.”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때로는 무언가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있다. 어떤 때는 주님 앞에 성실하고 겸손하려고 애쓰는 그리스도인들이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런 부정적 견해의 한 복판에는, 선교 그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선교의 방법과 전략 또는 선교사들의 자질에 대한 의구심 때문인 것임을 알 수 있다. “저런 방식을 선교라고 하기에는 어째 옳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이 사람들이 복음을 제대로 전하기나 할 사람들인가?” “이들이 선교를 빙자해서 자기 좋아하는 일을 하려는 것은 아닌지?” 등등의 의구심들이 선교에 대해 어느새 부정적 견해를 갖게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져야 할 옳은 태도는 무엇인가? 사람에 대한 실망 때문에 계속 주님의 명령, 선교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고수할 것인가, 혹은 어느 것이 참으로 올바른 선교인지 잘 알고 행할 것인가? 어느 불신자가 자기는 교회나 사람들에 대해 너무 실망해서 절대로 예수 믿지 않겠노라고 하면, 그것이 과연 그들이 믿지 않아도 좋을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마찬가지로 선교가 예수님의 명령일진대, 선교에 대한 나의 부정적 입장과 견해가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도 좋을 이유가 될 수 있는가?

만일 120년 전에 외국의 교회들이 자기들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 그뿐이지 공연히 살기도 불편한 타국에 선교사들을 보낼 필요가 있는가 하고 아무도 보내지 않았고, 그래서 이 한국 땅에 한 명의 선교사도 오지 않았다면, 과연 지금의 구원받은 우리가 있을 수 있는가? 그러나 그 때 그들의 교회들도 역시 나름대로의 몰이해와 부정적 견해들이 있었을 테지만, 그래도 충성스럽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 온갖 장애와 반대의 영적 싸움을 이기고 찾아와 복음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구원받고 또 이 땅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서게 되었다.

지금은 우리가 주님의 명령을 들어야 할 차례 아닌가? 여기서 주님의 명령을 순종해 선교의 일을 할 때는 그 선교의 방법도 또한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에 따라야 한다. 주님은 일찍이 사도 바울에게 선교의 방법과 우선순위를 가르쳐주셨다.

로마서 15장 20, 21절에서 ‘내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로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선교의 중요한 방법과 우선순위를 가르쳐 주신다. 첫째는 복음을 전하는 일에도 쓸 데 없는 경쟁과 낭비의 요소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요, 둘째는 한 번도 복음을 받지 못한 자들이 먼저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고 또 이루어진다. 우리는 그 일에 하나님의 동역자인 것이다.

선교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은 이 성경의 선교 방법과 우선순위가 제대로 시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실망과 의구심에 영향 받은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실망과 의구심을 풀고, 성경에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제대로 선교의 일을 하면 될 것 아닌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소원하면서,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이 제대로 된 선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이 일에 동역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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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전도는 무엇이 다른가?

대개 교회에서 예배와 관련된 이외의 사역은 선교라는 말을 붙이기 좋아한다. 캠퍼스의 학생단체들도 전도라는 말보다는 선교라는 말을 사용하기를 즐겨한다. 어째 전도라고 하면 좀 촌스러워 보이고, 선교라고 하면 좀 더 신선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모든 그리스도인 활동을 선교라고 부르게 된다. “문서 선교” “테이프 선교” “음악 선교” “장애인 선교” “의료 선교” “스포츠 선교” “감옥 선교” “미용 선교” 등등 선교와 전도라는 단어는 구분 없이 사용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교라는 단어를 전도라는 단어와 다르게 사용할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이는 선교는 언어가 다른 지역에 가서 사역하는 것을 말한다고 하며, 또 어떤 이는 언어는 같거나 다르더라도 문화가 다른 지역에서 사역하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 좀 더 정확한 표현이 있다. 선교이든 전도이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일반이지만, 그리스도의 교회가 없는 곳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는 사역을 ‘선교’라고 하고, 그 세워진 그리스도의 교회를 중심으로 잃어버린 영혼들을 하나하나 불러 모으는 사역을 ‘전도’라고 할 수 있다. 즉 선교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 중에서도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가 서는 일에 초점을 두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