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크리소스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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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회 고전 2000년] 제18회 "황금의 입" 존 크리소스톰
[기독신문 2005-09-13 오후 3:35:53]
라은성 교수 (국제신대원 역사신학, 총신82회졸)
안디옥 강단 지킨 "황금의 입"
12년간 열정적 설교로 대중적 인기 ...
스스로는 엄격한 금욕의 삶...
로마서 설교집 가장 유명 ...
사제직에 관한 작품 오늘날에도 귀감
"황금의 입"이라는 의미의 크리소스톰(Chrysostom)을 별명으로 가진 존(347-407)은 흔히 "존 크리소스톰"이라 불린다. 그는 교회의 박사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344-354년 사이에 안디옥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훌륭한 모친 안투사에게서 신앙 훈련을 받은 후, 그는 정치가이며 법률가인 리바니우스에게서 법과 수사학을 배웠다. 안디옥 감독 멜레티우스에게서 세례를 받았고, 다소의 디오도레에게서 신학을 3년 간 배우면서 교회에서 성구를 낭송하는 자가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법을 포기했다. 정확한 일자를 알 수 없지만, 자신의 모친인 안투사가 죽은 후 존 크리소스톰은 복잡한 도시를 떠나 남부 안디옥에 있는 산악지대로 들어가 수도원적 삶을 6년간 살았다고 한다.
그는 381년 안디옥의 부제로, 386년 사제로서 수임 받았다. 12년 동안 안디옥 강단에서 존은 감동적이고 웅변적인 설교를 행했다. 그리하여 그는 "크리소스톰"(황금의 입)이라는 별명을 받게 된 것이다. 397년 콘스탄티노플 감독 넥타리우스가 죽자, 존은 자신의 의사와는 관련 없이 그곳의 감독으로 선출된 것을 통보받고 멀리 도주까지 했으나 붙잡혀 왔다. 웅변적인 설교로 인해 존은 대중적 인기를 한 몸에 받을 뿐 아니라 자신의 목회 영역을 고트족에게까지 확대시켰다. 또 성경을 그들의 언어로 번역할 뿐만 아니라 통역자를 대동해서라도 그들에게 설교하는 열정을 나타내었다. 다뉴브 강에 살고 있는 고트족과 스킨디안족에게 선교사들을 보냈으며, 심지어 추방을 당한 가운데서도 선교의 일에 깊은 관심을 잊지 않았다.
콘스탄티노플의 성직자들과 귀족들의 거짓되고 사악한 삶들을 개혁하는 가운데 존은 많은 적들을 만들고 말았다. 더욱이 성전에 있는 값비싼 물건들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과 병원을 지었다. 스스로는 엄격한 금욕적 삶을 살았다. 남편 아르카디우스보다 인기를 독차지하는 존을 시기한 그녀는 그를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더욱이 존은 황후 유독시아의 사치스러운 궁궐생활만 아니라 사치스러운 자들의 삶을 존은 거침없이 비판했다.
그런 가운데 401년 1월 에베소 성직자들과 근교 감독들의 요청을 받아 방문한 존은 지역 종교회의를 개최하여 성직매매를 일삼는 6명의 감독들을 파직하였다. 그리고 존이 출타하는 동안 콘스탄티노플 감독직을 신임하여 맡긴 카발라 감독 세베리안은 황후와 함께 존에 대한 음모를 꾸몄다. 또 403년 알렉산드리아 감독 데오필로스가 출교시킨 몇 명의 경건한 수도사들을 존이 피난처를 마련하자 원한은 더욱 가세되었다. 그리하여 모반죄라는 혐의를 받고 파직을 당한다. 150cm도 되지 않는 작은 체구의 존은 하나님만 두려워하면서 그 앞에서 세속적 부귀와 편의주의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추방당한 가운데 407년 흑해 근교에 있는 폰투스에서 외롭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407년 9월 14일 추방 생활하는 가운데 세상을 떠난 존 크리소스톰의 마지막 말은 "모든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이 있기를"이었다. 후에 그의 유골은 438년 유독시아의 아들 동로마제국의 황제 데오도시우스 2세(408-450)에 의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
저서
존이 남긴 귀중한 서신들과 짧은 글들에는 부활절 예배 시에 감동적으로 들려졌지만 현존하지 못하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 가운데서도 현존하는 몇 편의 그의 글들을 통해서라도 그의 웅변적이고 청렴한 그의 자세와 기독교 사상에 끼친 위대한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존이 쓴 "유대인들에 대한 연설"은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반유대주의라 하여 오해를 받는 작품이다. 하지만 다른 설교에서 지역 유대 공동체의 종교적 헌신을 극찬하였다. 그가 진정 증오했던 것은 회당과 미사에 동시에 참여하면서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는 유대인들이었다.
존이 쓴 주석적 설교집은 안디옥파의 주석적 원리를 말하는 대표적 작품으로 창세기 주석집(9와 67), 시편 주석집(58), 이사야 주석집(6, 8-64) 들이 있다. 다른 구약 주석집도 있지만 진품인지 의심되기도 한다. 신약성경에서 마태복음 설교집은 90편, 누가복음 설교집은 16, 19-31, 요한복음 설교집은 88, 사도행전은 55와 4, 바울서신 설교집은 250편 들이 있다. 이 중에서 로마서 설교집이 가장 유명하다.
주제 설교집은 정황적 설교가 21편, 무상한 지상적 삶을 그린 2편, 교회의 무적성에 대한 설교 2편, 성경적 인물 설교가 다수, 안디옥 학파에 속하는 순교자들과 감독들, 다소의 디오도레, 삼위일체에 관한 설교가 12편, 유대인들에 반대하는 설교 8편, 교리문답자들을 위한 설교 2편, 사탄에 관해 2편, 참회에 관해 9편, 신약성경에 나타난 미신들에 대한 설교 1편, 교회의 축제들에 관한 설교가 몇 편이 있다.
존은 소논문도 썼는데, 제사장에 관해 6편, 기독교 교육에 관한 최초의 편람서, 수도원제도와 순결에 관한 몇 편의 작품들, 고난의 의미에 관한 설교 3편이 있다. 그는 또 236편의 서신들을 썼다. 100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보내는 것으로 전체적 내용은 그들의 건강을 염려하고 안녕을 묻는 내용이다.
기독론에 대해 정통적 입장 양성론을 지지하는 존의 원죄론을 어거스틴은 8회나 인용한다. 하지만 존은 로마가톨릭을 위한 견해들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성체론을 주장하므로 성체론자들의 박사라는 칭호를 받는다거나 그는 실제 임재를 가르치고 화체설과 유사한 것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또 마리아론을 주장하는 근거를 제공하여 후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의 글을 인용한다. 존은 고해성사를 주장하고, 교황의 우월성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 크리소스톰을 우리가 위대한 설교자, 주석가, 수필가, 교육자, 그리고 믿음의 증인이라 부르는 것은 교회의 도덕성과 설교들에 나타난 그의 전체적인 건전한 신학이다. 특별히 사제직에 관한 작품은 아직도 우리들에게 귀감이 되는 작품으로 여겨진다. 또 여인들에 관한 교회 활동에 관해서도 매우 관대한 견해를 고수했다.
"사제직에 관하여"
"우리 할일은 믿는 것 뿐"
제1권에서 친구 바실을 소개하면서 시작하는 이 글은 사제직의 고결성과 특별한 어려움들을 소개하고 있다. 아래의 내용은 3권의 일부분이다.
"사제직은 지상의 사역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지만 하늘의 법령에 의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사람, 천사, 천사장, 권력자에 의한 것이 아니고 오직 보혜사 성령에 의해 이 귀한 직분이 제정되었습니다. … 사제들은 반드시 자신들의 하늘의 일을 행하는 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래서 사제는 하늘로서 받은 능력들을 행하는 것처럼 순전하게 행해야 합니다. … 엘리야가 자신을 둘러싼 무리들에게 행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희생물을 제단에 올려놓을 때 주위에는 긴장이 감돌았습니다. 그곳에서 엘리야는 외롭게 홀로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곧 불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제단을 태웠습니다. 그런 후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환희와 슬픔이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사제는 불을 내리는 자가 아닙니다. 오직 성령께서 행하십니다. 성령의 기도는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공물을 불태우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희생물에 내리게 하므로 영혼의 불길이 일어나도록 합니다."
아래의 내용은 로마서 1장 16절의 주석적 설교 내용이다.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라"라는 말씀에 대해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할까요? 자랑스럽고, 자신 있고, 그리고 일이 풀릴 때 이처럼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 매우 영예로운 것이 아니지만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왜 이런 말씀을 했을까요? 하늘의 일들로 기뻐했기 때문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그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갈 6:14)라고 했습니다. 영예로운 것이기보다는 부끄럽지 않는 무엇을 바울이 소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세상에 속한 부유함, 제국, 그리고 승리들을 매우 자랑했습니다. … 그들에게 사도바울은 유대에서 태어난 목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선포했습니다. … 그러한 선포를 결코 그는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께 예배드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 십자가는 우리를 위한 것으로 말할 수 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 이러한 복음은 우리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 누구든지 구원을 얻게 됩니다. … 이 말씀은 더 한층 나아가서 하나님의 의가 그 복음 안에 나타났다고 사도바울은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의로워진 자는 현재의 삶만 아니라 다가올 삶을 위해 살게 됩니다. … 그 의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 수고하고 노력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우리의 할 일은 믿는 것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