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 고신교단 중요기관 초창기의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
이재술 장로 /고신총회 자문위원, 전국원로장로회 연합회 증경회장
이 글은 고신의 초창기에 많은 역할을 했던 이재술 장로님이 교단 설립 60주년을 맞아 교단의 초창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후배들에게 알리고 싶어 쓴 글입니다. 고신 초창기의 역사를 아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글이 길기에 몇 번 나누어 올리는 것을 양해 바랍니다. ?코닷-
? 무슨 역사이든 그 배후에는 이미 알려진 사건 외에도 숨겨진 이야기가 많은 법이다. 이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날 때 비로소 그 사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고 역사의 진실이 드러나게 되는 것으로 안다. 나는 이미 90세가 넘었다. 언제 하나님께 부름 받을지 모른다. 필자가 1945. 8. 17일자 故 주남선 목사님이 출옥하신 때부터 당시 거창읍교회에 출석하여 서리집사, 청년회장으로 봉사하다가 1951. 1. 2일자 창남교회의 分立을 거쳐 주목사님께서 1951. 4. 23일자 서거하신 때까지 5년 7개월간 ? 엄격한 신앙의 교훈과 죽도록 충성하라는 순교적 신앙을 이어받아 지금까지 고신교단과 산하 여러 기관에서 활동을 했다. 그 기간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그런데 그 역사적인 사건의 배후에는 아직 공개되지 아니한 이야기들이 많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 이 글을 통해 공개하고자 한다. 이것을 통해 올해로써 창립 60주년을 맞이하는 고신 교단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데 약간의 도움을 드리고자 한다. 특히 제 62회 총회에서 다룬 고신교단 산하 중요 3기관(고려신학대학원,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에 대한 위기설과 그들의 비상대책문제가 큰 이슈로 제기된 바 있어 ? 여기에서 그의 위기, 대책에 필요한 법적, 행정적인 실무자료로 ? 감히 긴급히 추가 제공하는 바이다.(본 건 자료는 長文이지만 필자 개인의 자서전으로 남기는 것보다 교단, 기관의 역사적 비화, 일화의 기록으로 남기도록 당시 여러 지인(知人)들의 요청이 있음)
? 고신교단의 역사에서 2012년은 1) 고신교단(총회) 설립 제 60주년(1952. 9. 11 총 노회 조직), 2) 고려신학대학원(고려신학교) 설립 제66주년(1946. 9. 20 개교), 3) 고신대학교 복음병원(부산복음병원) 설립 제 61주년(1951. 6. 21 개설), 4)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총회 유지재단설립 제47주년(1965. 9. 6 설립 허가), 5)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고려학원 설립 제 45주년(1967. 5. 17 설립 허가 / 고신대학교 1993. 3. 1 교명 변경), 6) 고신 선교 57주년(1955. 4. 21 총 노회 선교부 조직)의 해이다.
? 이 글을 기록함에 있어서 먼저 다음과 같은 몇 가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 고신교단의 초창기를 과도기의 초창기와 법적 초창기로 구분하였다.
(2) 고신교단의 역사 기록에서 과도기적 초창기의 기록들은 다소 찾아볼 수 있으나 법적 초창기의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3) “교단”이란 용어를 기록한 이유는 일제 치하인 1943. 5. 5일 당시 조선예수교장로회를 일본 기독교단에 통합 예속시켜 1946년까지 “교단”으로 사용했던 용어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일제하의 용어를 지금도 사용하는 것이 부적합하다고 반대한다. 그러나 이것은 60여 년간 사용해오던 명사이기 때문에 “교파” 또는 다른 명칭보다 현재까지 통용하는 교단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4) 필자는 1965년 초에 부산 복음병원 서무과장으로 부임하였고 이어서 총회 재단총무처장서리를 겸직하여 일하던 당시에 본 교단 총회의 숙원사업이었던 재단법인, 학교법인의 설립 허가를 받아서 법적인 등기 등록을 하는 등 그 실무를 담당했던 사람으로 현재 유일하게 살아 남아있는 산 증인이다. 필자는 내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그 당시 법적인 초창기의 약사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의 일부분을 밝히고자 한다.
ø 당시 고신교단 총회의 숙원사업이란 것은 미등록 고려파 종교단체를 재단법인 고신총회로 정식 등록하는 것과 무인가 사설 고려신학교를 학교법인 인허가 받아 정규대학으로 경영하는 것과 사설 자영 구호 병원을 법인 소속 종합병원으로 경영하는 사업을 말한다.
첫째, 고신교단(총회)의 과도기적 초창기
일제하에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항거했던 출옥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 교회 재건 개혁운동(1945. 8. 17일부터)을 시작으로 평양신학교의 신학적인 전통 계승을 위하여 일제하에서 살아남은 교회들이 모여 경남노회의 복구와 재건 노회 조직 및 신도 대회(1945. 12. 13일)를 가졌다. 그들은 모여 제27회 총회 시 신사참배 결의한 것을 취소할 것을 가결했다. 제 32회 총회였다. 그 이후에 남부 총회 개최(1946~1947년), 고려신학교 개교(1946. 9. 20), 경남 법통노회조직과 교단 명칭 변경(1949. 9. 22 조선예수교장로회를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변경), 고신 총 노회 조직(1952. 9. 11~) 등 과도기를 거치는 중에(1945. 8. 17 ~ 1965. 9. 6, 20년간) 1952. 9. 22일부터 3주간 동안 전국의 목사, 장로, 전도사들이 모여 신사 참배에 대하여 공적으로 혹은 사적으로 회개하는 운동이 일어났고 자숙하는 의미로 공 예배 인도, 성례, 주례, 대표기도 중지 등을 시행했다. 특히 일본 교단에서 안수 받은 목사, 장로는 다시 시취한 후에 시무하도록 하는 등 회개를 구체적으로 실천했다. 그리고 제 6회 총 노회를 총회 제 6회로 계승하였고, 1956. 9. 20일 고려신학교 개교 제 10주년 기념으로 개혁주의교회 복음 운동 전개를 시작했다. 또한 예장 승동 측과의 합동(1960년 노회수의)과 고신총회 환원 그리고 고려신학교 복교 선언, 환원 총회 개최(제 13회)등을 통해 전국 목사, 장로, 교역자들이 모여 한 주간 동안 합동 환원에 대한 자숙과 회개운동을 전개(9. 23 ~ 9. 29)했다. 제 14회 총회에서 고려신학교, 복음병원, 고려고등성경학교를 총회에서 직영할 것을 결의하고 각 기관의 설립 정신을 계승하여 운영하는 조건으로 해당 기관의 재산을 편입 증여 받아서(개인 명의로 되어 있는 한상동 목사와 오종덕 목사의 부동산을 증여) 재단 법인 소속으로 편입시켰다. 이에 비로소 1965. 9. 6일에 정식으로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유지재단(이하 재단법인 총회유지재단이라 함)의 설립허가를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초기부터 1965. 9. 17일 법인 등기한 날까지를 과도기적인 초창기로 구분하였다.
둘째, 고신교단(총회)의 법적(法的)인 초창기
고신교단(총회)은 과도기적인 초창기를 거쳐 1945. 8. 17일 고신교단이 출범한지 20년 만에 1965. 9. 6일 재단법인 (고신)총회 유지재단의 설립허가를 받아 1965. 10. 12일에 기본 재산을 기증 형식으로 등기하여 문공부에 법인 종교 단체로 정식 등록하였다. 그 후 사립학교법이 공포되고 시행함에 따라(시행령 1965.11.10일자 개정) 재단법인 총회유지재단에 증여한 기본재산 전부를 그대로 1967. 1. 30일 학교법인 고려학원에 다시 기증 등기하였다. 이에 1967. 5. 17일 문교부에 법인조직 변경의 인가를 받아 재단법인 총회 유지재단과 분리하여 경영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까지를 법적인 초창기라고 이름 지어 기록했다.
(1) 재단법인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 유지재단 설립 등기사항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유지재단의 설립 등기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 설립 목적 : 본 법인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에 입각하여 총회 산하의 모든 재산을 보호하여 다음과 같은 사업을 통하여 복음 전파함을 목적으로 한다. 1) 육영사업 - 신학교, 성경학교, 유치원, 2) 의료구호사업 - 복음병원, 진료소경영, 3) 복음전도사업 - 국내전도, 외국선교, 4) 사회사업 5) 출판 및 인쇄사업
? 법인 설립 시 자산액 : 5,700,650환 ? 출자 방법 : 각 노회의 부담금 및 기타 수입
? 법인 설립 허가일: 1965. 9. 6일 ? 등기일 : 1965. 9. 17일
? 초대 이사 : 대표이사 송상석, 이사: 류윤욱, 지득용, 김은도 등 4명
※ 타교단 법인 등록의 예를 들자면, 통합측은 1954. 9. 17일 사회복지자선사업재단의 설립을 거쳐 거의 20년만인 1973. 11. 27일에 재단법인 총회유지재단의 인가를 받아 겨우 등록한 바 있고 합동측은 1963년 법인 설립 불가 판정을 받아서 사회단체로 등록하였다고 한다. 즉, 설립 목적을 ‘일반사회법인의 형태로 총회의 재산을 소유보존 관리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등록했던 것이다.
(2)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고려학원 설립 등기사항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고려학원 설립을 위한 등기사항은 다음과 같다.
? 1968. 11. 18일에 명칭과 설립 목적을 변경하였다. 처음 설립 목적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본 법인은 대한민국 교육의 근본이념에 의거하여 고등교육을 실시함을 목적으로 고려신학교를 유지 경영한다’라는 준칙을 전국에서 유일하게 개정하여 특별정관을 만들어 등기하였다.
※ 처음 명칭인 ‘학교법인 고려학원(學院)’을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고려학원(學園)’으로 개정하였다.
※ 개정된 설립 목적 : ‘본 법인은 대한예수교장로회(고려파) 총회의 성경적인 신학사상에 입각하여 장로회의 권위와 헌법에 기준한 교역자 양성과 기독 교육, 병원 사업 및 대한민국 교육이념에 의거한 간호원 양성을 목적으로 고려신학교와 복음병원 및 부속 간호학교를 유지 경영한다.’로 정관을 개정하였다.
? 설립 허가 : 1967. 5. 17일 ? 등기일 : 1968. 12. 18일
? 자산 총액 : 167,860,900환(고려신학교, 복음병원의 기본재산 편입, 증여 등기 재산목록 별도)
? 초대 이사 : 한상동(대표) 홍반식, 주경효, 도군삼, 김진경 등 5명
? 감사 : 이근삼, 오병세(임원전원 신학교 관계자)
? 새 이사 등기 : 1967. 7. 5일 위의 초대이사 5명은 총사퇴하고 새 이사진(윤봉기, 박손혁, 남영환, 김은도, 송상석 5명)으로 구성되어 1967. 9. 5일에 취임하고 등기하였다.
? 윤봉기 이사장은 1968. 9. 20일에 사임하고 1968. 11. 20일에 송상석 이사장이 취임하고 등기하였다.
※ 위에서 초대이사와 새 이사로 구분하여 기록한 것은 당시 본 교단의 분파(경남노회 송상석목사 대 부산노회 한상동목사의 대립) 원인의 하나인 소위 ‘사조직 이사진 사건’의 관련 이사명단을 구분 기록한 것이다.
ø 위에서 각각 날짜의 차이가 생긴 것은 법인 설립 허가일자 및 법인 등기일자와 재산 증여일자 및 재산 등기일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셋째, 그 외 드러나지 않은 이야기들
(1) 불법 사(私)조직 이사진 사건
초대이사진의 소위 불법 사(私)조직 이사진 사건은 1967. 7. 5일에 초대 이사 5명이 전원이 사퇴하고 새 이사진을 선출하여 등기한 것으로서 고려신학교와 복음병원이 재단법인 총회 유지재단에 편입 되었다가 1965. 11. 10일에 사립학교법 시행령 공포함에 따라 학교법인으로 조직 변경의 수속하는 과정에서 재단법인 초대이사회 명단 그대로 이관등기 하지 않고 실무자인 도군삼 사무처장이 총회의 허락도 없이 신학교 측 인사로 임의 등기한 사실이 발견되어 송상석 목사의 항의로 사건이 되었다. 이렇게 양 계파가 치열하게 분쟁중인 사건을 필자가 행정법적으로 원만하게 사건을 수습하고 다시 정식절차를 거쳐 새 이사진으로 개편하여 1967. 9. 5일에 새 임원 등기함으로 본 사건을 마무리 한 것이다.
(2) 본 법인 특별정관 제정인가에 대하여
처음 본 법인의 설립 목적을 당시 문교부의 일반적인 정관 준칙대로 제정 등기하였으므로 본 교단의 법인 설립목적에는 위배되었다. 그래서 이것을 개정하되 전국 학교법인 가운데 유일하게 특별정관을 제정하였다. 즉 교단의 헌법과 총회의 교육이념 방침대로 법인 설립목적을 새로 개정하여 등기했다. 이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니며, 오로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함께 하셨고 에벤에셀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루어졌음을 믿고 지금도 감사하고 있다.
? ø 본 건 당시 특별정관의 인가 받은 것을 감사한 이유는 ?? 그 이후 행정적 오류로 교단 총회적인 분쟁 각종 사건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는데 만약 그 특별정관대로 계속 시행하였다면 본 건의 분쟁 사건으로 인한 큰 피해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3) 법적 초창기 및 그 이후의 행정?정책적 오류
1) 법인 이사회 조직 및 임기문제의 오류 처리
본 법인의 이사 정수인 15명 전원을 등기하던 것을 정관 세칙을 만들어서 실행 이사 5인을 법적인 대행 이사로 하여 그들에 의해 모든 안건을 처리했고, 정관 20조에 나타난 임원선임과 이사회조직 및 임기 문제도 본 총회 결의 및 정관대로 선조직 후승인으로(조직, 임기일의 등기 시 그 원인 일자를 총회의 결의 일자대로) 시행하고 임기도 총회 결의일을 기준으로 시행하였다. 다만 실행이사들의 유고시는 15인 이사 중에서 즉시 보궐 교체하므로 임기에도 공간이 생기지 않게 하고 법적 이사는 전권이 없고 대행권만 갖게 하여 총회에서 결의한 조직 임기대로 30여 년간 정관목적대로 아무런 탈없이 시행해 왔다. 또한 법적 이사와 총회 이사의 임기가 상반되는 경우 신?구 이사의 임기 문제는 법적 등기의 임기일까지 신?구 이사를 동석시켜 총회 전체 이사회의 결정에 따라 처리하였다. 그러나 제 52회 총회에서는 문교부의 준칙대로 선승인 후조직하는 것으로 변경하였고 임기도 총회에서 결의한 날짜를 무시하고 문교부 승인 임기일로 변경하였다. 이것은 앞서 희생적으로 공들여 만든 특별정관임을 망각한 행정적인 오류이므로 다시 본 총회에서 결의한 당초 방침대로 원상회복 시켜야 할 것이다.
2) 행정?정책적 오류의 원인과 처리
위 제 52회 총회 전후의 과정에서 행정?정책적 오류로 인해 발생한 각종 사건 및 그 사건 피해의 원인을 살펴보면 곧 오류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 2)의 첫째 : 역사적인 고신교단의 설립 목적과 고려신학교, 복음병원의 설립 고유 목적(초창기의 기록 참조)에서 그 괘도 이탈, 그 이율 배반, 그 목적 역행 등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뜻있는 징계, 큰 시험, 고신-진리파수 실패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 2)의 둘째 : 위 의 첫째 원인으로 인해 고신교단 지도자간, 법인 임원간, 총회 산하 각 기관간의 분파, 각종 사건(다음의 6가지)이 발생하였으며 그로 인해 교단적으로 막대한 피해까지 입은 것으로 본다.
? 2)의 셋째 : 위 각종 사건 중 6가지의 오류 “예”는 다음과 같다.
?관선 이사 파송 피해 사건 ? 복음병원 강성 노동조합 사건 ? 각종 고소고발, 탄원서, 진정서 사건 ? 당시 고신 교단의 지도자 대표였던 한상동 목사, 송상석 목사, 장기려 박사의 3인방 중심의 분파 마찰로 인한 교단 사업 및 기관 운영 현장에서의 문제점(송상석 목사의 1974. 12. 4일자 면직 판결 사건 기타) … 김해 복음병원 사건 처리와 피해 † 당시 복음병원장 장기려 박사의 사면과 재단 총무처장 서리의 사면 문제(장박사의 동반 사면은 반려 수습)
ø 더구나 제58회 총회에서 ‘사회법보다 총회 교회법이 우선이다’라고 결의하고도 시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 2)의 넷째 : 위의 오류 사건 6가지를 아래와 같이 처리한 實例(실례)를 살펴보면 정책적?행정적 오류임을 알 수 있고 앞으로 만약의 경우 그 비상대책상 실무 자료가 될 것이다.
사건 1) 관선이사 파송사건은 당시 전례에 따라 만약 학교법인 특별정관을 활용하여 ? 이사회가 총사퇴하고 새 이사회를 구성하여 보고 예방하고 본 사건을 당국의 법무 담당과로 이관처리 하였더라면 ? 관선이사의 파송은(2003. 3. 1일자) 면할 수 있을 것이다.
ø 당시 필자가 전례의 경험에 따라 정책적으로 이사회 총사퇴를(관선이사 파송 그 원인 해소의 총책임하에) 권고한 바 있으나 不聽(불청) ? 사퇴하지 않고 또 행정적 오류로 인해 결국 관선이사의 파송을 받은 것으로 본다.
사건 2) 고신의료원의 노동조합 결성은 고신의료원 시절(1981. 2. 19 ~ 2002. 12. 6일자)에 복음병원의 설립자인 학교법인 고려학원과 본 총회와 무관하게 무단히 고신의료원의 강성 노조를 결성(1987. 10. 29일자)하게 된 것은 정책적인 오류이다. 즉 복음병원 설립 목적에 위배될 뿐 아니라 그간 노사간에도 막대한 피해가 있으므로 고신의료원을 폐쇄하고(2002. 9. 1일자) 고신대학교 복음병원으로 개편 시 고신의료원 강성 노조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그 대안으로 곧바로 복음병원 운영(스텝과장)회와 직원총회를 조직하여 사립학교법과 법인정관 및 병원 설립 목적에 의거 민주적, 신앙적으로 경영하되 현 노동조합 못지 않게 직원의 복지 및 처우 개선한다면 순리적으로 의료원 강성 노조가 불필요하게 되어 자동해체 했을 것이다.
ø 복음병원에서 왜 강성 노조가 생기게 되었는지? 사회에서도 노조 없이 ? 무노동 무임금 제도로 경영하는 기업체, 기관이 많이 있는데 ? 지금도 복음병원이 병원 노조를 위해 존재하는건지? 당시 노조의 불법 데모로 인한 체불 노임의 부채가 왜 생겼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즉 노조 유무에 따른 그 손익계산과 노조의 존재 목적 및 존재가치를 진단하여 시급히 처리(재고)해야할 큰 문제이다.
ø 제 58회 총회에서 사회법보다 교회법이 우선임을 결의한 바 있고 사립학교법 특별정관 적용 취업규칙, 인사규정상 직원 채용시 노조 가입 불가(직원 총회 대치) 계약서, 각서 받아 처리 ? 성구 : 고전 10장 30절 참조
사건 3) 각종 고소, 고발, 진정, 탄원서 등의 분쟁사건은 당시 필자가 사전 협상 조정으로 거의 해결하였으며 조정 불가한 사건과 당국의 담당 부서에서 처리할 수 없는 사건은 소관 법무 담당 부서로 넘겨 관계법, 법인정관에 의거한 유권해석 및 내부 사건은 항변 사항으로 처리하여 사건 기각, 서류 반려시켜 수습하였다.
ø 즉 관례법의 저촉을 피하고 당국 상부의 사무 감사에 지적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 관계 자료 제공 ? 사건의 문서 정식 접수 전에 내부 항변 처리 또는 법적 유권 해석 및 질의 응답의 조복 공문으로 처리하였다.
사건 4) 당시 고신 교단의 지도자 대표격인 3인방(한상동 목사, 송상석 목사, 장기려 병원장) 중심의 분파 문제
한목사와 송목사 간의 분파 분규 문제는 사사건건 심각한 문제였다. 그 모든 문제는 필자 실무자의 중간 역할의 위임 下에 모든 분파 사건을 예방 척결하되 두 분의 사전 협의 하에 결재하기로 협약하여 수습 척결하였다. 그 증표로서 당시 “개혁주의” 월간지 표지에 두 분의 협약, 화해 증표로서 악수 기념 사진을 게재 공개하였으므로 필자가 재직할 때까지는 모든 업무 추진 기타 결재에 아무런 문제 없이 순탄하였다. 또한 당시 이사장 송목사와 장박사 간 불편한 관계로 복음병원 관계의 업무추진과 모든 결재 집행이 불가하였던 것을 필자가 역시 중간 역할로 사전 협의 양해 하에 결재함으로 인해 두 분의 불편한 관계가 해소되고 따라서 병원 경영상 상반된 결재와 업무 집행도 순탄하였다. 그 증거 예로 모든 결재 인감 관리 문제가 큰 애로였는데(마산 거주 송목사 결재, 직인 사용의 전결 문제) 송목사께서 실무자의 사전 전화 보고 통화 및 직인 사용 여부를 장박사에게 위임 결재 사용키로 협의 집행함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심지어 송목사의 숙박 필요 시 ? 여러 차례 병원 장박사의 사택에서 유숙할 수 있기까지 원활하게 교류 수습하였다.
ø 그러나 필자가 사임한 이후 곧 3인방 관계가 다시 악화 재발되었지만 교단적으로 그 누구도 3인방의 관계 회복을 이루지 못한 채 3인 모두 서거함으로 ? 교단적, 기관적, 역사적으로 불행하고 원통한 아쉬움이 남아있다. 따라서 ? 그 후 지금까지 - 3인방 관계의 후유증 ? 그 여파로 교단적인 분파, 정치적인 냉전이 계속되어 결국 소위 오늘의 교단적인 개혁파, 보수파, 중립파가 생겨 이어져가고 있는 셈이다.
사건 5) 김해복음병원의 경영 부실, 부도, 부채 사건
첫째, 김해복음병원은 본 총회의 사전 허락 없이 당시 김해 소재 의료법인 용지의료재단의 부실 병원을 정식 경영 진단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수의 계약 형식으로 인수(1984. 2. 13일자)한 것은 큰 오류이다.
둘째, 김해복음병원 인수 후 경영 미숙과 운영관리 감독의 소홀로 병원의 부도 사건이 발생하였다. 그간 1986년 제 36회 총회에서 김해복음병원 진상조사위원 7인을 선정하여 위임 처리한 바 있고 이어 본 총회에서 김해복음병원을 복음병원장 박영훈 책임 하에 경영하기로 한 당시 이사회의 보고를 채택한 바 있다. 당초 - 병원 인수한 목적은 필경 - 복음병원의 분원격인 수익 병원용으로 인수할 때는 본원에 큰 유익을, 교단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되는 김해복음병원으로 개편하여 본원에서 직영하였다. 그 동안 본원에서 의료 인적, 재정적으로 막대한 지원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병원 부실 경영으로 결국 병원 인수한 지 28년 경과한 지금까지 그간 병원 부도, 부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그러나 본 사건에 대해 그 누구 하나 책임을 지지 않고 또 그 책임 관계자에 대한 문책도 없었다.
ø 만약 필자가 담당하였다면 경영 진단해서 당초 그 인수를 반대하였을 것이다.
사건 6) 복음병원장 장박사의 사표 건과 재단 총무처장서리 ? 필자 ? 의 사퇴 문제
본 건은 둘 다 똑같은 사항으로서 고신교단적인 큰 시험이며 소위 호사다마로 발생한 사건으로 볼 수 있다. 즉 앞에서 고신교단 및 산하 중요기관의 법적 초창기의 기록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교단적인 위기 SOS 사태 당시 필자가 특히 소명 받아 병원 서무과장 겸 재단 총무처장서리로 부임하여 비상 위기를 모면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시킨 시기에 당시 호사다마의 교단적인 큰 시험임을 망각 ? 교단, 기관의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지 못하고 단순 개인적인 오해, 감정적인 편견으로 인사 처리한 인사 오류라고 짐작된다.
ø 필자의 사퇴를 보고 장박사의 동반 사표 건은 반려되고 필자의 서무과장직만 自退(자퇴)처리하고 재단 총무처장서리직은 보류하다가 그 후 사무국장에 송상석 목사가 대행한 사건이다.
ø 당시 본 건에 대한 오해와 와전이 있어 당시 필자가 1개월 간 자숙, 근신한 후 自退(자퇴)하는 동시에 장박사님의 사퇴는 철회(반려)하도록 강권한 바 있었다.
ø 만약 필자가 고전 10장 30절 ? 하나님은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심을 믿고 自退(자퇴)하지 않았다면 ? 생각하건대 필자가 당시 특히 부름 받아 그 위기를 극복, 그 사명을 완수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과 섭리로서 위 6가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처리 하였을 것이며 따라서 오늘의 현황보다 더더욱 크게 발전 성장하였으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ø 위 법적, 정책적, 행정적인 오류에 대한 책임을 따진다면 ? 모름지기 제 1차 책임은 역대 ? 법인 이사회와 소관 기관장에 있고 그 2차적 실무 책임은 법인 사무국장 ? 총회 사무총장(총무)이며 그 다음은 기관 사무처장, 행정처장에 있다고 보고 앞으로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4) 법인의 인허가 수속, 등기, 등록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
그 당시 일반 법인의 설립 인허가는 당국의 지시와 정관준칙대로만 하면 허가를 받기 쉬웠기 때문에 어려움이 없었지만 본 교단(총회) 산하 특수기관의 설립과 고유한 목적대로의 운영을 위한 법인 허가를 취득함에 있어서는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수속하는 과정에서 말할 수 없는 애로와 난관이 있었다. 그것은 본 교단(총회)의 숙원사업이었던 법인 설립 건이었는데 그 당시 20여 년간 허가를 받지 못했던 다음과 같은 사유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
?교단(총회)은 교단의 헌법 이념과 법인 정관 및 산하 각 기관의 설립 목적대로 허가를 신청한 반면에 당시 문공부, 문교부, 보사부 당국은 정부정책에 의거한 정관 준칙대로 인허가를 하려는 평등기본원칙과 상호간의 충돌이 있었다. (처리사항 별지)
② 지금에 와서야 밝히지만 사실 그 당시에 부산시 서구 암남동 34번지 주변에 있는 고려신학교와 복음병원의 부지는 환수나 확보가 법적으로 불가능했었다. 왜냐하면 부지 총평수 15,464평 가운데 약 1/3은 농지계획법에 의하여 소유권이전 소송 중이었으며 약 1/3은 무단개간토지의 포기각서, 인우 증명처리가 불가피한 상태에 있었다. 더더욱 큰 문제는 대지의 전 소유자 때부터 건축점유하고 있던 병원 입구 도로변에 무허가건물 약 15평 1동을 명도 철거하는 사건은 가장 큰 문제였다. 그리하여 겨우 부지 1/3만 남아있는 상태였지만 당시에 우리 교단에서는 이 부분에 대한 행정적인 절차에 밝은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속수무책으로 빼앗길 상태에 있었다.(처리사항 별지)
? ø 만일 필자가 약 6개월만 늦게 부임하였어도 부지 환수는 불가능할 만큼 긴박하였다.
③ 재단 법인병원의 설립 인허가받는데 있어서 법적 행정적 수속上의 애로와 재산 및 시설까지도 기준에 미달되었다.(재산시설의 기준 미달 건은 연차 보충계획서 제출로 처리하였다.)
④ 안타깝게도 교단의 내분 가운데 하나의 이유는 법인 설립 인허가 목적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했기 때문이다. (예: 복음병원을 학교법인의 수익기관으로 편입문제 ? 한목사 오목사 개인 명의 재산의 증여등기 문제 等)
⑤ 결국 복음병원에도 경영위기의 비상사태였다. 이로 인해 재산압류, 부채, 부도수표사건, 봉급 체불, 적자 경영문제 등이 불거졌다. (처리사항: 복음병원은 당시 장박사님의 명성으로 환자 진료는 上급이었으나 경영수지는 최하위였다. 필자가 경영진단 적자 병원을 흑자병원 中위권으로 향상시켰다.)
⑥ 보이지 않는 큰 문제는 교단(총회)내의 분파와 불화였는데 심각한 상태였다. 특히 당시 비영리기관 복음병원은 장박사 중심의 독립 채산으로 자율적 경영을 주장하는 반면 총회 이사회는 수익기관 병원으로 편입하여 총회 직영하겠다는 상반된 심각한 문제였다. 또 신학교 교직원, 병원 직원들은 당면한 교단적 비상사태의 상황임을 망각하고 실망 방심한 상태로 있었고, 고신교단의 주인의식과 그 역할, 사명의식의 결여문제가 심각했다.
위에서 기록한 여러 가지 사유로 인해 법적, 행정적인 인허가 추진 수속상의 애로와 난관이 있었고, 그로 인해 교단적으로 위기에 처하게 될 때마다, 때 맞춰 하나님께서 부족한 필자를 사용하셔서 여러 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하셨다. 이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요 섭리라고 여겨진다.
(5) 특별한 부르심에 대한 간증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니 필자가 부산복음병원의 서무과장(재단 총무처장서리 겸임)으로 부임하게 된 것은 특별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필자가 당시 거창고등학교 재단 총무와 서무과장으로 일하면서, 고 전영창 교장 선생과 함께 폐교 직전까지 갔었던 거창고등학교를 다시 일으켜 세웠고, 또 자립에 성공시킨 것을 알고 복음병원에서 오라고 초청이 왔다. (추천: 남영환목사, 거창교회 권성문목사) 그러나 그 당시는 초청이 왔다고 마음대로 사임(거창고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즉 거창고 전영창교장과 고신 교단 간에 꼬여있는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필자의 가정 형편 상 고향인 거창을 떠날 수 없었는데, 거기에다 당시 복음병원의 위기상황을 살펴보니 당면한 애로와 난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사건과 사고 수습 등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는 자꾸만 영감으로, 혹은 꿈으로 여러 차례 내게 이 말씀을 주셨다. 빌 4:13절이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또 내 입에서는 찬송가 323장이 흘러나왔다.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멸시천대 십자가는 내가 지고 가오리니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종의 몸에 지닌 것도 아낌없이 드리리다“ 이 말씀과 찬송에 감동받아 이것은 분명한 주님의 섭리요 주님이 인도하시는 것인 줄 깨닫고 순종하여 복음병원에 부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은 이것 때문에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보았다. 그것은 거창고 전영창 교장의 간청을 뿌리치고 떠남으로 재직 8년 근속의 퇴직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퇴직금을 내 놓으라고 하지도 않았다. 그것 때문에 필자의 가족이 부산으로 이사하는 일도 거의 1년이 늦어졌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신 소명에 지금도 감사하는 것은, 당시 교단의 큰 위기 때마다 이런 복잡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경험자와 적임자가 절실히 필요했는데, 그 때 맞추어 하나님이 이 방면의 경력자인 필자를 파송하시고,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을 붙여주셔서 문제를 해결하게 해주셨다. 뿐만 아니라 이런 때를 위해 하나님이 준비시키시고 충성되이 여겨 막중한 직분을 맡기신 줄로 믿는다. 이는 필자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님을 잘 알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기도의 응답임을 믿고 감사를 드릴 뿐이다.
2012년 1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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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술 자문위원과 세 아들이 함께 한 총회
“온 가족이 교단을 섬길 수 있어 기쁩니다”
2012.09.27 11:19 입력
한 가정의 아버지와 세 아들이 제 62회 총회에 참석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이재술 (91) 자문위원의 가족이다. 아버지 이재술 장로와 첫째아들 경기노회 이정창 장로(59?강남일교회), 셋째 선교위 본부장 이정건 선교사, 넷째 수도남노회 이정만 장로(55?샘물교회)가 총회에 참석했다. 둘째 수도노회 이정백 장로(안양일심교회)가 참가하면 네 아들이 모두 함께하는 총회가 된다.
총회 헌법위원과 전국원로장로회 회장을 지낸 이재술 장로는 안건 처리 관련법을 조언하는 자문위원이다. 그는 “살아있는 동안 고신을 위해 일하며 알게 된 것을 모두 알려주고 싶다”고 말한다. 오랫동안 교단에 있으면서 얻은 교훈들을 알리고 교단이 옳은 길로 가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다.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진행되는 총회 일정 속에서, 아흔 하나의 연세에도 열심히 메모하고 건의하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총회에 처음으로 참석하는 이정만 장로와 이번이 두 번째인 이정창 장로는 고신의 전통을 따라 열심히 섬기겠다고 말한다. 부모의 마음에 보답하는 아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쉬는 시간 틈틈이 아버지 자리로 찾아와 간식과 물을 건네고 챙기는 아들들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규칙을 개정하고 안건을 처리하는 등 총회의 딱딱한 분위기 속에서도 온 가족이 총회에 참석함으로써 인간적인 따스함을 자아내는 총회가 됐다. 자문위원인 아버지와 총대인 아들, 이 믿음의 행진이 SFC 손자에게까지 이어진다면 우리 교단의 비전은 하나님보시기에 심히 좋을 것이다.
김수경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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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장로교회 약사(연혁)의 범례(1)
이재술 장로 /강남일교회은퇴
이 자료는 제 부친 이재술 장로님이 몇 년 동안 자료를 모아서 정리해 놓으신 것입니다. 90세의 연세에 인터넷을 사용하실 줄 모르게 때문에 인터넷을 통하면 손쉽고 빠르게 자료를 수집할 수 있고 기간도 훨씬 단축하실 수 있음에도 일일이 이런 저런 책들을 참고하면서 고생스럽게 정리하셨습니다.
우리도 알거니와 많은 자료들이 있지만 어느 곳에는 기록되어 있지만 다른 곳에는 기록이 누락되어 있는 등 종합적인 자료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시고 돌아가시기 전에 이 작업을 하겠다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래서 이 자료를 만들어서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한국 장로교회의 약사를 정리하셨습니다. 아직도 보완할 부분이 있겠지만 제가 봐도 지금까지 나온 것들을 빠짐없이 잘 정리하신 것 같습니다.
제가 컴퓨터로 옮기는 작업을 하면서 관심사가 선교분야이기 때문에 선교부분만을 따로 간추리고 싶습니다. 이 자료는 1963년에 우리 교단이 환원할 때까지의 역사입니다. 이 자료를 코람데오 닷컴에 올려놓아서 누구든지 필요한 사람들이 가져가서 보시고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들 이정건 선교사 -
구순의 연세에도 이런 귀한 일을 하셨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귀한 옥고를 아무 댓가 없이 모든 사람이 참고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이재술 장로님께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다만 한페이지에 다 올라가지 않아서 1,2부로 나누어 올리기에 한번에 볼 수 없는 불편함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코닷-
1.
참고자료
▲ 이재술 장로
강남일교회 은퇴
고신총회자문위원
전국원로장로회 증경회장
전 헌법개정위원
1) 실록 한국기독교 100년사 부록 - 중요연표, 일기, 교계 약사, 일반 약사(한국, 세계)
2)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사업 총감 부록 - 한국 기독교 100년사 연표
3) 한국 기독교회사 중요사건 연표
4) 한국 장로교회의 설립과 발전
5) 한국 기독교역사 연대표
6) 간추린 한국교회사(신학교재 편찬위원회)
7)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측) 연혁
8) 대한예수교장로교(합동측) 연혁 및 총회회의록 초본
9)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측) 연혁
*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측) 연혁은(고신 50년사 부록, 총회연혁 약사) 미비, 오기가 있음으로 제외하였다.
2. 약사연도의 기준 : 1881년 이전에는 주로 천주교 선교의 초창기 역사이므로 생략하고 1832년에 독일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교 활동할 때를 기준으로 하여 모든 기독교 약사 중 특별히 장로교의 역사만을 발취하여 기록하였다.
3. 고신교단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1952년 9월 11일자 고신 총노회 조직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실제로 고신 교단의 뿌리는 교단분립 이전에도 한국에서 단 하나뿐인 장로교 총회에 소속되었던 관계로 고신 분립 이전의 약사 기록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고신의 뿌리에 대한 기록이 없음으로 이번 기회에 고신 분립 이전의 역사적 기록을 찾아 약사로 비치고자 한다.
4. 여기에 북한 지역 내 옛 장로교 각 노회, 각 교회 창립의 약사까지 기록한 이유는 현재 북한에는 교회에 관한 자료가 전무함으로 장차 남북통일이 되면 그 때 귀중한 자료가 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수록하였다.
5. 연표를 1963년까지 연장 기록한 이유는 고신 교단이 1952년 분립 후 1960년에 합동했다가 1963년에 환원했기에 분립, 합동, 환원의 경과를 타 교단과의 관계 속에서 살펴보기 위해 1963년까지의 역사를 연장 기록하였다.
6. 위의 연표의 서식에 연도별 교계와 국가 그리고 세계의 약사를 함께 기록한 것은 고신 교단 분립 이전 당시 교계와 국내와 국제 정세 역사의 흐름을 이해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7. 위의 참고자료 연표 중 각 연표간의 연도차이와 약사내용에 차이가 있는 것은 교단별 총회결의 연표와 시행 년도의 차이가 있으며 각 교단 별 결의 사항 중 조문 문구의 차이 때문이다.
한국 장로교회 약사(연혁)
연 도
중요한 사실(교계)
일반역사(한국, 세계)
BC 4
예수그리스도의 탄생 - AD 30년 예수그리스도의 수난, 부활, 승천
AD 635년 이전 기록 생략. 알로펜을 통해 페르시아의 네스토리안파 선교사가 당나라에 경교를 전함. AD 635년 이후부터 1832년까지 천주교 신부가 포교. 수난 순교의 기록-생략하다.
1832
~
1851
*독일의 경건개혁신교 규출라프 목사가 서해안, 백령도 외 여러 섬들과 장산곶, 군산 등지에서 한문 성경과 교리서 반포 - 7.27일 주기도문 번역(1859년 경신박해)
*영국상선으로 통상자청
*괴테 사망(1851년)
1839
*乙亥년 大박해
1846
*丙寅년 大박해
1859
*경신 大박해
1865
*9.13영국회중교회소속 토마스선교사가 중국 상선으로 황해도 영진해안 자라리에 상륙
*12월 구세군 설립
1866
*7.3미국상선 제너럴 셔어먼호로 대동강에 상륙한 토마스 목사가 한국인에 피검 후 9.5에 순교하다(병인박해-병인양요)
*3월 민비가 왕비로 책립
1873
*서상륜 만주에서 입신(맥킨타이어 목사-한국선교 시작)
1874
*조선교회사-파리에서 간행
1875
*예수선교문답-예수선교요령 발간
1876
*4월 이응찬, 백홍준, 이성화, 김진기 등이 만주 우장에서 메킨타이어 목사로부터 개신교 최초로 세례 받음.(*1874년 혹은 1879년 양론)
*2월 병자수호조약체결
1878
*4월 로스 목사는 조선청년들과 만주에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번역함.
1879
*서상륜이 만주에서 성경번역에 참여하고 성경을 국내로 밀반입함.
1881
*서상륜이 세례 받고 로스목사 성경도움
*로스 선교사-서간도 교포교인에게 세례 줌
1882
*한미수호조약 체결함으로 한국에 전도의 문이 열림
*백홍준 외 3인이 성경을 가지고 귀국(누가복음, 요한복음 간행)
*5월 이수정이 제3회 일본기독교 친목대회 참석
*9.2마태복음,마가복음,사도행전 간행(로스번역)
*6월 임오군란
*5.22한미수호조약체결
1883
*1.25장로회 선교사 공의회 조직
*만주로부터 파송된 서상륜,이성화,김청송,백홍준 등이 선교사로 입국 전 의주, 송천, 서울 등지에 전도하여 세례지원자 150명을 미리 준비함(의주교회 설립)
*4.29일본에서 이수정이 야스가와 목사에게 세례 받음
*7월 현토성서, 신약전서, 마가복음 간행
*1월 태극기를 국기로
지정.
*3.14칼 막스 사망
1884
*황해도 장연군 대구면 송천(솔내)에 한국 최초로 소래교회를 설립하다
(서상륜의 고향) (*1883.5.16자 설립?)
*7.28언더우드 목사가 한국최초 선교사로 임명
*8월 4복음서와 사도행전 등 5권 간행
*9.20미국 북장로교 최초 의료선교사 알렌 의사 부부가 입국하여 황실병원 광혜원을 개설 운영하다
*12.4알렌 선교사가 갑신정변에서 중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여 왕실의 호감을 얻어 선교에 도움이 되다
*이수정이 일본 요꼬하마에서 요한복음, 사도행전을 번역 간행하다
*만주 선교사 로스가 서간도 집안현에서 한국신도 75명에게 세례를 주다
*2월 미국뉴욕 맥윌리암스
평신도가 한국선교비 5천불
헌금(선교부)
*3월 우정총국개설
*10월 갑신정변
*12.4개화당쿠데타
*11월 한성조약체결
1885
*2월 알렌선교사 고종의 시의되다
*4.5미국 북장로교 언더우드 목사가 장로교 최초 목회선교사로 입국-서울에서 선교 활동함
*6.28선교사 일행 알렌 의사 방에서 처음으로 부활주일 예배드림
*한국주재 미국선교사회 조직
*대영성서공회가 4년간 성서 1,500권 반포하다
*4.10광혜원개원
*8월 대원군이 청나라에서 귀국
*12월 배제학당설립
1886
*2.7성경번역위원회 조직(회장 언더우드)
*6.4한.불 통상조약체결
*7.11언더우드 선교사가 노춘경 도사에게 한국최초의 세례식 거행
*서경조, 최명호, 정공빈 세례받음
*평북 의주에서 장로교 서교회를 설립하다(인천내리교회)
*일본에서 성경번역 공로자인 이수정 순교하다
*5.11언더우드학당(경신학교) 설립
*7월 이화학당, 예수교학당
설립
1887
*중국 산동성 존로스 선교사가 서울에 장로교회 설립(교인 14명 수세)
*2월 성서번역위원회 조직(언더우드,아펜젤러,스크렌튼, 혜론)-위원4명
*7월 서울 새문안교회를 설립하다
*9.27서상륜, 백홍준이 장로 장립 받아 유급 전도사로 시무
*12월 송천교회에서 언더우드 선교사가 최초로 성찬식 거행(7인)
*신약성서 6,000권 만주에서 국내로 반입하다
*서경조의 아들 서병호에게 최초 유아세례식 거행
*영국성서공회가 한국사업 시작-성교요리문답, 예수성교전서간행, 한글번역, 마가복음 간행
*4월 광무국 설치
*주일공사 민영기, 주미공사 박정양 임명
*4.7식민지 회의(런던)
*7월 전국에 콜레라병 만연
1888
*한국 최초로 주일학교 설립(이화학당 12명의 학생)
*4.28고종이 기독교 금지하는 금교령을 내리다(교회수난)
*11월 평남 중화군 장산 장로교회 설립
*최명호, 서상륜, 백홍준의 최초 조사 임명
*12월 캐나다 장로교의 기일 선교사 부산 도착과 언더우드 부인 홀튼 여의사 입국(부산)
*1월 로마 종교대회의
*5.13브라질 노예제도 폐지
*12월 한성부 전국 인구를 6,567,038명으로 발표
*미국 대통령에 해리슨 당선
1889
*4월 한국선교서회 설립
*4.27언더우드 선교사가 압록강 건너 의주교회에서 김이련, 김관근 등 33명에게 세례를 베품.
*6월 존네비우스 목사 부부 내한 선교원칙 소개(*1890년?)
*8월 호주장로교 빅토리아, 데이비스 선교사 남매 부산 입국, 그 이듬해인 1890.4병사한 계기로 호주교회가 한국선교를 본격화하다.
*캐나다 장로교 독립선교사인 펜워크 목사가 원산으로 입국
*한국선교 5주년에 교인 165명이 되다.
*10월 언더우드 선교사가 기독교서회 설립
*10.31 주한 선교사 연합 공의회 조직(회장에 헤론박사, 장로교11명, 감리교11명)
*교회지 신학월보를 발행하다
*4월 기선회사 개설 특허함
*한일간 통어장정을 체결
1890
*캐나다 장로교 하디 선교사 내한
*1.26마포삼열선교사(미북장로교) 내한
*6.25조선성교서회(기독교서회 전신) 창립
*7.29호주장로교 맥켄지선교사 내한
*7.29양화진에 외국인 공동묘지 허가받음
*8월 함창현에 민란 발생
1891
*미국 북장로교 번콘 선교사 입국(빈존의사)
*3월 호주 장로교 부산 선교부 개설
*10월 부산초량교회 설립
*미국 북장로교 배위량 선교사 입국, 부산에서 선교활동
*평남 순안교회 설립
*의주선교회 창립
*천주교 교세: 주교 1명,
성직자 20명, 신도1,800명
1892
*10.18미국 남장로교 테이트(이눌서)목사 부부, 레이놀드(최의덕) 선교사를 비롯하여 7명 내한 선교시작
*12.25 동대문교회 설립
*성서 번역위원회- 찬미가, 성경도셜, 성경직회 발행
*미국 북장로교 이길함, 소안론, 위삼열 선교사 입국
*미국 남장로교 선교부 설립하다.
*마태복음 번역, 간행하다.
*정동교회에서 최초의 도 사경회를 개최하다(16명 참석)
*1월 일본인을 위해 일본인 선교사 사마누끼 입국
*인천 영화학교 설립(교장 : 존스)
*이등박문이 일본 내각 총리 대신이 됨
1893
*2.28장로교 선교사 합동 한국공의회를 조직하고 네비우스 선교방법 채택
(회장 이눌서)
*수요 삼일 기도회 예배시작
*평양 장대현교회, 원산 명석동교회. 승동교회, 장로교 능곡교회, 안악읍교회, 황해창연교회, 전주서문교회 등 전국에서 33개처 교회가 설립
되다
*12월 백홍준 장로 옥중에서 순교하다
*미국 북장로교 에비슨 선교사 입국하다
*12월 캐나다 장로교 멕켄지 선교사가 입국하여 선교활동을 하다 소천하자 캐나다장로교회가 감동을 받고 정식으로 한국선교를 시작하다(1895년)
*언더우드가 지은 찬양가 150장 간행하다
*10.24양화진 외국인 묘지 조성하다
*한국성서사업을 영국, 미국, 스코틀랜드 등 3성서공회와 협동하기로 협약
*미국 북장로교 평양선교부 개설하고 전국에 33개 교회 설립시 수요예배를 시작하기로 함
*4월 동학교도 해산, 기독교 배척운동
*미국 대공황 발생
*프랑스와 러시아의 군사협약
*프랑스, 샴간의 전쟁
1894
*1월 천로역정 번역출판(게일 선교사)
*4월 장대현교회 설립
*4.7 평양감사 민병덕의 교회박해사건 발생
*서울 연동교회, 서울 영등포교회 설립(장로교)
*미북장로교 아담스 선교사 입국(애덤즈)
*마펫목사 평양에서 7명에게 세례 주고 성찬식 거행
*신편찬송가 곡보付115장 간행(언더우드 지음)
*동학란과 청일전쟁으로 교회는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도의 문이 크게 열림
*주일학교의 교세- 73학교, 6,800명의 학생
*장로교에서 영수직을 창설하다
*2.15 동학란 발생(1월~)
*9.4 개국 500주년 기념식에 선교사 초청
*8.18 청일전쟁 발발
1895
*미 북장로교 안니와 목사 입국
*북장로교 대구 선교부 설치
*미 남장로교 피득 선교사 입국
*남장로교 군산, 전주 선교부 설치
*한국선교사 총회 창설, 총회에서 선교지역을 구분함(각교파 구역 인정) *장로교 찬송시 발간
*6.23 한국최초의 교회인 솔내교회당 준공, 7.7 헌당식
*대구제일교회, 재령읍교회 등 10여교회 설립
*지방관제 개정 ?23府 331郡
*8월 을미사변 발발
*10.8 민비 시해사건 발생
*11월 단발령 내림
(12.30 단발령 시행)
1896
*1월 언더우드 부인이 The Korea mission field 창간하다
*미 북장로교 위대모 선교사 입국하다
*2월 서병호 외 4명의 최초의 유아세례식을 거행하다
*기독학생운동인 ‘협성회’조직(대표: 서재필)
*미 남장로교 배유지, 하월렴 선교사 입국하다
*기독교 공주지방회 창립하다
*서울연동교회, 전주서문교회, 함흥신창교회, 함안문천교회, 상주음교회 설립
*8월 중국선교회리드 박사가 한국지방선교사로 임명되어 전도를 개시하다
*10월 시오니즘(Zionism) 운동 일어나다
*4.7 독립신문 발간
*5월 러시아. 일본 협약성립
*미국 대통령에 매킨례 당선
*7.2 독립협회 조직(서재필)
*11월 독립문을 세움
1897
*2.12최초의 교회신문인 조선 그리스도인 회보 창간(아펜젤러)
*3.24 황해도 안악교회, 사리원 서부교회 창립
*기독교 뉴스지인 그리스도신문 창간(주간: 언더우드)
*평양에 장로교 찬송성가. 공인 찬송가 85장 간행
*마가복음 번역 완간하다.
*호주장로교 왕길지 선교사, 미북장로교 한위겸 선교사 입국하다
*평북 선천읍교회(8월), 정주읍교회(10월), 중화읍교회 등 20여교회 설립하다
*평양에 단기성경학원을 개원하다
*한국최초의 왕실유치원을 설립하다
*3월 경인철도 기공식
*4월 그리스 터키에 선전포고
*5월 전주예수병원설립
*8월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개칭
*10.10 베어드선교사가 숭실학당 설립
*10.12국호를 대한제국으로 제정
1898
*2.20 최초의 부인전도회 조직하여 교화사업을 함(평양 팔동)
*장대현교회 이영현 장로 취임
*9.27 캐나다 장로교 선교사 마구례, 부두일, 업아력, 구예선 등 6명이 입국하여 함경도 원산간도 지역에서 선교활동하다.
*카나다 장로교 선교사회 조직
*원산선교부, 선천선교부, 목포선교부를 각각 개설하다(9월)
*장로교 함북 청진교회 설립
*미 북장로회 선천선교부 개설
*미 남장로교 하리영 선교사 입국하다
*미 남장로회 목포 선교부 개설
*7월 동학교도 최시형등 처형
*8월 일본 이득박문 내한
*미국인과 공동경영으로 한성
전기회사 설치 인가함
(전차, 전기, 전화 설치)
*10월 영.독 비밀조약 체결
1899
*2월 불량배 소행으로 황주 황천교회당 소각사건 발생
*3월 토마스 선교사 참수형 집행자인 박춘권이 마펫 목사의 주례로 세례받다
*장로교 서울 남대문교회 설립
*미 북장로교 부해리 선교사, 미 남장로교 부위렴 선교사 입국하다.
*미국인 세브란스의 기부금으로 종합병원과 의학교 설립하다
*청나라 의회란 봉기로 선교사 대수난
*대한크리스챤회보 속간
*독립신문 폐간
*장로교대구동산병원설립
*청국과 통상조약 체결
*대한민국 국제 반포
1899
*경성에 전차, 전화 개통
*경인철도 개통
1900
*신천 북교회에서 최초 전도회 조직
*4.5 서울 종교교회 설립
*신약전서 번역 간행
*4.15 자교교회 설립
*미국 북장로교 편한설, 사우학 선교사 입국
*강계읍교회, 강화중앙교회, 곽산교회 설립
*호주 장로교 왕길지 선교사 입국
*전국신도 18,081명으로 집계
*와일스 박사, 란데스 선교사 등이 강화도에서 전도활동을 하다.
*5.23 선교사회에서 주기도문 표준역을 공동사용하기로 결의함
*9월 경북 안동교회 설립
*10.1 한국 최초로 송천교회 서경조 장로장립
*평양 장대현교회 김진섭 장로장립
*10월 평북 강계교회 설립
*만국 우편연맹에 가입
*광주 나병원 설립
*대한기독교정교회선교개시
*6월 평양외국인학교설립
*군부대신 이근택이 전국기독교인
살해비밀지령 통보
*통신원관제공포철도원설치
*한강교 준공, 경인선 철도 전 노선 개통
*시위 기병대 설치
*유럽 열국과 강화조약 설립
1901
*5.15 평양에 장로회 신학교 개교-김종섭, 김창식, 방기창 등 최초의 신학교육(감리교 김창식, 김기범의 최초 안수식 거행)
*9.20 미국 남북장로교, 호주 선교부, 카나다 선교회, 한국교회 합동공의회로 조선 야소교 장로회 공의회를 발족하되 한국인 참여하여 재조직하다(회장 : 소안론)
*기독신문을 공보 주간지(선교회보)로 하다.
*미국 북장로교 밀의동, 방위량 선교사 입국
*신약전서 완역, 성진교회, 원산중앙교회, 수원종로교회 설립
*이승만,이상재등 독립운동 회원 12명 옥중에서 개종
*7.11 노벨상제도 제정
*한국-필리핀 통상조약체결,
오스트레일리아연방 설립
1902
*미국 북장로교 곽안련, 심욱순, 전선리 선교사 입국
*3월 서울 승동교회 창립
*이원궁, 이상재 등 12명의 정부고관이 기독교에 입문
*6.11 아펜젤라 선교사가 성서 번역회 참석차 항해하는 선박에 순사(목포행 상선간의 충돌로 총회서기와 이화여고생 등 25명 사망)
*7월 기독신문 창간- 찬송시 한국어 편곡 편찬
*9월 한국 YMCA가 세계 YMCA에 가입
*장로교 8년간 교세 : 장로 5명, 조사 46명, 선교 사 34명, 교회수 363교회, 학교 60개, 학생 1,300명, 헌금 17,391원
*9.20 제1회 장로회 공의회 개최(장로 3명, 조사 6명, 선교사 25명)
*7~9월 콜레라 창궐
*애국가제정(엑케르트 작곡)
*12.22 제1차 하와이 이민 121명 출발
*통신원:경성-인천간, 경성-개성간 전화 가설
*영.일 동맹 체결
*쿠바 공화국 설립
*시베리아 철도 완공
1903
*3월 경남 마산문창교회 설립
*5월 평양신학교 학제제정
*8.24선교사 내한 원산 기도회, 원산 부흥사경회 인도
*파나마 공화국-콜롬비아국
에서 독립
*8.7신민회 창립
1903
*9.20제2회 장로교 공의회 개최(새문안교회, 회장-마펫 선교사)
*벽동읍교회, 평양남문밖교회, 함북경성읍교회 설립
*10.28황성 기독청년회 조직(서울 YMCA) 최초운동-회장 :게일 선교사
*11월 평양 남문교회 설립
*원산에서 부흥운동이 시작됨*
*미국 북장로교 군예빈, 남장로교 변약한 선교사 입국
*조선 유년주일학교 정식발족(평양 남산현 교회에서)
*장로교, 감리교 공동부흥회 개최 부흥운동
*9.23재미한인회 조직
*러시아용안포-안동간 전선
가설
*청국-일본과 우편조약체결
*청국이-러시아:일본교전에
국외중립결의
1904
*2월 원산 창천교회에서 이틀간 장로교, 감리교 연합사경회 개최
*진보회를 유신회와 합하여 일진회로 개칭하다.
*장로교조선회의회를 조선예수교장로회로 개칭사용키로 하다.
*군산 개복동교회, 서울 연동교회, 광주 양립교회, 광주 제일교회 설립
*미국 북장로교 허대전, 방혜법 선교사 입국
*한국교회 추수감사절예배 시작
*평양에서 사무엘 마펫 선교사가 예수교서원 설립
*남장로회 광주선교부 개설, 캐나다장로회 함흥선교부 개설
*복음찬미 간행, 기독학생 인도법(이승만 지음)
*수원 에스데반 교회 신설(영국 성공회)
*선교사의 한국 연구지 창간
*홀널안의 신약저서 번역완료
*일본육군 인천상륙, 서울입성(1차 한일협약)
*세브란스 의과대학 설립
(제중병원을 세브란스병원으
로 개명)
*제칠일 안식교 시작
*프랑스교황청과단교.
*2.10노일전쟁 발발
*일본,러시아간국교단절
*대한 적십자사 발족
*2월 한일 의정서협약 설립
*감리교 교세:목사4, 선교사34, 신도 10,570명
1905
*장로교 독노회 설립결 12신조 성경요리문답-채택추진
*진주교회 설립
*조선 주일학교 연합회 창설
*3월 장로교 공인 찬송가, 곡보부, 창송시 발행
*초교파 구국기도회(매일 오후 3-4시)
*4월 협성신학교 설립(교장 : 존스)
*장로교 연합신학교 개설(평양)
*4.15 원주 제1교회 설립
*추수감사절 제정(11월 첫주일후 목요일)
*기독신보 창간-대한기독교회교단 창립(초대감독:펜웍목사)
*재한 각교파 선교사연합회(각파공의회 장로교,감리교 조직)
*평양 산정현교회 설립
*12월 평양 창동교회와 평북 차배관교회 설립
*11.16재령 사경회-553명 참석
*일.러 강화조약 체결
*청일 신조약 체결
*프랑스 정교 분립법 가결
*1.1 경의선 개통
*대한매일신보 창간
*이등박문 내한
*11.17을사보호조약 체결
*뉴욕 한인교회 설립(양주삼 목사)
*대한 적십자 병원설립
1906
*1.30 선천읍교회에서 지방사경회 10일간 개최 1,114명 참석
*4월 새벽기도회 공식 시작(장대현교회 길선주 목사)
*2월 일본 통감부 설치
*초대통감 이등박문 취임
1906
*박치록 정통적인 새벽기도 1909.8월
*4.2 성공회-성서 2권 고종황제에게 헌증
*평양산정현교회 설립
*진남포에서 안식교와 장로교의 충돌
*용정중앙교회 설립
*샌프란시스코 한인교회 설립(양주삼 목사)
*서울에 성경학교 설립
*년말부터 정오기도회 시작 - 구주도문 발행
*남북감리교회를 감리교회로 변경
*청국인신매매금지제도 발표
*경성에 일본고등군사 경찰령 공포시행
*경향신문 창간
*일본이 러시아 국화태를 인수(북위 50도南)
1907
*전조선 대부흥회 회개자복기도 운동 시작, 계속 역사하다(평남 남도
사경회 1,000~1,500명)
1.6 두주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대부흥운동 시작하여 전국으로 확산되다(1.14 성경:고전 12:27)
*6.20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식 거행(7명; 길선주, 양수백, 방기창, 서경조, 이기풍, 송인서, 한석진), 장로교 평양신학교를 장로회신학교로 개명키로 함
*8.13정미조약에 항거 - 홍래순 목사 자결
*예수교 신문(그리스도 신문 개칭) 속간
*9.17조선예수교 장로회 독노회 조직
(1회, 장대현 교회당, 회장:마포삼열 목사) *7대리회 최초 목사안수7명,총대목사43명,장로36명,선교사32명,교회수 984처-
교세:목사47명, 장로53명, 세례인17,890명, 교인21,482명
*장로회 신경과 정치를 임시로 채택하고 총회규칙을 제정하다
*10월 이기풍 목사를 제주도에 개척선교사로 파송하다.
*10.17 YMCA회관 건립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가 평양에 성경학교 설립
*12월 순천중앙교회-의주동교회 설립하다
*대한예수교 장로회 신경제정 12신조
*YMCA 회관건립
*7.19고종황제 양위소칙 발표
*7.24정미조약 조인, 군대해산
*8.27순종황제 즉위
*11.29흥사단 조직
*이준열사가 헤이그에서 밀사사건으로 분사
*경향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남
*신민회 조직
*일.불 협약, 일.로 협약 성립
1908
*3.1 한국인 목사로 최초 세례식(길선주 목사 집전) - 201명에게 세례를 줌
*제2회 예수고 장로회 조선노회개최(서울 연동교회당)
*4월 海西교육총회 조직: 일면일교 운동전개
*미국 북장로교가 만주 안동선교부 개설
*8월 사립교령에 따라 교회설립학교 규정 강화
*9월 12신조 소요리 문답, 교회정치를 채택하다
*사랑의 사자 고찬익 장로 별세?(국장 예우)
*소년지 창간(최남선)
*12.28동양척식주식회사 발족
*홍삼전제법 공포
*중국선통제 즉위
*불가리아 독립선언
1909
*캐나다 장로교 영재향 선교사 입국
*1.3~1.9만국기도회 개최
*스페인에서 반란, 봉기
*미주한인단체 국민회조직
1909
*9.3 제3회 노회에서 신경, 정치, 노회규칙을 채택하다
*9월 제3회 예수교 장로회 조선노회 개최(평양 신학교)
*독노회가 장로교 최관흘 목사를 시베리아 선교사로, 이광선 여전도사를 제주도 여성선교사로, 한석진 목사를 동경 유학생 선교사로 파송함.
10.10 경남 거창읍교회 설립
*12.28 조선어 연구회(한글학회전신)를 조직하다
*장로회 평양서내외교회 설립, 서울 수포교회 설립
*100만 구령운동 시작
*7.12일본의한국의사법권탈취
*9.4 간도조약 체결
*10.26 안중근이이등박문암살
*콜레라 만연
*민적법 공포
*한국은행 설립
*미국 태프트 대통령 취임
1910
*1월 100만 구령운동 전개
*1.28 장대현교회 신년전도집회 1,800명 참석
*2.28 예수교신보(예수교회보) 발간(사장 한석진)
*4월 장로교 김영제 목사 북간도 파송, 김진근 목사 남만주에 선교사로 파송
*구약전서 완역출간, 날연보 제도가 시작됨
*호주 장로교 매견지 선교사 입국
*7월 3주간 개성부흥회 2,000명 결신-재령전도집회
*장로교 평북선천 남교회 설립
*외국인 선교사대회 개최(종로 청년회관)
*9월 제4회 예수교장로회 조선노회 개최(평북신천 염수동교회당)
*만국통일주일공과 번역, 구약성경 번역완료
*일본데라우찌 총독 암살미수사건으로 105인 교역자 검거,
*10.30~11.9 한주간 평양전도집회에서 총 4,000명 이상 결신
*10월 장로교 임종순 선교사 일본 파송
*세브란스 고등간호학교 창립
*11월 10일간 길선주 목사의 대구 사경회에서 500명 결신,
*김익두 목사의 선천 전도집회에서 700명, 해주 전도집회에서 400명 결신
*12월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최초의 찬양대 조직
*8월 일제가 한국을 강제로
합병하고 대한민국을 조선으
로 개칭
*8.22 한일합병조약조인
*8.29 조선총독부설치
*구세군사관학교 설립
*영국왕 조지5세 즉위(1936)
*포르투갈 혁명공화국 선언
*남아연방 설립
*중국 장사의 난
1911
*1월 그리스도공보(대한크리스챤회보) 발간
*3.13 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 설립
*7월 개성에서 제1회 기독학생 하량회(여름) 개회
*9월 조선예수교장로회 독노회를 개편하여 총회설립을 결정하다(평북2.15. 평남1.28, 황해12.8, 경기-충청12.4, 경상12.6, 전라10.8-15 등 7노회)
*제5회 예수교장로회 대한노회 개최(대구남문안교회)
*성서개역위원회 조직(구약전서-한글로 완역하여 발간)
*동경에 임종순 전도사 파송(목사 장립)
*신해년 혁명(중국 무장봉기) *연중 충돌 41회, 의병 사상 36명, 일본 16명
양기택,인명근등30명 기소됨
*조선의학회 창립
*105인사건으로기독교탄압,
체포
*조선교육령-사립학교 규칙
공포
1911
*장로교, 감리교 연합회 조직
*총공의회를 재한 개신교복음주의 선교연합공의회로 개칭
*평북 선천에 정로교 성경학교 설립
*호주장로교 마신선교부 개설
*선천남교회, 서울중화기독교회,신의주제1교회설립
*기독교 절제회 조직
*압록강 철교완공
*외몽고독립선포
1912
*1.6부산진교회당에서 경상노회 조직하다
*1.20원산상리교회당에서 함경노회 조직하다
*2.15선천북교회당에서 평북노회 조직하다
*2.28장로교 평남노회 창립(평양신학교가)
*3월 캐나다 장로교 선교회가 회령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하다
*5.21 대구서문교회 설립
*남장로교 순천선교부 개설
*카나다 장로회 용정 선교부, 회령 선교부 개설
*9.14 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창립(회장:언더우드선교사, 부회장:길선주목사) ?
7개 노회가 평양에서 제1회 합동총회로 회집. 회원 목사52, 장로125, 선교사44 계 221명
*중국 산동성에 박영훈, 박태로, 사병순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하다
*10.15 피어슨 성경학교 설립
*한국주일학교협회조직(주일학교 위원회) (학교 2,054개소, 학생 127,228명)
*혼인연령을 남자 만 17세, 여자 만 15세 이상으로 하다
*재한 중국인교회 설립(장로교)
*총회산하 전 재산을 관장할 수 있는 재단을 조직하기로 하다.
*중국 선통제왕 퇴임
*伊土전쟁
*1.1중화민국정부수립(대통령
손문 취임, 공화제 선포)
*6.28 105인사건-123명 실형 선고
*10.17 제1차 발칸전쟁 발생
*조선 민사령, 형사령 공포
*재판소 조직(삼심삼급제)
1913
*9.7~11서울 소안동교회에서 제2회 예수교장로회 조선총회 개최(총회장:왕길지 목사, 회원 목사 89, 장로 40, 선교사 52 계 181인)
*경복궁에서 주일학교 대회개최(14,700명 참석,사령 언더우드선교사) 미국 주일학교총회에 총대파송하기로 하다.
*9월 장로교총회에서 중국 산동성에 선교사 3명 파송(박태로, 사명순, 김영훈등) 김덕선-봉천 파송
*이화학당에서 한국최초 유치원 개설
*호주장로교 통영선교부, 거창선교부 개설하다
*5.13 샌프란시스코에서 흥사
단 조직
*6.25 제2차 발칸 전젱 발발
*미국 윌슨대통령 취임
(~1921)
*10.10 중국총통에 원세개 취임
1914
*1.7 이화학당 대학과 제1회 졸업식(여학사 3명 배출)
*4.2 YMCA 제1차 대회(9단체)개최 조선기독교청년연합회 조직
*5월 만주선교활동중심인 봉천서 답교회 설립
*동경연합교회 선교사에 주공삼씨 파송하다.
*9.20 조선호텔 준공
*일본, 독일에 선전포고
*파나마 운하 개통
*호남선, 경원선 개통
1914
*월간 중앙기독교청년회보 창간
*재량 남산현교회에서 제3회 예수교장로회 총회 개최(총회장,배유지목사-회원 목사46, 장로46, 선교사46 계 138인)
*서간도에 최봉석, 최성주 목사가 전도하다
*9.7 제3회 총회에서 각노회별 재단법인을 설립하기로 하다
*7.28제1차 세계대전 발발
*일본군 중국의 청도 점령
1915
*9.4~9.9 제4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개최(전주서문밖교회)-총회장,김필수목사, 회원 목사 60, 장로 60, 선교사 50 계 170명
*장로교총회에서 추수감사절 제정(11월3째주일 후 수요일)
*포교규칙을 발표하여 교회를 정치적으로 통제하다.
*서간도교회 53개처 교인 2,739명, 북간도교회 14개처 교인 5,000여명
*미국주일학교대회(일본)에 대표 2명을 파송하기로 하다.
*연희대학교 창립(연희전문, 북장로교 언더우드), 대구고등성경학교 개교
*대구고등성경학교 설립(교장: 안의설)
*대구 남산교회 설립
*일본이 중국에 21개조 요구
서 제출
*박물관 개관
*연희대학교 창립 총독부 사립학교 규칙개정발표
*소록도 문동병원설립
이태리국은 호주에 연합국 불가리아에 선전
1916
*9.2~9.6 평양신학교에서 제5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개최(회장 :양전백, 회원 목사 67, 장로 67, 선교사 50 계 184명)
*10.12 한국최초 선교사 언더우드 목사 미국에서 별세
*12.8 기독신보 창간(장로교, 감리교 기관지)
*남북만주교회 대부흥(한국 이민자 증가)
*12.27 경상노회를 경남(6월), 경북(12월) 노회로 분립
*북평안노회를 북평안, 산서노회로 분립
*광주중앙교회, 재령서부교회 설립
*원불교 창설(박중빈 대표)
*11.5 폴란드 독립 선언
*대구나병원 설립(장로교)
*중국 산동성에 폭동
*여원홍 대통령 됨
*영국-이태리, 독일에 선전
1917
*2.13 산서노회 설립
*3.26 재단법인 기독교 연합회 발족
*총회산하 소학교 544개처 학생 16,742명
*7월 서울시내 주일학교교사 학생대회개최(장춘단 공원)
*9.1~9.6서울승동교회에서 제6회 조선예수교장로교 총회개최(총회장 한석진 목사, 회원 : 목사 76, 장로 76, 선교사 42 계 194명)
*9월 장로교 방효원, 홍승한 목사를 산동성 선교사로 파송하다.
*11.20 함경노회를 함남,함북노회로 분립.
*9.17전라노회를 전남, 전북노회로 분립하다
*웨스트민스터 헌법을 수정하여 채택하다
*북장로회 홍경선교부 개설하다.
*2.3 러시아혁명 발생
*4.6 미국 독일 선전포고
*11.6 러시아 10월 혁명으로
소비에트 정권수립
*세계약소민족 대표회의에
한국대표로 박용만 파견
*수리 조합령 공포
*핀란드 독립
1917
*조선기독교회운동 - 김재호 목사가 예장총회 탈퇴하여 운동 시작하다.
1918
*3.20 장로교신학교 기관지 ‘신학지남’ 창간
*조선기독교회의 분립
*3.26 장로교, 감리교 연합협의회 조직
*3.27 함남노회를 설립하다
*기독교적 애국운동이 국내외에서 치열하게 전개되다(장로회 역사전집-장로교인 총계 13,569명)
*9월 박상순 선교사를 산동성에, 11월 김현찬 선교사를 해참위(시베리아)에, 이지은
한경희, 최봉석, 김강선을 서간도에, 백봉수를 북간도에 파송하다
*8.31~9.5 선천 북교회당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 제7회총회개최(총회장:김선두목사,
회원: 목사67, 장로67, 선교사43 계177명)
*대구 YMCA 창립
*함흥 YMCA 창립
*11.27 평북노회를 평북, 의산노회로 분립, 함남노회조직
*중국 문화혁명
*중국 서세창 대통령 취임
*1.8 미국 윌슨대통령이 민족자결주의 제창하다, 평화 14개원칙 발표
*11.9 독일혁명(공화정치선언)
*유고, 체코 독립하다.
*11.11 제1차 세계대전종식 (독일휴전)
*호주, 헝가리 공화국 선언.
*일본이 조선신궁조영공사 착공
*식산은행 설립.
*대구 이만집 목사 자치선언.
1919
*1.16 찬송가(장로교, 감리교) 연합으로 발간
*3.1 독립운동(기독교 지도자 15명 참여, 교회탄압과 피해를 입다)
*3월 강서교인 학살사건, 서울 십자가 형사건, 곽산교회 학살사건
*4.15소촌교회 방화사건, 정주읍교회 방화사건, 제암리교회 방화학살사건(제암
리 주민 30여명 학살-인근 64개 부락에 방화, 살육을 자행)
*만국 장로교 총회에 한국대표로 임종순, 남궁혁을 파송하기로 함.
*9.23 기독교 초교파 연합 대전도 대회 개최
*10월 장로교 선교사들에게 총회에서 발언권만 주기로 함.
*세계 기도일 제정
*조선기독교연합 공의회 조직하다.
*아편사건은 의사의 처방 외에는 당회에서 치리할 일.
*평북 선천 YMCA 창립
*10.4~9평양신학교에서 조선예수교 장로회 제8회 총회개최-(총회장:마포삼열목사, 회원:목사73, 장로73, 선교사55 계201명중169명 출석) -진흥위원회 조직
*예장에서 주일학계 ‘계간’ 창간
*교회정치문답조례를 치리 지침서 참고서로 정식으로 채택하다
*1.18파리평화회의,국제연맹
결성
*에이레 독립선언
*3.1독립운동의 전국발화로
막대한 피해를 입음.
*고종황제 승하
*독립선언서선포(민족대표33인)
4.10상해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국무총리,대통령 이승만
*중국 5:4운동 발생
*6월 대한애국부인회 결성
*6.28 파리 베르사이유강화조약조인
*독일 신공화국 헌법제정
*8월 시카고 한인교회 설립
*파리평화회의에 김규식 파견
*에스토니아,라트비아독립선언
1920
*4월 7인의 김환란 전도단 창립
*연합 여성경학교 창립(남북 여선교사회, 협성여자 신학교의 전신)
*4.7 개정포교규칙 공포하다
*5월 YMCA 평양, 신의주, 성진 등 지방조직 확대
*3.5 조선일보 창간
*4.1 동아일보 창간
*조선체육회 발족
*8.25 사이또 조선총독 임명
2011년 05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