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목회자 종교인에게도 과세 추진
자율 해결이 최선
연합뉴스(yonhapnews) [조회수 : 874]
국세청이 지난달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가능한가"라고 질의해 오자 재정경제부가 목하 고민에 빠졌다는 소식이다. 목사, 스님, 신부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교인은 물론이고 역술인과 무속인 등 토속 신앙 종사자들에게도 근로소득세를 물릴 수 있느냐가 아연 관심사로 떠오른 것이다. 재경부가 "사실 확인에 시간이 걸린다"며 일단 신중한 자세를 보이면서도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는 굳이 확인해 준 것을 보면 이번에는 해묵은 조세 현안의 하나인 이 문제를 어떤 형식으로든 매듭짓고 넘어가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재경부와 국세청이 전례없이 "초민감 사안"인 종교인 과세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고 밝히기까지는 연초에 출범한 "종교비판자유실현 시민연대(종비련)"라는 시민단체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종비련은 종교계의 각종 폐해가 대부분 돈과 결부돼 있다는 판단 아래 종교계의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 종교인에 대한 과세를 주장해 왔으며 지난주에는 국세청장을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정부 수립 후 60년이 다 되도록 종교인에게 세금을 물리지 않은 것은 직권 남용과 직무 유기라는 논리다. 외국 거의 모두 종교인에게도 세금을 물리는데 우리만 예외라는 게 종비련의 설명이고 보면 그 동안 계속 미루기만 했던 종교인 과세 문제를 이제는 본격적으로 다룰 때도 됐다는 판단에 동의한다.
종교인의 활동은 직업이냐, 아니면 봉사냐는 다툼의 여지가 있어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직업이라면 당연히 세금을 물려야겠지만 종교인의 수입을 봉사 활동에 대한 후원금의 성격으로 봐야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세 당국이 지금까지 쉽사리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나 법의 잣대를 함부로 들이대지 못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그러나 종교인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종교계 내부에서도 커지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천주교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자율적인 결의에 따라 신부님도 세금을 내는 게 대세를 이루고 있고 개신교에서도 아직은 개인 차원이기는 하지만 세금 납부를 지지하는 목사님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계 일각에서는 소득세 열거주의를 내세워 과세가 부당하다며 볼멘소리를 내고 있으나 세법 어디에도 종교인에 대한 세금 감면이나 면제를 규정한 조항은 없다는 종비련의 주장도 마냥 묵살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종비련이 국세청장 고발에 이어 다른 시민단체들과 연대해 서명 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히고 재경부와 국세청도 외국 사례 조사 등 본격 검토에 돌입한 만큼 조만간 결론이 날 것이다. 다만 종교인에 대한 과세는 자칫 종교 탄압으로 비칠 소지가 많은 만큼 행정적이나 법적 측면만 내세울 사안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러니 가능하면 정부가 손대기에 앞서 종교계 내부에서 자율적으로 결론을 내리는 게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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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종교인 과세…예수님이 보여주신 세금에 대한 태도에서 배우라
최희독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니이까 불가하니이까 하니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가라사대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뉘 화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가라사대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눅 20:22~25)
예수께서 세금에 대하여 여기서 취하신 행동은 어떻게 보면 참으로 지혜롭게 시험을 물리치신 장면이기도 하고, 교묘히도 질문을 빠져나가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가이사의 그림이 있는 동전들은 세속에서 쓰이는 것이니 세금으로 바치고, 성전에서 헌금하는 돈은 이스라엘 고유의 것으로 만들어서 바치라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통해서 성전의 환전꾼들은 설 자리를 찾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는 그런 평면적인 내용이 아닙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전에 본인이 올렸던 ‘행함은 믿음의 실상’이라는 글을 참고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피 흘리셔서 구원하시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믿음과 구원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각각의 사람이 모인 한 사회와 세계를 볼 때 그것은 역사이고 정치이며 경제이고 문화입니다. 사람이 피를 흘리고 살을 베일 때에 그 곳에서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헌혈한 피를 돈으로 사고팔려는 사람들, 동족의 아이들을 입양시켜서 장기만 빼내고 돌려보내는 파렴치한 사람들에게는 사람이 돈으로 보입니다. 불쌍한 병자들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크리스천은 사회의 돈이 돌아가는 것을 그리스도의 피로 보아야 합니다. 의식의 전환이고 느낌의 뒤바뀜입니다. 도둑놈 심보에서 청지기 생각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무엇이 청지기의 생각입니까
진정한 청지기에게 돈은 사회를 돌아가게 만들고 세상이 보다 맑고 투명하게 만들 수 있는 그리스도의 힘으로 보여야 합니다.
가이사의 것, 세상의 것으로 나가는 돈은 포기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이사는 가이사로서 할 일이 있습니다. 하물며 우리의 정권은 가이사처럼 남의 나라 권력이 아니라, 민족 공동체의 것입니다.
세금을 내는 것은 국민의 임무임과 동시에 종교인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것은 어떻게 볼 수 있으며 쓰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것은 우리의 마음 판에 새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성화되어감을 통해서 우리는 점점 가이사의 것만 탐하던 사람에서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리게 되면, 이웃을 위하고 형제와 자매에게 봉사하는 모습을 통해서 사회의 혈액을 하나님의 혈액으로 점차 맑혀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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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세금 납부하면 이익도 있다
성직자 과세에 대한 오해, 그리고 그에 대한 답변
이진오
▲ 이진오 기윤실 사무처장 ⓒ뉴스앤조이 신철민
과거 세금은 국가가 국민에 대해 현물이나 재화를 강제적으로 징수하는 것으로 이해됐으나, 현대 국가에서는 국가 운영과 국민 상호간 부조(후생 관점)의 관점에서 비용을 분담하는 개념으로 인지된다. 즉 우리가 내는 세금이 질서유지, 치안?국방, 교육 등의 국가 운영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는 사회 복지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세금을 내지 않는 국민은 국가를 인정하지 않아 기본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반면 세금을 내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인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작은 행동이 된다. 다만 국가가 세금을 바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불신에서 거부하는 것은 사회운동의 한 방편으로 다른 문제이다.
목회자 면세, ‘소득 파악’ 안되는 까닭…면세에 따른 부담은 봉급 생활자들 몫
헌법(제11조)은 “법 앞에 모든 국민이 평등하며, 사회적 특수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되어 있고,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법은 열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는데 면세 조항에 해당되지 않는 모든 소득이 있는 사람은 세금을 내도록 하고 있다. 면세에 해당하는 내용은 동원 훈련을 가서 여비를 받은 식으로 특수한 소득에 대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지, 생활비로서의 소득을 받는 사람 중에 면세로 규정된 직종은 없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성직자들이 소득세를 내지 않은 것은 법적으로 면세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조세당국에서 적극적인 징수 행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직자에 대한 우대의 마음도 있었겠지만, 지금처럼 소득 파악이 잘되는 것도 아니고, 행정력도 부족해 방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도 전문직 종사자나 자영업자들의 소득 파악이 잘되지 않아 유리지갑으로 원천징수 당하는 봉급생활자들이 상대적으로 손해를 보고 있다.
목회자는 성직자로 봉사직이지 직업인(노동자)이 아니기 때문에 소득세를 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있다. 법적으로만 보면 민법 상 직업 분류에서는 성직자를 종교전문가(17310번)로 분류하고 있다. 성직자도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에 민법, 형법적인 사항에 대해 국민으로서 의무와 권리가 존재하기에 직업 분류를 하는 것이다. 또 세법상 소득세는 봉사직이냐, 직업인이냐의 기준에서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명칭과 상관없이 개인이 받는 재정이 생활을 목적으로 하고, 생활비용으로 사용되고 있다면 개인의 소득으로 보고, 과세 대상이 되는 것이다. 목회자들도 가정이 있고 경제활동 한다. 재정을 받지 않고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교회로부터 재정을 받고 봉사하는 것이라면 이 재정은 개인의 소득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며 따라서 소득세를 내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목사만 "성직"?…신학적으로는 모든 직업이 성직
신학적으로도 우리 개신교의 가르침은 목사직을 포함해 하나님 앞에서 불의하지 않은 모든 직업을 하나님께서 청지기로 맡기신 성직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목사직만 성직이고, 그렇기 때문에 봉사직이고, 비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개신교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다. 잘못하면 직업의 성속을 구분하는 오류에 빠지게 된다. 또 같은 성직인 목사직 안에서도 소득의 격차가 존재하는 현실에서 성직에 대한 재정의 차등 지원의 명분이 없어진다.
세금 납부 반대의 논리 중에 하나가 세금을 이미 납부한 성도들이 낸 헌금(기부금)에서 받은 사례비인데 세금을 또 내라는 것은 이중과세라는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기윤실을 포함해 비영리단체(복지, 교육 등의 모든 공익 법인을 의미함)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세금을 낸 시민(성도)들의 기부금에서 월급을 받지만 모두 세금을 낸다. 같은 논리라면 이들도 모두 비과세 대상이어야 한다. 이는 이중과세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 생각이다. 이중과세는 동일한 과세 대상에 대하여 동일한 성격의 조세를 두 번 이상 부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성도)이 소득세를 내는 것과, 개인이 낸 기부금이 모인 재정(헌금, 후원금 등)에서 특정인에게 지불한 재정에서 소득세를 내는 것은 다른 것이다. 소득세는 개인별로 누구나 생활하는 비용의 소득이 발생한 것에 대해 내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물건을 살 때 내는 10% 부가가치세, 교회가 거래를 할 때 내는 거래세 등 모든 종류의 세금을 모두 거부해야 하지 개인 소득세만 반대하는 것은 일관성이 부족하다.
노파심에 짚어두는 것은 비영리 종교법인이 교회의 소득(헌금 등)에 대한 법인 소득세를 주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교회는 다른 비영리 법인(기윤실도 포함)과 마찬가지로 비과세 기구이며, 앞으로도 그러해야 한다.
많은 목사님들이 미자립 된 상황에서 먹고 사는 것도 힘든 목회자들이 얼마나 많은데 세금을 내라고 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한다. 그러나 이 또한 오해이다. 쉽게 말해 일정 소득(4인 가족 기준 월 146만원) 이하는 면세이다. 오히려 보조를 받아야 한다. 또 일정 소득 이상이라고 해도, 개인의 경제생활에 따라 연말 정산을 통해 돌려받기 때문에 실제로 세금을 내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봉 기준 3천만 정도 되는 봉급자라도 대부분 세금을 돌려받고 있다.
세금을 내면 국가 및 교회, 개인에게 다양한 혜택 부여
그러면 이렇게 별 도움도 안 되는데 왜 세금을 내라는 것인가? 세금을 내면 국가적, 개인적, 교회적인 다음과 같은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국가 경제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보면 재정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편중되지 않고 건강한 재정 운영을 위해 필수적 사안이다. 전문직, 자영업자들의 소득이 파악되지 않으면 이 재정은 지하자금이 되고, 재정 규모에 반영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예를 들어 사회복지비용이나 교육비용 등을 더 책정할 수 있는 실제적 경제 규모가 됨에도 재정 파악이 누락된 한도 내에서 예산을 세우게 돼 증액 할 수 없게 되고 이는 고스란히 가난한 사람들과 교육적 혜택을 받아야 할 우리 자녀들에게 돌아오게 된다. 따라서 실제 세금 납부에 기여하지 못하더라도 소득을 신고하는 것은 국가 전체 재정 규모 파악에 도움이 된다.
둘째. 목회자 개인적으로도 소득을 신고하게 되면, 소득에 대한 증명이 이루어져 경제활동(은행 대출, 신용카드 만들기 등)을 원활하게 한다. 소득이 증명되지 않음으로 인해 경제활동에 손해를 보는 경우가 해소되는 것이다. 또 소득세를 내게 되면 4대 보험 가입이 가능해 진다. 물론 국민연금은 안내도 가능하지만, 소득 증명이 됨에 따라 비용 산출 등이 용이해지고, 의료보험은 직장 의료보험으로 전환할 수 있다. 1인 이상 목회자나 교회 직원이 있는 곳에서는 고용 보험을 들 수 있어 노동부 등에서 주는 다양한 해택을 받을 수 있고, 실직 시에는 실업수당도 받을 수 있다. 산재 보험도 가입할 수 있어 만약의 상황이 발생할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셋째, 어떤 분들은 목회자가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면 상응하게 저소득자인 목회자에게는 국가에서 지원을 해줘야하는 것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나 이것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지금도 가능하다. 지금도 동사무소에 가서 소득 상황을 설명하면 상황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눈 체계 속에서 생활비, 교육비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때 소득세를 내지 않으면 소득 상황을 증명하는 것이 쉽지 않다. 소득세를 신고하면 이를 증명하는데 여러 말이 필요 없게 된다. 국가적 지원은 사실 시스템이 없어서가 아니라 목회자들이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기피하는 경우가 더 많다.
넷째, 목회자 세금 문제를 내면, 종비련 등이 주장하는 것처럼 목회자가 탈세자이고, 교회가 치부 집단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게 된다. 아무리 우리 논리로 목회자는 성직자이고, 사회적 기여도가 높고, 교회가 이런 저런 좋은 일을 많이 한다고 주장해도(모두 사실적인 주장임에 틀림없다) 모든 직종의 국민이 예외 없이 내야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소득세를 내지 않고 특권을 주장하면서 불신자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로 인해 선교에도 방해를 받게 된다. 세금을 안내도 되는 권리를 항변하기보다 실제 얼마 되지 않는, (소득이 많아 세금이 많더라도) 국민이라면 당연히 내야하는 세금을 내는 것이 덕을 위해, 선교를 위해 더 간단하고 좋은 방법이다.
다섯째, 목회자는 교회 뿐 아니라 사회 지도자이다. 세금 납부가 국가를 운영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복지를 실천하는 좋은 것으로 국민의무이기에 모든 목회자도 교회에서 설교할 때 세금을 내고 정직하라고 설교할 것이다. 이때 목회자가 세금을 내고 본을 보인다면 그 말에 권위가 더해지고, 자신 있게 성도들을 가르칠 수 있게 되고, 이는 사회 전체를 정직하고 건강하게 만드는데 기여하게 된다. 생활인으로서 세금을 내는 성도들을 목양하는 지도자로서 성도들의 삶의 애환의 중요한 요소인 세금 문제도 함께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가 재정은 세금으로 조달되기 때문에 누군가 낸 세금으로 내가 혜택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지 않으면 누군가 더 내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 유럽 등 해외 대부분의 목회자가 세금을 내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내고 있지 않은 데는 신학적이거나 법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세무 당국의 의지가 결정적 이유이다.
세금 내는 것, 누가 좋아하겠나. 그러나…
세금을 납부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고, 이웃사랑의 실천이라는 것을 알지만 솔직히 필자를 포함해 누구도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세금을 내기는 쉽지 않다. 세무 당국에서 기준을 가지고 직장인은 원천징수하고, 전문직/자영업자도 소득을 파악해 과세하기 때문에 세금을 내게 되는 것이다. 이 말은 세금을 내는 기준과 절차 등이 정확하고, 적절히 안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60년 동안 시행하지 않다보니 세무 공무원조차도 목회자가 과세 대상인지 모르고, 세금을 내려고 하면 왜 내느냐고 반문하는 현실에서 자발적으로 내지 않는다고 탈세자, 치부자로 모는 것은 적절치 않다.
또 목회자는 개별 교회의 목사이지만, 또 노회, 총회의 소속원이고, 개별 교회는 법인인 교단에 소속되어 있어 개별적으로 세금을 납부하는데 고려할 점들이 있다. 교단 내부에서 지침이 정해져야 개별 목회자들이 자유롭게 세금을 납부할 수 있고, 행정적인 부분도 간소화 될 수 있다. 용어도 자영업자, 사업자 등의 기준에서 사용하다 보니, 정서적 거부감도 있다. 조세 당국에서 분명한 원칙을 세우되 당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야 하고, 우리 기독교 내에서도 책임 있는 교단 관계자들이 나서 내부 의견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당국과 대화하고 요구할 것을 요구하며 방향을 이끌어 가야 협력적인 관계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기윤실에서는 조속한 시일에 교회 연합 기구(한목협, 한기총, KNCC 등)와 교단 관계자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갖고, 기독교계 입장을 조율하는 기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
이진오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