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원자탄, (1979년 안용준) - 나환자 고름 빤 기록
그 뒤를 이어 성경 봉독, 고인 양력 보고가 있었고 六﹐二五사변 이후에 남하 했다가 애양원까지도 방문했던 김 흥복 집사의 순교 전후 보고가 있었다. 말하기를 이 성스럽고 오묘한 사실 앞에서 조금도 가감 없이 솔직히 말씀 드리겠읍니다 해 놓고는 애양원을 방문하였을 때에 보고 들은 이야기 애양원을 떠난 후에 애양원과 여수에서 되어졌다고들은 이야기를 아는 대로 상세히 보고를 하였다. 그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인 사람들의 눈물을 짜내는 것이었다. 특히 순교 당하시던 전날 구원 이십 팔일 아침에 사모님께서는 순산 득남 하셨다는 말이라든지﹐ 나환자들은 「자기들을 낳아준 부모들 까지도 내버려 두고 양식이나 대어 주는 처지인데, 손목사님께서는 입으로 우리 종처를 빨아 주시기 까지 해 주셨는데 이제는 누구를 믿고 사느냐 하며 울부짖던 모양의 이야기라든지﹐ 신앙과 사랑으로 맺어진 안 재선 군이 손목사님 순교 후 앞서간, 동인, 동신 군을 대신 해서 맏상제 노릇을 했는데﹐ 시체 앞에서 나를 살려 놓고 아버지께서는 왜 먼저 돌아 가셨습니까? 하고 슬퍼하던 모양에는 실로 산천 초목도 다 슬퍼하는 것 같았답니다 하는 보고에는 일동은 소리를 내어 우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