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고려신학교 송도교사 건축 사진(1954)

나의 애장문헌 56 /고려신학교 송도교사 건축 사진(1954)
2012.04.04 13:48 입력
고려신학교는 한상동 목사가 1946년 9월 20일 ‘돈 없이, 집 없이, 인물 없이’ 시작했고, 일신여학교에서 개교 후 초량교회 유치원, 부산 광복동으로 이전하며 ‘보따리 신학교’라 불리웠다.
한명동 목사는 새 교사 마련을 위해 많은 수고를 했는데, 1954년에 박봉화 장로, 주영문 장로 등의 헌금에 힘입어 송도교지를 새로 구입하고, 선교사들의 주선으로 주한미국군사원조단(AFAK)의 물자 지원과 미국 개혁교회(CRC)의 도움으로 송도교사를 건축함으로써 ‘고려신학교 송도시대’를 열었다.
이 고려신학교 교사 건축을 위해 전국교회의 많은 성도들이 몸으로 직접 봉사했는데, 교단의 지도자들과 박윤선 교장, 전국교회 남녀 성도들과 어린 학생들까지 참여해 가난했던 교단으로서는 상당한 규모의 역사를 이뤘다.
내가 가진 송도교사 건축 사진에는 측량을 하는 미군들, 양복을 입고 벽돌을 나르는 선교사, 몸으로 거친 공사에 참여하는 여성도들, 그리고 어린 고등학생들까지 믿음과 헌신으로 공사에 참여했던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오늘날에 교회나 신학교는 물론 교단에도 이런 헌신을 잘 볼 수 없어 아쉽다.
이 건축이 이루어졌던 1954년은 고려신학교를 중심으로 교회쇄신운동이 강력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 강의실에서는 박윤선 교장이 열변을 토했고, 경건회마다 뜨겁게 기도했다. 전국교회가 고려신학교를 위해 기도했고, 졸업식이면 전국교회 목회자들과 평신도 지도자들이 모여 함께 기뻐했다. 그 때는 신학교와 교회가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이뤘다.
지금은 교회가 많은 ‘은과 금’을 가지고 있고, 또 목회자의 생활도 많이 나아졌는데, ‘그 때 그 시절’의 열정과 헌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려신학교는 개교 당시 ‘보따리 신학교’를 하면서도 강력한 영적인 장수들을 많이 배출했는데, 지금은 더 좋은 건물과 도서관, 더 잘 준비된 교수들 아래에서 얼마나 훌륭한 인재들이 배출되고 있는가 싶다.
신학교는 교회와 성도들의 기도와 헌신으로 자란다. 신학교는 내일의 교회 지도자들을 배출하는 곳으로 교회의 기도와 지원으로 자신을 가꾸어가야 한다.
■ 나삼진 목사 / 총회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