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동 - 신사참배 반대, 해방 후 고신의 역사와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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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동 - 신사참배 반대, 해방 후 고신의 역사와 정체성

한상동 - 신사참배 반대, 해방 후 고신의 역사와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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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미포] 이신철 목사, 지도자 중심의 정치적 분파 경계해야!


2022.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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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사는 고신교회 역사 가운데 한상동과 송상석의 공과를 점검하며, "교회가 너무 인물 중심으로 치우치지 않게 지도자들은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 목사는 "지도자 중심의 분파"에 대해 경고하며, "교회의 정치적 분파가 노골화되어 갈등의 요인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경계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이신철 목사 발제문 전문.



1. 신사참배 반대운동과 한상동

평북의 이기선, 경남의 한상동은 신사참배반대운동은 정치적 항거에 초점을 둔 것이 아니고, 신사참배를 용인하고 독려하던 ‘타협한 교회’로부터 성도들을 불러내어 그 죄에 참여하지 않게 함으로써 성도들을 지키려 함에 초점이 있었다.


주기철은 교회나 노회를 따로 세우는 조직적인 신사참배반대운동보다 각 사람이 자기의 양심대로 행동하도록 일임하는 것을 선호하였다.


주기철과 한상동의 신사참배반대와 관련한 입장의 차이에 대하여 이상규는 주기철은 “신사참배를 반대하였으나 신사참배에 항거하는 반대운동을 또한 반대하였다”5)고 주장하였다. 주기철은 개인이 신사참배에 참여하지 않는 결정을 하면 되지 조직적으로 반대운동을 벌이는 것은 좋다 않다는 입장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상규는 주기철이 “설교에서도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전개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권고한 사실이 없다”6)고 강조하였다.


2. 고려신학교의 설립 및 고신파의 분열과 한상동

주남선과 한상동이 총회 직영이 아닌 고려신학교를 사설로 설립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당시 총회의 직영 신학교는 조선신학교였다.


3. 합동 및 환원과 한상동

양낙흥은 고신의 환원은 환원이라 할 수 없고 재분리라고 주장하였다. 합동으로 승동측과 고신측은 그 실체가 없어졌기 때문에 현재의 합동에서 분리해 나온 현재의 고신은 옛 고신과 아무 상관이 없으며, 정당한 이유없이 분리하기를 일삼는 분리주의자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고 혹평하였다.17)


4. 고신 재건기와 한상동

고신이 환원하여 새로운 도약을 위해 와신상담하고 있던 그때는 한국사회가 산업화와 도시화로 막 경제성장의 가도에 올라 힘차게 달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1963년 일 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에 불과했으나 1975년에는 253달러, 1980년에는 1,579달러로 성장하였다. 합동측은 고신의 환원 후에도 큰 어려움 없이 합동의 유익을 누리면서 경제성장에 따른 사회적 변화에 잘 적응하여 1964년부터 1975년까지 전체 교회 수가 66.0%나 증가하였다.18) 하지만 고신은 도시화와 산업화의 사회적 변동에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하여 같은 시기에 전체 교회수는 22.9%의 성장에 그쳤다.19) 고신은 상대적으로 많은 미조직 상태의 교회들을 돌보기에 바빠 교회개척을 통한 새로운 도시와 지역으로의 확산이 느렸다.





(원문2 보기)-회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