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 명향식 부흥사 - 무척산기도원, 성령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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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배
매일 아침 5시 30분, 저녁 7시 30분(일 2회)
집회
1. 신년집회 - 신정연휴
2. 구정집회 - 설날연휴
3. 정기 대부흥회 - 8월 첫째주 월요일부터 3-4일간
4. 추석집회 - 추석연휴
초임 선교사 세계에서만큼 문화충돌이란 말을 많이 쓰는 경우도 드물 것이다.
그만큼 선교지와 선교사, 선교사와 현지인, 선교사와 현지의 사회 문화의
갭으로 상처받고 상처주며, 실수와 충돌 같은게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나 놓고 보니 나야말로 처음 신앙생활 할때 겪은 문화충돌의
당사자이며 희생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해 마다 각 교회에서 전도운동을 부지런히 하고 그에 따른 상장과 선물도 있다.
그래서 바깥에서 볼 때 교회안에 들어만 가면 초 신자에 대한 정성이 극진할 것으로
예상해서 선입관을 갖기 쉽지만 막상 와보라!
그 흔한 웃음, 과잉 친절까지도 과거지사라는 걸 얼마 안 있어서 알게 되리라.
아니 도리어 교회안에서 초신자와 기성교인과의 관계 설정으로, 괴리를 느끼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닌 줄 안다.
교회 안에서도 카르텔이 형성된 기존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지!
신학교에서도 우리 같은 불신자 농부의 딸 같은 것은 별 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래서 고신대학원에 입학 퇴짜를 받은 이후 난 무척산 기도원에 있는 굴속에서
하나님께 막 항의를 해댔다.
"하나님, 전 도무지 하나님이 이해가 안갑니다.. 초신자를 이렇게 관리하면서도
왜 교회에서 전도, 전도하라고 지시하는지요?
지금 제가 전도 받아서 이곳에 왔지만 보시다시피 우리 같은 사람이 설 자리는
없쟎아요?!
제발 주님, 제2의 김자선이를 만들지 마시죠 네?"라며 하나님께 막 대어든 적이
있을만큼 나를 주님께 인도하신 명선생님 소천이후 나는 교회사회에서 미운
오리알 신세가 되었다.
예수님을 갓 영접한 이후 나의 선생님, 명향식 무척산 기도원 초대원장님의
적극적인 지도로 신학교에 들어가면서 맞이한 문화충돌은 내편에서 볼때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앎이나 철학세계 같은게 너무나 황당하게 보이기도 했지만 , 기성교인들이
볼때의 내 학교에서 단체생활 등 모든 모습은 훕사 좀 모자라는 Old miss student
라는 기분을 많이 준 걸로 안다.
적어도 몇 교수와 활동께나 하는 학생들이 나에게 던진 인상은 그 이상의 연민을
갖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나의 부적응을 이야기 하면 우리 명선생님께선 "그래,
조금만 참아라! 지금 화란에서 공부하는 보민(이보민 철학박사)이가 오면 학교
생활이 한결 수월할꺼다! 그 사람은 사람을 알아볼 줄 알거든! 하시면서 사도
바울의 오랜 감옥 생활과 비교하시는 바람에 내 스스로 무안해서 얼른 말을
바꾸려면 고맙다면서 그렇게 좋아 하실수가 없었던 그 선생님은 그때만이 아니고
필리핀의 한 골짜기인 내 사역지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니, 우리 주님처럼
영원한 선생님이란 걸 문득 문득 느낀다.
수시로 내 영혼은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해주시고 기대해 주셨던 우리
명선생님을 찾고 또 찾는다.
너무 빨리 돌아 가셨다고 중얼거리면서...
#필리핀 김자선 선교사님의 글입니다.#
명 선생님, 나의 인생 전체를 뒤 흔들으신 나의 스승 명 선생님!
그분을 만나면서부터 닫아 두었던 내 인생의 빗장을 열게 되었다..
아니 그분과의 대화를 하는 무척산 기도원 천지 못의 바람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바람의 맛을 느낀다 그 때 나는 자신이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평화를 느낄 수가 있었고
내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힘과 자신감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때까지 살아오면서 꼭꼭 닫아두었던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는 걸 그 자리에서 경험했다.
명 선생님이야 말로 우리한국 초대 기독교에 우뚝 솟은 영적 거목이다.
그는 평생을 예수를 위해 한때는 조국의 광복위해 평생 선비다운 전도자로의 자세를
시종유지 하셨다.
그는 나라의 격동기를 만난이후부터 근대에 이르는 한국초재 기독교에서 차지하는
영적운동력을 그분 이름을 빼고 나면 사실상 설명이 되어지지 않을 만큼 교계의 정통적
위치에서 적게는 수많은 개인을 말씀과 그분의 인격으로 변화를 일으키게 했다.
금번에 교단의 직전 총회장님이신 박 종수 목사님을 전국여전도회에서 잠깐 만났을 때
내 인생의 스승이신 명 향식 선생님의 이야기가 각자 나왔다.
명 선생님의 별세 얼마 전 봄 집회 때 무척산 부흥회를 인도하게 된 경위 설명은 그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내용은, 옛날 박 목사님 자신의 진로문제로 무척산 기도원에서 며칠간 묵게 되면서 만난
영적거장이신 명 향식 원장님의 이야기이다.
당시 박 목사님의 문제는 자기에게 주의 종으로 사명이 있느냐 없느냐를 확인한 뒤 신학교
혹은 사업계획을 펼쳐야하는 절대절명의 심정으로 산에 올라간 내력에 대해 의논을 했더니
별 말씀을 않고 듣고만 계시던 그분은 " 앞으로 목사가 되어서 다시 무척산 기도원에 올라와서
부흥회 한번 인도해 주시오"라고 하셨다고 한다.
마침 그분이 돌아가시기 몇 달 전에 편지를 나에게 보냈는데 그 내용은 봄 집회 인도를 부탁
하면서 그 옛날 자신의 진로문제로 방황해 있을 때 던지신 말씀을 편지로 상기시켜서 그곳에
다시 가게 된 셈이라며 그분의 영적 통찰력에 혀를 휘두르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모두 다시 한번 더 놀라기도 했다.
사실 갓 주님을 영접한 그 당시의 내 언행은 불신자를 방불케 했음에도 그 속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
그것이 자라서 맺을 열매를 미리 보시며 아무도 인정, 사랑해 주시지 않는 나를 끝까지 신뢰해
주시고 사랑해 주신 그 어른의 신앙 인격에 녹아서 신학교를 가게 되었고 도중 하차 하는
고비가운데서도 주님과의 첫 사랑을 계속 품도록 새기신 분은 다름 아닌 명 선생님을 통한
성령님의 역사셨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것은 우리 명 선생님이 한국교계의 부흥운동에 끼친 영향이 지대한데
비해 너무 알려져 있지를 않고 역사적 자료 역시 너무 미미하다는 점에서 무척 아쉽게 느껴진다.
아마도 그분이 남자도 목사가 아니어서 그렇지 않을까도 싶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수선대후
라고 선대의 뜻을 지켜 후대에서 키워야 할 무척산 기도세계를 아는 우리들의 책임이 아닐까도
싶다.
그분은 무척산 기도원에서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을 힘껏 돌려드린 후 가셨지만 그걸 더욱
발전 계승 시켜야 할 책임이 오늘 우리에게 있건마는 ... 선생님 죄송합니다.!!!
#필리핀 김자선 선교사님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