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유대교와 화해
[교황 중동순방]가톨릭-유대교 "화해의 다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역사적인 중동 성지 순방에는 무엇보다 종교적인 의미가 크다.
방문지 선정과 교황의 일거수일투족을 둘러싸고 갖가지 정치적 해석들이 난무하고 있지만, 가톨릭과 유태교의 화해 등 종교적인 의도가 가장 크다는 것이다. 교황 개인의 성지순례이기도 하지만, 세계 10억 신도를 이끄는 수장으로서 종교간 화해를 위해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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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이스라엘 등 중동 성지를 방문중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일(현지 시각) 요르단의 네보산 성당에서 기도하고 있다. 이곳은 광야를 헤매던 모세가 처음으로 ‘약속의 땅’을 보았던 곳으로 알려져있다./네보산(요르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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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이번 방문은 재임 22년간 펼쳐온 유태교와 화해 노력이 정점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황은 지난 93년 이스라엘과 외교를 정상화한 데에 이어, 지난 12일에는 가톨릭의 유태교 박해를 공식 사과하는 등 두 종교의 화해를 위해 심혈을 기울여왔다.
가톨릭은 유태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는 이유로 2000년 가까이 유태인들을 박해해왔다. 또 바티칸은 전통적으로 유태인들을 국가 없는 민족이라고 보고, 외교관계 수립을 거부해왔던 것이다. 지난 64년 교황 요한 바오로 6세가 교황으로는 처음으로 이스라엘을 방문했지만, 단 하루만 머물렀다. 당시 바티칸과 이스라엘은 외교 관계도 수립되지 않은 상태인데다 관계 마저 냉랭하기 그지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 교황은 이스라엘을 방문하면서도 공식 입국절차를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전임자들과 달리, 순방 중 홀로코스트 기념관까지 방문해 유태인들의 한을 어루만져줄 예정이다. 이스라엘 현지 반응도 한달 전에 비해 크게 달라졌다고 현지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처음에는 교황 방문을 비중있는 성직자의 성지 순례 정도로만 여겼는데 최근에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예루살렘 포스트가 보도했다. 이스라엘 언론들도 “교황이 가톨릭과 유태교의 역사적 관계를 새로 시작하고 있다”며 긍정적으로 보도하기 시작했다.
교황은 이슬람교 3대 성지 중 하나인 하람 알ㆍ샤리프도 방문하는 등 요르단과 팔레스타인 지역도 둘러보면서 종교간 화해를 역설할 계획이다. 가톨릭과 유태교간의, 유태교와 이슬람교와의 화해를 함께 도모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주일간 계속되는 빠듯한 일정을 두고 교황의 건강을 염려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80세라는 고령에다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교황에게 이번 일정은 무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바티칸이 교황에게 무리한 일정을 강요, 「안락사」시키려 한다”는 거친 비난까지 나오고 있다. 교황은 지난 19일 순방에 앞서 바티칸 베드로 광장에서 열린 미사때 이마에 상처를 입고 나타나 이런 우려를 더했다. 주위의 부축을 받아야 걸을 수 있는 교황이 무슨 이유인지 넘어지면서 상처를 입은 것 같다고 외신들은 보도했다. 이런 우려 때문에 교황의 순방 내내 주치의인 레나토 부조네티가 동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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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교황참회 환영하지만 미흡"
이스라엘 수석 랍비(유태교 율법학자)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과거 참회에 대해 일단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그러나 그는 교황이 홀로코스트(유태인 대학살)에 대해 구체적으로 사과했어야 마땅하다며 유감을 표시했다.
수석 랍비인 이스라엘 라우는 12일 교황의 참회에 대한 성명을 발표, “교황이 유태인 박해에 대해 사죄한 것을 환영한다”며 “교황의 이런 태도는 그가 전임자들과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밝혔다.
라우는 그러나 “교황이 홀로코스트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은 데 깊은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1492년의 이단자 박해에 대해 언급하면서도 1942년 베를린에서 나치가 유태인 말살을 결정한 데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유태인들이 교황청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 첫째는 교황청이 홀로코스트가 벌어지는 동안 이에 대해 눈감아 버렸고, 둘째로 가톨릭의 해묵은 반유태인 감정이 나치의 유태인 학살 정책에 근거를 마련해줬다는 주장이다. 유태인들은 교황이 조국 폴란드에서 나치 만행을 목격하고도 이를 언급하지 않은데 섭섭해하고 있다.
유태인들은 다음 주 교황의 이스라엘 순례에 기대를 걸고 있다. 교황이 유태인 수용소 방문 중 홀로코스트에 대해 사과하지 않겠느냐는 희망이다. 라우 역시 “교황이 유태인 학살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스라엘 방문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4년 바티칸과 이스라엘의 관계 정상화 협상을 벌였던 한 관계자도 “교황이 오래 전부터 유태인 학살에 대한 가톨릭의 책임을 강조했다”며 이스라엘 방문에 기대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