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고신 50년과 대학교육 - 고신 50년을 말한다 (6) [고신]
분류: 교단- 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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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 50년과 대학교육 /이환봉 교수
고신 50년 역사에 있어 고신대학교는 교단의 꿈과 이상이었던 동시에 갈등과 대립의 장이었
다. 아직도 학교의 역사와 이념에 대한 이해 그리고 학교의 운영체계에 대한 견해의 차이
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교단 역사의 지나간 반세기를 뒤로하고 새로운 반세기를 바
라보는 현 시점에서 이제는 우리 모두가 겸허하게 지난날을 반성하고 다시 하나 되어서 함
께 학교 초기의 설립정신과 교육이념을 새롭게 구현해 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교회대학’으로서 고신대학교는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이 추구한 정통개혁신학운동의 문화
적 또는 교육적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그러한 문화적 이상에 대한 신학적 체계
화와 대학교육에 대한 교단적 합의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지 못하였다. 따라서 교단과 학
교 안에 대학교육에 대한 회의의 목소리가 늘 있어왔고, 유감스럽게도 신학교육과 대학교
육 사이에 종종 갈등과 대립의 모습이 노출되어 왔다.
특히 대학교육은 외형적으로는 발전을 거듭해왔으나 일련의 사건들로 정서적으로는 교단으
로부터 점차 소원되어 가는 안타까운 현실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한 차제에 신학대학원이
고려신학교의 정체성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고려신학대학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신학교육과 대학교육의 이원적 분리를 공식화하였고, 상대적으로 학부의 대학교육은 고려신
학교의 교육적 전통과는 무관하다는 인식이 점차 확산되어 왔다. 심지어 교단교회는 고려신
학교의 전통을 이은 신학교육만을 책임져야하고, 이제 대학교육은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듣기도 한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우리는 종종 다음과 같은 의도적인 질문을 듣게 된다.
고려신학교와 고신대학교 사이에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그러나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은 개혁주의 교회건설을 위한 ‘신학교육’뿐 아니라 개혁주의
세계건설을 위한 ‘대학교육’에 대해서도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학교를 설립하였다. 최근
에 학교의 중요한 역사적 문서인 ‘고려신학교 설립 취지서(1946)’(한상동 목사 : 그의 생
애와 신앙, p.311)가 공개되었다. 그 취지서에서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은 칼빈의 신학에 기
초한 “개혁교 신학”(改革敎 神學)이 고려신학교의 신학노선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그
러한 “정통신학운동”에 의한 교회건설, 국가건설, 문화건설의 웅대한 개혁주의적 이상을
품고 고려신학교를 설립한다고 하였다. 이 설립취지서가 고려신학교를 개교하기 직전에 진
해에서의 하기신학강좌 기간 중(“주후 1946년 盛夏 起”)에 발표된 것을 보아 이러한 이상
은 한상동 목사의 신앙적 구상과 박윤선 박사의 개혁주의 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
다.
‘고려신학교 설립 취지서’제1항에서는 정통신학운동을 통하여 일제치하의 “불시험” 즉
신사참배로 변질된 한국교회를 개혁해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을 최우선적으로 천명하였다.
그리고 제2항에서는 정통신학운동을 통하여 해방 직후의 기독교적 국가건설에 협력해야 한
다는 비전을 표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제3항에서는 정통신학운동에 기초한 “참된 문화운
동”의 근원지로서 “교회대학”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였다. 교회가 설립한 교회의
대학에서 성경에 기초한 연구와 교육을 통해 참된 문화를 건설해야 한다는 개혁주의 문화
적 이상을 제시한 것이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고신교단의 대학교육의 효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고신대학교의 시작을 단순히 ‘칼빈학원’과만 연결시킴으로써 고신대학교의
대학교육이 고려신학교의 교육적 전통과는 사실상 무관한 것으로 보려는 의도가 있다. 그러
나
고려신학교의 예과(豫科)를 고신대학교 대학교육의 효시로 보아야 한다.
고려신학교 설립 취지서 제3항의 “교회대학”에 대한 설립자들의 비전은 고려신학교의 대
학교육 과정인 예과 2년과정(1946)에서 시작하여 예과 4년과정(1954)을 거쳐서 마침내 칼빈
학원(1955)으로 구체화되었다. 고려신학교 교수회의 결정으로 정통신학운동의 문화적 이상
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고려신학교 예과를 확대 개편하여 칼빈학원(대학)을 설립한
것이다.
그러나 그 후 칼빈학원의 독자적 운영이 어렵게 되자 1964년 3월에 고려신학교의 예과(대학
부)를 다시 부활시켜 칼빈학원을 흡수 운영함으로 대학교육의 전통을 계속 이어 가기로 하
였다. 그리고 1964년 9월 고려신학교를 고신교단 총회직영학교로 결정하였을 때에도 고려신
학교의 본과뿐 아니라 예과(대학부)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것은 고려신학교 교수회가 학교
설립 취지와 개혁주의 이상을 따라 대학교육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교육의지를 거듭 분
명히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70년 12월에 고려신학교를 정규대학으로 인가를 받은‘고려신학대학’안에서 고려신학교
의 예과는 1971년에 대학부 과정으로, 고려신학교의 본과는 1981년에 대학원 과정으로 각
각 제 자리하게 되었다. 이로서 고려신학교 설립 초기의 신학교육(본과)과 대학교육(예과)
의 단일 교육체제를 이제는 정규대학으로서 고려신학대학 체제 안에서 이상적으로 실현할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고려신학교의 설립자들과 교수회가 대
학교육의 과정에 그토록 깊은 관심을 기울였던가?
첫째는 “교회대학”에서의 성경적 인문교양교육을 통하여 수준 높은 신학교육을 뒷받침함
으로써 신학의 발전과 교회의 유능한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칼빈이 ‘제네바 아카
데미’를 설립하였을 때 목사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에 있어 성경에 기초한 인문교양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것처럼, 교려신학교 교수들도 훌륭한 신학교육을 위한 대학교육의 중
요성을 올바로 인식하고 있었다.
둘째는 “교회대학”에서의 성경적인 학문연구와 대학교육을 통하여 참된 문화운동을 전개
할 수 있는 폭넓은 기독교 인재들을 양성하기 위함이었다. 칼빈이 제네바 아카데미에서 교
회의 목회자뿐만 아니라 시민의 지도자를 양성하려고 하였던 것처럼, 고려신학교 설립자들
도 개혁신학의 문화적 이상을 따라 대학교육을 통하여 언약의 자녀들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
한 유능한 지도자로 양성하려고 하였다. 이러한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의 두 가지 교육적 이
상이 대학부와 대학원으로 이루어진 한 대학체제 안에서 각자의 정당성을 가지고 상호 유기
적 연관성 속에서 발전될 수 있는 훌륭한 교육적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어떤 분들
은 신학교육을 대학교육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것만이 고려신학교의 설립정신과 정체성을 회
복하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고려신학교의 설립정신을 구현하는 길은 신학교육과 대학교육의 연계성을 재확립하는 것에
있다.
학교는 1980년에 ‘고신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면서 신학교육을 위해 신학대학원을 인가
받고, 대학교육을 위해 일반학과를 증설하는 역사적 전환기를 맞이하였다. 이미 고려신학대
학이라는 교명을 사용했을 때에도 신학과 외에 교육 및 문화 선교를 목적으로 기독교 교육
학과와 종교 음악과를 설치하였듯이, 이제는 고려신학대학의 약칭인 고신대학이라는 교명
을 사용하면서 의료선교를 목적으로 의예과를 설립하였다. 분명히 기억할 것은 그러한 변
화 속에서도 결코 학교의 교육목적 또는 교육이념을 변경한 바는 없었다.
그러나 학교는 그러한 새로운 변화를 긍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교단적 이해와 합의를 도
출하기 위해 새로운 학과 증설의 취지를 설립정신에 근거하여 교회 앞에 구체적으로 설명하
지 못하였다. 특히 학교의 기독교 종합대학을 향한 원대한 비전을 교단교회를 향해서는 물
론 대학 구성원들에게조차 충분히 인식시키지 못함으로써 학교와 교단 안의 갈등과 혼란은
더하여져 갔다. 그러한 와중에 학교 정체성의 위기로 부각되었던 일련의 과격한 학내 사태
들로 교단교회의 대학교육에 대한 회의는 더욱 깊어지고, 신학대학원은 고신대학에로의 교
명 변경을 교육목적의 변질로 간주하여 대학으로부터의 분리를 추진함으로 대학교육은 점
차 교단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대학교육의 그러한 위기들은 학교 운영의 위기로는 볼 수 있으나, 교육목적의 변질
에 의한 학교 정체성의 위기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하자면 교단과 설립자들이 신학교
육뿐 아니라 대학교육도 수행하려고 했던 개혁신학의 문화적 이상과 교육적 의지가 처음부
터 본질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에, 또는 대학의 교육목적과 교육내용이 변질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혼란과 위기가 초래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물론 학교운영과 학생지도의 책임을
학교와 교수들이 면할 수는 없다. 그러나 국가와 대학 사회의 격동하는 시대적 변화에 모두
가 한 마음으로 적극 대응하여 그러한 위기를 설립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삼
지 못한 학교 안팎의 지도력에도 책임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양 교육 사이에 서로의 연약을 세워주는 상호봉사의 유대관계를 새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다툼과 분리의 모습을 보여 온 것이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 까지 우리 교단이 정말 한 뜻으로 한 마음이 되어 설립자들이 꿈꾸었던 기독교
대학의 이상을 바로 이해하고 실현하기 위해 함께 매진해 본적이 과연 있었던가 스스로 자
성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고신신학은 정통 개혁주의 신학이다. 개혁주의는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포함하는 전포괄적
인 삶의 체계이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와 세상, 복음과 문화, 신앙과 생활을 분리하여 생각
하는 이원적 사상구조를 배격하고 항상 모든 것을 한 분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 안에 두어
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개혁주의 신학과 사상을 따라 박윤선 박사를 중심한 고려신학
교 교수회는 미국 근본주의 신학이 복음과 문화를 이원적으로 분리하는 도피적인 반문화주
의로 흐른 나머지 주변사회와 문화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던 것을 정확히 간파할 수
있는 분명한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개혁주의 교회건설”을 위한 훌륭
한 목회자 양성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에만 관심하지 않고, 동시에 “개혁주의 세계건설”을
위한 유능한 기독교 인재들을 양성하는 대학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처럼
고신대학교의 대학교육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는 하나님의 나
라 곧 개혁주의 세계를 건설하고자 하는 개혁신학의 이상과 열망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학교 설립자들의 설립정신에 비추어 고신대학교 50년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뼈아픈
반성을 하게 되는 것은 학교설립 초기부터 그토록 원대한 개혁주의의 교육적 이상과 이념
을 유산으로 물려받고서도 그러한 교육이념의 구체적 적용과 철저한 시행에 있어 우리는 너
무도 안일하였고 또한 계속되는 내부적 갈등과 대립으로 상호 협력을 통한 학교발전의 기회
를 안타깝게도 놓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대학교육의 장래를 항상 염려해 왔으나
1980년대에 거듭되었던 혼란과 대립 속에서도 대학은 설립정신을 구현하기 위한 계속적인
노력을 경주해왔었다.
1994년부터는 대학의 신입생 지원을 학습교인 이상으로 한정하여 이제는 교직원과 학생 모
두가 기독교신자들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신앙과 학문의 공동체로서 기독교대학의 기본 요건
을 확립하였다. 그동안의 잘못된 학사 분리 운영으로 정부의 감사를 받아야 했고 여전히 여
기 저기 많은 문제들을 안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날 한국에서 고신대학교처럼 하나님의 나
라와 교회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가지고 진정한 기독교대학의 실현을 위해 구체적인 노력
을 계속 경주하고 있는 대학은 매우 드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 학교의 대학교육과
신학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신학교수들이 함께 모여 밤을 지새우는 토론 끝에 이제는 하나
되어서 양 교육을 조화있게 효율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 서로 뜻을 모으기로 하고 구체적
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금번 총회 이전에 교회 앞에 학교가 스스로 바람직한 해결책을 제시
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교단설립 50년을 맞이하면서 고려신학교 설립자들이 우리에게 물려준 이 아름다운 교육적
유산과 전통을 따라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을 새롭게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새로운 반세기
를 다같이 힘있게 열어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환봉 교수(고신대학교 신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