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총신대 신학 석사 학위논문 - 김종은목사님
+ 1
1-김종은.hwp (157.5K)
牧會學 碩士 學位 請求論文
指 導 敎 授 劉 載 元
小그룹 運動으로서 弟子訓練이
敎會成長에 미치는 影響에 관한 硏究
總 神 大 學 校 牧 會 大 學 院
牧 會 神 學 專 攻
金 鍾 銀
小그룹 運動으로서 弟子訓練이
敎會成長에 미치는 影響에 관한 硏究
指導敎授 劉 載 元
이 論文을 牧會學 碩士學位 請求論文으로 提出함.
2002年 1月 10日
總神大學校 牧會大學院
牧會神學 專攻
金 鍾 銀
金鍾銀의 牧會學 碩士學位 請求論文을 認准함.
指導敎授 印
指導敎授 印
指導敎授 印
2002年 1 月 10 日
總神大學校 牧會大學院
目 次
序 論
第 1 節 問題의 提起………………………………… 3
第 2 節 硏究의 目的…………………………………10
第 3 節 硏究 方法과 範圍 …………………………13
本 論
第 1 章 弟子訓練의 一般的 考察
第 1 節 弟子訓練의 定義 ……………………………14
第 2 節 弟子訓練의 當爲性 …………………………18
第 3 節 弟子訓練의 目標와 必要性 …………………20
第 2 章 弟子訓練의 聖經的 考察
第 1 節 舊約에서의 弟子訓練 ……………………26
第 2 節 四福音書에서의 弟子訓練 ………………36
第 3 節 使徒들의 弟子訓練 ………………………43
第 3 章 弟子訓練의 理論과 實際
第 1 節 弟子訓練의 理論 …………………………46
第 2 節 弟子訓練의 目的 …………………………64
第 3 節 弟子訓練의 實際 …………………………68
第 4 章 弟子訓練과 敎會成長
第 1 節 弟子訓練이 敎會成長에 미치는 影響 …74
第 2 節 敎會成長을 爲한 弟子訓練 ……………76
第 3 節 弟子訓練의 注意할 점 …………………82
結 論 …………………………………………………90
參考文獻 …………………………………………………99
序 論
第 1 節 問題의 提起
敎會의 成長은 人間의 要求이기 以前에 主님의 要求이다. 敎會는 예수를 救主로 믿는 사람들의 信仰告白을 바탕으로 한 信仰 共同體요(마 16:16),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엡 4:12) 머리되신 그리스도를 中心 하여 肢體인 聖徒들이 모여 한 몸을 이룬 有機的 共同體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敎會는 살아 있는 有機體이기 때문에 成長하고 成熟하는 것이 正常的이다. 그러나 21세기를 始作하는 韓國 敎會 昨今의 現實은 停滯의 段階를 넘어 減少하고 있는 實情이다. 日本에서 일하고 있던 어느 宣敎師는 오래 前부터 韓國 敎會 復興을 일컬어 現代 宣敎史上 偉大한 드라마의 하나라고 불렀다. 알렌(Allen, Horace N. 1858∼1932)과 언더우드(Underwood, Horace G. 1859∼1916) 두 宣敎師가 1884年에 韓國에서 宣敎를 始作한 以來 첫 改心者를 얻은 것이 2年 後인 1886年이었다. 그로부터 거의 일 세기가 지난 1983年에는 한 해 동안에 약 60萬 名의 信者가 增加하였다. 어느 統計에 의하면 우리 나라 敎會는 每年 13-15%의 成長率을 보여왔는데, 이는 人口 增加率인 2%보다 600-700% 앞서는 것이다. 지난 70年代 中盤부터 年間 4,000여 개의 敎會가 생겨나서 하루 10개꼴로 새 敎會가 誕生하는 놀라운 復興을 가져왔다. 宣敎 100週年을 前後하여 우리는 4千萬 가운데 4분의 1이 基督敎 信者라는 말을 躊躇하지 않고 할 수 있을 만큼 驚異的인 復興을 이룩한 것이 事實이다.
또 韓國갤럽이 84年과 89年, 97年 세 차례에 걸쳐 韓國人의 宗敎 實態調査를 한 結果 宣敎 100年의 改新敎가 數 百年 동안 土俗 宗敎化된 佛敎를 追越하여 우리 나라 만 18歲 以上의 成人 가운데 宗敎를 가진 사람 1千4百93萬여名 中 基督敎人이 20.3%를 차지하여 佛敎 18.3% 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수십 年 동안 量的 成長에만 매달렸던 韓國 敎會가 듣기 좋은 樂觀論을 펴고 앉아 있기에는 그 형편이 매우 심각한데 그 問題가 있다. 이미 韓國 敎會는 하나님의 놀라운 恩惠 가운데 宣敎 100年만에 世界 敎會 歷史上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前無後無한 成長을 이루었고, 받는 敎會에서 주는 敎會로 수천 名의 宣敎師를 派送 하는 底力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敎會의 外的인 高度 成長에도 不拘하고 敎會를 向한 社會의 視覺은 더욱더 차가와 지고 있음은 否認할 수 없는 事實이다. 또한 오늘의 時點에서는 오히려 敎人 數가 減少하고 있는 實情이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97年 11月 國民日報 附設 敎會成長 硏究所가 발표한 敎會成長 내용을 보면 韓國 敎會가 1960-70年에는 연평균 增加率이 41.2%에 달했으나 1970-80年에는 12.5%, 1980-90年代에는 年 4.4%로 되었으며, 1991年부터는 成長 自體가 鈍化되었다. 그리고 1990-95年 사이에 敎人 數의 增加率은 오순절 敎團인 기하성이 0.5%, 예장 통합이 0.45%, 감리교 0.4%, 예장 합동이 0.06%에 不過하였다는 것이다.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대로 敎會 統計의 거품 現象을 고려하면 이 成長 數値는 成長이 아니라 減少를 나타내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正確할 것이다. 驚異로운 成長에 대해 國際的으로 注目을 받던 韓國敎會가 피터 와그너(C. P. Wagner)의 豫測과는 달리 1990年대에 들어와서 成長이 限界에 이른 것으로 드러났다. 전호진 博士는 "1980年대에 하루 6개의 새 敎會가 등장한다고 자랑하였는데, 이제는 오히려 하루에 6개씩 門을 닫을 지경"이라고 했다. 그것은 이 期間동안 대부분의 敎會(牧會者)가 하나님은 한 靈魂을 天下보다 貴하게 여기시는 분이심과 진정한 復興은 한 靈魂의 價値를 바로 認識하는 데서부터 始作되어야 하는데도 不拘하고 韓國敎會 100주년의 基督敎 歷史 過程에서 飛躍的인 成長으로 世界의 耳目을 끌고 있지만, 敎會의 指導者들이 復興 혹은 成長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量的 槪念으로만 解釋하여 "얼마나 모이는가?," "얼마나 크게 지었는가?," "獻金이 얼마나 나오는가?"가 偶像처럼 여겨져 왔다. 數的인 目標 達成을 위해서라면 敎會 指導者들이 牧會 倫理마저 예사로 破棄하는가 하면, 世上的인 마케팅 戰略을 批判 없이 받아들이고, 어떤 경우에는 巫俗的인 要素마저도 導入하는 靈的인 混亂을 自招해 왔다. 물론 復興은 量과 質을 다 包含하는 것이라고 聖經은 가르치고 있다. 어느 한편으로 치우쳐서 均衡을 잃는 것은 진정한 復興이 아니다. 그러나 敎會의 크기만을 앞세우는 눈을 가지게 되면 自然히 牧會를 "成功"이라고 하는 좁은 랜즈를 통해서 볼 수밖에 없게 되고 흔히 成功的인 牧會라고 評價받는 5퍼센트 未滿의 대형 敎會만을 理想的인 敎會로 보게 되는데, 이 점에 대해서 빌 헐(Bill Hull)은 殘忍할 정도로 批判하고 있다.
"매우 才能 있고 創造的이며 企業家的인 牧師들이 上位 5퍼센트를 獨占하고 있다. 그들은 매우 有能하며 하나님은 그들을 大衆 使役에 크게 使用하시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推究하는 모델로서, 그들은 유익보다 더 많은 害를 끼치고 있다. 大部分의 牧師들은 그들이 上位 5퍼센트에 대해 듣거나 보지 않았다면 더 나은 使役을 하였을 것이다. 上位 5퍼센트는 보통의 牧師들에게 非現實的이며 到達할 수 없는, 그리고 그의 使役을 威脅하는 罪責感만을 주는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上位 5퍼센트처럼 되어야 한다는 負擔이 많은 牧師들을 망치고 있다."라고 말이다.
듣기에 매우 거북한 酷評이지만 虛數의 偶像 앞에 절하기를 躊躇하지 않는 指導者들이 삼켜야 할 쓴 藥으로 받아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敎理的인 混亂과 權威主義, 物質主義, 반지성주의 등과 하나님의 말씀이 缺如된 恩賜主義, 物量主義와 祈福信仰, 基督敎的 샤머니즘, 世俗主義와 企業化 등으로 因하여 알맹이 없는 쭉정이와 같은 信者를 만들어 敎會 밖으로 보내온 面이 없지 않다. 이로 말미암은 問題는 실로 深刻한 지경이다.
여기에 대해 옥한흠 牧師는 말하기를
"社會 各 分野마다 敎會를 다니는 사람들은 많은데 비해 그 影響力은 微微한 것을 보게 되는데, 한때는 國家의 最高 統帥權 者로부터 始作하여 行政府의 要職과 財界 敎育界 등 여기저기에 그리스도人들이 끼여 있지 않은 데가 거의 없었다. 모 新聞 記事에 의하면 93-97年까지 長·次官으로 臨命된 人士들 中에서 基督敎 信者의 比率이 67.8퍼센트에 이를 정도로 대단했다. 그럼에도 不拘하고 이 社會는 精神的으로 道德的으로 심지어 市民 秩序에 이르기까지 漸漸 惡化 一路를 걷고 있다. 안타깝게도 큼직한 스켄들에는 長老나 執事라는 職銜을 가진 人士들이 자주 擧論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韓國 敎會가 社會에서 제 구실을 잘 못하고 있다는 事實을 指摘하는 것이다. 믿는 사람이 있어도 마치 소금이 맛을 내지 못하는 것과 같다면 그것은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개신교의 現住所라고 할 때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한 復興을 思慕한다면 우리의 虛勢를 實勢로 바꾸는 作業부터 서둘러야 할 것이다. 이것은 悔改를 意味할 수도 있고 自體 整備를 말하는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 여기에 대해 맥가브란(Donald A. McGavran) 박사는
"傳道만 있고 養育의 方法을 통하지 않는 敎會의 成長은 과연 올바른 成長이라고 할 수 있는가?"란 質問에 단연코 아니라고 하면서 弟子養育의 方法을 통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敎會成長은 外的인 成長이지 결코 內的으로 充實한 成長이 아님을 指摘했다.
韓國 敎會의 成長 停滯 現狀은 改新敎 宣敎가 100여 年을 넘긴 마당에 그 동안의 우리 敎會의 모습과 앞으로 21세기 우리 敎會가 나아가야 할 方向을 定立한다는 취지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現狀이다. 敎會의 成長 停滯는 결국 敎會의 生命이 약화되는데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敎會가 진정한 意味의 成長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敎會에게 주시는 生命이 강화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宗敎 改革者들이 우리에게 남겨 준 偉大한 遺産 가운데 하나는 個人的인 信仰 生活과 社會 生活을 區分하는 二元論을 排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人은 世上에 있으면서 世上에 속하지 않는 均衡 잡힌 영성을 追求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를 아는 것이다. 우리의 삶과 遊離된 하나님을 아는 것과 하나님이 없는 우리의 삶을 理解하는 것 모두 宗敎改革의 영성이 아니다. 만일 信仰 生活이 敎會堂이라는 울타리 속에서만 중시된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被造物인 世上으로부터 逃避하는 宗敎 行爲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信仰은 곧 삶이요 삶은 곧 信仰이라는 것을 證明해 보일 수 있는 弟子들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冷情하게 지금까지 量的인 復興에 置重해서 內實 있는 成長을 이루지 못한 것을 反省하고 예수님이 公生涯 동안 小數의 무리들을 弟子로 訓練시킴으로 全 世界에 福音을 傳播케 하신 것처럼 敎會의 모든 聖徒들을 철저히 弟子로 訓練시킴으로 그들로 하여금 質的으로 成長하도록 함으로 그리스도의 分量에 이르도록 해야 할 것이다.
"弟子란 그의 先生으로부터 배운 知識에 의하여 變化된 삶을 가지기 願하는 사람이다. 弟子가 된다는 것은 悔改와 믿음을 通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主權을 認定하고 또한 人間의 生命을 變化시키는 그의 訓練에 自己의 一生을 委任하는 것이다."라고 쿨만(Lueien Colman)은 그리스도人을 弟子職으로 說明하고 있다.
이와 같은 弟子는 單純히 敎會의 禮拜에만 參席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敎會가 量的인 成長을 願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聖徒들이 質的으로도 主님이 기뻐하시는 人格의 사람들이 만들어지기를 더욱 願하실 것이며, 이렇게 될 때에 하나님은 더욱 기뻐하실 것이다. 弟子訓練은 敎會 내에 잠자고 있던 平信徒를 깨우고, 聖經工夫를 體系化하며, 個人 傳道의 重要性을 認識하는 등 敎會의 質的 成
(이하 전문은 "첨부파일"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