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신사참배 반대운동 기념 박물관 설립 문제 [교계동정]
분류: 소식- 교계 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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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독교보 2000.8.19일자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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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려파 교회는 역사를 먹고사는 교단이다. 어느 누구도 갖지 못한 빛난 역사를 이어 받았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는 지금, 우리는 역사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갖고 있지 않다. 신대원 도서관이 "주남선 한상동 기념 도서관" 이라고 쓰여진 것 외에는 교회의 중심인 신학교에서 우리의 역사를 보여줄 증거가 없다. 역사를 이어가기 원한다면 후손들이 역사적 증거를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행하고 자주 행한 일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요단강을 건넌 이스라엘은 강바닥의 돌 열둘을 가져다가 기념비를 세우라는 명령을 받는다. 후일 광야세대를 이어갈 가나안 세대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기 위해서였다. 몇세대 지나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극적인 섭리로 요단강의 강바닥을 밟아 건너고,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면서 가나안을 정복한 그 기적적인 은혜를 잊어버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길갈의 기념비도, 여리고성의 재건축을 막은 것도, 아골 골짜기에 돌무덤을 쌓은 것도, 가나안 정복에 동참하고 요단강을 건너 돌아가던, 요단 동편을 차지한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지파가 강 언덕에 대규모 제단을 쌓은 것도, 여호수아가 세겜언약을 맺고 그 내용을 율법 책에 기록하고서는 큰돌을 상수리나무 아래 세운 것도(24:26), 하나같이 애굽과 광야의 역사를 모르는 가나안세대들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 역사적 증거를 보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것도 없다. 신학교가 설립된지는 50년을 훨씬 넘어섰고, 금년 9월에 50회 총회가 열리게되니 교단 창립 반세기가 되었는데 그 험한 역사를 살아온 교단이 보여줄 증거가 없다. 우리에게는 대형교회가 없다는 자괴감, 항상 돈에 얽혀 문제를 제기하는 병원, 그 때문에 총회의 대부분을 낭비하는 허허로움 뿐이다. 그래서 때때로 존재의 위기를 느껴야 하는 ‘기독교 종합대학교’의 존재에서 그나마 위로의 거리를 찾아야 할 판이다.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고려파는 눈에 보이는 것을 이어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그 아름다운 신앙의 세계를 이어가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 떳떳한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우리는 존재해야 한다.
부끄럽게도 60년대에 들어 서면서부터 보여주기 시작한 불순함과 거짓과 성령의 인도와는 상관없는 무계획성, 독선적 요소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그 옛날 순교정신의 현장을 자주 들여다 보고, 다음 세대들도 보게 해야 한다.
구미 여러 나라들은 조금이라도 역사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을 기억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곳곳에 작은 박물관들이 널려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떤가? 요즈음 방학이라 서울의 교회들이 유초등부 학생들을 신대원으로 보내 여름성경학교를 진행하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자주 생각을 하긴 했지만 다시 부끄러움이 몰아친다. 이 아이들이 여기 와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독립기념관은 틀림없이 가 보았을 것이고 고려신학대학원을 찾아온 이들에게 보여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앞으로도 찾아 올 것이다. 교파를 초월하여 각종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하여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오가는데, 그들이 여기까지 와서 건물만 보고 간다는 것은 너무 억울하다.
지난 역사를 생생히 보여 줄 수 있도록, 우리가 어떻게 배교하였는지, 1938년도의 장로교 총회 현장은 어떠했는지, 누가 참석했는지, ‘왜 부(否)는 묻지 않느냐’며 항의했다는 한부선 선교사가 발언하던 모습은 어떠했는지, 배교의 현장으로 탈바꿈한 당시 교회당의 내부 모습은 어떠했는지, 순교자들을 가두었던 감옥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고문기구를 사용했는지, 그 때 조수옥 권사를 물던 이(蝨)는 어떻게 생겼던지(!), 그 곳에 들어서면 당시의 역사적 현장이 살아나는 증거를 모으고, 만들어 보여주는 작업이 절실하다. 그래서 새로운 감동과 결심이 불뚝불뚝 솟아 나게 해야 한다. 여전히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세상을 핑게 대며 절대자 하나님을 배교할 수 있는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게 해야 한다. ‘칼빈의 무덤에 우뚝 선 비석이 없다’는 말은, 그가 누운 공원묘지 안내도에 칼빈의 자리가 ‘J.C’로 선명하게 표시되어 있음을 강조해 놓은 사실과 함께 강조해야 하고, 그가 설교했던 교회당과 설 교단이 잘 보존되어 있어 순례자들에게 마치 그를 보는 듯한 진한 향수를 안겨준다는 사실과 함께 전달되어야 한다.
여러 신문을 장식한 총회장을 비롯한 이런 저런 자리의 후보 얼굴이 또 괜한 일로 얼굴 붉히며 정열을 소진할 시끄러운 총회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이번에는 정견발표도 있다고 했으니 좀 그럴듯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그런데 대학교 총장, 원장, 병원이나 학교의 처장, 부장 등 꽤 내용이 있음직한 자리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학교법인 이사장이면 몰라도 총회장이나 임원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여 필자가 괜히 머슥해진다. 그러다 문득 이런 정견발표문을 생각해 보게된다.
“내가 총회장, 부총회장…이 되면, 나와 우리교회가 함께 노력하여 신학교에 우리의 정신을 이어가는데 이바지할 수 있는 ‘신사참배반대운동 기념 박물관’을 세우고, 그 관리비와 관리할 사람까지 책임을 지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그게 여의치 않으면 내가 조기 은퇴하고 재산을 털어 바치고, 아예 천안으로 이사해 직접 그 일을 맡겠습니다.”
이 글 읽고 ‘제발, 꿈 좀 빨리 깨라’ 할 사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다시 열(熱)이라도 한 번 올릴 수 있을 텐데… 나 자신이라도 메고 나온 돌 비 한 자리쯤 채울 수 있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텁텁한 물 속에 있으니 그저 답답할뿐이다.
이성구 목사(고려신학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