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로버트 슐러의 크리스탈 교회 몰락 - 순복음교회 조용기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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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로버트 슐러의 크리스탈 교회 몰락 - 순복음교회 조용기 모델


로버트 슐러 목사의 크리스탈 교회가 몰락한다.







남후수 목사 (미주선교센터 선교사)






로버트 슐러 목사가(Rev. Robert Schuller) 개척하고 시무하던 Crystal Cathedral Church(수정교회) 건물과 캠퍼스 소유권이 오늘부터(2012년 6월 9일) 천주교 오렌지카운티 교구로 넘어간다. 그렇다고 당장 쫓겨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새로운 장소를 찾을 때까지 2-3년여 정도는 더 사용할 수 있지만 이제부터는 매월 세를 지불해야 한다. 20세기 후반 전 세계교회의 선두에 섰던 교회의 몰락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크리스탈 교회의 전성기

20여 년 전 안식년 때 이 교회에 한 번 들린 적이 있다. 그때는 주차장에 버스가 매일 여러 대씩 주차하고 있을 만큼 관광객들이 많았다. 적극적인 사고의(Positive thinking) 원조라 할 수 있는 노만 빈센트 필 목사의 계승자이며 그 스승을 뛰어넘었다는 로버트 슐러 목사의 명성은 세계교회에 유명했고 이 두 사람의 영향에서 조용기 목사가 나왔다고 하니 누구든지 목사라면 크리스탈 교회를 한 번은 가보고 싶어 했다. 그리고 건물자체도 사람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했다. 바닥을 제외한 벽과 지붕 전체를 유리로 지은 이 세계적인 건물은 불신자들이라도 구경하고 싶은 곳이었고 건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들리는 곳이었다.






▲2011년 6월 12일 주일, 크리스탈교회는 한산했다,

건물 규모도 웅장했지만 파이프 오르간도 세계 최대이어서 관광객들을 위해 하루 몇 차례씩 짤막하게 연주할 때 처음 듣는 사람으로서는 천상의 음악을 듣는 듯 감동이 컸다. 바로 근처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 디즈니랜드와 함께 크리스탈 교회는 캘리포니아에서 인기 있는 관광지였다. 빨간 상의를 입은 중년의 신사들이 친절하게 교회를 안내하고 설명해 주어 인상적이었다. 노약자들을 위해서는 배터리 셔틀로 주차장에서 본관까지 태워다 주는 서비스도 있었다.




크리스탈 교회의 쇠퇴기

두 번째 방문은 지난해 2011년 6월 12일 주일이었다. 옛날 같지 않다는 소문을 들어서 짐작은 했지만 정말로 한산했다. 주일 오전 예배였는데도 텅텅 비어 있었고 네 사람이 나란히 앉은 자리는 딸 내외와 함께 참석한 우리 가족뿐이었다. 서로 인사하라는 사회자의 인도를 따라 우리도 일어서서 앞뒤 사람들에게 “헬로! 굿 모닝!” 손을 흔들었는데 그때에 카메라가 우리 가족을 클로즈업하여 화면에 띄웠다. 아마 유일하게 네 명이나 되는 대가족이(?) 참석했고 또 2011년 6월12일 주일, 크리스탈 교회는 한산했다.

동양인이라서 눈에 쉽게 뜨인 것이리라 짐작했다. 그만큼 숫자가 적었다.




세 번째 방문은 바로 어제 밤이다 (6월 8일 금요일). 내일이면 천주교로 소유권이 넘어간다는 말을 듣고 아쉽기도 했고 마침 오렌지카운티지역 한인교회 연합 영적 대각성 집회가 그 곳에서 열리고 있었기 때문에 집회에도 참석하기 위해 찾아갔다. 서울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님이 강사로 말씀을 전했다. 연합집회로서는 근래에 보기 드물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데 아마 모두 비슷한 감정으로 참석한 것 같았다. 설교자도 이 사실이 안타까웠는지 지금은 이 예배당이 우리 개신교의 손을 떠났지만 우리 한국인 성도들의 힘으로 이것을 되찾자고 제안했다. 모든 참석자들이 큰 소리로 "아멘" 하는 것을 보아서 모두가 섭섭한 마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때 미국을 대표하는 교회를 잃는다는 허전함이 엄습했다.




Robert Schuller 목사의 목회방법

Crystal Cathedral Church는 동부에서 서부로 맨손으로 이주한 Robert Schuller 목사가 1955년에 설립했다. 당시 미국은 세계 제 2차 대전에서 승리하고 모든 면에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발전하여 자신만만하던 시기였다. 전쟁을 통해 발전한 군수산업이 일반산업으로 전환하면서 미국인들의 생활과 사고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특별히 자동차 산업이 발전하여 195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거의 모든 집에 자동차가 한 대씩 보급될 정도였고 이에 따라서 자동차 문화가 크게 발달했다. 이때 젊은 로버트 슐러 목사는 전통적인 교회를 탈피하고 당시 유행하던 커다란 야외 자동차 극장을(drive-in-theater: 자동차를 탄 채 영화를 보는 곳) 빌어 예배를 드리는 신개념 교회를 시작했다. 젊은 슐러 목사의 아이디어는 적중하여 많은 사람들이 최첨단 문화인 야외 자동차 교회로(drive-in-church: 자동차를 탄 채 예배드리는 곳) 모여 들었다.




이후부터 슐러 목사는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어 놓았고 그때마다 그는 기존 패러다임을 뛰어넘는 히트를 쳤다. 1970년 그는 최초로 방송설교를 시작했고 1977년 바닥을 제외한 전면을 10,664장의 유리로 덮은 현재의 수정교회당을 건축했다. 천문학적인 큰돈이 들어간다는 것은 당시 미국인들로서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이 세계 최고이고 최첨단으로 미국인의 콧대를 높이는 것이라면 도전하고 성취했던 시대였다. 헐리우드가






▲ 크리스탈 교회 캠퍼스의 일부



그러했고 디즈니랜드도 그 시대의 산물이다. 슐러 목사도 마침내 세계 유일의 예배당을 건축해 내었다. 매 주일 그는 세계 최고 설교자들을 초청했고 영화배우, 운동선수, 미술가, 음악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