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배은회, 강순명
설교록에 자주 나오는 "배은회" 목사님은 해방 후 부통령을 지냈고 국가고등고시위원장도 맡았습니다. 지성인이어서 신앙 외의 책을 많이 읽었고 일제 때 공산주의 사상을 접하면서 그 사상을 이기겠다고 좌익 도서를 읽다가 하나님에 대한 확신마저 흔들리게 되자 양심에 견디지 못하고 금강산 폭포에 떨어 져 자살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살려 놓아 회개하고 돌아 섰다는 내용이 자주 나옵니다. 당시 관련 일화입니다. -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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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순명(1898.3.24-1959.3.12) 목사
강순명 목사는 광주군 효천면 방림리(현 광주직할시 서구 방림동)에서 자라 광주 숭일 보통과를 졸업하였고, 최숙이 사모와 1918년 3월에 결혼하였다.
광주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정치중학에 입학하여 공부를 하던 중인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에 엄청난 지진이 도쿄와 요코하마 일대를 강타하는 것을 보고 회개하고 광주로 돌아왔다.
1928년 여름, 섬기던 배은희 목사가 몸이 쇠약하여 금강산으로 휴양을 떠날 때에 동행하였다. 금강산 구룡폭포에 이르러 배은희 목사가 말하기를, 눈에 떠오르는 것은 교회의 싸움과 사회의 혼란, 농민들의 참상과 민족의 절망뿐이니 자신이 살아 있다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며, "강군, 나는 여기 이 절벽에서 떨져 죽어야 하겠오. 강군이 산을 나서면 또 다시 예수님이 옳으니 잘못이니 하는 싸움을 계속하게 되겠지." 하면서 폭포 속으로 몸을 날려 물속에 뛰어들었다. 이에 강순명은 옷 입은 채로 물에 뛰어들어 배은회 목사를 구출해 낸 일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