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강병도 목사님 - 기독지혜사
기독지혜사, 톰슨성경, 라이프성경 성서백과사전, 후크마 주석 등으로 잘 알려 진 분입니다. 공회를 잘 아는 분이며 주일학교 책을 발간하여 서부교회 소식을 많이 전한 분이고 백 목사님의 설교 깊이를 알고 주해서를 원했던 분입니다. 고려신학교 12회며, 성일교회 목사님으로 목회하시다 89 세로 임종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 행정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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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대학 설립자 강병도 장로
더 높이, 더 넓게
권순형/크리스찬리뷰
‘성실과 봉사’라는 교훈을 가진 창신대학이 개교 20주년을 맞아 지난 4월 5일 기념식을 가졌다. 본지 권순형 발행인은 기념식에 앞서 기독교 교육의 확산에 힘을 쏟고 있는 설립자 강병도 장로를 만나 지난 20년을 회고하며 앞으로의 꿈과 비전을 들어 보았다.
▲ 창신대학 본부 건물 앞에서 인터뷰 중인 동 대학 설립자 강병도 장로와 본지 권순형 발행인(왼쪽) ?창신대학
- 지역사회의 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사명감을 갖고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에 창신대학을 개교한 이래 금년에 개교 20주년을 맞았습니다. 설립자로서 남다른 소회가 있으실 것 같습니다.
“개교 20주년을 맞아 감회가 벅찹니다. 지난 20년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보람과 성취 그리고 시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주년을 맞기까지 성원해 주시고 협조해 주신 관계 기관과 교계 지도자들, 그리고 교수, 직원 및 동문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 1990년 당시 어떤 심정으로 창신전문대학을 설립하게 되었습니까?
“당시 개항 100년을 맞은 마산은 인구가 50만 명이었으며, 마산항은 제3위의 무역항으로서 경상남도 제일의 상업도시인 동시에 전국 제일의 수출자유지역공단이 있는 공업도시였습니다. 그러나 마산 행정구역 내에는 전문직업인을 향성하는 전문대학이 없어서 전문대학 설립이 마산 시민들의 숙원사업이었습니다.
당시 학교법인 기독교창신학원 이사장이었던 저는 마산지역사회의 전문대학 설립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마산지역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중견 직업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창신대학을 설립하게 되었습니다.”
- 교명을 창신(昌信)으로 정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창신대학은 지금부터 103년 전인 1908년 우리나라 이조말 가난하고 암울했던 시대에 신교육을 통해 구국운동과 기독교 선교에 기여했던 경남 최초의 신식학교였던 ‘창신학교’의 건학정신을 계승하여 교육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교명에 ‘창(昌)’자는 옛날 마산의 지명인 文昌里 중에서 ‘昌’자를 땄고, ‘信’은 기독교를 믿는 학교라는 뜻으로 ‘信’자를 조합하여 昌信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건학정신과 뜻이 너무나 소중하여 대학 교명도 창신대학이라 정했습니다.”
- 창신학교의 역사를 소개해 주시지요?
“창신학교는 103년 전 순종 황제 때 개교하여 오늘에까지 이른 자랑스런 전통을 지닌 경남 최초의 학교입니다.
100여 년의 자랑스런 역사 속에서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을 때 일제에 항거하다 폐교를 당하는 등 많은 시련을 겪기도 했습니다. 80년대 초에는 창신학교가 경영 위기에 봉착하게 되어 관선이사가 파송되기도 했습니다. 그때 저는 창신중·고등학교와 유지재단인 학교법인 기독교창신학원을 1985년 8월 8일자에 인수하고 법인 이사장에 취임했습니다.
▲ 신 캠퍼스 착공 전 현장 사진. 이곳에는 지주 30명, 가옥 10동, 160기의 묘지가 있어 용지 매입에 어려움이 많았다. 두 번째 사진은 1단계 토목 공사. 세 번째 사진은 토목공사를 할 때 일부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로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맨 안래 사진은 4만 3,478평 규모의 헌 합성동 캠퍼스. 2003년 9월 1일 이전하여 비약적인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으며 2만 8,67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창신대학
당시 숭실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이던 강신명 목사님(당시 창신학원 이사)을 비롯한 여러분들이 저에게 강 장로는 교직 경험도 있고 기업 경험도 있으니 경영 위기에 처해 있는 학교를 인수하여 재건해 달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학교를 다시 살려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고심 끝에 수락하고 결심한 것이 결국 오늘의 창신중·고등학교가 된 것이고 또한 창신대학을 설립하게 된 것입니다.”
- 설립자 총장으로서 당시 설립 이념으로 강조한 것은 기독교 정신의 기초위에 ‘성실과 봉사’ 즉, “자신에 성실하고 남에게 봉사하자”라는 교훈으로 교육하여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이념을 설정한 것은 평소 장로님의 특별한 철학이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창신대학 설립 이념의 기저에 있는 신앙관 등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저는 기독교 가정(4대째)에서 태어나 하나님의 은혜로 고등학교 교사, 대학 교수, 그리고 대기업 상무이사를 거쳐 대표이사 등 비교적 다양한 경험을 쌓았습니다. 그래서 ‘훌륭한 인재를 배출해야겠다’는 평소에 지녔던 꿈을 실현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의 신앙관이나 인생관을 합축하면 한마디로 ‘성실과 봉사’입니다. 즉, ‘자신에는 성실하고 남에게는 봉사하자’라는 것인데 이를 교훈으로 삼고 교육하여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인물들을 육성하겠다는 뜻입니다.
▲ 창신대학 캠퍼스 입구에 세워져 있는 대학의 상징인 독수리상. ?창신대학
부족하지만 제가 설립총장으로서 지난 19년간 총장 직무를 수행하면서 그동안 가꾸어온 창신대학이 20주년을 맞아 장족의 발전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 1991년 봉암동 캠퍼스에서 개교할 당시 5개 학과 480명으로 출발한 창신대학이 매년 학과 신설 및 증원을 인가받으며 발전을 거듭하여 현재 28개 학과로 2만 8,675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습니다.
또한 학점은행제에 의한 학사학위 취득자도 현재 1천 451명이나 배출함으로써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단기간에 큰 발전을 가져오게 된 것은 장로님의 리더십 외에 또 다른 측면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1991년 창신대학 설립 당시에는 봉암동 창신중·고등학교와 같은 캠퍼스에 대학이 있어서 여러가지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이전하여 최고의 캠퍼스를 건설하려고 결심했는데 현재의 합성동 캠퍼스는 피와 눈물의 결정체로서 2003년 완공하여 이전하면서 창신대학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현 합성동 캠퍼스는 43,478평 부지에 13개 동 17, 572평의 건물을 일시에 신축하였습니다. 합성동 신 캠퍼스가 아름답고 편리하며 교육환경이 매우 우수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또한 그동안 2만 8,675 명의 졸업생들에게 학문과 기술, 그리고 교양과 기독교 정신을 가르쳐서 지역사회에 배출한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우리 졸업생들은 각계각층에서 성실한 중견 직업인으로 활동하며 국가사회 발전에 크게 봉사하고 있습니다.
사실 합성동 신캠퍼스 건설은 정말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이 있었습니다. 건설 기간 중 많은 날 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오늘이 있게 된 것은 먼저 하나님께서 도와 주셨고, 교수, 직원, 동문, 재학생 등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창신대학의 자랑은 사회의 저명한 기독교 명사들을 초청하여 인성교육을 실시하는 종교강좌라고 생각합니다. 이 강좌는 창신대학이 기독교정신을 바탕에 두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종교강좌를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창신대학은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성실과 봉사의 기독교 정신을 고취시키는 것입니다. 졸업생들을 만나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창신대학의 자랑인 종교강좌라고 말합니다. 설립자로서 특별히 종교강좌를 중시하기 때문에 종교강좌 첫 시간에는 제가 특강을 했습니다.
▲ 창신대학 캠퍼스 전경. ?창신대학
저는 금년 신입생들에게 우리 대학의 상징인 독수리상을 언급하면서 독수리는 승리의 상징이며 60년까지 살 수 있지만 60년을 살려면 생애의 중반에 큰 결단, 즉 더 이상 쓸모없게 된 자신의 부리와 발톱을 바위에 쳐 부셔 없애는 고통을 감내해야 새로운 부리, 새로운 발톱, 새로운 깃털을 가지고 이후 30년을 연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통해 학생들에게 승리를 위한 결단을 강조한 바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이 창신대학의 상징인 독수리처럼 더 높이 더 넓게 비상하여 승리하는 동시에 성공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창신대학은 개교 초기부터 독일 베를린 기술대학교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23개 대학들과 활발한 교류를 통해 세계 속의 대학으로 인정받는 가운데, 현재는 중국·일본·캄보디아 등지에서 온 유학생들도 공부하고 있습니다. 창신대학이 세계 속의 대학으로서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창신대학은 그동안 세계 20여 개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고 상호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중국, 일본 대학생들과 창신대학생들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 지고 있으며, 특히 그동안 6백여 명의 중국 유학생들을 인간적으로 대우하며 교육시켜서 졸업했는데 그 후 상당수가 4년제 대학으로 진학했습니다.
앞으로도 창신대학이 중심이 되어 국제대학총장회의 같은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등 세계 속의 대학들과 인적, 물적 등 다양한 교류를 통하여 글로벌대학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자 합니다.”
- 창신대학은 실무위주의 교육을 중시한 결과 28개 학과에서 6백여 산업체와 유기적인 산학협력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지난 해 취업률이 96.7%라는 놀라운 성과를 이룬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학교뿐만 아니라 기업에서도 다양한 경험을 쌓아서 대학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기업을 경영할 때도 역시 ‘성실과 봉사’ 정신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특히 상공부 주최로 서울 국립극장에서 열린 1982년 상공인의 날 기념식에서 전국 산업체 임직원 2천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가 성공사례 발표를 하고 새마을훈장을 받은 것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업경영 경험이 대학운영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자연히 취업문제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추진했습니다.
- 창신대학이 2003년 9월 1일 봉암동 캠퍼스에서 지금의 합성동 신캠퍼스로 이전하게 됨으로써 비약적인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이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미래를 바라보는 설립자의 선견지명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고난을 극복하고 합성동 시대를 열은 당시의 일화를 듣고 싶습니다.
“현 합성동 신 캠퍼스 조성 당시의 고난과 역경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첫째 용지(43,478평) 매입의 난관이었는데 지주가 30여 명이나 됐고 가옥 10동, 묘지 160기가 있었습니다. 이 용지를 천신만고 끝에 매입은 했으나 공원용지였기 때문에 학교용지로 용도 변경이 되지 않으면 매입 용지를 모두 못쓰고 버려야 하였기에 엄청난 고민과 고통이 뒤따랐습니다.
대학 용지로 변경 지정하는데 마산시장, 경상남도 지사, 건설부장관까지 승인받는데 너무나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더우기 토목공사를 할 때 일부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극렬한 반대로 엄청난 고통을 감수해야 했지요. 그때는 너무나 괴로워서 생을 포기하려고 한 때도 있었습니다.
신캠퍼스가 완성되고 이전을 하면 모든 것이 성취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캠퍼스 이전 후 일부 교수 노조들로 인하여 많은 어려움을 견뎌야했고 대학 발전에 많은 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개교 20주년은 보람과 성취, 그리고 시련이라 하였습니다.”
▲ 창신대학 개교 20주년 기념식에서 최학유 이사장이 설립자 강병도 장로(왼쪽)에게 공로패를 수여했다. ?창신대학
- 총장님은 전국 155개 전문대학 총장협의체인 한국전문대학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면서 전국 전문대학의 발전을 위해서도 많은 수고를 하신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의 소감을 한마디 해주시지요.
“2002년부터 2004년까지 2년 동안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봉사했습니다. 지방대학 총장이 협의회 회장에 당선되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창신대학의 위상이 높아졌지요.
특히 2002년 11월 11일 서울잠실체육관에서 전국 전문대학 대표 학생들 5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전문대학의 날’을 선포하여 전국 전문대학의 위상을 높이는 한편 전국 전문대학의 발전을 위하여 많은 일을 했습니다.”
- 창신대학 설립자로서 앞으로의 꿈과 비전은 무엇입니까?
“창신대학이 ‘자신에게 성실하고 남에게는 봉사하자’라는 교훈으로 인간화, 정보화, 세계화를 위한 교육에 매진해 왔습니다. 이제 창신대학은 개교 20주년을 맞이하여 현재의 모습에 만족하지 않고 세계 속의 대학, 미래를 약속하는 새로운 대학이 되기 위해 더 힘찬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대학 정문으로 들어오면 바로 만나는 우리 대학 상징인 독수리탑이 표상하듯이 ‘더 높이 더 넓게’ 웅비하고 비상하는 창신인의 꿈과 이상을 세계로, 미래로 더욱 힘차게 펼칠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 쏟을 것이며 정성으로 지원할 것입니다.”
- 마지막으로 교수와 학생, 그리고 호주 교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창신대학은 지리적으로 통합 창원시의 중심 지점에 좋은 환경 속에 면학 분위기가 좋은 대학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이는 모두 우리 교수, 직원, 학생 여러분이 애교심으로 혼연일체가 되어 노력해 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성실과 봉사의 정신’으로 더욱 학업에 정진하여 이웃과 국가와 인류사회에 크게 이바지하는 자랑스러운 창신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교수님들은 더욱 헌신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또한 호주 선교사들의 선교정신과 순교정신을 바탕으로 세워진 창신대학을 위해 그동안 기도해 주시고 성원해 주신 호주 한인교회와 성도 여러분, 그리고 교민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기도의 지원을 부탁드리면서, 한국 방문시 창신대학을 비롯한 ‘경남선교 120주년 기념관’과 ‘호주 선교사 순직 묘원’을 방문하여 호주 선교사들이 이 땅에 생명을 바친 것을 기억하고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생명을 바치기를 결단하기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권순형|크리스찬리뷰 발행인
사진 제공|창신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