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경남기독교회사 연구 - 부산경남역사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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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경남기독교회사 연구 - 부산경남역사연구회


숨겨진 부산·경남 기독교사 발굴
역사연구회 창립… 회장에 이상규 교수
"사료 수집·기금모금 통해 역사관 설립"



부산 중구 중앙동의 한 음식점에서 열린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의 창립대회 모습.

기독교의 역사를 연구하는 지역 모임이 처음으로 결성됐다. 교수와 개신교 목사, 장로 등으로 발기인을 구성한 이 모임은 교회의 역사적 사실을 뒷받침해 줄 문서 등 사료를 모아 기독교 역사관을 설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는 최근 부산 중구 중앙동 한 음식점에서 창립대회를 갖고 초대 회장에 이상규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를 선출했다. 이 연구회는 기독교 역사와 인물 등을 중심으로 종교적 주제와 관련된 문제를 연구 발표해 지역 기독교 문화 창달에 기여한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또 격월간 정기 연구 발표회와 정기 소식지 발간, 기념 강연 및 세미나 개최와 회지 발행도 준비하고 있다.

창립대회에는 발기인으로 등록한 부산 경남 울산지역 종교계 인사 중 20여명이 참가했다. 또 권경호 목사(부평교회), 구태옥 목사(재건교회 은퇴목사), 공기화 부산대 교수, 김경석 장로(부산진교회), 안대영 장로(동래중앙교회), 장윤득 장로(이사벨여고 교감), 정차영 장로(내성교회), 조헌국 장로(진주교회), 탁지일 부산장신대학교 교수 등이 운영위원으로 선임됐다.


이상규 회장

연구회는 재야 신학자 중 기독교 역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온 사람들에게도 대학 학위 소지 유무와 관련없이 문호를 개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석사학위 이상 경력자들을 회원으로 하는 "학회"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지역의 기독교 역사관 또는 박물관 건립에 사용할 사료와 실증자료들을 광범위하게 수집하기 위해서다.

첫 연구발표회는 오는 3월4일 부산 부산진구 전포교회 교육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날 내성교회 정차영 장로가 "정준모 장로의 생애와 교회설립에 대한 고찰"을 주제 발표한다.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정준모(1860~1935년) 장로는 당시 한학자로서는 드물게 기독교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고 독실한 신자로서 장로까지 오른 인물이다. 또 1906년 양산교회, 1922년 물금교회를 각각 설립했다. 1911~1915년에는 당시 경남 양산군과 김해, 부산의 구포 등지 10여 개 교회의 합동 조사(助事·전도사에 해당)직을 맡아 영남지역 복음 전파에 전념했다.

초대 회장을 맡은 이상규 회장은 "기독교 역사 연구모임이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몇년 전 부산 지역의 기독교 전래사에 대한 책을 출판한 이후 진주지역 역사 등 연구분야를 확대할 때마다 공동연구의 필요성이 컸는데 드디어 그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며 "연구 자료와 기금 모금 등을 추진해 역사관이나 박물관을 지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동수기자 sookim@kookje.co.kr






"선교초기" 경상도에 선교사 32명 활동 | 부산 敎會史 자료 2006/05/11 19:27


http://blog.naver.com/kjyoun24/60024271124



‘선교초기’ 경상도에 선교사 32명활동
해양대 김재승 박사 발제



부산경남지역 교회사연구를 위해 조직된 부경기독교역사연구회(회장 이상규 교수)의 제2회 연구발표회가 5월 6일 밀양 마산교회(담임 박시영 목사)에서 개최되었다. 오후 5시부터 시작된 1부 예배에서는 밀양 춘화리교회 김강우 목사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말하는 자’라는 제목으로 설교하고, 오상학 목사(밀양순복음교회)의 축도로 폐회했다.


2부 연구발표회는 이상규 회장의 사회로 해양대학교의 김재승 박사가 ‘개항기 선교사의 눈으로 본 부산의 모습’이란 제목으로 발표했다.


김 박사는 개항 이후 부산, 경남지방에 주재한 선교사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1912년 당시 부산과 경남지방에 주재한 선교사는 32명이었다”고 전했다. 이들 선교사들은 상류층보다는 중하층민을 선교의 일차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지적하고, 당시 선교사들은 사진 자료를 통해 부산의 모습을 통해 당시 부산의 촌락구조, 삶의 환경, 선교적 상황을 헤아리는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김 박사는 “부산에 대한 최초의 사진은 1876년 2월에 촬영한 흑전(黑田) 함대의 부산포전경인데, 부산 해관장 영국인 로바트, 프랑스인 피리(T. Piry), 영국인 헌트(J. Hunt), 선교사 베어드, 시더보탐등이 사진기를 가진 외국인이었다”며 “1894년 청일전쟁 이전에는 부산경남에 관한 일본인의 기록이 거의 없으며, 1904년 노일전쟁 이후 일본인들의 기록도 일본인의 실상에 한정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선교사들이 찍은 사진이 주된 것으로 사진들을 통해 조선인의 이색적인 삶과 문화에 초점을 두고 있어, 조선인 민초들의 삶을 헤아리게 해 준다는 점을 지적했다. (2006. 5. 13. 한국기독신문 / 박근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