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 부흥과 성장은 별개 - 부산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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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계] 부흥과 성장은 별개 - 부산토론회




부흥과 성장은 다르다
"2007 부흥을 위한 열린 토론회" 개최




입력 : 2007년 07월 27일 (금) 01:03:27 / 최종편집 : 2007년 07월 28일 (토) 16:02:29




▲ 7월 9일 월요일 저녁7시 30분 모자이크교회 4층 비전홀에서 ‘2007 부흥운동을 위한 열린 토론회’를 열었다.

지난 7월 9일 월요일 저녁7시 30분 모자이크교회 4층 비전홀에서 ‘2007 부흥운동을 위한 열린 토론회’를 열었다. 부산교회개혁실천모임·크리스챤포럼·부산기윤실·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가 공동주최하고 부산기청센터·부산성토모·이주민문화센터 등의 단체가 협력한 자리였다.

이번 토론회는 첫째 평양대부흥운동의 의미와 100주년을 기념하는 우리의 기대에 대한 정직한 성찰, 둘째로는 2007년 상반기 부산지역의 부흥과 관련한 여러 사역에 대한 겸손한 신학적 성찰, 마지막 셋째로 하반기 부산지역의 사역 방향에 대한 전망과 진정한 오순절 역사를 경험하기 위한 우리의 결단과 대안을 찾아보았다.

부산기윤실 집행위원이자 목요포럼 운영원장인 김현호 집사의 사회로 시작된 토론회는 류의근 교수(신라대 철학과, 부개실 대표)의 단아한 기도로 막이 올랐다.

발제에서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이자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인 이상규 목사는 부흥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에 대한 네 가지 문제제기로 말문을 열었다.

“첫째로 부흥은 수적인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둘째로 부흥을 하나의 운동으로 인식하는 것으로써 movement가 사람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면 1907년 평양대부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다른 나라의 사례의 경우에도 정치적 상황이 도덕적 상황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정치적 상황 자체가 부흥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며 부흥의 본질적 특성은 집단적 회개인데, 정치적 상황이 이를 유발할 수 없다.

네 번째로는 부흥의 성격을 논할 때, 비정치화를 언급하는데 부흥의 결과로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부흥은 1906년을 기점으로 선교사들 주도에서 한국교회로 옮겨온다. 초창기 감리교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를 주도할 때, 그들이 남긴 일차 사료 중 단 한편에서도 한국인의 정치적 관심을 영적으로 되돌리려는 의지가 담긴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historical fact인데 한국교회는 이를 자주 간과해왔다. 1907년 부흥에 대해 비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증거를 볼 때 타당하지 않다. 실제로 1919년 3·1운동을 보아도 부흥이 지난 지 불과 10여년이 지났지만, 만세운동 등 독립운동을 주도한 층이 기독교인이 상당한 비율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이런 부흥을 또다시 맞을 수 있겠는가?”에 대해 “부흥은 분명히 인위적으로 할 수 없는 성격이지만, 우리나라와 외국의 부흥 사례를 종합할 때, 어떤 조건들을 찾을 수는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조건은 첫째로 사경회와 밀접한 관계 즉 말씀의 신실한 선포, 둘째로 부흥을 위한 간구, 셋째로 죄의 고백, 그리고 넷째로 부흥에 관한 소식과 전언이다. 하지만 이 목사는 “그렇다면 위와 같은 조건만 갖추어지면 부흥이 임하는가? 이런 고민에 천착한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즈다. 그는 10년 주기로 여러 번 부흥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으로 “부흥은 어떤 인간에 의해 전법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맺었다.

한국교회는 과장된 이미지 벗고 새롭게 시작해야

이어서 진행된 5분간 모두 발언에서 우주현 목사(진리로자유케하는교회)는 “서울 상암구장에서 부흥의 하이라이트 같은 행사가 열렸다. 동시에 상암구장에서는 홈에버 비정규직들이 파업 농성을 벌였다. 그 자리에서 옥 목사님은 정말 복음을 제대로 선포해왔는지, 교회성장에 매몰되지 않았는지 자성하는 모습을 보았다. 정확하게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복음을 온전히 선포하지 못하고, 복음의 총체적 메시지를 전하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이 땅의 많은 문제들을 생각하게 한다”고 했고 운동의 차원에서는 “부흥은 운동이 아니다. 만들어낼 수 없고 운동해 낼 수 없다. 역사를 보면 부흥 그 이후에는 계속해서 인간 편에서의 부흥운동이 일어났다. 사실은 그런 부흥운동이 정치적으로 많이 이용당하고 교세 확장 등에 의도적이지 않게 기여했다는 것이다. 다수가 계속적인 again1907이라는 것에 대해 모델화 하고 있지 않은가 강한 회의를 품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박철 목사(좋은 나무교회)는 “현재 교계의 대형 이벤트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개신교의 이미지 쇄신의 목적이다. 이미지 메이킹이다. 화장하는 것이다. 지금 한국 교회의 이미지는 어떤가? 세상 사람들은 대단히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미래를준비하는모임(한미준)의 조사에 의하면, 일반인들의 시각은 한국교회를 대단히 물질적이고 이기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종교 지도자의 자질을 묻는 질문에서 개신교 지도자들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고 했다. 또한 그는 개신교의 손상된 이미지 등으로 화려한 교회, 부유한 교회, 위험스런 이미지,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 네 가지를 지적했다.

그는 “대형 교회가 모든 것을 독점하고 브랜드 이미지를 심었다. 지금의 대형 행사들은 교회가 새로운 이미지를 심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이를 알아주지 않는다. 지난 5월27일 해운대 집회에 20만 명 가까이 모였다고 한다. 어떤 이가 <문화일보>를 구독하는데 집회에 대한 기사가 단 3줄이 실렸다. 세상에서는 전혀 알아주지 않는 것이다. 혼란스럽고 과장된 이미지 만들기에서 탈피하여 예수의 이미지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광순 부산기윤실 공동대표는 “한국교회가 역사적 사건이 100년 정도 지났다는 것은 이제 유아기 단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제는 양적인 성장보다는 질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또 세계평화, 이주노동자 등의 문제도 있다. 최근 교계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그 방향에 있어 성장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성경의 누룩 비유와 같이 경제와 학문 등의 총체적 영역에 변화를 꾀할 수 있는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의 영성이 너무 얕은 수준이다. 운동의 방향과 방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의 도입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답변으로 이상규 목사는 “역사학에 있어서는 fact가 무엇인가 밝히는 것이 가장 1차적으로 중요한 과제”라며 “해석은 그 이후다”고 말했다. 그는 “비정치화를 말한 학자들이 은사와 선배가 많아 견해를 달리하는 것이 송구하나 학자는 양심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이론이 생겨도 이를 반하는 역사적 사실이 발견되면 앞선 이론은 무너진다”라고 말했고 “오늘날 우리의 관심사는 100년 전 부흥을 오늘날 어떻게 또다시 오게 할 것인가? 이를 제약하는 문제가 무엇인가를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부흥과 성장은 다른 말이다

최상림 목사(CM2007, CCC 대외협력)는 “오늘날 부흥에 대한 회복과 갈망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부흥의 결과적 측면에만 너무 관심을 갖기 때문이며 역사를 보는 눈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가져다 준 영적인 유산과 전통 등을 찾는 작업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계속해서 그는 “한국교회의 과오는 분명히 되짚고 공과는 되살리는 것이 부흥을 맞는 선행과제가 될 것이다. 교회가 이런 교회에 대한 역사적 고찰을 게을리 하자 인스턴트식 부흥운동 등이 난립하게 되었다”며 끝으로 “감명 깊게 본 <나무를 심는 사람>이라는 영화를 예를 들어 전쟁으로 폐허가 된 마을에 누군가 꾸준히 나무를 심어 마음을 되살렸다”며 부흥은 묵묵히 이 땅에 말씀을 심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했다. 이어서 그는 “나무하나 씨 하나 심는 심정으로 후배들에게 영적 유산과 부흥의 소식, 역사의 사실을 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세광 목사(BFGF총괄 부총무, 남도교회 담임)는 부흥에 대해 “이상규 교수께서 지적하신 부분에 동감한다. 1907년 부흥의 원인은 부흥에 대한 간구였다. 부흥과 성장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지적은 정확했으며 부흥이라는 단어가 잘못 오용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임에 동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의 부흥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살펴보겠다. 첫째로 강력한 성령운동이다. 부흥은 성경에서는 사실상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한다. 부흥을 말하면서 성령을 빼 놓을 수 없다. 그간에 부산 지역이 부흥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성령의 역사를 강력히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특정 교단의 신학적 영향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둘째로 교회의 연합이다. 평양대부흥 당시 선교사들은 교파를 막론하고 모여서 기도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부산에서 일어나는 운동은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고 확신하고 있다. 당시의 부흥의 주요한 효시는 연합모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부산의 열기는 부흥의 그런 영향을 받았다. 이런 연합은 현재 청년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아주 긍정적인 면이고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부산 해운대 집회에서도 북한을 향해 수많은 청년과 목회자들이 눈물로 기도했다. 이런 눈물은 성령이 주신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그 외 참석한 40여분의 젊은이들과 성도들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예상보다 1시간이나 오랜 시간이 가도록 토론회에 대한 열정은 부산의 성도들이 부흥에 대해 얼마나 갈망하고 있는 가를 새삼 느끼게 하는 시간이었다. 대형집회 이후에는 지역별 교회별 작은 모임과 소그룹 지역운동들을 통해 자생적인 작은 모임들이 일어나도록 교회의 사역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참석한 패널이나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었다. 때로는 첨예한 대립으로 긴장이 팽팽한 가운데 질문과 답이 이어지기도 하였으나 서로의 의견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함께 가고자 하는 배려와 신뢰를 나타내는 모습을 일관되게 유지하였다. 사회자의 정리 후, 이어서 류의근 교수의 인도로 세 가지 기도제목을 중심으로 간절하게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부흥을 갈망하는 겸손히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고 이어서 다함께 사진촬영으로 토론회를 마무리하였다.

이번 토론회를 통해 지난 2006년부터 부산지역에 진행되는 기독행사들, 올해까지의 모습과 과거의 부흥과의 차이점과 개선점을 대화를 통해 나눌 수 있다는 데에 큰 의미를 가진다. 특별히 다양한 부흥에 대한 시각들이 공존하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서로 대화하며 하나님의 부흥을 위해 겸손히 서로 나아가는 것이 대안의 출발점임을 알게 되었다. 또한 옳고 그름을 넘어 하나로 연대하고 섬기는 모습이 부산지역 기독단체와 교회들의 사명임을 공감하게 되었다. 한걸음 더 나아가 지역의 기독단체들이 연대하여 부산의 총체적 부흥에 대해 모색하고 대화를 통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었던 것은 앞으로 지역에 기반한 기독단체들의 활동에 좋은 단초를 제공하는 시간이었다. 앞으로 이런 좋은 대화의 자리, 토론자리가 자주 마련되어 부산지역 교계와 사회에 좋은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로 계속되어지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