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 5. 그의 생활에 관하여
김현봉 목사의 검소한 생활은 유명하다.
교인이 천명이나 모이는 큰 교회요, 또 거의 모든 교인들이 십일조 생활을 하여 교회재정이 풍부하고 목사의 이름으로 염리동 일대에 수십동의 집을 가지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철저히 검소하게 살았고, 또 남들에게 검소한 정신을 강조했다.
그 자신이 일생동안 검정 무명 두루마기에 고무신 신고 머리는 삭발하고 다녔기 때문에 염리동 일대에서는 별명이 "중목사"였는데, 그래도 그 별난 중목사에게서 사람들은 예수를 느꼈다.
그가 거느린 야현교회 교인들은 목사를 닮아 남자들은 바지 저고리에 삭발한 이가 많았고, 여자들은 화려한 색깔이나 좋은 옷은 못 입고, 검정 치마 저고리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다녔다. 머리는 파머를 못하고 옛날 누구집 식모머리처럼 머리끝을 땋아 얹었다.
"사치는 음란에서 나온다." 그는 늘 그렇게 가르쳤다.
김현봉 목사의 식사는 메모가 미리 짜 있어서, 월, 화, 수요일마다 딴 메뉴로 했다. 어느 날 안목사가 찾아갔더니 "오늘 우리는 모밀국수 먹는 날입니다. 밀국수 잡수소? 못 잡수시면 밥 해 드리겠오. 돈 없어서가 아니오."했다.
그의 정식 밥상에는 밥 한 그릇(그는 팥밥을 즐겼다)에 무우 배추 김치 하나, 반찬이 세 가지 이상 놓여진 예가 드물었다. 많아서 세가지 밥, 국, 반찬. 그는 채식위주인데 홍당무우가 몸에 좋다해서 늘 생 것을 먹는 일이 많았다. 시금치, 사과도 잘 먹었다.
그런 식사를 하고 어떻게 건강유지를 해 가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단 것을 좋아해서 사탕을 많이 먹었다.
어디로 사경회 인도하러 가서도 사례금을 받는 일이 없고, 집회를 인도한 교회에서 선물을 드리면 은혜 못 받아서 그런 짓을 한다고 나무라고, 사경회 강사라 해서 음식상을 지나치게 잘 차린 것을 보면 책망하면서 은혜 못 받아서 그런다고 하였다.
한번은 부산 어느 교회 집회를 인도하러 가서는 식사 때 음식상을 차려 나왔는데, 주방에서 강사 음식준비 맡은 이가 하나님께 머리는 쓰지 않고 음식 차리는데만 머리를 쓰면서 음식상에다가 "김현봉 목사 음식"이라고 써 놓은 것을 보고는 "이거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뇨!"하고 호통을 쳤다.
그는 직업적 부흥사들을 비난하면서, 부흥회하게 되면 개를 잡아놓고 개장국 먹으면서 집회한다고 비난했다. 누구 집에 가서도 꽃무늬를 수놓은 방석을 내놓으면 "이것도 사치정신이 들었군!"했다.
그가 목회하는 아현교회 어느 집사 며느리가 머리를 파머했기 때문에 그 집사는 고민하여 김 목사 정신은 교인들이 사치하지 못하게 하고 파머 머리를 금했는데, 자기는 교회 집사면서 며느리 하나 단속 못하면서 어떻게 집사노릇하느냐고 목사님께 사표를 냈더니 김목사는 두말없이 사표를 수리해버렸다.
김 목사는 그후부터는 시무집사 아닌 그를 다시는 집사라 부르지 못하게 했다. 집사에서 떨어진 자를 계속 집사라 부르는 것은 그 목사가 진실이 아닌 증거요, 그 해당자를 겸손하게 가르치지 못하는 일이 된다. 이런 것이 인본주의라고 교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