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 정체성 위기와 학교법인의 경영난 문제
최재호 pm.12:55, Saturday ( 41hit )
손봉호 장로, "이대로 가면 고신교단은 사라집니다"
고신총회 임원회가 주관한 ‘고신포럼’이 지난 2월 14일 부산 삼일교회당에서 열렸다.
총회장 이한석 목사가 ‘초대의 말씀’을 통해 밝힌 것처럼, 이번 포럼은 고신이 당면한 정체성의 위기와 학교법인 고려학원의 경영난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에 의해 개최됐다. 그러나 주최 측은 물론 참석자들까지도 이러한 표면적인 이유 외에도 더 깊고 근원적인 고신의 위기를 인식한 탓인지 사뭇 비장하고 긴장된 상황을 연출했다. 더 깊은 고민은 다름 아닌, 이대로 가다가는 심정적 내면적으로, 심지어 신학적으로 갈라진 고신 교단이 실질적이며 외형적으로 쪼개질 수도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물론 개중에는 고신의 신학적 정체성 확립보다, 자칫하다가는 학교법인의 거대한 자산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에 더 큰 위기의식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총회장 이 목사의 설교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이 목사는 “목적이 좋으나 오해를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이나 진상을 알지 못하면서 성급한 판단을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전제하고, “오해는 불화와 분리를 가져올 수 있다. 오늘 모임도 사전에 이런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마련된 자리”라고 말하면서 총회임원들이 인식하는 교단의 핵심적인 문제를 언급했다.
그뿐이 아니다. 이날 주최 측이 정한 표제가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라(엡4:3)”이었다는 점도 이번 포럼을 통해 교단의 분열을 막고 화합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임원진의 의도를 읽게 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고신 교단의 시작과 정체성에 대해, 또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교회가 병원과 종합대학교를 운영하는 일에 대해 근원적으로 잘못된 결정이라고 인식하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대립했다. 서로 다른 입장에서 다른 견해를 제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개혁신학을 표방하는 고신에서 신학적 해석을 현실과 별개로 인식하는 상황도 연출되었다.
이른바 고신 교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대를 가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다는 것은 오늘날의 고신이 ‘한 지붕 다가족(多家族)’의 상황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가질 수 있는 대목이다.
고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려신학대학원 변종길 교수는 고신교단의 신학과 신앙의 정체성에 대해 발제하면서 고신의 신학을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에 대한 강조 △ 축자영감과 진리의 표준으로서의 성경관 △ 이신칭의와 칼뱅주의 5대강령(인간의 전적부패, 무조건적 선택, 제한적 구속, 저항할 수 없는 은혜, 성도의 견인) △ 참교회의 표지에 따른 교회관(순수한 말씀의 전파, 순수한 성례의 거행, 권징의 시행)및 노회와 총회의 권위존중 △ 영역주권 사상에 따른 문화관 △ 무천년설과 전천년설에 기반을 둔 종말관 △ 성경의 진리에 입각한 성령론 등으로 정리했다.
변 교수는 또 이 같은 고신의 신학은 우상숭배 반대, 회개강조, 말씀중심, 기도생활, 주일성수, 십일조 등의 신앙형태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변 교수는 자신의 발제에 대해 질의자로 나선 이복수 교수(고신대)의 현실적인 적용을 해달라는 주문에 대해 답하면서 “(자신이 발표한 고신의 정체성에서) 현실은 많이 떨어져 있으며 해결도 쉽지 않다. 복음병원에서 벗어나야 하고 신대원의 단설화와 독립이 필요하다. 교회(단)가 할 일과 교인이 할 일을 구별해야 한다. 교인이 할 일인 대학과 병원을 교회가 운영하게 된 것이 문제다.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고 말해 상반된 평가를 내렸다.
이어서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김영재 교수가 고신의 역사적 존재의의 측면에서 고신의 정체성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김 교수는 “고신교단의 정체성은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을 존중하고 고수하며 교회의 부단한 쇄신과 개혁을 지향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평가하고 “1960년 승동 측과 합동했다가 1962년 10월 환원함으로 인해 한국교회의 쇄신을 지향하던 고신교단의 명분은 외형적으로 또 법적으로 큰 손상을 입었다. (고신이 말하는 이유대로) 고신교단 운동과 고려신학교의 설립의의를 합동한 교단에서 실현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 환원한 것이라면 정체성의 회복과 유지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했)다”고 주문했다.
김 교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면서도 “사실 고신을 떠난 사람이 이곳에 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에 큰 용기가 필요하다. 고신이 교단의 확장에 연연하지 말고 원래의 정체성과 지향점을 생각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개인적으로 당시 고신 교수로 있었는데 복음병원을 세울 때 좋아했다. 하지만 그 이후 고민해 보니 원리가 아니었다. 이것을 원리대로 바로 잡는 것이 회개요 쇄신운동”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고려신학대학원의 최덕성 교수는 “일제침략과 한국교회에 대한 신사참배 강요란 시련을 통과한 고신교단은 존재 그 자체로 한국교회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고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과 정신에 일치하는 정통신학과 생활순결의 중요성을 체험하고 모토로 삼아온 고신은 하나님 앞에서의 삶, 신행일치, 원수사랑, 프로테스탄트 정신, 순교적 삶, 일사각오, 오직 성경 등의 정신으로 교권주의에 대한 저항, 무조건적 교회연합일치 운동에 대한 경계심,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거부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최 교수의 논문에는 “교단의 합동과 환원에 대해 명분 없는 교회분리라고 냉소하거나 분리주의 운운하는 교단 신학자들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들의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으로 상당 지면을 할애했다.
최 교수는 또 ‘고신이 한국교회에 잘못된 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가야 하는갗라는 질의에 대해 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산다는 의식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우리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홍보하지 않은 것이 고립화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또 신앙고백이 일치하는 교단과의 연대, 연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답하고 “미래를 위해 (교회의)역사교육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고신의 대사회적 문화적 활동에 대해 발제한 손봉호 총장(동덕여대)은 개혁주의를 표방하는 고신에 대하여 역설적이게도 “개혁주의에 충실 하라”면서 뼈아픈 충고를 곁들였다.
손 총장은 “우리 고신이 개혁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학생신앙운동(SFC)만 개혁주의 강령을 포함시키고 의식하며 행동하고 있을 뿐 신학교를 비롯한 다른 기관들은 사실 이원론적 근본주의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하고 “고신교단은 허물어지고 있다. 특히 교회가 수익사업에 관여하면 반드시 타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뼈아프게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최대의 위기 상황 속에서 고신은 뼈아픈 자성과 회복운동을 통해 교단의 초기 정체성을 회복하고 안팎으로부터 도덕적 권위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러할 때 위기극복은 물론 사회와 문화에 유익을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 총장은 질의에 대해 답하면서도 고신이 뼈아픈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충고했다. 손 총장은 “이렇게 조금만 더 가면 고신교단이 사라질 수도 있다. 성경대로 돈 권리 명예 등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 고신이 당면한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고신 지도자들이 먼저 병원보다 바른 교회가 우선이라고 선언하면 병원은 살아난다. 병원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겠다면 모든 것을 팔아 빚 갚고 자선병원을 세우고 무료로 운영하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했다.
고려학원의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
고려학원 위기의 원인과 해결책이란 주제로 진행된 3부 순서에서 경영측면에서 발제를 맡은 한 발제자는 앞 시간의 ‘병원을 포기하자, 교회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란 언급들에 대해 분노를 표시하면서 “앞 시간 발표내용을 들으면서 복음병원 혼란의 원인을 보았다. 정상화의 걸림돌은 바로 교단 안에 존재하는 두 목소리”라고 소리를 높였다.
뒤이어 복음병원의 경영진단을 중심으로 발표한 김종복 장로는 “지금 이대로는 안 된다. 병원 생존을 위해 경영혁신운동이 필요하다”고 전제하고 경영악화의 원인으로 △ 급성장한 병원규모에 부응 못한 경영능력과 인재육성 △ 김해복음병원 인수와 자금지원 △ 무리한 시설투자와 신대원 건축자금 부담 △ 노조의 장기 파업 등 노사관계 △ 경영의 폐쇄성과 회계처리 △ 집단이기주의와 파벌정치 등을 지적했다.
고려학원 정상화 측면에서 발제자로 나선 김성수 고신대 총장은 “발언내용이 지나칠 경우 이 자리의 성격상 면책특권을 주기를 바란다”고 전제하고 고려학원 위기의 주원인으로 김해복음병원, 신대원 이전, 병원의 파업 등을 꼽았다.
김 총장은 또 “200억 마련과 정이사 체제가 정상화가 아니라 그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신학적 코람데오 정신의 상실과 개혁주의를 구호화해 삶에 실천하는 노력이 없었다. 이를 회복해야 정상화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고신대학교의 교수들이 각성하고 존재의의를 고민해야 한다 △ 신학대학원은 건물보다 교수들의 영성, 학문적 탁월성, 신앙인격, 화합에 매진하라 △ 복음병원 병원장을 세웠다면 1년이라도 기회를 주라 등의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만약 대학교와 병원이 힘들어진다면 총장으로서는 신대원 매각도 고려해야 한다고 본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이 주제에 대해서는 또 ‘고신교단 총회운영 측면에서’(이용호 목사), ‘교단정상화를 위한 종회운영방향 갱신안’(김철봉 목사) 등의 발제가 이어졌다.
이 목사는 “편견과 집단 이기심, 주관적 주장을 버리고 총회의 결의를 존중하여야 한다. 교단화합과 단결이 중요하다”는 골자로 발제했고 김 목사는 “향후 총회 주요문제나 쟁점은 공개적으로 의사 결정하여야 하고 결의사항은 이행여부를 감시하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뒤이어 이어진 전국장로연합회(회장 김태열) 등 교단 평신도 단체들의 요구사항은 “교단의 정체성을 회복하라. 제발 싸우지 말고 화합하라. 회개하라” 등에 모아져, 교회의 정신과 중심에 서야 할 교사들과 목사들을 도리어 평신도 단체가 만류하고 지적하는 고신의 부끄러운 현실이 연출됐다.
한편 총회임원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를 두고 고신이 당면한 광범위한 문제에 대해 7분간의 짧은 시간에 발제를 하게 하는 '백화점식' 구성으로는 어느 주제도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므로 주제를 한정해 집중하는 '전문점식' 심도 있는 포럼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