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목회자 생활비와 허위의식 [교계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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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목회자 생활비와 허위의식 [교계실상]


분류: 소식-교계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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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 간 극동방송에서 상담프로그램을 맡아 진행해 오면서 너무나 많고 다양한 사연들을 경험해 오고 있는데 생방송으로 전화를 받아 바로 진행되기 때문에 때때로 공개적으로 방송할 수 없는 사연들은 방송 후에 개인적으로 전화 상담을 하거나 인터넷이나 팩스로 받고 답할 때도 종종 있다.

최근에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님의 생활비 책정 문제로 갈등을 빚어 교회가 큰 시험에 빠져있는 상황에서 교회를 떠나겠다는 한 장로님과 오랜 시간 상담을 한 일이 있다. 상담을 하면서 그분의 논리적인 설명에 공감을 하기도 했고, 또 어떤 부분들은 그 분이 심각하게 잘못 알고 있다는데 기가 막히기도 했다. 기독교 언론들에 보도된 내용들과 인터넷에 실린 유명 목사님들의 글들을 읽고 목회자들의 생활비에 대한 확고한 자기 생각을 굳힌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소개해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글을 읽어보면서 더 기가 막히는 것을 느꼈다. 무책임하고 정직하지 않은 자기 과시적 홍보성 글들이 얼마나 많은 평신도들을 영적으로 왜곡시키는가를 알 수 있었다. 필자는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때때로 이와 매우 유사한 경험들을 하게되는데, 이런 경험들을 할 때마다 우리 한국교회에 아주 무서운 위선과 허위의식이 독사처럼 자리하고 있는 것을 느낄 때가 있다.

연말이 되어 교회 예산을 세울 때가되면 목회자와 중직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은 신경전과 긴장감이 감도는 경우들이 있다고들 한다. 교인들과 목회자들 사이에 더 드리고 싶은 심정과 덜 받고 싶은 심정이 되면 은혜롭지만, 덜 주고 싶은 심정 더 받고 싶은 심정이 부딪히면 시험에 빠지는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교회 헌법 예배지침 제3조를 보면 목사 위임식에서 행해지는 교인들에게 하는 서약을 보면 목회자 생활비에 대한 분명한 내용이 포함되어져 있다. 여러분은 저가 본 교회 목사로 재직 중에 한결같이 약속한 그 생활비를 어김없이 지급하며, 주의 도에 영광이 되고 목사에게 안위가 되도록 도든 요긴한 일에 도와 주기로 맹세합니까?

그리고 헌법적 규칙 제 17조에는 청빙 양식에는 분명히 생활비에 대하여 교회가 명시하고 서명 날인하여 노회와 당사자에게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회 안에서조차 교회 헌법에 명시된 목회자의 생활비를 두고, 그것이 ‘생활비냐’ ‘사례비냐’ ‘봉급이냐’ 하는 개념마저 정리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로 말미암아 많은 문제들과 오해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분명히 생활비라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때로는 사례금 심지어는 봉급이라는 표현과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음을 볼 때 유감스럽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법규와 서약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는 교회들도 다수라는 사실이다.

그것이 진정 생활비라면 그 의미는 교회가 목회자의 모든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목회자가 생활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분명한 사실이다. 큰 교회냐 작은 교회냐가 기준이 되어서 안되고 부양해야할 가족과 거기에 따르는 궁색하지도 호화롭지도 않은 적정한 생활비가 책정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를 보면 목회자 생활비에 대한 분명한 기준도 원칙도 없이 엄청난 양극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다. 최저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생활비를 받는 목회자와 연봉개념으로 본다면 수 억대 생활비(?)를 받는 목회자들까지 공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떤 목회자는 자녀들을 모두 외국에 유학까지 시키는가 하면 또 어떤 목회자는 대학 등록금은커녕 고등학생 자녀 학비 마련도 힘든 형편인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물질에 대한 욕구는 때로는 지나치게 필요 이상의 것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필자가 알기로는 대부분의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남들처럼 자식과외 한번 제대로 못시키고 치열한 대입경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대학 들어가길 기대하고들 있으며 은퇴 적립금마저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건축헌금이다 특별헌금이다 하며 해버려야만 하는 것이 대부분의 목회자들의 형편인 것이다.

한국교회 일각에서는 일고있는 담임목사를 위시한 교회 직원들의 기본급 평준화에 대한 개혁적 결단들은 신선한 충격을 주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제도의 도입에 따르는 기독교언론들의 과잉홍보로도 선의의 피해자들도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논리가 획일적인 잣대로 악용될 때, 개혁이란 이름을 가장한 허위의식으로 둔갑하고 만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할 것이다.

평신도들 가운데는 분별력이 없어 자기교회 목회자들에 대하여 오해하는 순진한 일들이 인하여 때로는 성실하게 목회현장을 지키며 교회서 받는 생활비에만 의존하는 목회자들에게는 심한 허탈감과 배신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그 분들 가운데는 모두 다는 아니지만, 기본급보다도 몇 배 더 많은 여러 가지 명목의 수당들을 받고 있고, 국내외 집회인도나 강연 세미나 등에 따르는 사례비들을 계산한다면 어쩌면 기본급은 물론 어떤 명목의 생활비나 사례금을 한푼도 받지 않아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분들도 있는 것이 또한 사실이
다.

최근에 생사를 건 개혁인지 목숨을 건 개혁인지 몰라도 목회자 정년문제도 그렇게 함부로 인기관리 차원에서 말하는 목회자들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큰 교회 목회자들이고 사회적 명성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그만두어도 생계문제는 걱정 없지만, 최소한 한국교회 90%의 이상의 목회자들은 하나님께서 빨리 천국으로 불러 가시지 않는 이상 은퇴에 따르는 생계문제가 막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들을 알고 하나님 앞에 좀더 겸손해져야만 할 것이다.

어느 대학 사회복지학과 학위논문을 쓰기 위한 앙케이트 조사였지만, 한국 목회자 87%가 나는 지금 적정한 생활비를 받고 있지 못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내가 모시고 신앙 생활하는 목회자들을 홀대하면서 선교니 구제니 외치고 있는 것도 우리들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일종의 허위의식이 아닐까? (갈 6:6), (빌4: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