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위장교회
서경석 목사님, 봉수교회 위해 기도해주세요
양국주의 하나님 백성 이야기
양국주(kukyang) [조회수 : 1932]
▲ 칠골교회에서 예배를 드린 뒤 교인들과 함께. (사진제공 양국주)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두 곳을 차례로 방문하였습니다. 칠골교회가 봉수교회보다 예배 시간이 길었던지 아님 늦게 시작하였는지는 모르겠으나, 두 곳의 예배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엎드리면 코 닿을 지척간이지요.
예배에 대한 저의 첫 번째 인상은 회중교회치고는 왠지 썰렁한 늦가을의 모습이었습니다. 설교하는 목사님도 원고에 써 온 설교를 읽는데, 신학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그러한 내용이었습니다. 기도도 그렇고 설교가 익숙하지 못한 모습, 크기가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사 입던 중학교 신입생 때의 모습이었습니다.
예배가 끝나고 저희들 소개가 있은 다음 흔히 외부 손님들을 환영하며 부르는 노래 “반갑습니다”가 성가대를 중심으로 흘러 나왔고, 우리는 몇 평 안 되는 공간에서 교인들과 함께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습니다. 코 끝이 찡해왔고 예배는 그렇게 끝이 났습니다.
계단에 나란히 서서 교인들과 기념 사진을 찍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 정담을 나누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그러나 가관은 조선그리스도련맹 위원장인 강영섭 목사를 껴안았을 때입니다. 밤 사이에 얼마나 술을 마셨는지 술 기운이 온 몸에 진동했습니다. 얼굴을 쳐다보니 루돌프 사슴마냥 코 끝이 빨갰습니다. 술로 찌들어 주독이 오른 것입니다. 주님 대신에 주(酒)님이 충만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현상은 칠골교회의 목사를 만났을 때에도 동일했습니다. 술 기운이 없으면 목사 노릇도 하기 힘든 세상이 북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들의 공허함을 보는 듯하였습니다.
자강도 묘향산을 방문하는 날 동행했던 북한 인사들끼리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아 글쎄 XXX 있잖아, 그 녀석 이제 중놈 티가 제법 나던데…….”
보현사의 주지로 일하는 친구가 얼마 전까지 해외총국의 스태프로 일하던 요원이었다는 것입니다. 북한의 불교나 기독교가 지난 1972년 12월 27일에 발표한 신헌법 제54조 “공민은 신앙의 자유와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종교의 자유를 대내외에 천명하기 위해 세워진 가면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것입니다. 천기를 누설한 셈이지요.
저는 북한을 다니면서 한 번도 저들이 복음적 의미의 교회 공동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엄연히 봉수교회는 조선그리스도교연맹에 소속되어 있는 조선노동당의 대남통일전략을 수행하는 전위기구입니다. 남한의 기독교를 상대하기 위한 대응 조직이지요.
서목사님께서 최근에 지피신 불 “봉수교회는 가짜다”는 선언은 어찌보면 너무나 타당하고 올바른 지적인 듯싶습니다. 저도 쌍수를 들어 목사님의 주장을 환영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요즈음 한기총에서 12월에 계획하고 계신 북한을 위한 기도회, 맨 앞 줄에 앉아 살아 계신 하늘 아버지께 목놓아 부르짖고 싶습니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 민족의 아픔을 생각하면 저도 가슴이 저려 옵니다. 그리고 통곡하고 싶습니다. 소위 정권을 가진 자는 반공을 국시로 독재를 합법화하는 빌미로도 사용하였고, 우리의 젊은 날은 이러한 세상의 어두운 영과 더불어 질곡의 아픔을 구토하며 살아 왔기 때문입니다. 보상 받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청춘이 처량하게 뒹구는 가을 낙엽 같습니다.
요즈음 미국에서 벌어진 통곡 기도회와 한기총이 주최할 북한 기도회를 앞두고 묵상해 봅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드려지는 절규이거나 과시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제목은 기도회인데 세상을 향해 우리 한국교회가 이만한 동원 능력을 갖고 있다는 전시 효과를 위한 대회가 아니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몇 가지 이유로 이러한 기도회에 대해 우려를 갖고 있습니다. 북한의 인권 문제는 매우 사려 깊게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제기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이 못 먹고 못 살았던 지난 1960년대나 70년대는 우리보다 북한의 실물 경제가 더 나았습니다. 남한이 사회정의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을 전개하고 있을 때 북한에 대한 어떤 캠페인도 할 수 없었습니다. 북의 "북" 자도 꺼내 놓기가 어려웠던 어둠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금 남한의 언로는 대통령의 권위도 깔아뭉개 버릴 만큼 최상의 자유를 누리고 있는 듯합니다. 이러한 사회를 위해 우리가 투쟁하였던가를 자문도 해봅니다. 그러나 예전보다 좋아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의 북에 대한 예찬은 과거의 정권 아래에서는 종신형을 언도해도 모자랄 만큼 감방이 넘쳐 났을 것입니다.
더욱이 북한에 대해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인권 문제도 제기하고 봉수교회 문제도 신학적으로 조명할 준거가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복음과 교회의 본질에 관한 이의를 제기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로 위장된 봉수교회 내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 나지 않는 한 봉수교회는 가짜라고 소리지를 것이라고 공언하셨습니다.
역시 서 목사님은 멋진 분입니다. 목사님다운 발상입니다. 그러나 저는 목사님과 좀 다른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일찍이 초기 개혁주의자들이 주장한 바와 같이 교회가 완전한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또 교회가 개혁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리스도인은 죄인이고 십자가의 보혈로 의인이 된 자들이라는 가르침과는 어긋나는 것입니다. 실제 보이는 교회의 구성원들이란 외형상으로도 세례를 받았다는 형식 말고 누가 진짜 택함을 받았는가를 판단하기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보이는 교회의 구성원들을 진짜인지 가짜인지 조사하기보다는 그들을 존경하고 그들과 함께 교제 받도록 요청받고 있다. 어떤 사람이 진짜 구원받은 자녀인가 하는 결론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그분의 절대 주관적인 일"이라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저와 같이 하나님의 의로 보기에 타락하고 절망적인 사람도 주님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대열에 끼어들 희망이라도 보이는 이유일 것입니다.
저는 봉수교회의 문제는 현재의 모습으로 보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미래의 목표로 보아 주실 수는 없는가고 묻고 싶습니다. 물론 지금의 모습으로 보면 그들에게 구원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봉수교회 밖에 있는 많은 하나님의 양들을 걱정합니다.
봉수교회가 조평통의 전위조직으로 하는 일보다 하나님께서 미래적 사건으로 이루어 나가실 보이지 않는 교회로 보았으면 합니다. 그 이야기는 선교적 관점에서 보시라는 이야기입니다. 목사님께서는 복음이 선포되지 않는 교회는 가짜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선교지를 돌아보며 제가 경험하는 수많은 현장 , 특히 선교 제한 지역 같은 곳에서는 목사님께서 주장하시는 복음의 선포가 드러내놓고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제 소견에 목사님은 일단 교회라는 간판을 걸었으면 복음이 선포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기준이 있으신 듯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이 남한과 같이 전도의 기회가 자유롭게 주어지는 현실과 동일한 위치에서 북한 교회를 판단하고 계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 물론 인권을 주장해야 할 입장에서라면 그러한 주장도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부분에서 먼저 목사님의 시각이 교정되었으면 합니다.
북한은 교조적 전제주의와 김일성 광신집단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이단아입니다. 그리고 전 세계에서 보이지 않는 교회를 핍박하고 하나님을 적대하는 적그리스도 집단입니다. 아마 선교 제한 지역 가운데에서 북한만큼 어두움과 두려움의 영이 인민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선교현장도 없을 것입니다. 서 목사님과 이라크를 다니면서 지난 35년 동안 100만 명도 넘는 이라크 영혼 속에 아버지를 의지하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얼마나 찬양하였습니까? 목사님께서 누차에 걸쳐 북한을 다녀 오셨기에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비교입니다.
저는 북한을 다니면서 이러한 아버지의 눈으로 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영이 있어서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에게 두려움의 영이 있기에 희망이 있어 보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그들에게 주님이 필요한 이유도 될 것입니다.하나님의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서 목사님.
간곡하게 바라기는 아버지의 심령으로 북한을 바라보십시오. 지금도 혼란스러운데 만약 통일이 이루어진다 해도 우리가 겪어야 할 민족 동질성의 혼란과 신학적 과제는 남북 간의 빈부 격차 해소 문제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봉수교회를 바라보는 관점이 이제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아이를 돌보듯 선교적 관점에서 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의인 열 명만 있었더라면 진노의 심판을 피할 수 있었던 소돔과 고모라처럼 북한에 남기신 김일성에게 무릎 꿇지 않은 열 명의 의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번 기도회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지난 50년 동안 무릎 꿇고 기도해왔던 회개와 기도운동이 다시 일어났으면 합니다. 그리고 북한 땅에 적그리스도가 뿌리고 간 가라지 때문에 하나님의 알곡들이 다치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시기 빕니다. 아버지는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힐 것을 염려하신 분입니다. 교회 안의 이리보다 교회 밖의 택함 받은 양을 염려하는 추수의 주인이신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가라지 때문에 알곡을 다치게 할 권위와 자유가 한기총과 서 목사님께 주어졌다고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께서 북한에 임한 진노의 도끼를 의인 열 명을 인하여 참으시는 줄 누가 알겠습니까?
2005년 12월 01일 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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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 목사, "봉수교회의 위장된 포장 벗겨야"
양국주 칼럼에 대한 서경석 목사의 반론
뉴스앤조이(newsnjoy) [조회수 : 1125]
양국주 대표님
봉수교회 문제에 대해 귀한 말씀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또 양 대표님의 말씀을 통해 봉수교회, 칠골교회에 대해 좀더 알게 된 것도 감사드립니다. 보현사 주지가 얼마 전까지 해외총국 요원이었다는 말은 처음 듣습니다만, 북한에서는 진정한 교회나 절이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양 대표님 말씀대로 봉수교회는 조선노동당의 대남통일 전략을 수행하는 전위 기구일 뿐입니다.
그런데 양 대표님이 하시는 말씀 중에 통곡기도회나 한기총 촛불기도회가 세상을 향해 드려지는 절규나 과시, 전시 효과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는데, 이 표현은 마음에 걸립니다. 대한민국에서 목사님이 명령한다고 해서 교인들이 무조건 동원되지 않습니다. 교인이 오는 것은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충분히 인식을 시켰거나 혹은 교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이미 충분히 알고 있을 때에만 가능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기도와 세상을 향해 드려지는 기도를 무 자르듯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제가 매일 드리는 기도는 “이번 촛불기도회에 꼭 30만 명이 모일 수 있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30만 명이 모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바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기도회를 하는 행동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세상을 향해 드리는 기도는 잘못되고 순수하지 못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홀로 골방에서 드려야 할 기도가 있고 세상 속에서 드려야 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지나간 70년대에는 유신체제를 반대하는 기도회만 해도 감옥을 갔습니다. 이 때의 기도회는 기도이자 행동이고 선언이었습니다. 지금도 상황은 비슷합니다. 북한 인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있음을 보여주지 않으면 한국정부의 정책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촛불기도회는 전시 효과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기를 눈물로 간구하고 있습니다.
봉수교회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완전한 교회는 이 세상에 없고 어느 교회가 택함을 받은 교회인가는 오로지 하나님만 아십니다. 그런데 지금의 봉수교회 진위 논쟁을 누가 진짜로 택함을 받았는가 하는 신학적인 토론으로 대치시키는 것은 토론의 초점을 흐리게 합니다. 저는 지금 원론적인 신학 토론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봉수교회 문제를 앞으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미래의 목표로 보고 싶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이유로 봉수교회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입니다. 봉수교회가 조평통의 전위조직임을 폭로하고 봉수교회를 덮고 있는 거짓의 포장을 벗겨야 비로소 봉수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양 대표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아버지의 심령으로 봉수교회를 바라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봉수교회가 바른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봉수교회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변하기 때문입니다.
봉수교회가 이제 막 걸음마를 떼기 시작한 어린아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벌써 17년이 지나갔습니다. 너무 긴 시간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한 발짝 더 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가짜의 현실을 드러내야 합니다. 봉수교회가 세워진지 17년이 지났으면 이제는 봉수교회에 대해 쉬쉬하면서 나누었던 가짜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봉수교회도 이러한 문제제기에 응할 나이가 되었습니다.
지금 봉수교회에서는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히는 것이 아니라 가라지 때문에 알곡이 뽑히고 있습니다. 봉수교회에서도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에 가끔 눈물을 흘리고 기도하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봉수교회는 그를 즉각 농촌으로 추방해 버립니다. 그래서 가라지 사이에서 몇 개의 알곡이라도 뽑히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도 봉수교회가 가짜임을 누군가는 고발해야 합니다.
양 대표님, 북한에 있는 의인 열 명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심을 참고 있다니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이 참고 계시니 한국교회도 북한 인권을 위한 기도회를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까?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지 않으셔도 좋으나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북한의 억눌린 사람들, 수용소에서 죽어가는 사람들, 강제송환되어 처형당하는 사람들을 살려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절규를 하나님께서 들어주십사 하고 우리가 기도드리는 것입니다.
양 대표님은 앞으로도 계속 북한을 다녀야 하는 상황인데, 이번 글을 보니 양 대표님의 말씀의 수위가 위험 수위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번에 말씀하신 내용만 가지고서도 북한당국의 분노를 충분히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처럼 북한 갈 것을 포기한 다음부터 말씀을 시작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소신 있는 바른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2005년 12월 02일 23:2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