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연합운동과 고신의 입장

일반자료      
쓰기 일반 자료 초기목록
분류별
자료보기
교리 이단, 신학 정치, 과학, 종교, 사회, 북한
교단 (합동, 고신, 개신, 기타) 교회사 (한국교회사, 세계교회사)
통일 (성경, 찬송가, 교단통일) 소식 (교계동정, 교계실상, 교계현실)

교회연합운동과 고신의 입장


최재호 am.9:31, Saturday ( 168hit )

교회연합 문제에 고신은 어떤 입장인가?




친숙한 "교회연합", 신학적 해석이 끝난 주제인가
교회의 하나됨 명령 vs 교회 순수성 유지


한국교회에 있어서 이른바 ‘보수교회(단)’들은 교회연합과 일치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가져야 하는가. 하나님의 교회들에 있어서 ‘하나됨’은 어느 정도의 의미를 담고 있는가. 신앙고백과 교리가 다른 기독인들은 서로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 어쩌면 이러한 질문들은 해묵은 축음기(蓄音機)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진부하게만 들리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어도 대표적인 보수교회로 구분되는 예장고신은 이러한 논의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직 교단 신학자를 겨냥해 ‘신앙고백과 교리적 하나됨 없이 일치를 전제로 한 연합활동에 나서는 것은 자유주의적인 신학을 용인하는 행위’라는 내용의 논문이 현직 신학 교수의 이름으로 교회 앞에 제출됐고, 총회는 그같은 자료를 바탕으로 해당 신학자를 “자유주의적 신학(연합관)을 가졌다”며 목사 제명 처분을 내렸다. 물론 이것이 특정 교단의 신학이요 공식적인 입장이라면 그것으로 끝날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증경총회장을 비롯한 교단 지도급 인사를 비롯, 교단 상당수 회원들이 교회연합운동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란 점에서 이 문제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신학적 해석이나 검증 없이 현실적 상황논리나 경우에 따라 교회가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은 결코 옳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정리해보면 공적인 결의나 입장이 도출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장고신의 소속 교회들과 교회원들은 이미 연합운동의 대열에 적극 나서 있는 형국이며, 그러한 가운데 그 일에 적극적이던 특정 신학 교수에게만 목사 제명 처분을 내린 것은, 현실은 물론 권징시행의 공정성과 합리성이 결여된 행위가 아닐까.

그러나 어찌 보면 이 문제는 고신만의 문제가 아니다. 보수적인 신학을 가진 교회(단)들에게 있어서 자기와 다른 신학을 가진 교회들, 특히 이른바 자유주의신학을 가진 교단과의 교류나 연합은 더 이상 외면할 수만은 없는 당면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예장고신의 신학 교수들간에 전개된 신학적 논쟁을 살펴보는 것은 동일한 상황 속의 한국교회에게 좋은 논의거리를 제시할 것이라 생각된다.

고려신학대학원의 최덕성 교수(교회사)와 이성구 교수(구약학)는 지난 2003년 11월 <뉴스앤조이> 인터뷰 기사를 둘러싸고 전개된 치열한 신학 논쟁의 정점에 서 있는 인물들이다. 물론 이 교수가 목사 제명 처분을 받았기 때문에 최 교수가 이 논쟁의 승리자라고 하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 논쟁의 시발(始發)은 이 교수가 기자와 행한 인터뷰에서, 연합의 전제조건을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라고 언급한 점을 최 교수가 적극 문제 삼고 나서면서부터이다(정확하게 말하자면 같은 학교 이승미 교수가 먼저 문제를 삼았으나 현재의 국면은 양자 간의 대결구도로 좁혀져 있기에 이 글에서는 논외로 하기로 한다).

1. 교회연합의 전제조건

먼저 최 교수는 고려신학대학원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교수논문집 <개혁신학과 교회> 제18호를 통해 ‘사도신경이면 고백공동체로 충분한가"라는 제목으로 이 교수의 신학사상을 공격한다. 최 교수는 “교회에 있어서 신앙고백과 교리는 뼈대나 울타리와 같은 중요한 역할을 감당한다. 그러하기에 신앙고백은 매우 중요하다. 이 교수가 교회연합에 사도신경 이상의 신학적 조건이 필요하냐고 반문하면서, 역사적 개혁주의가 고백해 온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대소요리문답 등을 중요하지 않다고 보는 것은 그가 고신이 고백하는 역사적 개혁주의 신학을 가지지 않은 신학자란 반증이다. 그러한 그의 논지는 과거 미국북장로교회의 좌경화의 핵심 인물이었던 외국선교부 총무 로버트 스피어(Robert Speer)나 호레이스 부쉬넬(Horace Bushnell)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고 비평했다.

또 최 교수는 “자유주의자들은 기독교의 본질이 교리가 아니라 생활이며 신조가 신앙과 학문,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고 유린한다고 본다. 교리는 교회의 연합과 일치의 방해물이므로 비교리의 전형인 사도신경을 고백하면 고백공동체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교수가 한 말은 자유주의 에큐메니칼 신학과 포용주의, 다원주의, 신앙무차별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에큐메니칼 사상에 다름 아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 교수는 같은 논문집에서 ‘사도신경으로 충분하다’란 제목의 논문을 통해 “사도신경은 역사상 가장 오래되었고 가장 보편적인 교회의 고백문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전제하고 화란 31조파 선교사로 고신에서 가르쳤던 고재수 교수의 <교의신학의 이론과 실제>란 책에서 ‘많은 신앙고백은 사도신경의 구조를 따라 신앙의 내용을 제시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그러한 범주에 해당된다. 사도신경은 교의학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는데 칼빈의 <기독교강요>도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라 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고 언급된 부분을 인용해 자신의 논지를 뒷받침했다.

이어서 그는 “한 하나님, 한 주, 한 세례를 바탕으로 하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하나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성경의 가르침이다. 그러나 이 말이 교리나 고백의 차이를 무시한 획일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고백과 직제(職制)가 다른 교회간의 일치에 관한 논의는 현재의 한국교회와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므로 최 교수의 주장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며 과격하기 짝이 없는 자신만의 추론”이라고 반박하고, “인터뷰에서의 대답은 각기 다른 신앙과 직제를 가진 세계의 교회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신앙고백일 것이라는 의미에서 상식적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아도 사도신경은 가장 보편성을 가지고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성경의 내용을 잘 요약한 고백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리고 교회일치에는 최 교수의 말처럼 신앙고백 뿐만 아니라 직제, 생활, 사업의 방향도 중요한 요소다. 내가 언급한 배경은 한국교회의 상황에 있어서 교회연합을 염두에 둔 발언이었는데도 최 교수가 그러한 언급을 교회일치의 그것에 적용시킨 것은 고의적이거나 아니면 그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답변했다.

2. 교리 지상주의, 성경관 논란
최 교수는 또 이 교수가 교리를 하찮은 것으로 여기고 성경의 권위를 격하시키는 성경관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 교수가 ‘역사적 신앙고백서는 배우지 않아도’, ‘사도신경 외에 여러 가지 신조를 말하고 신앙고백서를 운운하지만’라고 하는 것은 기독교의 역사적 신앙고백서와 교리, 신학을 평가절하하는 것이며 자유주의신학자들의 발상”이라고 말하고 “이 교수의 ‘성경론이 과연 어디까지 영향을 끼쳐야 하는가. 사실 신학자들이 대단히 위험하게 여기는 신학적 차이가 교회를 분리할 만큼 심각한 것인지 고민해봐야 한다’, ‘함께 부름을 입었다는 것을 알면서 홀로 옳음을 주장하며 남의 소리를 외면해 버릴 수 있겠는가, ‘생명력을 상실한 고답적인 교리지상주의만을 외치고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등의 말을 그 근거”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서 “이 교수는 개혁주의 성경론(무오성, 축자영감, 유기영감)을 믿는지 의심스럽다. 전승된 교리가 없다면 우리의 현 신앙이 기독교적인지 아닌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는가. 교리를 통하지 않고 기독교의 생명력인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 자신을 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갚라고 반문하고 “기독교의 생명력은 정통신학과 교리를 무시하고 새로운 인간적 비전을 만들어야 생기는 것이 아니라, 전승된 교리와 성경적 신학을 더욱 깊이 이해하고 말씀에 따라 시의 적절한 창의적 신학을 주조해 낼 때 유지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교회연합 문제를 두고 여러 가지 신조를 운위하며 연합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 땅에서 오늘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는 지극히 사변적인, 즉 공리(空理)의 틀에 갇힌 모습에 다름 아니다. 교리는 성경에서 나왔지만 성경은 아니다. 교리는 결국 교회의 성경해석 과정을 통해 생산된 인간의 산물이다. 따라서 교리들이 시대적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하거나 지나치거나 모자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렇지 않다면 한번 확정된 교리를 가진 교회는 더 이상의 교의학자를 필요로 하지 않고 더 이상 존재해야 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고 반론했다.

그는 계속해서 “최 교수는 일치문제를 따지지만 나는 교회연합이라는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할 따름이다. 결코 교회일치를 위해 교리적 차이를 버리자는 말이 아니나 최 교수는 그렇게 몰아가고 있다. 한국의 교회들이 분열의 실제 이유를 성경론과 성경해석의 방법론의 차이, 교리적 차이에 감추고 있는 것이 현실인데, 최 교수가 이를 무시하고 무조건적 일치를 주장한다고 몰아붙이는 것은 그가 얼마나 사변적 신학을 가지고 있는지의 반증”이라고 공격했다.

3. 한국 장로교회 안의 자유주의자 유무

최 교수는 상기 언급된 인터뷰 기사에서 이 교수가 ‘한국장로교회 안에 자유주의자가 없다’고 한 부분도 주목한다. 그는 이 교수가 후에 총회에 제출한 소명서에서 “기장을 자유주의교회라고 할 수 있는지 총회가 규정지어 볼 수 있으면 한다. 혹 개인(별)적으로 장로교단 안에 자유주의신학을 가진 학자가 있을 수 있다. (교단들이) 그들의 신학적 작업을 학문의 영역으로 묵인하고 있을 뿐 한국의 어느 교단도 자유주의신학, 종교다원주의를 공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고 이는 자유주의사상 때문에 연합일치를 못할 까닭이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고 해석한다.

최 교수는 “교회(교파)는 신앙고백공동체이다. 그 교회를 대표하는 노회나 총회가 자유주의 신학자나 그 신학을 추종하는 자를 지지하거나 용납할 때, 제재하지 않을 때 그 교회나 교파를 자유주의교회라고 보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그 교회 안에 정통신학을 고백하는 다수의 개인들이 있다고 교회의 공식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고 전제하고 “이 교수는 자유주의신학자, 신신학자, 종교다원주의자가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학문의 영역으로 간주, 허용할 수 있다고 보는 점과 교회가 소수의 자유주의자, 종교다원주의자를 용납하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점에서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서 “이 교수가 공교회로서 한국장로교 안에는 ‘그리스도의 양성, 동정녀 탄생, 육체부활을 부정하는’ 자유주의를 공인하는 교단이 없다고 해명하는데 이 정의에 따르면 김재준, 문희석, 윤성범, 변선환, 정현경, 김경재는 자유주의신학자가 아니다. 세계교회협의회도 자유주의신학을 바탕으로 하는 에큐메니칼 단체가 아니다. 슐라이에르 마허나 리츌, 불트만, 로빈슨도 자유주의자가 아닐 수 있다. 장로교 기장도 자유주의와 무관하고, 출옥성도들이 자유주의신학을 선전하는 조선신학교에 목회자 교육을 맡길 수 없다며 설립한 고려신학교도 무의미한 것이 되고, 고신교단이 자유주의신학을 배격하며 ‘정통신학운동’을 기치로 내건 것도 허황한 일이 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또 “어느 교회가 공적 고백서에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대속죽음, 육체부활, 이적, 성경의 권위 등을 부인하면 더 이상 기독교회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그런 교회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공적 문헌에 자유주의를 공인하는 교회가 없다고 한국교회에 자유주의 교회가 없다는 논리는 성립되지 않는다”면서 “이 교수의 이 주장은 보편성이 결여된 주장이며 오히려 자신이 자유주의자라고 입증하는 논거가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에 대해 이 교수는 “최 교수가 교리를 무시하고 일치를 주장하는 것은 과거 자유주의자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전제를 가지고 나를 자유주의자로 몰고, ‘한국교회에 (공적으로) 자유주의자(를 인정하는 교회)가 없다’는 인터뷰에서의 언급을 근거로 급진적 자유주의 신학을 수용하고 다원주의를 허용하는 기장교회의 신학에 동조하는 자유주의라고 말하는 것은 ‘놀라운 추리력’의 발휘”라면서 “(최 교수가 자유주의신학을 가진 교단의 대표라고 언급하는) 기장교회도 고신이 1969년까지 유일한 신조로 삼아온 인도장로교회의 12신조를 고백하고 있으며, 그들 교리 어디에도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부정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기장교회는 대부분의 보수적인 교회들보다 다소 진보적이라는 표현이 더욱 어울린다고 할 수 있을 뿐”이라고 논박하고 있다.

그는 또 “최 교수는 역사상 공적 고백문서에 근본도리를 부정하는 고백을 담은 교회는 없었다고 단언하는데 재세례파나 유니테리언, 크리스찬사이언스, 안식교 등 어떤 단체든 자신이 믿는 바를 교리에 포함시키지 않는 교회란 존재할 수 없다. 최 교수는 그같은 언급은 사실 자유주의를 주창하는 교회들이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뿐”이라며 “다른 교회의 고백을 불신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것은 완전주의적 자세를 드러내는 것이다. 타인의 고백을 마음대로 거짓으로 규정하는 권한을 누구로부터 부여 받았는가"라고 반문했다.

* 이 기사는 교회연합을 둘러싸고 보수교단에서 전개되는 쟁점 중 일부에 대한 기사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 기사는 대안모색보다는 문제제기 수준의 글에 지나지 않는다. 몇 차례 양측의 주장을 소개하고 한국교회 앞에서 공개포럼을 통해 해답을 모색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