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나운몽의 용문산 운동
1950년대와 60년대 나운몽 당시 장로님의 용문산에서 신앙생활하던 분들 중에 핵심교인과 많은 분들이 서부교회로 소속을 변경하여 들어온 적이 있어 관련 자료를 살펴보았습니다.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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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
제 137호 2001. 3. 15. (1985. 3. 15 창간) 발행및 편집: 나서영
이 소식지는 용문산을 사랑하고 위해 기도하며 서로 작은 소식이라도 들으면 반가와할 사람들을 위하여 한달에 한번 정도 부정기적으로 발행되고 있습니다.
꿈에, “나운몽목사에게 가서 기도 받으라"
1992년 기도하다 잠이 들었는데 꿈에서 “나운몽목사에게 가서 기도를 받으라”는 소리를 들었다. 잠에서 깨어나 나운몽목사님이라는 분이 한국 교회에 계시냐고 옆에 권사님에게 물어 보았다. 그 권사님이 복음신문을 가지고 와서 숙장님의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때 숙장님을 사진으로나마 처음뵙게 되었는데 자상하신 아버지 같은 느낌을 받았다. 93년 가방 하나 당랑 들고 용문산을 찾아갔다. 조규숙목사님의 도움으로 기드온신학교를 졸업하고 오늘날 목사안수까지 받게 되었다. 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결코 주님을 실망시키지 않는 종이 되겠다고 다짐한다. (3월 20일 목사안수받는 심효숙전도사 편지 중에서)
존경하는 스승 나운몽목사님과 사모님
먼저 주님의 이름으로 축하드립니다. 미수를 맞이하셔서 정말 감사를 드려요. 샤론동산에서 맞이 했을 때는 90세를 넘기실까 했는데 120세를 맞이하실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셔서 나성산기도원에서 창조와 개조, 요한계시록을 다시 강의하실 그날을 꼭 기도하겠습니다. 다시 축하드립니다. 박연님 서인애 임명숙 드림 나성산기도원에서. (편집자주: 이 편지는 축하금을 보내오며 쓴 편지임. 이경숙수도사는 앞서 편지와 축하금을 보내온 관계로 여기서는 빠짐.)
“태어난지 88년 결혼한지 60년”
“노병은 건재하다” 책을 미수연을 기하여 출간하셨다. 그동안 복음신문에 같은 제목으로 연재하던 글을 모아 책을 낸 것이다. 88세 미수 (八十八=米)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글 쓰시고 설교하시고 건강하시다. 81세 사모님과 함께 두분 다 건강하시어 올해 결혼 60주년을 맞으셨다. 김천 파크 관광호텔에서 1월 30일 미수 및 회혼연을 열었는데 하객이 약 250명이었다. 예상 밖에 많이 와 자리가 없어 서 있는 이들이 수십명 되었다. 12시 감사예배를 드렸는데 사회 나서영목사, 기도 유영숙수도사, 설교 강종우목사, 축가 신광철목사, 애향원 중고등생들, 축사 원동만목사, 축도 김익규목사. 예배후 자손들을 필두로 수도사들, 동문들, 하객들이 숙장님 내외분께 절을 하였다. 점심은 부페로 1시쯤 시작하였다. 김천시장이 난화분을 보내왔고 김천신문에 이날 숙장님의 수연과 회혼연 기사가 크게 났다. 제목이 “태어난지 88년 결혼한지 60년”이었고 사진을 함께 실었다. 숙장님이 이날 입으신 양복은 최상급 맞춤 양복으로 원외 수도사 중에서 맞춰드린 것이다.
숙장님 동정
3월 6일(화)부터 새벽마다 요한계시록 강의하신다. 숙장님은 미국에서 하바드출신 박사, 목사들이 숙장님에게 요한계시록 강의를 부탁했었던 일을 말씀하시며 교인들에게 녹음을 하며 들으라고 하셨다. 김선혜사모님은 이번 겨울 애향촌 길 얼음판에서 낙상하여 근 두달 간 고생하셨다. 나서영목사는 지난 학기와 마찬가지로 대전 배재대학에서 종교학을 강의하고 있다.
원내 소식
* 1월 1일 1시부터 원내 전 성도들이 차례로 구국기도하였고 신년축하예배 드렸다. 숙장님 설교. 12월 31일 주일 낮 공동의회로 모였고 점심은 새별식당에서 공동식사하였다. 이 공동식사는 이양순권사(여선교회장)가 개인으로 제공하였다. 저녁에는 회개의 밤을 가졌다.
김천 박팔용시장이 12월 27일(수) 내산하여 숙장님으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용문산 도로확포장에 대한 감사다. 당회원들과의 다과회에서 박시장은 원내 길도 포장하겠다고 약속하였다.
* 원내 신용협동조합이 신협법 86조에 의하여 지난 12월 27일 금융감독원으로부터 6개월 영업정지 명령을 받았고 현재 금융감독원이 파송한 직원이 채무 채권 현황 파악을 하여 확정하기 위해 실사를 하고 있다.
* 2월 5일(월)부터 목요일까지 2.7절 성회. 강사 숙장님과 원내 목사, 수도사.
* 수도생들이 수도중이다.
* 3월 4일(주일) 원내 성도 예배후 모두 함께 식당에서 점심. 애향원 김윤성선생 모친과 애향원 직원들의 성금과 여선교회 봉사로 공동식사가 이뤄짐.
* 3월 9일(금) MBC TV 9시 뉴스에 사사봉에 자연훼손하여 집들을 지었다고 보도되었다. 다음날 상주시청과 김천시청 공무원들이 용문산 사무실에 와 철거하라고 요청하였다. 사무실 당국은 그 건물들은 사무실 모르게 지은 구조물들이라고 말하였다. 3월 25일까지 철거하라 하였다.
애향원 아동들, 가정집에서
애향원에서 계절마다 발행하는 애향지가 나왔다. 이번 발행된 2000 겨울치는 아이들의 꾸밈없이 솔직한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같이 실렸다. 애향원 아동들이 봄방학을 맞아 2월 26일-27일 김복기사모 친청집의 초청으로 가정집에서 한번 자 보고 충주호, 수안보 온천과 동해 바다를 돌아왔다. 동해바다에 가서는 그 추운데 한발씩 조금씩 바다물에 들어가 옷을 버릴 정도로 들어갔다. 바다가 좋다며 나올 줄을 몰랐다. 새학기가 되어 한민수, 이인수는 장학금을 받았다.
용문산수도원 홈페이지 개설
2월 17일(월) 인터넷에 용문산수도원 홈페이지가 개설되었다. 수도원 소개와 기도원들 소개, 수도사들의 신앙실화가 실려 있다. 수도사들의 신앙실화는 40여개가 실렸는데 그중 몇 개만 열거하면 박연님수도사의 옆구리에서 "빨리 병원 가야해," 서인애수도사의 갑갑해 깨어보니 강도들이 목을, 김상화수도사의 하늘의 평안이 있는 곳, 양예자수도사의 적금통장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려와, 박점이수도사의 저수지에 빠지며 머리깍이며, 유영숙수도사의 모태에서부터 수도사로 택함받아, 이연우수도사의 에이즈병든 청년을 내보내다가, 등등이 있다. 홈페이지 주소는 http://my.netian.com/~yongmunnun 이다. 앞으로 수도사들의 간증이 더 필요하고 사진들도 더 필요하다. 각 기도원에서는 기도원 최근 사진과 현황을 유영숙수도사에게 써 보내면 홈페이지에 바로 반영될 것이다.
박태득목사 부흥회
박태득목사가 강원도 진보순복음제일교회 (이창재목사)에서 2월 26일부터 3월 1일 새벽까지 부흥회를 인도하였다. 교인들의 은혜 사모하는 열이 대단하였다. 집회 시작 한시간 전부터 모여와 기도하고 찬송 열열하게 하였다. 집회 매 시간 초기 성령역사 때처럼 성령역사가 대단하였다. 이창재목사는 집회시간에 용문산 구국제단을 민족을 살리는 제단이라 자주 소개하였다. 이목사는 불주장하며 교인들에게 뜨거운 신앙을 갖게 하여 그 지역에서는 제일 큰 교회로 성장시켜 2층 교회당을 7억 들여 지었다. 이웃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이목사는 교인들에게 다 가서 은혜받으라고 보낸다. 그러나 이목사 교회에서 부흥회하면 이웃교회에서는 한 사람도 보내지 않는다.
김문기수도사 회갑연
김문기수도사 회갑연이 김천관광호텔 식당에서 3월 5일(월)에 있었다. 11시 반에 감사예배를 드렸다. 나서영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예배에서 숙장님은 시편 92편 12-15절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리라”는 말씀으로 설교하셨다. 유영숙수도사 대표 기도, 박태득목사 축도하였다. 특이한 순서는 30여명의 하객들이 돌려가며 차례로 김수도사에게 단 마디 축복의 말을 해 주는 순서였다. 갖 가지 축복 중에 몇가지만 들어보면 “하늘의 면류관이 빛나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소원을 주시고 그 소원을 아뢸 때 주께서 이뤄주시기를 바랍니다” “건강해서 장수하기를 바랍니다” “영육간에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 “즐거운 일이 많으시기를 바랍니다.” 케이크 자르며 회갑 축하합니다 노래를 다 같이 부르고 팡팡팡 요란스레 축폭이 터지고 박수소리 요란하였다. 잔치는 김영례숙생이 주선했고 어느 목사사모님이 돈을 보내 와 차린 것이다. 김천 관광호텔 주인 내외는 용문산에 자주 와 구국기도를 한다고 한다.
동문 쎄미나
2월 19일(월)부터 2박 3일간 동문쎄미나가 논산 도곡산기도원(양예자수도사)에서 열렸다. 나종도목사 정남열목사 원동만목사 이병만수도사가 강사로 선정되었는데 정남열목사는 입원하여 수술받는 일로 불참하고 대신 박길찬목사가 섰다. 강명구목사가 배와 떡을 해 왔고 박승국목사가 음료수를 제공하였다. 이남태목사와 홍기전도사는 헌금해 주었다. 둘쨋날 단체로 유성온천에 가서 목욕을 하였다. 저녁 예배후 친목회와 동문발전 토론회를 가졌다. 끝나는 날 임시총회를 가졌는데 특별히 결의 사항은 없었다. 예상보다 많이 모이지는 못하였지만 알찬 모임이었다. (한동호수도사 제공)
독립교회연맹 목사고시와 안수식
2월 22일 용담교회에서 독립교회연맹 (총회장 강종우목사) 목사고시가 있었다. 응시자는 황순종, 정지한, 심효숙, 김태권전도사였다. 정억수전도사는 지난번에 합격하였고 안수만 받지 않았으므로 이번에 시험 면제. 3월 20일(화) 11시 산막교회에서 5명의 목사 안수식이 있다.
월성산기도원에 베다니 노인의 집
경주 월성산기도원(박점이수도사)에서는 오갈데 없는 노인들, 혼자 거동하지 못하는 노인들, 치매나 병 등으로 시설에서 보호받아야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보호 받지 못하는 노인들을 돌보는 베다니 노인의 집을 개설한지 1년쯤 짓되었다. 현재 입원하려고 신청하는 노인들이 많으나 시설 부족으로 다 모시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새해에는 시설 확장하려고 한다. 이들을 돌볼 자원봉사자들도 교회별로 많아지고 있다. 기도원 주변 교회들의 여선교회 회원들이 주로 후원하고 봉사한다. 이들은 매달 후원금을 보내는 이들이 있고 반찬을 만들어 오거나 식품을 사오는 이들, 생활물품을 갖고 위문 오는 이들, 직접 노인들을 목욕시켜 주고 방 청소해 주고 이발해 주고 말벗이 되어 주는 이들이 있다. 어떤 교회는 회원들이 동원되어 식품을 갖고 와 식사를 만들고 차려 주기도 한다. 전혀 예수님 모르던 노인들이 베다니 집에 오기만 하면 100퍼센트 주님 영접하는 것을 보고 박수도사는 힘들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보람을 느끼고 있다.
김태권전도사, 다시 세화교회 문 열어
김태권전도사는 본래 제주도 세화교회 담임 전도사였다. 목회하면서 생활이 안되자 교회를 버리고 택시운전사로 전업을 하였다. 수년간 택시 운전하며 밤낮 열심히 택시를 몰았다. 돈도 잘벌었다. 또 소속 회사에서는 제일 모범 운전기사였다. 그러나 세화교회는 목회자 없이 그동안 비어 있었다. 지난해 가을 갑작스런 일이 일어났다. 같은 회사 택시 하나가 버스와 충돌하여 택시기사와 승객이 죽는 일이 있어났는데 김전도사에게는 그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다음 번에는 네 차례라는 음성이 마음 속에 메아리쳤다. 하나님께서 목회자로 불러주셨는데 맡아보던 교회를 팽개치고 먹고 살겠다고 택시운전을 하였던 것을 회개하고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다. 하나님께서 히스기야가 폐문되었던 성전 문을 열고 성전을 성결케하고 다시 제사드리기 시작한 말씀을 주셨다. 김전도사는 세화교회로 돌아가 정월 초하루 교회 문을 다시 열었다.
간단한 소식
* 12월 23일 죽전교회(정선희수도사)에서 정환복집사의 장로장립식이 있었다. 독립교회연맹 총회장 강종우목사의 집례로 진행되었다. 숙장님 설교하시고 수도사들의 대표기도와 축사가 있었다.
* 나평강선생, 김초자전도사 둘째 딸 성덕양이 2월 17일(토)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사학연금회관 예식장에서 강재원군과 결혼.
* 고 이종희목사 둘째 딸 이현진양이 2월 24일(토) 오후 2시 박광재목사 교회 영광교회에서 한병주군과 결혼. 박광재목사가 주례. 신랑은 전도사.
* 묻는 이들이 있어 필요한 분들에게 알려드립니다. 나운몽숙장님 온라인 통장번호: 우체국 701680-02-038771.
새롬교회 창립당시 교단대표들 모여 순서맡아
김광본목사(기드온신졸)가 대전에서 새롬교회를 창립할 당시 한국 기독교 총연합회 교단 대표들이 모여 순서를 맡았다. 장로교단, 감리교단, 성결교단, 침례교단, 총회장들이 순서를 맡았고 한남대 김수철박사와 각 기관 대표들과 300여명의 축하객들이 모인 가운데 대신고등학교 실내 악단 주악과 당시 곽규석집사를 비롯 많은 연예인들의 특송이 있었다. KBS와 MBC 그리고 12개 신문사에서 창립소식을 보도하였다. 지난해 6월 6일 새 교회당을 완공, 감사예배를 드렸다.
응답산기도원에 에이즈환자가 왔다가
한 청년이 응답산기도원에 찾아갔다. 이 청년은 나병환자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병이 아니라 에이즈 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이는 그때 마침 A대 의대 교수가 기도원에 들렸는데 이 수도사의 손을 끌었다. "원장님 큰일 납니다. 빨리 내 보내십시오. 에이즈 병은 치료도 안됩니다." 이 수도사도 이 박사의 말에 동의해 청년에게 여비를 주며 "오늘 중으로 떠나시오"라고 말했다. 이 청년은 이 명령에 소리내어 울었다. 저는 갈 곳이 없습니다. 응답산 기도원 마저 저를 버리면 공동묘지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이연우 수도사는 할 수 없이 청년과 함께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심으로 치유에 심혈을 쏟았다. 청년이 금식 기도한지 20일 되는 날이었다. 이 청년이 대성통곡했다. 죄사함을 받고 죄에서 해방되면서 에이즈 병이 치료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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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3월 15일 소식지 제 137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