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제헌국회 기도로 시작했다
1948년 5월 31일
1948년 5월31일 오후 2시 제헌국회 개원식장(옛 중앙청 회의실). 역사상 최초로 실시된 5?10 총선거를 통해 선출된 제헌국회 의원 198명(제주 2개 선거구는 4ㄷ·3사건으로 선거 연기)은 결연한 모습으로 식의 거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앞서 임시의장으로 선출된 이승만 박사가 단상에 올라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회 제1차 회의를 열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바입니다. 먼저 이윤영씨 나와서 하나님께 기도드리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공식 회의 순서에도 없는 기도를 감리교 목사 출신 이 의원에게 부탁한 것이다. 순간 긴장감이 감돌았다. 누구보다 놀란 것은 이 의원이었다.
제헌국회 의원 중에는 이 의원을 비롯해 오택관 이남규 오석주 등 4명의 목사가 있었다. 평신도로서 이승만 김동원 김상돈 강영옥 윤치영 황두연 서용길 윤재근 홍성하 정준 등이 있었다. 기독교 사학자 김수진 목사는 “전체 의원 198명 중 크리스천 의원은 50여명에 달했다”며 “그중 30명은 신우회까지 조직,교섭단체를 구성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의원들이 모두 일어선 가운데 이 의원은 “하나님께서,…우리 민족과 함께 앞으로 길이 독립을 주시고 평화를 세계에 펴게 하시와 자손 만대에 빛나는 역사를 전하는 자리가 되게 하여 주소서”라는 요지의 기도를 드렸다.
대한민국의 첫 헌법은 이 기도의 정신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의원은 헌법기초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참여했으며 초대 내각 총리로 물망에도 올랐다. 수많은 기독교 인사들은 불안한 광복정국을 봉합하는 촉매제가 됐다. 원래 주일(1948년 5월9일)에 치러지기로 했던 총선일도 기독교계의 반대로 변경됐다. 비록 기독교 국가는 아니지만 현재 국회조찬기도회 (사)국가조찬기도회 등을 통해 기도하는 국회?국가라는 인식을 세계에 심어주게 된 것도 제헌국회 첫날의 기도 정신이 계승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크리스천 리더십이 이 사회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는 곱씹어봐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이승만 대통령의 통치와 한국 기독교 교세의 신장 사이에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하지만 한국을 아시아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고 했던 그가 독재자로 낙인 찍히게 된 것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된다는 분석이다.
김 목사는 “제헌국회의 첫날 기도 정신이 제대로 이어지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다”며 “크리스천 의원은 시류에 야합하는 모습을 보여서는 안된다. ‘아름다운 왕따’가 되기를 자청하고 ‘짠맛’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 사학자 조병호 박사는 “국회의원은 공사 및 소유 관계가 분명하고 연고에 의존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며 시종일관하는 정치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울 왕과의 대립 속에서 공의와 정의를 이루는 민족이 되게 하겠다는 비전을 실천했던 다윗 왕과 같은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57년 전 이 의원의 기도가 제17대 국회의원들의 마음 속에서 공명을 이루고 행동하는 양심으로 이어지기를 이 땅의 크리스천들은 바라고 있다.
국민일보 함태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