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 선교 강의 - 2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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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선교 강의 - 2 ( // )


선교는 제사장의 직책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기를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고 하시며, 그의 후손이 창대한 민족을 이룰 것이라“고 하시면서 또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해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고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아브라함은 아직 자녀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었고, 하나님은 그러한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창 12:3, 15:6)

이때 하나님은 ‘그의 후손이 그를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지 않으셨음을 유의해 보자. 하나님은 ‘세상 모든 족속’이 곧 세상 인류가 그를 인해 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복”. “복의 근원” ...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보다 더 큰 복이 어디 있는가? 이 말씀은 곧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과 세상인류 곧 아담 안의 모든 죄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구원받게 될 것을 약속하신 것이다. 이때도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믿었고, 그래서 자신의 후손 중에서 그리스도가 오실 것이라는 생각만으로도 기뻐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험 후에 이 약속을 다시 확인해주셨다. “네 씨가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그 후에 하나님은 다시 그의 손자 야곱에게도 같은 약속을 거듭해 주셨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후손을 통해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루실 계획이셨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세상 모든 족속, 곧 이 세상의 모든 인류, 죄인들에게 큰 관심이 있으셨다. 이것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과도 일치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창 22:18, 28:14, 요 3:16)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고, 이스라엘은 지극히 높으신 창조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친백성’ 곧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고 선언하실 때 대단히 감격했을 것이다. 또 하나님은 시내산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하셨다. 이스라엘이 모든 나라 중에서 제사장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이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은 또다시 감격하고 어깨는 우쭐하고 올라갔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속으로 다른 나라들을 멸시하기 시작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개 정도로 취급하기에 이르렀다.(출 19:6)

그러나 제사장이란 무엇인가?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부러움을 받으며 뻣뻣한 목으로 앉아 있는 직책인가? 본래 제사장의 임무는 하나님 앞에 백성들의 죄를 고하며, 하나님께 희생 제물로 제사를 드려서, 죄의 용서를 구하는 백성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과연 제사장 나라였다면, 제사장으로서의 이스라엘은 어떤 일을 해야 했는가? 제사장 이스라엘에게는 다른 나라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해주고, 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그들을 하나님 앞에 화목케 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책임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제사장의 직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대체적으로 그 제사장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하기 보다는, 그들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백성이라고 우쭐하는데 그 제사장의 지위를 낭비해버렸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을 이방인이라고 멸시했으며, 자기 나라만이 하나님 앞에 특권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자부심을 높이 세웠다. 제사장의 직책으로 볼 때, 이스라엘은 그다지 성공적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마음은 “나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지 못했다.(겔 33:11)

하나님은 세상 모든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어찌할 수 없는 죄인을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어린양 희생제물이 되신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완전했기에, 이제 더 이상 죄가 죽음을 요구할 수 없었다. 죄의 값이 다 갚아졌기 때문에 사망이 더 이상 의로우신 예수를 붙들고 있을 수도 없었다. 예수는 부활하셨다.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고전 15:55)

모든 사람의 죄는 다 갚아졌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된다. 천하 만민에게 구원 받을 바로 그 이름이 주어진 것이다.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주님은 먼저 구원받은 우리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명하셨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이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그들의 말이 통하고 발걸음이 닫는 곳마다 찾아갔다. 그렇게 해서 이 구원의 복음이 전해졌고, 1백2십년 전에는 태평양 북쪽에 있는 이 은둔의 나라에까지 그 기쁜 소식,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다.

이제는 구원 받은 우리가 곧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다. 택하신 족속이니 자부심을 가지라는 말씀인가? 왕 같은 제사장이니, 사람들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말씀인가? 그런 말씀이 아닌 정도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으로도 알 수 있다. 우리는 그 거룩한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과연 제사장으로서 직책을 다하고 있는가?(벧전 2:9)

제사장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 직책에 대해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주님 앞에 자기 죄의 용서를 구하는 일을 제사장의 직무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누구든지 각자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제사장이란, 자기 죄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함 받도록 구하고 하나님과 화목케 하는 직책을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그 제사장의 직책이 주어졌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 곧 하나님의 진노 속에 들어있는 죄인들을 위해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제사장은 죄인들을 멸시하고 등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 영혼이라도 멸망치 않고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영혼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힘을 다하는 사람이다. 2천 년 전에 사도들은 그렇게 했다. 또 많은 믿음의 사람들, 신앙의 선진들이 또 그러한 제사장의 삶을 살았다. 이제는 우리에게 그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는 자신이 과연 성실하게 그 직책을 수행하고 있는 제사장인가? 아닌가?

지금도 이 세상 족속 중에는 복음을 들을래야 들을 수가 없어 영원한 멸망으로 사라져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약 3천 족속이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그들이 그렇게 멸망하는 이유는 단 하나, 아직 한 사람의 제사장, 곧 먼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그들 속에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복음을 듣지 못하고 영원히 지옥 가는 것은, 복음을 들었지만 끝내 믿지 않고 지옥 가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이야기이다. 전자는 우리 제사장들의 무지와 불성실 때문이고, 후자는 그들 들은 사람들의 교만과 악심 때문이다. 복음을 듣고서도 멸망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그들의 책임이다. 그러나 복음을 듣지 못했기 때문에 멸망한다면, 그것은 전해야 할 우리들의 책임이다.

가끔 이 복음 전하는 일, 선교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것은 아마도 선교 사역 그 자체를 부정해서라기보다는 먼저 선교를 한다는 사람들의 동기와 태도에 어떤 문제가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때 우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일은 다른 사람들의 잘못 때문에 선교 그 자체를 외면하고 소홀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옳은 대상을 찾아 옳은 방법으로 선교사역을 하는 것이다. 한 세기 전에 우리나라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 들어와 성실하게 제사장 직책을 다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구원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우리 차례이다. 자신을 제사장이라고 인정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실하게 이 직책을 감당해야 할 차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