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계 친일청산 움직임 등
한국 교회 ‘친일 청산’ 움직임 어떻게 / “교회 정체성 회복 위한 의무”
기독교 대학 ‘학원 친일청산’ 계기로 “교계과오 회개” 주장 잇따라 ‘불가피론’ 적극적 참회 가로막아…공적 논의의 장으로 끌어와야
최근 대학가의 ‘학원 친일청산’ 움직임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는, 근대 민족교육을 위해 대학을 세운 설립자 또는 교육지도자들이 일제 강점 아래서 저지른 친일행적을 밝혀 교육계의 과거사를 바로잡겠다는 자발적 학생운동이다. 기독교 학교인 연세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눈에 띈다. 연세대 학생들은 백낙준 초대 총장 등의 친일전력을 제기하고 동상철거, ‘유억겸기념관’ 명칭 바꾸기 등을 요구하고 있으며, 이대 학생들은 ‘김활란 상’ 폐지와 동상철거를 주장하고 있다. 백낙준, 김활란 박사는 대동아전쟁 당시 일제의 전쟁동원, 학병제 등을 지지한 대표적인 기독교계 친일인사로 꼽힌다.
연세대는 5월 27일 이례적으로 학교 측이 토론회를 마련하고 친일청산을 주장하는 학생들과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연세대 국학연구원과 국가관리연구원 등은 초대총장의 교육 공적을 기려 친일행위를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좋다는 입장을 밝혀, 학생들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대학가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동안 교계에서도 친일청산은 쉽게 손대지 못한 숙제였다. 예장총회의 경우는 총회에서 공식적인 회개절차를 밟긴했지만 교회사학계에서조차 ‘친일 논쟁’을 금기시하는 분위기였던 것. 작년에는 심지어, 대표적인 한국교회사학자가 “‘그 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이들은 그 시대와 그 시대 인물을 평가할 수 없다”며 ‘70대 이하 친일 논쟁 금지’를 주장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과거사 청산과 관련해, 그의 주장은 일개 학자의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교계 역사학계의 보편적인 인식이기도 하다. 진보성을 대표하는 기장에서도 교단 50주년(2003년)을 맞아 소장파 목회자, 학자들이 교단의 친일청산을 적극 제기하기도 했으나 반향을 얻지 못한 채 사위어들고 말았다.
그럼에도 한국 교회가 저지른 친일행위로, 엄연히 청산해야 할 과제로 남아있는 것은 신사참배(우상숭배)와 전쟁물자 및 무기 제공, 지원병과 ‘위안부’로 신자들을 전쟁으로 내몬 것, 신사참배 거부자에 대한 파면, 해방 후 과거사 청산 요구를 거부하고, 오히려 교회분열을 방치한 점 등이다.
그 동안 교계에서 과거사에 대한 회개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1992년 한경직 목사가 신사참배를 회개한 것과 2003년 서울 향린교회 조헌정 목사가 조부 조승재 목사의 친일행적을 고백한 것이 그 예. 그러나 이 같은 회개는 개인의 고백에 그쳐 한국 교회 전체의 회개 운동으로 확산되지는 못했으며, 지난 3월 열린 교계 원로들의 회개기도회에서도 한국 교회의 친일역사는 죄책목록에 오르지 못했다.
한국 교회의 과거사가 청산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교회사학계의 책임을 들 수 있다. 교회사학자들은 “(친일행적은) 어려운 시대에 한국 교회를 지키고 한계상황 속에서도 교회를 맡아나가기 위한 방편이었다”는 ‘불가피론’을 정설로 들어, 적극적인 참회를 가로막았다. 또 친일인사 1세대가 거의 세상을 떠나 죄책을 고백할 당사자들이 없다는 점도 난제다. 이들 교계 친일 인사들은 해방 후 교계 주류를 이루고 기득권을 강화하며 역사청산의 여지를 후대에 남겨두지 않았다.
그러나 “한 공동체의 기질과 전통은 과거와 직결돼 있다”는 역사의 시금침을 떠올려 봐도 기독교 친일역사의 청산은 당연한 책무. 한국 교회 과거사에 대한 청산 실패가 오늘날 한국 교회의 위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교회 왜곡역사> 출간을 앞두고 있는 최덕성 교수(고신대)는 “일제시대에 상실한 신앙적 정체성과 도덕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잘못된 역사를 합리화하고 미봉책으로 일관한 태도가 오늘날 교파주의, 권위주의, 도덕불감증 등을 낳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제라도 교회 지도자들이 과거 신앙의 선배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과오를 공적으로 참회하고 청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과거사에 대한 책임을 한국 교회가 함께 지고 한국교회연합으로 회개고백운동을 전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박정신 교수(숭실대)는 “과거의 일을 덮거나 미화하는 것은 한국 교회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친일청산 없이는 교회의 갱신과 연합, 지도력 회복을 이루기 어렵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교회의 역사청산은 정죄나 징계가 목적이 아니라 교회 정체성을 회복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절차”라며 시급히 나서야 함을 강조했다.
(“기독교 친일청산은 한국 교회 내일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1943년 한국장로교회 대표들이 일본 나라(奈良)의 신궁에서 신사참배 후 찍은 것. 전필순, 김종대, 유호준 목사 등.)
김배경 기자 등록일 2005-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