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만 둔다고 될 일이냐 (종교계 과거사 청산 화두 )
덮어만 둔다고 될 일이냐"
종교계 과거사 청산 화두
(과거사 청산은 시대적 대세이다. 좀 낮추어 말하자면 시류이다. 종교계에서도 과거사 청산이 문제가 되고 있다. 덮어만 두었고,단편적 사실이나 변명으로 굴절시켰지 제대로 된 과거사 규명이 없었다는 점이 사뭇 심각하다. 독립유공자가 알고 보니 친일파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는 소식도 있고,최근 통도사는 일제 강점기 친일 시비에 오르내리는 당시 통도사 주지 김구하 스님이 실제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했다는 문서를 공개했고,더불어 "친일 승려 108인"(청년사)이라는 책도 나왔다.
방대하다. 740여쪽에 달한다. 1993년 "친일불교론"을 냈던 경기도 지족암의 주지 임혜봉 스님이 당대의 불교 신문·잡지,일반 신문 등에 보도된 1차 자료를 열람,발췌한 뒤 재정리해 쓴 것이다. 친일 행적의 내용은 일왕 찬양,근로 보국,군수품 구입에 필요한 돈 헌납,징병제 옹호 및 적극 홍보 등으로 다양하다. 이 책은 1차 보고서 격이며,충격적인 내용이 많다. 책에 따르면 차상명 최범술 허영호 박영희 이종욱은 왜곡의 정도가 심하다. 저자는 "이들은 친일을 했는데 한때의 항일 기록(3·1운동 가담과 투옥)에 의해 항일 투사로 둔갑해 국가보훈처의 애국지사로 인정받아 훈장을 받았다. 국립묘지에 안장된 이도 있다"며 "재검토되어야 마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중 이종욱은 "조선불교계 친일 총수"로 불릴 정도이다. 김삼웅 독립기념관장도 최근 출간한 "종교,근대의 길을 묻다"에서 1940년대 대표적 친일 승려로 강대련 김태흡과 함께 이종욱을 꼽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자료는 1차 자료이다. 친일을 가리는 기초자료일 뿐,결정적 자료로는 모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점이 유념돼야 한다.
크게 저항했지만 일제 강점기와,1937년 중일전쟁 이후 전시동원령이 내려졌던 시대의 팍팍한 한계 속에 있었다. 이를테면 큰 사찰인 해인사 범어사 통도사는 일제 사찰령 하에서 구조적으로 일제에 예속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친일 시비의 원죄를 크게 벗어날 수 없다는 말이다. 또 부산 개신교계에서는 광복 후 반민특위에 피소된 목사도 있었다. 그러나 부산·경남 종교계의 경우 반일 감정이 짙었다. 부산에서 3·1운동을 주도했던 곳이 다름 아닌 범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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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신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이상규 고신대 교수는 "1930년대 후반 교회의 신사참배 여부를 두고,서울이 시류에 잘 편성하는 기질로 먼저 무너졌지만 평양과 부산은 버텼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까지 버틴 곳은 부산뿐이었다"고 했다. 그는 부산이 끝까지 버틴 것은,부산에 개신교를 전한 호주 장로교 선교회의 신학적 특성에 근거한다기보다 부산·경남의 지역적 특성,즉 부산 경상도 기질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 기질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 가려진 역사의 심부에서 더욱 배우고 취할 수 있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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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를 심각하고 심층적으로 들여다보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천주교 부산교구 부산교회사연구소 관계자는 "친일을 했다면 그런 과거를 철저하게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하지만 거기에는 완급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가톨릭의 경우,지난 2000년 대희년 직전에,한 예로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고해성사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던 일을 비롯해 200년 한국교회사를 반성한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철저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철저한 과거사 규명을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지나야 할 것 같고,누군가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규 교수는 "과거사 청산은 한 시기의 이데올로기와 연결돼 정치권이 주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학문적 차원에서,그리고 매도하지 말고,통합을 궁극으로 삼아 서서히,그러나 늦지도 않게 진행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그 자체가 어찌 보면 원죄적이기 때문에 구호로 단죄하기보다는 뼈 아픈 우리의 상처로 보듬어 안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학림기자 theos@busanilbo.com)
입력시간: 2005. 03.05. 1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