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현실] 자비량에 대한 논란
글쓴이 : 장동관 날짜 : 2005/02/16 조회 : 242
김순성 교수님께 : 목회자가 일반직업을 가져서는 안 되는가?
김순성 교수님, 주 안에서 늘 평안하시기 바랍니다.
교수님께서 2005.01.15에 "장동관님께: 목회자가 일반직업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을 읽고 저의 의견을 올립니다.
1. 일제하에서 신사참배 반대로 투옥되거나 순교한 목회자들은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목회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교단 믿음의 선배들이 일반직업이 있어서 그것 믿고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순교를 각오하고 감옥에 갔던가요?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오늘 목회자를 포함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주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을 따랐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교수님께서는 위 글에서 일제하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순교를 각오하고 감옥에 갔던 분들을 "우리 교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이 분들은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목회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에 소속된 분들 중에서는 이 분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교단 소속 목회자였던 것처럼 주장하시는 분들이 있던데, 이 분들이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목회자들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 분들은 교단이 분리되기 이전의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목회자들이었지 교단이 분리된 이후인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소속 목회자들이 아니었습니다.
2. 자비량 사역에 관한 문제
교수님께서는
"다음으로, 자비량 사역의 예로 몇몇 성경구절을 근거로 제시하셨는데 인용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사도 바울이 자비량 선교를 했기 때문에 목회자가 일반직업을 가지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사도시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베드로와 여러 사도들을 부르실 때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즉시 예수님을 좇은 구절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학교도 안 나왔으니 오늘날도 목사가 되려면 신학교 가지 않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해도 될까요?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신학용어로 성경우상주의 또는 성경문자주의라고 하는데 성경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목사안수와 신학교 제도는 초대교회와 교부시대를 거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공교회의 결정으로 점점 제도화되고 체계화된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막 만드는 기술이 있었던 사도 바울을 제외한 다른 사도들의 직업은 어부와 세리 등이었는데, 그 당시에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여행을 다니면서 다른 직업을 갖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천막 만드는 일을 하면서 자비량 사역을 하였습니다(행 18:3). 그러나 다른 사도들까지 일을 하면서 사역을 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사도로 부름을 받기 전에 어부나 세리였던 사람들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다른 직업을 갖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 사역했던 사람들은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여행을 다니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정착생활을 했던 사람들(행 20:17, 딛 1:5-9)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과 그들과 동행했던 일행들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었고, 에베소에 있는 교회 장로들(행 20:17)이나 사도 바울이 디도를 크레타에 남겨두어 각 성읍마다 세운 장로들(딛 1:5-9)은 정착생활을 하는 사람들로서 장로로 세워지기 전에 이미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직업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착생활하면서 장로의 직분을 받고 그 지역 교회를 돌보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이 일을 포기했을 가능성은 없었을 것입니다.
농업이나 목축업이 주업이었던 농경사회에서 그들은 그들의 직업에 종사하면서 장로(또는 감독)의 직분을 수행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정착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목사들이 생계를 위한 직업에 종사하면서 장로의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유럽 교회 현황
교수님께서는
"유럽교회의 예를 들으셨는데 그 경우는 주로 침례교나 그와 동일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교단의 경우에 국한됩니다. 그것도 그 교단 소속 모든 목회자가 다 일반직업을 가지지 않습니다. 특별한 경우에 한한다는 말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주장은 교수님께서 유럽에 가서 직접 보시고 체험하시거나 유럽에서 생활하시던 분에게 직접 들으신 이야기입니까?
마침, 유럽교회 현황에 대해 언급한 글이 있어서 복사하여 올립니다.
글이 있는 위치
http://rts-lab.eas.asu.edu/users/feelingthetruth/article/thinking2.htm
[퍼온 글]
제목 : 외국과 한국 교회 답사기
들어가는 말 (신앙배경):
이 엄청난 제목으로, 어떻게 쉽게 독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을까을 고민하였습니다. 본 제목을 소화해 내기 위해서는 (1) 성서적, (2) 역사적, (3) 신학적인 측면에서 광범위하게 다루어야 하겠지만, 위의 요소들을 일체 생략하고, 저의 개인적인 신앙성장 (Personal Testimony) 배경을 중심으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소위, 모태신앙으로, 기독교 가정에서 엄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성장 했습니다. 십일조와 주일성수는 물론, 돼지고기와 피가 묻어있는 고기까지 먹는 것을 금했습니다. 심지어 주일날은 굴뚝에서 연기나면 안된다하여 금식을 하면서 성장했는데, 율법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신앙생활은 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할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굳어진 기존의 신앙체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바로 유학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참고로 저는 그리스도의교회, 개혁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오순절교회, 성공회등에 장기간 출석하고 공부했거나 가르친 경험이 있습니다.)
십일조와 헌금바구니 없는 영국교회:
유학을 떠날 때가 1985년 7월이었고, 한 영국침례교회에 출석하게 되었습니다. 예배 중 헌금바구니를 돌리지 않더군요. 처음엔 “특별한 날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헌금시간과 축복기도도 없는 겁니다.
몇 주 후에야 안 일이지만, 헌금바구니 대신 조그마한 편지통 모양의 상자 [헌금함] 가 교회 뒷편 코너에 놓여 있어, 원하는 사람은 아무때나 자유롭게 헌금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한국에서 신앙의 척도로 간주되는 십일조, 작정헌금, 건축헌금등 각종 헌금도 없었습니다.
주일성수 없는 영국교회:
그 다음해 봄이었습니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부터는 300 여명이 모이던 교인들이 점점 줄어 드는 겁니다. 어느 화창한 봄의 주일날은 20여명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목사님께서 웃으시며 예배시간 전에 한 말씀입니다: “아주 좋은 날씨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봄 나들이 나갔군요, 모두들 즐거운 시간 갖기를 기도합니다.”
가족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고 공원을 찾는 것에 대하여, 그는 진심으로 기뻐해 주었습니다. 오히려 예배에 참석한 내가 민망할 정도였으니까요.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영국교회가 망했다더니 정말이구나.”
다른 교회들은 어떻게 예배를 드리는지 의문이 일기 시작했고, 그래서 한 달에 한번만 본 교회에 출석하고, 다른 교회를 순회/방문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 마다 웨일즈와 스코틀랜드 교회를 찾기도 했습니다.
십일조 없는 유럽 교회:
영국을 벗어나 유럽 다른 나라들의 예배형식이 궁금해졌습니다. 그 해 여름방학은 프랑스에서, 겨울방학은 독일에서, 이듬해 여름방학은 독일의 학생들과 합류하여 유럽16개국을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주일예배형식, 헌금방식, 십일조제도에 관해서 리서치를 수행했습니다.
오순절교회, 희랍정교회, 어떤 영국교회나 감리교회서는 헌금바구니를 돌리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 교회들이 헌금바구니 대신 헌금함을 배치하였고, 십일조나 각종 헌금 제도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주일성수와 십일조에 대한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학문의 세계로:
일단 유럽교회들은 십일조제도가 없고 헌금함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 한 후, 여기에 대한 성서적 근거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석사과정에서는 조직신학이었지만, 박사과정은 구약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하고, 관련학과목인 고대 근동학, 고대문헌학, 고고학, 문서비평학, 성서언어학, 문화인류학, 고대역사학, 사회학등에 거침없이 도전했습니다.
세계구약학회 회장이기도 했던 원로 지도교수는, 지나치게 광범위한 연구분야가 요구됨으로 학위논문의 방향을 바꿀 것을 여러 차례 제시했지만, 6년동안 하루 평균 3,4시간의 수면으로 버티어 내는 열심에 감탄을 하더군요.
중간에 경제적, 학문적인 어려움으로 포기할 위기를 몇 차례 넘기며 외롭고 긴 유학여정이 끝나면서, 암흑속에 가리워졌던 기독교의 실상 (죄악상) 이 눈에 드어나기 시작했고, 십일조 제도나 각종 헌금갹출은 종교적 범죄행위임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박사학위 심사가 끝나던 날 지도교수는 나를 끌어 않으며, “이 분야에서는 자네가 세계적 권위자라네”하며, 이젠 학자로서의 동등함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몇가지 팁:
* 이미 58호에서 언급했듯이, 아하스 왕을 포함한 역대 이스라엘왕들이 자녀들을 잡아 신께 바치는 가증한 짓을 한 것처럼(상하 16:2-3),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십일조를 바침으로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 16세기 천주교의 속죄권 판매를 거부한 종교개혁의 산물이 오늘날의 신교입니다. 그런데 정작 타락했던 천주교는 발전적으로 개혁이 되고 (물론 교리상 차이는 있음), 개혁의 결과로 태어난 신교는 타락하여, 완전히 주객이 전도되고 말았습니다.
* 종교개혁이후 유럽교회에서 십일조 제도가 사라지자 유럽의 교회들은 교회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7세기에 접어들면서 영국교회는 운영난 때문에 한때 십일조제도를 눈감아 주기도 했습니다.
* 오늘날은 미국산 오순절교회가 영국을 포함한 유럽으로 파고 들고 있는데, 이들은 방언, 능력, 축복 뿐만 아니라, 철저하게 십일조나 헌금을 강요하는 추잡한 냄새를 풍기는 집단들입니다. 어떤 오순절 교회에서는 예배중에 헌금바구니를 3번 돌리는 곳도 있더군요.
먹사 공화국 대한민국:
학위를 받고 바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유럽문화에 오랫동안 길들여진 탓인지 한국에서의 생활은 질식하기 직전이었습니다. 부패한 정부, 무질서한 사회, 타락한 종교지도자들, 동서남북 어느 곳을 돌아봐도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라 먹사를 섬기고, 먹사는 교회을 장사하는 회사로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이런 실상들을 느끼거나 보지 못하고, 종교지도자들에게 세뇌되고 맹종당하고 있는 성도들의 모습을 볼 때 충격이었습니다.
종교적 부는 반드시 타락과 부패를 부릅니다.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은 돈이 지나치게 많은데 있다고 판단하고, 잘못된 십일조 폐지운동에 들어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우선 여러 대학에 교수임용신청서을 제출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또 놀란 것은, 교수를 이미 내정해 놓고 광고만 내든가, 그렇지 않을 경우 1,2억을 요구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있더군요.
십일조제도 폐지운동:
3년간 세 곳의 대학에서 가르치는 동안 한국교회의 타락상과 종교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다가 두 대학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경험을 했는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학과마다 이사장이 심어둔 요원(?)들이 있더군요.
십일조제도 폐지운동의 많은 효과를 얻기 위해, 신학대학교수들을 상대로 몇 차례 십일조제도에 관한 공개토론을 제의했지만, 아무도 나서주는 상대가 없었습니다. 원고를 작성하여 각 기독교 신문사와 잡지사에 발송했으나 단 한곳도 원고를 실어 주지 않았습니다.
방향을 바꾸어 조선일보를 포함한 일반신문사와 인터넷을 통하여 십일조 폐지 운동을 벌였습니다. 그때가 1996-1998년이었는데, 그 당시 쓴 원고들이 책 2권의 분량이 됩니다.
십일조제도 폐지라니 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젊은층에서 서서히 반응이 일기 시작했고, 많은 격려와 문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들로부터는 수 없는 협박이 끊이지 않으면서 신상에 위험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러시아에 있는 한 선교사는 죽인다는 이멜을 거의 매일 보내 왔으니까요.
3년 가까이 한국에 있는 동안 그야말로 생사를 건 투쟁이었습니다. 철벽 같은 한국교회에 십일조의 파문을 불러 일으켰고, 지금은 소신있는 젊은 후배들이 나타나 그 바톤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가족을 잃고:
다시 영국으로 귀국(?)하게 된 동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타락상을 접할 때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건강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그 동안 영국에 남겨두었던 가족을 잃게 되었습니다.
홀로되었으나 찢겨진 상처들이 많이 회복되었으며, 지금은 교회, 선교, 교육사업등과 관련하여 뛰고 있습니다. 재혼할 상대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위해서 기도해 주시면 ,,,,,,,,
오랫동안 준비한 학문은 결국 3년의 십일조폐지운동에 불을 붙임으로 끝을 맺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학문적 자만을 꺽기 위하여 수많은 시련과 고통을 주셨고, 나의 삶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관섭해 주심에 감사드리며 겸손히 살기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400년 전의 유럽교회:
지금의 한국교회 모습은 16세기 종교개혁이전의 유럽교회 전철을 밟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한국교회는 유럽교회에 비해 400 년이 뒤떨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한국교회는 미국교회의 복사판입니다. 교회가 자본주의 사상에 물들게 되면 망하게 될 징조입니다. 미국교회는 완전히 자본주의 사상에 물들어 있고, 교회의 부패와 타락상이 한국교회보다 10 년을 앞서가고 있습니다.
한국에 교인수가 많은 이유:
한국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유럽교회가 망했다는 설교를 즐겨 하더군요. 이것은 무식한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종교개혁이후 교인수가 많이 감소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신앙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제가 볼 때 한국교회는 5%정도만 거듭났으나, 유럽의 교회는 98%가 거듭난 성도들입니다.
한국에 교인수가 많은 또 다른 이유는, 아직 한국인들의 삶의 질이 낮고 가난하며 사회가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이 잘사는 시대에 무슨 말씀이냐고 반문하시겠지만, 인간이 종교적 성향을 갖고 있는 것은 그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상황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럽은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문화시설이 어디나 잘 되어 있고, 사회복지제도가 완벽하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갖는 그런 불안의 요소들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한국에서는 교회에서 감당하고 있는 요소들을, 유럽에서는 사회복지제도가 모두 해결해 주기 때문에 반드시 교회를 찾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유럽교회들은 십일조제도가 없을까?
이 글을 통하여 어떤 위대한 신학이나 고상한 학설이나 지식으로 십일조 폐지의 정당성을 주장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신앙적 배경을 자랑삼아 늘어 놓은 이유는, 단 한마디의 질문을 드리기 위한 준비과정이었습니다.
16세기 종교개혁이후, 왜 유럽교회들은 십일조제도를 단죄하여 교회로부터 추방한 것일까요? 유럽교회들이 폐지하고 있는 십일조제도를, 왜 한국교회들은 그토록 고집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 질문에 관하여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고 심각하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남기고 싶은 한마디:
십일조제도는 한국의 돌팔이 교수, 삯꾼 신학자들이 빵 한 조각을 얻어내기 위하여 침묵으로 일관하고, 3대 근성 (명예-권위-탐욕) 에 눈이 먼 먹사 집단들이 만들어 낸 종교적 범죄행위입니다. 신앙이나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 속지 마십시오.
----- 원 문 -------------------------------------------------------
글쓴이 : 김순성 날짜 : 2005/01/15 조회 : 386
장동관님께: 목회자가 일반직업을 가질 수 있는가?
신대원 김순성 교수입니다. 장동관님이 쓰신 글 <공무원이 직업인 어느 전도사 아내의 상담>을 읽고 본 교단 신대원에서 목회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바른 입장을 전해야할 책임을 느껴 펜을 들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다원화되고 신학교에서 목사가 많이 배출되면서 목사가 일반직업을 가지는 일이 점점 흔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그 직분에 한평생 전념하도록 하나님께 특별한 부름을 받은 성직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신학교 지원자가 적었고 그 결과 교회에 목회자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목사직도 일반 직업의 하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고 목사수도 너무 많아져 예전에 볼 수 없던 현상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목사안수를 받고도 일터가 없어 생계유지를 위해 부득불 일반직업을 가지는 경우가 허다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일반 직업을 가지면서 동시에 목회자직을 수행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해 본 교단의 신학적 입장이 분명히 제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교단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마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근거가 제시됩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먼저 저의 입장이 개혁주의 목회신학 전통에 근거한 장로교단의 입장이라는 전제를 달고 논의를 시작하려 합니다.
장동관님께서는 목회자가 직업을 가지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나름대로 확신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하셨는데 전개하신 논지의 순서대로 열거하면,
첫째로, 유럽의 여러 교회들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고,
둘째로, 몇몇 성경구절이(행20:17, 34; 딛1:5-7)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셋째로, 목회자가 일반직업을 가지고 생계가 보장될 때, 부당한 교권에 대해 소신있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장동관님의 입장은 본 교단의 입장이 아니라, 침례교나 회중교회 교단의 입장에 가깝습니다.
먼저, 유럽교회의 예를 들으셨는데 그 경우는 주로 침례교나 그와 동일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교단의 경우에 국한됩니다. 그것도 그 교단 소속 모든 목회자가 다 일반직업을 가지지 않습니다. 특별한 경우에 한한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너무 약해서 목회자의 생활비를 지급하지 못할 경우 즉, 목회자 가정의 생계가 너무 어려울 경우 그리고 특별 전문직(변호사, 의사 등)에 종사하다가 목회자로 부름받은 경우 그런 일을 계속하면서 목회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요. 최근 우리나라에도 어느 침례교회 목사가 주중에 변호사직을 수행하면서 목회자직을 동시에 수행하는 예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교단적으로 허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침례교에서는 목사직을 평생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이 임했을 때 목회자로 일하다가 소명이 끝났다고 느껴지면 언제든지 평신도로 돌아가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는 것이 그 교단의 신학적 입장입니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유교적 호칭문화 때문에 서구 교회전통과 달리 적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다음으로, 자비량 사역의 예로 몇몇 성경구절을 근거로 제시하셨는데 인용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사도 바울이 자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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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장동관 날짜 : 2005/02/19 조회 : 85
한국교회 교인들이 국가에 낸 세금은 십일조인가? 십일조가 아닌가?
임재호 목사님, 답변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 영국은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말씀하신 것은 유럽에 있는 국가에서 국민이 국가에 낼 세금을 국가에 내지 않고 교회에 내고 그 만큼 세금을 면제받는 제도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십일조 헌금이 아니라 그냥 헌금입니다.
혹시 이 제도를 잘 못 알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까?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얼마의 정치자금을 정당에 내고 그 만큼 세금을 면제받는 제도와 비슷한 제도입니다.
(정당에 헌금한 정치자금은 10만원까지는 세금을 면제받을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오신 분들 중에서 이 제도를 우리나라에서도 시행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시는 분도 계셨습니다.
2. 그리고 유럽교회의 경우 교회헌금은 교회에서 사용치 않고 총회에 일괄적으로 상납하며, 목사는 총회로부터 일정한 금액(월급)만 받아 검소하게 생활합니다. 유럽교회의 이런 점에 대하여 직접 보고 느낀 것에 대하여 언급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근래에는 십일조를 하는 교회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성경적이라 할 수 없습니다.
보통 이런 교회들은 오순절 계통의 교회처럼 미국의 영향을 받은 교회들입니다.
개혁된 천주교회에서는 십일조 제도가 없습니다. 물론 천주교회의 교리가 다 맞는 것은 아닙니다.
다시 십일조제도가 부활되고 있다는 것은 교회들이 타락해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3. 임재호 목사님께서 주장하신 내용이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제 의견을 밝히겠습니다.
저소득자가 국가에 내는 세금이 소득의 10%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영국교회는 국가로부터 얼마나 되돌려 받습니까?
여기에 대하여 답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교회가 국가로부터 되돌려 받는 금액이 소득의 10%에 미치지 못할 경우, 이 사람의 경우 어떤 방법으로 십일조를 바칩니까?
임재호 목사님께서는
"한국에서는 십일조를 교회에 내고, 세금공제를 받는 반면에, 영국에서는 세금을 내고 국가로 부터 교회가 십일조를 도로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맴버들은 십일조를 안 하는 것 같지만, 확실한 십일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고 또 다시 교회에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냅니다.
한국교회 교인들이 십일조를 교회에 내고 십일조에 해당하는 금액만큼 세금으로 공제받습니까?
연말정산(특별공제 지정기부금)에서 개개인이 되돌려 받는 세금은 교회에 낸 십일조 헌금보다 훨씬 적은 금액을 되돌려 받습니다.
영국에서는 교인이 국가에 낸 세금 중에서 일부분을 교회가 국가로부터 되돌려 받지만, 한국교회 교인들은 국가에 세금을 내고 또 다시 교회에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내는, 보다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십일조를 반드시 교회에 내야 한다는 법이 성경 어디에 있습니까?
율법의 완성은 곧 율법의 폐지를 의미합니다.
율법의 폐지(엡 2:14-16, 골 2:14-16, 히 7:18, 히 8:7, 히 8:10, 히 8:13, 히 10:9, 히 10:16, 갈 3:19, 갈 3:23-25, 갈 5:1, 롬 7:6, 롬 8:2, 롬 10:4, 눅 16:16, 요 1:17)로 구약적인 성전과 제사장이 사라져 버렸다면, 십일조도 당연히 그것들과 동시에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요?
영국교회나 한국교회 교인이 소득의 10% 이상을 국가에 세금으로 바쳤는데, 영국교회는 십일조에 해당하는 금액만큼을 국가로부터 되돌려 받는다는 이유로 확실한 십일조를 하고 있다고 하고,
한국교회는 되돌려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국교회 교인들이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임재호 목사님의 주장대로 해석하면
한국교회 교인들은 이미 국가에 세금으로 십일조를 바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인들은 국가에 십일조를 확실하게 바치고 있는데 교회가 국가로부터 되돌려 받지 못하고 있다면 그것은 교회의 책임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한국교회 교인들은 지금처럼 국가에 세금을 내고 있으면 더 이상 교회에 십일조를 낼 의무가 없게 됩니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국가에 세금을 착실하게 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십일조 헌금을 또 다시 요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앞의 글에서 밝혔던 것처럼 십일조 제도는 신정국가였던 이스라엘의 국가세금제도였습니다.
또 다른 관점에서 보면 구약의 십일조 제도는 맏물로 오신 그리스도에 대한 모형과 그림자였습니다.
구약의 십일조 제도에 의하면 토지의 소산물과 가축에 대한 소득에 한하여 십일조를 바칠 의무가 있었으므로, 노동을 하거나 장사를 하여 얻은 소득은 십일조 대상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십일조는 반드시 성전에 가서 제사장에게 바치도록 되어 있는데, 그리스도께서 초림하셔서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육체로 율법을 폐지하셨으므로 십일조도 당연히 폐지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이 폐지되는 순간부터 구약적인 성전과 제사장이 사라졌으므로 (성전에 가서 제사장에게 바쳐야 하는), 십일조 제도도 그것들과 함께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신 어느 신학자의 주장대로 한국교회도 유럽교회처럼 교인이 국가에 낸 세금 중에서 소득의 10%에 해당되는 금액만큼 되돌려 받는 방법을 시행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전에 당장 영국만큼은 아니더라고 어느 정도의 사회보장제도를 만드는 방법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임재호 목사님께서 주장하신 내용이 사실이라고 가정하고 제 의견을 밝힌 것입니다.)
추신
영국에는 건물을 소유하지 않는 교회를 추구하는 교회가 많이 있는데, 이런 교회에 대하여 소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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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영국 쉐필드대학교에서 성서학(구약)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있는 임재호목사(53회)라고 합니다.
저는 이 끝도 없는 논쟁에 끼여들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단지 이 글 중에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아서 몇 자 적어봅니다.
장동관선생님께서 인용한 영국 여행기에서 영국교회는 십일조를 안 하는 것처럼 적고 있는데. 사실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영국에 처음와서 차가 없을 때, 집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침례교회를 몇 달 다닌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에 십일조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물론 주일헌금은 예배시간에 헌금 바구니로 거뒀습니다. 그래서 안되는 영어로 목사님께 십일조 봉투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완전히 한국적 개념이었죠. 목사님의 대답은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영국에는 십일조가 없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영어가 조금씩 되기 시작했고, 점차 교회 생활을 오래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교단들마다 약간씩 다른 제도를 가지고 있지만, 제가 다닌 그 교회는 십일조를 한국교회 보다 더 철저히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교회의 맴버가 되겠다고 싸인을 하면, 그 서류를 교회가 노회로 보내게 되고, 절차를 통해서 국가로 부터 그 맴버가 지출한 세금 중 십일조 부분을 되돌려 받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십일조를 교회에 내고, 세금공제를 받는 반면에, 영국에서는 세금을 내고 국가로 부터 교회가 십일조를 도로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니 결국 맴버들은 십일조를 안 하는 것 같지만, 확실한 십일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냥 우리와 다른 시스템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냥 다른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단지 잠시 영국을 다녀가서, 그것도 특정한 교회를 보고 가서 전체를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 교회를 몇 달 다닌 후, 이신철교수님이 다니신 란다프장로교회를 다녔는데(차가 생겼기 때문에), 그 교회의 제도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쉐필드로 이사를 했기 때문에 집근처에 있는 개혁교회를 다니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제도도 마찬가지인 것을 알았습니다. 물론 저는 다른 방식으로 십일조를 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길 바라며, 저의 십일조는 제 통장에 돌려주지 않더라고요....???
이 자리를 빌어 교수님들께 문안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