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현실] 목회자의 일반직업 겸직 문제

일반자료      
쓰기 일반 자료 초기목록
분류별
자료보기
교리 이단, 신학 정치, 과학, 종교, 사회, 북한
교단 (합동, 고신, 개신, 기타) 교회사 (한국교회사, 세계교회사)
통일 (성경, 찬송가, 교단통일) 소식 (교계동정, 교계실상, 교계현실)

[교계현실] 목회자의 일반직업 겸직 문제


글쓴이 : 김순성 날짜 : 2005/01/15 조회 : 391

장동관님께: 목회자가 일반직업을 가질 수 있는가?




신대원 김순성 교수입니다. 장동관님이 쓰신 글 <공무원이 직업인 어느 전도사 아내의 상담>을 읽고 본 교단 신대원에서 목회신학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바른 입장을 전해야할 책임을 느껴 펜을 들었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가 다원화되고 신학교에서 목사가 많이 배출되면서 목사가 일반직업을 가지는 일이 점점 흔해지고 있습니다. 사실 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목사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오로지 그 직분에 한평생 전념하도록 하나님께 특별한 부름을 받은 성직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신학교 지원자가 적었고 그 결과 교회에 목회자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목사직도 일반 직업의 하나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고 목사수도 너무 많아져 예전에 볼 수 없던 현상들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목사안수를 받고도 일터가 없어 생계유지를 위해 부득불 일반직업을 가지는 경우가 허다할 뿐만 아니라, 때로는 일반 직업을 가지면서 동시에 목회자직을 수행하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문제에 대해 본 교단의 신학적 입장이 분명히 제시되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교단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물론 저마다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근거가 제시됩니다만. 그런 의미에서 먼저 저의 입장이 개혁주의 목회신학 전통에 근거한 장로교단의 입장이라는 전제를 달고 논의를 시작하려 합니다.

장동관님께서는 목회자가 직업을 가지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나름대로 확신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로서 다음 세 가지를 제시하셨는데 전개하신 논지의 순서대로 열거하면,
첫째로, 유럽의 여러 교회들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고,
둘째로, 몇몇 성경구절이(행20:17, 34; 딛1:5-7) 그것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셋째로, 목회자가 일반직업을 가지고 생계가 보장될 때, 부당한 교권에 대해 소신있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장동관님의 입장은 본 교단의 입장이 아니라, 침례교나 회중교회 교단의 입장에 가깝습니다.
먼저, 유럽교회의 예를 들으셨는데 그 경우는 주로 침례교나 그와 동일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교단의 경우에 국한됩니다. 그것도 그 교단 소속 모든 목회자가 다 일반직업을 가지지 않습니다. 특별한 경우에 한한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재정적으로 너무 약해서 목회자의 생활비를 지급하지 못할 경우 즉, 목회자 가정의 생계가 너무 어려울 경우 그리고 특별 전문직(변호사, 의사 등)에 종사하다가 목회자로 부름받은 경우 그런 일을 계속하면서 목회하는 경우가 더러 있지요. 최근 우리나라에도 어느 침례교회 목사가 주중에 변호사직을 수행하면서 목회자직을 동시에 수행하는 예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것은 교단적으로 허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침례교에서는 목사직을 평생직으로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소명이 임했을 때 목회자로 일하다가 소명이 끝났다고 느껴지면 언제든지 평신도로 돌아가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는 것이 그 교단의 신학적 입장입니다. 한국적 상황에서는 유교적 호칭문화 때문에 서구 교회전통과 달리 적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다음으로, 자비량 사역의 예로 몇몇 성경구절을 근거로 제시하셨는데 인용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사도 바울이 자비량 선교를 했기 때문에 목회자가 일반직업을 가지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사도시대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예수님이 베드로와 여러 사도들을 부르실 때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즉시 예수님을 좇은 구절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은 신학교도 안 나왔으니 오늘날도 목사가 되려면 신학교 가지 않는 것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해도 될까요?
이런 식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을 신학용어로 성경우상주의 또는 성경문자주의라고 하는데 성경을 그런 식으로 보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목사안수와 신학교 제도는 초대교회와 교부시대를 거치면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공교회의 결정으로 점점 제도화되고 체계화된 것입니다.

목사직과 관련된 개혁주의 목회신학 전통은 목사직을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 하나님이 특별히 세우신 직분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직분을 한평생 그 일에만 전념하도록 부름받은 특별한 소명으로 이해합니다(물론 공교회가 결정해서 만든 정년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목회자가 감당해야할 사역이 설교, 교육, 상담, 심방, 행정 등 너무도 엄청나기에 그 일만 감당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현실을 감안하여 목회자의 생계를 교회가 부담하고 목회사역에 전념하도록 제도화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교회가 아직 체계적으로 세워지지 않은 초기 단계였기 때문에 본인이 자비량하면서 사역할 수밖에 없는 특수한 상황이었음을 감안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를 드신 유학생 목사의 경우도 전임 사역자와는 다른 경우임을 고려해야 합니다. 물론 오늘날도 선교지 상황이나 특수하게 예외적 상황이 가능할 수 있겠지만 그런 특수한 예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공무원직을 버리면 생계에 위협을 받기 때문에 그 직업을 유지하고 싶다면, 그 사람이 과연 목사의 소명을 받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한다고 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적어도 그런 사람에게는 목사 안수를 할 수 없다는 것이 본 교단의 신학적 입장입니다. 최근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신학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신학교 문을 두드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본인이 신학공부에 대한 관심 때문에 신학교를 오는 경우와 목사의 소명을 받아 목회자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오는 경우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목사 안수를 3년 신학과정만 마치면 자동적으로 자격증 따듯이 생각하면 정말 곤란합니다.

소명문제가 나왔으니 기왕에 한 가지만 더 부언하고 싶군요. 목사직의 소명에는 전통적으로 주로 두 가지, 즉 내적 소명(목사직에로의 부르심에 대한 본인의 주관적 확신)과 외적 소명(목사직에로의 부르심에 대한 교회의 객관적 검증)이 강조되어 왔습니다. 요즘은 전자의 소명에도 문제가 있지만 후자의 소명은 더 더욱 문제가 많습니다. 교회가 이 부분에 대해 검증을 해서 신학교로 보내주어야 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로 그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혁교회 전통에는 확인해야할 소명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것은 사역적 소명입니다. 비록 본인이 내적 소명과 외적 소명을 받아 신학교 공부를 마쳤다하더라도 부르는 사역지가 없으면 목사안수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화란이나 남아공의 개혁파 신학교에서 졸업을 하고도 사역지의 부름이 없어서 목사 안수를 받지 못하고 교회에서 평신도로 장로직을 수행하고 있는 예를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오늘날 본 교단을 포함하여 한국 장로교회가 개혁주의 신학 전통을 무시하고 목사 안수를 너무 쉽게 남발하고 있음은 크게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일에 우리 교단이 앞장서 과감히 개선해야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장동관님의 마지막 논거에 대해서는 간단히 말씀드리지요. 목회자가 직업이 있어야 교권의 부당한 위협에 소신있게 대처할 수 있다는 주장은 목사직의 성경적, 신학적 근거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그 주장이 인간적인 논리로는 말이 되는 듯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부당한 교권에 대한 처신은 본인의 순결한 양심과 용기있는 신앙의 문제이지 재정문제가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단 믿음의 선배들이 일반직업이 있어서 그것 믿고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순교를 각오하고 감옥에 갔던가요? 제가 보기에는 오히려 오늘 목회자를 포함하여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주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데 있다고 봅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죽기를 각오하고 주님을 따랐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주 안에서 늘 평안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