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현실] 부목사와 시골목사의 현실
2004년 12월 22일, 뉴스앤조이(http://www.newsnjoy.co.kr)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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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네 교회 부목사인줄 알아?"
"선교비 줄 테니 오라"는 대형교회 담임목사의 엄명…부목사 보냈더니 불호령
유해근 myii7@empal.com [조회수 : 3748]
부목사들, 참으로 불쌍한 사람들이다. 나도 과거 경상도 상주에서 열 달 정도 부목사 생활을 한 적이 있지만 사실 피곤한 직책이다. 내가 아는 어느 교회에서는 담임목사가 외국에 나가면 부목사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공항에 나와 환송을 한다. 틀림없이 담임목사가 외국에 놀러나가는 것 같은데 부목사들은 받들어 총이다. 완전히 바지저고리 신세다.
얼마 전 나는 어떤 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담임목사에게 잘못 보여 쫓겨난 부목사를 만난 적이 있다. 담임목사가 외국에 나가 없는 사이 여러 부목사중 설교 잘하기로 소문난 이 부목사가 설교를 한 모양이다. 문제는 담임목사가 돌아와서는 이 부목사를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들어 파면을 시킨 것이다.
부목사가 완전히 파리 목숨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폭력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같은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아 먼저 목사가 되고 나이가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횡포와 폭력을 당연시하는 이 상황을 보면서 나는 참으로 웃기는 교회라고 생각했다.
부목사들은 담임목사의 그림자도 안 되는 미천한 존재로 살아간다. 담임목사의 눈치를 제대로 알아차리고 인정받으면 좀 더 빨리 성공의 길로 갈 수 있고, 반면에 제 소신이라고 까불고 건방을 떨라치면 그대로 죽음이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종으로 살아야할 목사가 담임목사의 종으로 전락하는 순간이다.
공항에 환송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쉬는 날도 담임목사가 좋아하는 낚시라든가 아니면 바둑 혹은 탁구 같은 잡기에도 함께 동참하여야 하는 레크레이션 파트너까지 되어야 훌륭한 부목사로 출세가 보장되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큰 교회의 담임목사로부터 나에게 호출이 떨어졌다. 그 교회에서 선교비를 좀 낼 터이니 가지러 오라는 것이다. 외부 활동에 지장이 많은 나로서는 그리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우리 교회 부교역자를 대신하여 보냈다. 얼마 뒤 나는 불호령이 떨어진 그 담임의 전화를 받았다. 당장 뛰어 오라는 것이다. 갑자기 내가 그 교회의 부목사가 된 느낌이었다.
택시를 잡아타고 그 교회로 달려갔다. 선교비를 준다는데 책임자가 와야지 어떻게 부목사를 보내서 선교비를 받으려 하느냐며 소리를 지른다. 잔뜩 기분이 상했고 할 말도 많았지만 돈 앞에선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그냥 잘못했다고 빌었다. 솔직히는 그 담임에게 빈 것이 아니라 돈에게 빌었다. 차라리 그 담임보다는 그 돈이 더 깨끗해 보였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차안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내가 자기네 교회 부목사인줄 알아? 웃기고 있네!" 큰 교회 담임은 돈을 갖고 선교를 하고 사람을 만들어 낸다. 자기 사람을 만드는 가장 빠른 길은 돈이다. 그 돈은 교회로부터 나오고 그 교회의 담임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는다. 그것으로 우리 선교회는 얻어먹고 산다.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하지만 그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앵벌이 목사라고 부른다. 솔직히 그 말이 맞기 때문이다.
도시교회 부목사보다 더 한심한 인생이 시골교회 목회자다. 도시 교회 담임목사가 그 교회가 지원하는 시골교회엘 간다. 그 날 시골교회는 난리가 난다. 임금님이 오시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방문해도 그렇게 할까 싶을 정도로 준비가 한참이다. 담임이 좋아하는 개를 잡고, 사모님은 개고기를 드시지 않으시니 토종닭을 잡아야 한다.
몇 되지도 않는 시골교회 교인들은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담임이 오시면 잘 보여야 한다. 그래야 내년에도 한 달 10만 원 선교비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달에 10만원이면 1년이면 120만 원, 3년 받는다면 360만 원이다. 시골에서 그 돈이면 얼마나 큰 돈인가. 까짓것 눈 딱 감고 1년에 봄가을로 두어 번만 난리 치르면 그 돈이 생긴다. 그러나 돈이 깡패라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치부를 해도 여간 속이 상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공평하시다고 배웠는데 이게 뭔 일이여?
황제 모시듯이 모시고 나면 그날 밤 왠지 가슴이 저려온다. 같은 목사로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게 쓰임 받고 싶었는데 큰 교회와 돈 앞에 우리 가난한 목사들은 한없이 쪽팔리고 자존심 상해가며 살아야 한다. 정말 선교를 위해서 고난을 받고 조롱을 받고 좌절해야 한다면 기쁨으로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뭔가?
나는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외국인근로자 사역을 하면서 그렇게 부목사는 물론이고 시골교회 목사도 아닌 앵벌이 취급을 받으며 선교를 해왔다. 선교비 몇 푼에 호통을 치는 담임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고 할 말을 잃을 정도로 기가 죽기도 여러 번이었다. 직접 내놓고 말하진 않지만 까불면 선교비 뗀다는 웃기는 협박에 눈물을 흘리며 살려달라고 빌기도 했다. 내가 무슨 흥부라고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동생들 차비 나눠 주면서 줄 잘 서라고 으름장을 놓는 조폭과, 쥐뿔도 안 되는 선교비 나눠주면서-사실은 제 돈도 아니면서-줄 잘 서라고 공갈치는 교회하고 무엇이 다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부목사들은 참으로 불쌍하다. 그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은 시골교회 목회자들이다. 그리고 그들보다 더 불쌍한 인생은 바로 나다. 그러나 웃기지 마라. 내가 당신네 교회 부목사는 아니다. 나도 그대랑 똑같은 담임이다. 담임!
2004년 12월 22일 16:41: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