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번역에 대한 반발
번호 : 293 등록일 : 2005-06-01
주기도문·사도신경 재번역 바르게 되었나?
‘수우’쭻‘아버지의’ 번역 등 쟁점 부상
한기총 NCC 주기도문 사도신경 재번역위원회가 마련한 주기도문 사도신경 최종번역안에 대
한 반발이 점차 거세지고 있다.
이번 반발의 가장 큰 특징은 주로 신학적 논의와 언어학적 논의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 이
전의 반발이 주로 절차적인 문제인, 예장 통합에 의해 주도적으로 진행되던 논의과정을 문
제 삼았던 것에 비교하면 훨씬 강력하게 제기되는 반발인 셈.
고영민 부총장(천안대)의 “저쪽에서 주장하는 번역은 한국교회가 채택할 만큼 완벽한 것
은 아니다. 만일 주기도문이나 사도신경을 재 번역하려고 하면 먼저 이 부분에 전문적인 지
식을 가진 신학자들의 폭넓은 견해를 수렴해야만 할 것이다. 만일 어느 한 교단 위주로 이
번역이 추진된다면 한국교회는 겉잡을 수 없는 혼선을 빚게 될 것이고, 신학자들은 자신들
의 주장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라는 경고처럼, 신학
자들의 반발이 막 일어나고 있는 형국.
물론 학자들이 그동안 이 부분에 대해 연구활동을 해왔다고는 해도, 충실한 번역을 이뤘다
고 보기에는 번역기간이 너무 짧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한기총과 NCC 재번역위는 번역
안을 만들고, 최종 합의안을 만드는 데까지 불과 6개월여 밖에 걸리지 않았다.
유해무 교수(고려신학대학원)는 주기도문 사도신경 재번역의 번역기간과 관련, “서양에서
는 1, 2년 안에 급박하게 모든 것을 이루려 하지 않는다. 논의과정을 중시하는 NCC가 세계
교회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처럼 빠른 결정을 내리고 있는지 의문이다”는 말로 빠른 결정
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주기도문 재번역과 관련하여 일고 있는 논란은 크게 헬라어의 ‘수우’를 어떻게 번역할 것
이냐의 문제. 현행 주기도문에는 해석이 곤란한 이 부분이 누락돼 있는 것에 비추어보면,
‘수우’를 아예 빼지 않고 번역하려는 자체가 이전 번역보다는 진일보한 측면이다.
문제는 ‘수우’가 원어적인 의미로 ‘당신의’라는 의미라는 것. ‘당신’은 3인칭으로 쓰
일 때는 극존칭이긴 하지만 2인칭에서는 존칭으로 사용될 수 없는 단어라는 데서 문제가 발
생했다. 기도문 자체가 하나님께 드리는 화자와 하나님과의 대화이므로 당신 역시 2인칭일
수밖에 없는 것.
따라서 ‘수우’를 ‘당신의’로 번역할 수 없다는 데는 대게 의견일치를 보는 듯 하다. 유
해무 교수는 이와 관련 “시대가 아무리 바뀌지만 자식이 아비에게 ‘당신’이라고 하는 시
대는 안 온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를 ‘아버지의’로 번역할 수 있느냐의 여부.
한기총 NCC 재번역위원회는 ‘수우’를 ‘아버지의’로 번역했다. 위원회는 ‘아버지의’라
는 번역을 뒷받침하기 위해 관련 자료로서 2001년 1월 15일 열렸던 한기총과 대한성서공회
가 공동 주최한 ‘주기도문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세미나와 이번에 재번역위원회에 제출
된 논문을 제시했다. 특히 이번에 재번역위에 제출된 4편의 논문(통합측 안, 나채운 교수안
(장신대) 나용화 교수안(개신대원) 배종수 교수안(서울신대) 조병수 교수안(합신대)이 모
두 ‘아버지의’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 하다. 위원회는 ‘아버지의’로 번역
한 이유를 하나님 중심의 강한 반복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고영민 부총장(천안대)은 이에 대해 “원문에 없는 것을 덧붙이는 것에 대해 성경은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
이요’라고 엄히 경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해무 교수는 ‘수우’를 ’주‘로 번역하자고 제안했다. “개역성경에서 ’수우’가 나오
면 이를 모두 ‘주’로 번역한 전례가 있고, 우리 정서나 어법으로 볼 때 손 위 사람에게
‘당신’이라고 하는 것은 합당치 못하다”는 이유에서다.
서철원 교수(총신대 신대원장) 역시 ‘수우’를 ’주‘로 번역하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모든 것을 ‘아버지’라 하는 것은 적절한 번역이 아니다. 처음에는 ‘아버지’가 맞지
만 다음부터는 ‘주’로 하는 것이 낫다. 이것이 어법에 맞는다”라는 말로.
그렇지만, 정훈택 교수(총신대 신대원)는 ‘수우’를 원래 의미인 ’당신의‘로 번역하자
고 주장했다. “구세대들이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 이라고 해도 문제가 없을 듯 하다. 어른들이 볼 때 이상하
다 해도 새로운 세대, 즉 이것을 사용할 세대를 위해서는 ’당신의‘로 번역하는 게 낫다”
라는 주장이다.
정 교수와는 다른 이유지만 NCC 여성위원회 역시 ‘아버지’ 보다는 ‘당신의’라는 표현
을 선호했다. ‘아버지’라는 표현이 가부장적 이미지를 가져온다는 이유였다.
서두의 세 가지 종언(...거룩하게 하시며, ...오게 하시며, ...이루어지게 하소서)과 관련
해서도 논란은 있다.
정훈택 교수는 “이런 종언은 2인칭 직접 명령형으로 바꿔서 해석한 것이다. 오히려 예전
주기도문은 3인칭 명령형이었다. 2인칭 명령형으로 하나님에 대한 직접 명령이 되어버렸
다. 이 경우 3인칭 명령어에 남아 있는 여운이 다 사라져 버린다. 각 나라는 이 경우에 원
어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두고 있다”며 ‘...거룩해지소서, ...오소서, 이루어지소서’의
세 가지 종언을 제시했다.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에 대해서도 정 교수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소서’로 바꾸자고 권했다. 종전 ‘마옵시고’라는 번역도 잘 됐으니, 그냥 종전 번역을
써도 무방하다는 입장도 견지했다.
정 교수는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단어가 ‘인도하다’이므로 문자적으로 보면 ‘우리를 시
험에 데려가지 마소서’라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냐?’라
는 야고보서의 입장과 배치되기 때문에 신학자들이 신학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된다. 그래
서 그 관련성을 다 삭제한 것 같다. 신학적으로는 이것이 좋을지 몰라도, 원어의 표현을 살
리지 못했다”라고 비판했다.
고영민 교수는 재 번역된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에 비추어서 원래의 ‘임하옵시
며’가 잘된 표현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성과 미래성을 동시에 함축한 개념인데, ‘나라가 오게 하시며’는
아직 오지 않은 하나님 나라가 앞으로 임하게 해 달라는 미래적인 의미만을 부각시키고 있
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고 교수는 “이중적 의미와 하나님 나라의 수직적 개념, 그리고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의 보편적인 사용상황을 볼 때 ‘임한다’는 용어가 ‘온다’ 보다
더 나은 표현”이라고 밝혔다.
고 교수는 “현행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는 원문에는 없는 것을 문맥상 삽입한 것
으로, 재번역문에서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라고 번역한 것은 잘 된 번역이라
고 한 반면, 청원형인 ‘이루어지게 하소서’라는 재번역문 보다는 기원형인 현행 ‘이루어
지이다’가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청원과 관계없이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평가했다.
유해무 교수는 “재번역문의 ‘아버지의 이름을’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나라가’와
‘아버지의 뜻이’ 역시 주격으로 동일하므로, ‘아버지의 나라를’과 ‘아버지의 뜻을’
로 주격의 어미를 맞춰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또 “현행 ‘죄 지은 자’를 재번역에서 ‘잘못한 자’로 한 것은 원문의 의미
를 그대로 살린다면 ‘빚진 자’라는 의미가 되므로 ‘빚진 자’로 표현하는 것이 더 낫
다”고 말했다.
이상과 같이 주기도문 재번역이 관심을 끄는 것은 성경번역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 한
국교회가 개역성경 이후 표준새번역, 개역개정 성경과 같이 ‘하나의 성경’을 만드는데 실
패한 이상, 성경의 본문이기도 한 주기도문의 새 번역은 관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어서
다.
유해무 교수는 이번 주기도문 사도신경 재번역 논의과정에 대해서도 부적절성을 지적했다.
“지금 우리가 선교지에서 하듯이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기본적으로 성경이 다 번역이 안
된 상태에서 십계명 사도신경이 먼저 번역됐으리라고 본다. 그때는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
다. 그런데 지금 이 작업은 억지스러움이 있다. 한국교회 전체가 수용하는 성경이 없음에
도 불구하고 사도신경 주기도문을 번역하는 것은 억지스러운 일이다. 한국교회 전체가 수용
하는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우선이다. 현행 사도신경의 경우에 이것이 그대로 나타난다. 개
역성경과 사도신경에 나타나는 성경구절이 다른 것이다”
실제로 현재 ‘바른 성경’ 번역을 거의 완성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성경공회 번역위원
회(위원장 김태윤 목사)는 이번 주기도문 사도신경 재번역과 관련하여 “아무런 연락도 받
지 못했다”고 밝혔다. ‘바른 성경’이 주기도문 부분에 있어서 재번역문과 다른 번역을
하고 있더라도 “이를 미연에 하나로 묶기 위한 노력이 미약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NCC 주기도 사도신경 특별위원회는 지난 5월 10일 모임을 갖고, 21세기 찬송가위원회와 대
한성서공회에 NCC 주기도 사도신경 특별위원회가 마련한 새 번역안을 제시해줄 것을 건의했
다. 한기총 NCC 최종 합의안이 마련된 지(2004년 12월 3일) 어언 5개월여만의 일이었다.
재번역위원회 재번역 최종(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는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현 행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6:9-13)
■ 이호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