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소식] 교수는 가볍게 발언할 수 없는 입장이 있고, 많은 다른 직무가 있음
글쓴이 : 이성구 날짜 : 2004/12/10 조회 : 236
최재호기자에게
뉴스앤조이의 최재호 기자님
아직 태울 젊음이 남아 이곳 저곳 불을 지르고 다닐 수 있어 좋아 보입니다.
나도 한 때는 젊음이 너무 충만해 남의 속 뒤집기를 잘 했습니다만
그것도 세월이 가니 주춤해 집니다.
힘이 남아있고 여전히 열정이 주어질 때에
할 수 있는 일들을 감당하도록 힘써 가시기를 바랍니다.
최기자의 분출되는 열기를 이 곳 미국에서도 느끼게 되어
한마디 할까 합니다.
나는 최기자의 그 열정 때문에
피해라면 피해를 입은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그래도 나는 최기자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어쨌건 우리 교단을 포함한 한국교회가
분열과 비방과 어두움의 그림자를 걷어내고
주께서 이미 열어두신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누릴 수 있도록
달려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최기자는 자주 신대원 교수들을 향한 원망을 쏟아 놓습니다.
왜 일마다 분명한 소신들을 밝히지 않느냐고 추궁합니다.
언젠가도 내가 최기자의 물음에 대답을 한 적이 있습니다만
여전히 그 질문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오늘 한 번 분명히 해 봅시다.
1. 우선 교수들이 인터넷 선상으로 대답을 줄 만큼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신대원 경내에서 공동으로 살아가는는 신대원 교수의 생활은 새벽기도회로부터 시작하여 밤까지 지속됩니다. 여느 대학과 다릅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7시가 넘기까지 기도회로 오후 6시 가까이 까지 여러 과목 수업으로 (물론 중간에 쉬는 시간이 있습니다만 마냥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학생들과의 만남과 모임으로, 가족들과의 인간적인 삶의 시간으로 늘 쫓기며 살아갑니다. 강의와 설교의 부담을 넘어 요즘은 교수들이 연구생활을 게을리 하면 대학자체가 자신의 위치를 지킬 수 없는 지경이라 어떡하든 교수들은 모두 자기 몫을 감당해야 합니다. 마음이 쉬어지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곁에 대학의 교수들이 있으면 어떻게들 사는지 한 번 물어보십시오.
2. 사실 인터넷 상에라도 한 마디 쓸려면 정제된 언어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글들은 그냥 하늘에 떠 있을 뿐입니다. 땅에 떨어지게 하는 글을 쓰기도 쉽지 않은 데 떠도는 글을 쓰는 작업에 적은 수의 신대원 교수들이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보내야 할 것인지는 최기자가 생각을 다시 잘 해 보기 바랍니다.
3. 신학교수들은 흔히들 교회의 선생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잘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신학교수의 말은 곧 교단의 말이 되고, 따라서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됩니다.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나를 죽게 만든 당신이 그걸 모른다고 하면 안되잖아요? 때문에 신대원 교수들은 총회로부터 요청이 있을 때 연구과정을 거치고 교수회의를 거쳐 공식으로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절차를 중요시 하지 않을 수 없는 공동체의 원리를 아셔야 합니다.
한가지 조금은 비애가 느껴지는 말이지만 요즘 최기자는 한국교회 전반적으로 작게는 개교회, 크게는 노회 총회가 갈수록 더 교권주의에 의한 희생자를 많이 내고 있다는 점을 알지 못하나요? 순복음, 금란,영락, 광성교회 등 개교회나 합동측과 같은 교단의 사건들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생각나는 게 없나요? 거기 법과 질서와 원칙이 있던가요? 누가 들어주던 가요? 그런 곳에 신학교수들이 설 자리가 있을 것 같나요? 비겁해 보이지만 그냥 모른 척 조용히 사는 것이 교회의 화평(!)을 위하는 길이라고 다들 권고하기도 합니다. 권고가 문제가 아니라 정말이지 이런 흐름은 혼자나 몇 사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님을 절감합니다.
그래서 그처럼 정의를 흐르게 하라고 불같은 선포를 하던 아모스 선지자도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중함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궁핍한 자들을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5:12)라고 한 다음 곧 이어 13절에서 "그러므로 이런 때에 지혜자가 잠잠하나니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는 일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도록 입도록 우리 모두가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나아가 미가 선지자처럼 "오직 나는 여호와의 신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공의와 재능으로 채움을 얻고 야곱의 허물과 이스라엘의 죄를 그들에게 보이리라"고 교수들과 설교자들이 말할 수 있도록, 성령 충만함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십시오.
4. 여기 게시판에 제시되는 질문들을 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문제는 시중에서 책을 몇권 사보든지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보면 자신이 스스로 대답을 얻을 수 있는 문제입니다. 교회의 목사님이나 교역자들도 충분히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이고요. 그보다 심각하다면 개인적으로 메일을 보내어 물어시면 개인적인 대답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수들의 메일을 공개하고 있습니다. 교수가 함부로 공적으로 나설 수 없음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말입니다. 최기자는 더욱 그 사실을 잘 알아야 하고요. 그래서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도리어 당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면서 질문하는 방법까지 일러주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요?
5. 늦게 학교에 들어온 저를 빼고서는 교수들이 대부분 저서들을 출판합니다. 학자들은 책을 통하여 자신의 신학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그 때까지 여러 다른 방법을 통하여 실험적 발언들을 물론 해봅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것이고 저술을 통하여 신학을 이야기 하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방법입니다. 그래서 그런 저작들을 구해서 읽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관심있는 부분의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들의 연구 결과물을 구입해 주는 것도 교수들을 응원하는 방법이 됩니다.
6. 어느 신학교 홈페이지든지 한 번 들어가 보십시오. 어느 학교에 교수가 매번 질문에 대답하는 일을 하는 곳이 있는지, 누구에게 그런 요청을 하는지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각 교회는 각각 선생님들을 모시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필요로 하는 지식은 왠만하면 각 교회의 교역자들이 충분히, 자신의 힘으로, 혹은 자신이 소장한 자료로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필요한 정도에 따라 가진 힘을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7. 최기자는 우리 신대원의 대부분은 사진만 있고 몇 교수만 자기입장을 홍보하거나 변명하기 위하여 교수게시판을 사용한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아마도 나를 두고 하는 말 같아 보여 매우 불쾌합니다. 교수에게 직접 치명적인 오해와 왜곡으로 일관된 신학적인 문제를 제기했을 때, 그에 대하여 입장을 밝히는 것을 두고 자신의 홍보로 보거나 변명으로 본다면, 교수들이 어떤 문제에 대하여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인지요? 그런 논의에서 신학을 보는 눈과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야말로 신학적 논의가 아닌가요?
게다가 그런 글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문제에 대한 글, 생각을 하게 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는데, 같은 그리스도인으로 그런 식으로 자기 마음대로 교수를 매도하는 일을 해도 옳은 일인가요? 신문기자는 남을 매도하는 전매특허라도 받은 것인가요? 기자는 사실 보도에 충실해야지 자기입장을 강요하려는 듯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고쳐야 한다고 봅니다. 뉴스앤조이의 문제점이 그것입니다. 그럴려면 논설이나 논평을 통하여야 하고 그런 자리에 서려면 먼저 자신부터 객관적인 자질 검증을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봅니다. 내 입장으로 보면 새파란(?) 기자들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쳐 자기 잣대로 너무 가르치려 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그것은 기자가 취할 태도가 아닙니다. 그런 원칙은 대학 신문을 만들면서 배웠던 상식입니다.
사진은 다른 곳에서 사용할 필요가 있을 때 가져가기 쉽게 직원이 올려놓은 것일 뿐입니다.
내가 최기자를 잘 알기 때문에, 나도 오늘 갈수록 약간 강한 표현을 한 것으로 느껴집니다만, 최기자의 마지막 표현은 조금 도를 넘은 것 같습니다.
지나침은 아니감만 못하다는 것을 지금도 열심히 익히고 있는 나로서는 최기자가 가진 열정을 조금 다르게 발휘해 주기를 부탁합니다. 교수들도 부담이 늘어가지만 좀 더 관심있게 교회를 위한 신학을 통해 교회의 미래를 살펴갈 것입니다.
계속 수고하세요.
미국 칼빈에서 이성구 교수